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시간 역행
* * *
“마왕군은 어째서 용사를 살려두는 거지?”
언제나 들던 의문이었다.
거듭 말했었지만 마왕군이 마음먹는다면 용사는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다.
지금이 레벨 70을 달성한 시점이었다고 다크 엘프가 말했었다.
그 말을 뱉은 다크 엘프만 단신으로 보내도 우리는 몰살이다.
“용사를 살려두는 이유라...”
메이블은 턱을 짚으며 고민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쓸모 있기 때문이다.”
쓸모가 있다?
마왕군으로 끌어들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난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마왕군으로의 스카웃 제안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받았다고 한들 거절은 너무 뻔한 결과였지만.
“심장에 걸고 ‘성실히’ 대답한다고 맹세했었지? 용사가 어디에 쓸모 있다는 건지 말해.”
“...그들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이행하려면 지금 수준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더 성장해야 한다. 그 때문에 살려두는 거다.”
“그 역할이란 건?”
“장기말... 그래, 장기말이다. 나 또한 장기말 중 하나지. 그들을 나와 체급이 비슷해지게끔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용사에 관한 게 왜 궁금한 거지? 옆에서 알로켄의 역질문이 들어왔으나 머리를 쥐어박아주는 것으로 가뿐히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아직 첫 번째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적을 네놈 손으로 직접 키운다는 건가? 왜지?”
“그편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콜록!
사례가 들렸다. 상상도 못 한 대답이었다.
“제정신이냐? 목숨이 담보로 걸렸어. 재미 따위로 대답할 문제야?”
“아니, 용사와 마왕군의 싸움은 재미있어야 한다. 내 대답은 여기서 끝이다. 다음 질문.”
메이블의 심장에 걸린 마법진이 흐릿해졌다.
저 대답이 메이블에게 있어서는 성실한 대답이었다는 의미였다.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네.’
재미, 장기말, 등등이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메이블은 꽤나 떠들어줬지만 내가 얻어낸 정보는 너무나도 불확실한 것들 뿐이었다.
전투의 희열을 느끼고 싶다, 대충 이런 뜻일까?
곧장 부정했다. 내 스승이나 검호, 다크 드래곤을 찾아가면 생사를 건 짜릿한 전투를 즐길 수 있었을 테니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싫지만 과거 나와 일행은 터무니없이 약했다.
사천왕과 맞붙었을 때에도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이 미련하리만큼 방심하며 대충 싸웠기에 빈틈을 비집고 겨우 이겨낼 수 있었던 거다. 그건 승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들의 놀이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전투의 희열, 이따위 종류의 재미 말고는 저 대답의 의도가 정립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질문의 대답이 거짓 대답인 걸까? 메이블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무표정이었다. 감정을 읽어내기 버겁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건지...
“첫 번째 질문에 답했으니. 내 부관의 구속을 반쯤 풀어라.”
틈을 주지 않았다. 메이블은 다음 질문을 독촉했다.
“...오케이, 다음 질문이다.”
콰작!
내 손짓에 맞춰 알로켄의 온몸을 둘러싼 얼음이 부서지며 얇아졌다.
그러자 조금은 자유로워진 알로켄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그의 목덜미를 꽉 조이며 다시끔 제압하곤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질문. 마왕군의 궁극적인 목표가 뭐지?”
“세계를 수호하는 것.”
"미치겠네."
전 대답보다 이번 대답이 더 황당했다.
“너무 대놓고 거짓말을 하잖아. 너답지 않게.”
“그대는 나를 아는가?”
“...아니, 잘 모르지. 첫인상만 보고 멋대로 내뱉었을 뿐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문답은 종료다.”
치이이...
메이블의 심장에 걸어둔 마법진이 사라진다. 제 딴에는 이것도 성실한 대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문답은 종료됐다. 더 좋은 질문은 없었을까 아쉬워할 틈은 없었다.
“알로켄의 구속을 풀어라.”
“알았다고.”
나도 약속을 이행할 때였다. 잔뜩 몸부림치는 알로켄을 메이블에게 집어던졌다.
치이이...
그러자 내 심장에 걸린 마법진도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그때 브룩이 알로켄을 보며 이죽거렸다.
“아쉽네. 뒈졌으면 싶었는데.”
“...광포의 드루이드님. 그게 동포에게 할 말입니까?”
“안 될 건 또 뭐람. 너도 나한테 맨날 개지랄하잖아.”
“둘 다 입 닫아라.”
메이블의 양손에 흑색 마법진이 회전한다.
그때 브룩은 재밌는 구경한다는 듯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를 햄버거를 맛있게 씹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브룩은 나한테 관심도 없다.
알로켄은 사지는 멀쩡했지만 아직 내 얼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전력에서 논외다.
그러니 메이블만 따돌리면 됐었다. 밖에 널린 잔챙이들도 굳이 포함한다면 포함하겠다만 그들은 위협 축에도 안 든다. 메이블이 말했다.
“이제 재주껏 도망칠 차례겠군.”
“순순히 보내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지.”
메이블의 흑염이 지하실에 다시 드리우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 네모나게 이글거리던 아지랑이가 점점 각이 잡히며 모습을 찾아간다.
그리곤 굉장히 찰진 소리가 계속 울렸다.
찹찹찹... 찹찹찹...
무슨 소리인고 하면 카드 섞는 소리다.
“아, 제발 그딴 것 좀 쓰지 말라고. 주변 사람 답답하다고 몇 번을 말하냐.”
“참모장님의 마법...!!”
그 아지랑이의 정체를 눈치챈 브룩과 알로켄의 희비가 교차한다.
이게 메이블의 시그니처다. 이름은 트럼프.
마나로 빚어진 카드 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행동을 중지했다. 메이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카드 게임 좋아하나?”
“아니.”
“아쉽군, 같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랬건만.”
그의 카드 중 다섯 개가 내 앞에 일렁인다. 그리곤 내게 패를 까보라며 손짓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게임을 제안하는 것이다.
‘웃기고 있네.’
시그니처를 발동하려다가 이내 관뒀다.
다른 마법이었다면 모를까, 놈이 내게 게임을 제안한 순간부터 탈출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시그니처에 사용할 마나를 아껴도 됐다.
메이블은 카드를 다 섞곤 내게 말했다.
“종목은.”
포커였다.
총 3판이 진행된다.
이 마법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게임에서 단 한 판이라도 패배하면 내 모든 능력치는 일시적으로 대폭 하락한다. 적진에서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반면 운 좋게 승리해도 메이블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
지면 죽음, 이겨도 본전.
말도 안 되는 마법이다. 이보다 불공평한 게임은 없다.
메이블은 승기를 잡았다는 듯 끈적하게 웃었다. 이토록 감정 풍부한 놈이었던가?
“그 뒤에 있는 패에 네놈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해라. 좋은 패이기를 기도해주지.”
“더 높은 패로 이기면 되는 거지?”
“그렇지. 조작 따위 안 했다고 내 이름에 걸고 맹세하지.”
“마왕군 참모장 명예 따위야 어디다 쓰겠어.”
“저놈이! 감히 참모장님을 모욕하다니!”
“네가 붙잡힌 게 더 모욕이지 않을까?”
“둘 다 시끄럽다.”
메이블의 말투는 딱딱했으나 입가는 여전히 빙긋 웃고 있다.
저 웃음을 부숴줄 생각에 나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 마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비단 내게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다. 저 마법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황당한 약점.
벌써부터 반응이 기대돼 나도 메이블처럼 끈적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브룩은 흥미진진하게 이 게임을 구경하고 있었다.
“패를 공개해라.”
메이블의 음성.
그에 맞춰 나는 카드를 까보기도 전에 두 손을 하늘 위로 들며 익살스럽게 외쳤다.
“미안, 나는 다이!”
“.........네놈이 그걸 어떻게!!!”
“도박에 소질 없어서 항복한 건데? 배팅한 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는 것 아니야?”
의뭉을 떨었으나 나는 이 마법에 대해 메이블 다음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메이블이 저 카드를 마법진 삼아 내게 덤벼들었다면 시그니처까지 가동하며 꽤나 고전해야 도망칠 수 있겠지만, 놈은 나를 지나치게 경계했는지 결국 ‘게임’을 선택했다.
트럼프 마법의 특징이라면 조커 포함 54개의 카드가 모두 마법진의 역할을 이행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건 게임이라는 시스템이다.
놈의 장단에 맞춰 게임에 임하면 메이블에게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경우가 펼쳐진다고 앞서 말했었다.
상대방이 운 좋게 3판 중 3판을 모두 이긴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건 1/2 * 1/2 * 1/2 = 1/8의 확률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역발상으로 그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항복을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주 간단하다. 그 게임은 끝이다.
“배팅한 것도 없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네.”
“...모두 공격하라!”
메이블이 분하다는 듯 소리치자 나를 둘러싸던 몬스터가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냈고, 묶어뒀던 가고일 조차도 덜컹거리며 조금씩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공격 명령!”
그와 동시에 메이블은 허공에 트럼프를 흩뿌렸고, 그 트럼프의 중앙은 흑색 마나를 머금은 채 모두 나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 마법진은 이미 포커 게임이 시작됐던 순간부터 그려지고 있었다.
그 마법진을 보란듯이 메이블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부하들을 모두 물렸다. 그리곤 트럼프를 공격 용도에서 방어 용도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득바득 간다. 분통 터져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대는 늑대 가면이 아니라 여우 가면이 어울리는군... 이 능글맞은 놈...!”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회전시키는 이유는 상대방이 내 마법을 읽지 못하게끔 시각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 회전을 지금은 고의로 멈췄다. 이미 마법진은 완성됐고, 이 마법이 완성된 순간부터는 파훼법이라고는 없기에 들켜도 상관 없었다. 마법진 자체가 엄청 복잡해서 역산당할 걱정도 없다.
허나 이건 농락의 의미가 아니였다. 메이블은 마왕군 병사 피해를 막아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책임져야 할 영향력도 적어지니까. 방어할 시간을 일부러 줬다. 그리고 메이블은 역시나 대단한 놈이었다. 놈은 카드로 내 주위를 모두 감쌌다.
이리 된다면 설령 마법이 발동돼도 몬스터들이 부상은 입을지언정 사망에 이르지는 않겠지.
사실 운 나쁘게 죽어도 큰 상관은 없다.
방어해줘도 죽을 정도의 몬스터라면 애초에 영향력을 많이 끼칠 놈은 아닐 것이다.
“미친놈. 자폭하겠다는 건가?”
“설마, 너도 알잖아? 이 마법은.”
포위되었을 때 가장 효과적인 마법이라는 걸.
아마 스승이 이 광경을 본다면 미친놈이라며 내 머리를 수십 번은 쥐어박을 테지.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마법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걸요.’
그 마법진을 완성했다.
태평한 브룩은 상황파악이 안 되는 건지 메이블을 지나치게 믿는 건지는 몰라도 내 마법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감자튀김을 왕창 입에 구겨넣었다.
“...방어 명령!”
그와는 반대되게 메이블은 초조했다.
트럼프 카드로 아주 두꺼운 반투명한 방어막을 실컷 펼쳐뒀어도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지금 메이블의 행동은 절대로 호들갑이 아니었다.
역산하기에는 이미 마법진이 완성됐으니 마왕성을 지키려거든 방어가 최선의 행동이 맞았다.
“아, 떨린다. 잘 지내라고 메이블.”
“기다려라! 네놈의 정체는 무엇이냐! 어째서 용사에게 관심을 갖는 거지? 대답해라!!”
“용사 쪽은 몰라도 되고, 내가 누구냐면... 어딘가의 대마법사라고 해둘게. 만나서 반가웠다. 역시 너는 무서운 놈이야.”
진심이었다.
알로켄이 없었다면... 위험했다.
“널 찾아내서 죽일 거다! 반드시 죽일 거다!”
“열심히 해봐. 난 이만 가볼게.”
8서클 마법.
특히나 모든 마법 중 위력면에서는 발군이라 불리는, 시전자조차도 위험한 마법.
{ Μεγλη κρηξη 대폭발! (υτ) }
......!!!
거대한 폭음이 마왕성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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