〈 18화 〉 플라금
* * *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서대륙으로 이동해야 했다.
가장 좋은 이동수단은 역시나 차원문, 그 마법을 발동하려면 차원석이 필요하다.
차원석은 시간의 파편 못지않게 값비싸고 희소성도 그에 견준다.
아무데에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에 거대한 마도구 시장에 들러야 했다.
그 계획을 말하자 디안이 거들었다.
“공용 차원문을 이용하는 건 안 되나요?”
“그거 절차 엄청 까다로워. 심지어 우린 이곳 동대륙도 우린 밀입국했잖아.”
“에효... 그딴 법은 왜 있어가지고 귀찮게.”
최세린의 탄식에 동감했다.
ONE(?)에서 제일 귀찮게 느끼는 게 이것이다. 관문 통과 의례와 차원문 사용 의례.
관문이 특히나 까다로운 것이, 마을 하나를 지날 때마다 여권 보여주듯 경계병에게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전대륙에 도입한 후 범죄율은 크게 하락했으니 긍정적인 기류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썩 반갑지 않았다. 용사라는 신분 자체가 너무 화려하고 귀찮다.
하나 더.
우리에겐 다른 마을을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신분증에는 그런 것 따위 하나도 없다. 만약 이동 경로에 대한 도장이 찍혀 있었더라면 그것 또한 굉장히 기괴한 루트긴 했다.
서대륙의 데미투, 에톰 > 북대륙의 주피아 > 동대륙의 비이린.
경비병은 기겁하리라.
기겁을 떠나서 척봐도 ‘나 불법 차원문 이용했어요’라 광고하는 것과도 같다.
이곳의 관리인이 저불처럼 너그러이 넘어가 주지도 않을 거다.
동대륙으로 건너갈 때 사용한 차원문에 대한 반응은 아직 보지 못 했지만.
숲을 벗어나자 관문에 꼬불꼬불하게 줄 선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그들은 저마다 거대한 짐을 들고 있거나 어딜 잠시 다녀오는 듯 추례한 행색도 있었다.
그들의 피로함에서 비롯한 허기를 노리고 길거리 객점을 하는 요리사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메뉴는 닭꼬치. 노릇노릇한 불향 때문인지 장사는 제법 잘 되고 있었다.
“하아...”
저 사이에 부대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것보다 불쾌한 건 나와 최세린, 이재홍을 제외한 다른 용사 때문이었다.
그 착하던 사람이 행방불명이 된 건 이 영토에서 시작됐다.
“...오빠, 철수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검술 용사님 말이신가요?”
“응, 그 형 맞아.”
이곳은 검술 용사 이재홍이 지냈던 영토 플라금이었다.
그 이름이었던 게 대충 1년 전의 일이다.
동대륙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전 플라금의 영주 때문이리라 어렵지 않게 의견이 좁혀지는 것도, 김철수(검술 용사 다르칸)가 이곳에서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선량한 인품이었다.
그가 전대륙의 검술을 통합해 다음 마왕군에게 대적할 힘을 기르게 하겠다는 것은 의도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플라금 영주는 그의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이만치도 없었다. 전대륙의 검술을 터득하여 입맛대로 개조한 김철수의 검술은 굉장히 완성된 것이었고, 그의 검술 교본은 꽤나 잘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데미투 영주랑도 합이 잘 맞을 놈이다.
차이점이라면 데미투 영주는 내 마법 교본이 전대륙에 떠도는 게 못마땅한 것에서 그쳤다.
그는 나를 더 몰아세울 능력도 없었고, 나는 영주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출판사 업자를 통해 교본을 전국으로 유통하였으니 말릴 방도도 없었다.
반면 플라금의 영주는 행동력이 달랐다. 또한 세치 혀를 잘 놀리는 놈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는 김철수를 속여 검술 교본을 독점해뒀다. 그리곤 독단적인 병사를 길러 2년만에 김철수의 검술을 모두 터득하게끔 했다.
고독(??)이라는 게 있다.
지네, 뱀, 두꺼비, 전갈, 거미 등의 독생물을 한 항아리에 집어 처넣는 것이다.
그 안에는 저들끼리 혈전을 펼친다. 그리고 머잖아 단 한 마리의 생물만 살아남는다.
그 생물의 독은 다른 죽은 놈들보다 더욱 강할 것이다. 이 행위를 고독이라 한다.
플라금의 영주가 처음 길렀던 독단적인 병사는 총 수백 명 남짓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년만에 검술을 터득하고 살아남은 자는 2명이었다.
저들끼리 싸움 붙이고, 몬스터를 불러내 숙소에 집어던졌다.
불구덩이에 집어던지고, 식량 따위 없이 독방에 가뒀다. 그러자 서로를 뜯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최강의 독이다. 영주는 그 두 명을 양(?)과 음(?)이라 칭했다.
‘중2병도 아니고 무슨 양과 음이야. 끽해봐야 김철수 짝퉁이잖아.’
지금도 그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지만 그들이 운 좋게 살아남은 헛내기는 아니었다.
그들이 강했으니까 플라금은 주변 영토를 잡아먹고 영지가 아닌 나라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일등 공신은 양과 음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대를 제공해준 것은 플라금의 영주가 아니라 김철수였다.
김철수의 검술 교본이 없었더라면 양과 음 같은 자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김철수의 검술은 예리한 검이다. 그리고 양과 음은 몸도 정신도 살육으로 똘똘 뭉친 병기였다. 그들에게 명도를 쥐어줬다. 동대륙은 피바다로 물들었다.
김철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휴가 겸 여행을 떠났다가 전쟁 소식을 듣고 성급히 플라금에 복귀했다. 그런 김철수를 플라금의 영주는 환대하며 말했다.
“이 모든 게 그대의 덕이네! 그대의 검술 교본이 나를 왕의 자리에 앉혔어! 아! 인사하게! 이 두 아이는 그대의 제자나 다름없으니 말일세!”
“양입니다.”
“음입니다.”
영주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 비틀거리고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왕관 비스름한 것이 반쯤 벗겨져 있었다.
그는 김철수에게 다가와 어깨를 쓰다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와락 껴안기도 했다.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자 길가에 잔뜩 얼룩진 핏물이 떠오른다.
여행을 떠났던 그 며칠 사이, 영주는 대살육을 벌였고 근방 지역을 통합했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내면에서 솟구친다.
“이... 이... 무슨......”
“플라금은 지역명이 아닌 국명이 될 것이네, 그렇다면 기존의 플라금은 음... 그래! 그대의 대한 감사라는 의미로 이프카리스토(ευχαριστ)가 좋겠군! 하하하!! 정말 좋은 날이야!! 이제부터 나를 폐하로 불러주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자랑이던 발도술 제 1식을 준비하는 자세였는데, 그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놀람에 검을 뽑을 수 없었다.
[ 다르칸 류 발도술 제 1식 출근길 ]
[ 다르칸 류 발도술 제 3식 마늘 빻기 ]
양과 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두 아이가 김철수의 목덜미에 검날을, 김철수의 옆구리에 폼멜을 위협적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반응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충분히 위협적인 몸놀림이었으나 쳐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쳐낼 수 있었고, 반격으로 이 두 아이를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만들 수 있었다.
허나 김철수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검술을 그대로 따라한 순간부터 손이 굳어버렸다.
검술에서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검을 들이밀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두 아이의 눈빛에서 흔들림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십대 중반이나 겨우 되어 보이는 아이들에게서 말이다.
김철수가 검을 뽑았더라면 저 아이들은 검을 위협 용도가 아니라 살해 용도로 휘둘렀을 것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이 아이들은 목숨을 건 전투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껏 15살도 안 된 아이들이.’
자세히 보니 도신에 핏자국이 미처 닦이지 않은 채 얼룩져 있었다.
색깔과 굳은 경도를 보아하니 생기지 얼마 안 된 얼룩이었다.
“다르칸!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이게 무슨 질 나쁜 농담인가? 한 번은 용서할 테니 자리에 앉게!”
껄껄 웃으며 플라금의 왕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손을 저으며 두 아이에게 신호를 보내자 이들도 검집에 다시 검을 꽂아넣고 자리에 앉아 차를 홀짝였다.
김철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두 아이를 가리키며 왕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을 전쟁의 선봉에 세운 겁니까?”
“어찌나 용맹하게 싸우던지, 참으로 멋진 재목들이야. 나중에는 귀신이라 불리는 그 검호에게 보내볼 생각이네. 물론 이 대륙을 통합한 후의 얘기겠지만.”
“......”
무어라 입을 뗐다가 다물었다.
그리곤 김철수는 터덜터덜 플라금이었던 이프카리스토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현재까지 그는 행방불명이다. 최세린은 중얼거렸다.
“이곳 왕 한 번만 보고 싶다.”
“보면 뭐 하려고?”
“병신 만들어야지, 죽이는 건 이곳 사람들에게 민폐니까 참아둘 거고.”
최세린이 굳이 죽이지 않겠다는 건 그의 능력을 인정해서였다.
플라금은 학살이나 살육이라 이름붙여도 상관 없을 전쟁에서 1년만에 모든 걸 회복했다.
더 발전까지 했다. 정말 다방면으로 말이다.
양과 음을 이용해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반협박으로 선물을 빙자해 다른 나라로부터 정기적으로 막대한 조공을 받는다. 그 덕에 세금을 줄이고 플라금의 국민은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이주자가 많아지는 건 당연했다.
국민의 청원은 옳다 싶으면 바로 해결해주고, 가난한 이와 노인은 시설을 만들어 보살핀다.
어린아이에게는 교육의 터를 마련해주고, 영혼은 좋은 곳에 가야 한다며 플라금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례식에는 언제나 굉장한 공을 들였다. 이 모든 걸 무상으로 말이다.
이러한 인자하고 배려 넘치는 정치로 국민에게 환호성을 얻고 있다.
그는 국민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플라금에만 한정된 얘기다.
다른 나라는 양과 음의 공포에 짓눌려 플라금에게 갈취당하는 것과도 같다.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들 나라의 국민이다.
나라 간에 빈부격차만 심해질 뿐이다. 그는 구원자가 아니라 약탈자였다.
플라금 국민에게는 구원자가 맞겠지.
그런 생각에 잠기고 있자 관문에서 우리 일행을 검사할 차례가 왔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는 살며시 입을 뗐다.
“세금이 무거워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이주 왔읍니다. 이쪽은 제 하나뿐인 손녀고 이 쪽은 제 남편이라우.”
“신분증은... 오케이... 문제 없고. 이동 경로도... 문제 없군요.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플라금의 수도 이프카리스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맙수다... 영감, 아가야... 갑시다.”
“푸... 푸흡... 그래 마누라야, 가야지 가.”
나는 웃음을 참느라 고전하고 있었다.
가짜 신분증은 최세린이 재빠르게 조작했고, 내 일루전 마법으로 최세린과 나는 꼬부랑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변한 채 관문을 통과했다. 디안은 손녀라는 설정이었다. 웃겨 죽겠네.
“재밌냐?”
“응, 엄청 재밌네. 연기 잘 하더라, 최세린 할머님.”
“...짜증나. 빨리 풀어줘.”
우리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고 머잖아 다시 젊은 모습으로 골목에서 나왔다.
그래도 얼굴은 바뀌어 있었다. 용사 신분은 끝까지 숨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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