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전쟁의 상징
* * *
‘그거 하나 훔치는 게 그렇게 힘들었냐? 하여간 쓸모없는 년.’
‘우리 이름 팔았다가는 알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도둑질은 할 게 못 됐으나, 그게 아니라면 삶을 연명할 수도 없었다.
이 도둑 무리는 따지고 보면 내게 은인들이다. 길거리에서 배곯고 죽어가는 날 거둬줬으니 그에 대한 대가로 나는 뭐든지 했었어야 했다.
‘다쳤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엄살 피우지 마라~ 또 혼나고 싶어?’
‘이걸 콱.’
이들의 사랑 없는 시선은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불만도 없었다.
행복이라는 건 상대적인 거다.
부모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저 철부지 또래 아이에게 있어서 행복은,
원하는 장난감이나 책 따위를 끝없는 투정 끝에 부모에게서 쟁취해 냈을 때.
혹은 저녁 식사에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나왔을 때.
그럴 때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한 걸 원할 수도 있다.
일상이나 평범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저 아이에게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었다.
저 아이에게 그 단어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배부른 소리.
내게 있어서 행복이라는 정의는 달랐다.
소매치기를 들켜 길거리 한복판에서 매타작을 맞지만 않아도,
대장이 기분 좋게 술에 취해 내게 손찌검을 하지만 않아도,
내 몫의 식량이 우연찮게 남기만 해도,
쥐나 벌레가 내 새우잠을 방해하지만 않아도.
그 정도도 내겐 행복이었다.
‘내 지갑을 훔치려 들다니, 간땡이가 부었구나.’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벌을 줘야겠다.’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자신감 넘치고 열의 가득한 눈동자.
그 눈으로 날 훑어보곤 ‘어쭈, 마법에 제법 소질이 있는데?’라며 중얼거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마탑이라는 곳에 도착한 채였다.
'오늘부터 넌 내 첫 번째 제자야. 고생깨나 할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 우선 청소부터 시작하자. 근데...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너 이름이 뭐야?'
*
“디안만 제외하고 모두 전쟁에 참가할 생각이었다며? 이 새끼들이 간땡이가 부었네.”
“저, 스승님! 그게 아니라!”
“닥쳐, 은근슬쩍 일어나려고 하지도 마.”
“......”
다섯 명의 남녀가 내 앞에서 숨을 죽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부분 한심한 몰골이었다.
전쟁에서 자신들의 마법을 뽐내볼 생각에 잔뜩 들떠있던 꼴불견인 얼굴. 그 얼굴을 뭉개줬다.
파악!
제자 중 한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리곤 체중을 실어 꾸우욱 눌렀다.
놈은 숨이 안 쉬어지는지, 내 신발에 있는 밑창이 딱딱한 건지 컥컥거리며 내 발목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체중을 더욱 실으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마법 가르칠 때 항상 했던 말 기억 안 나? 마법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남을 해치려고 쓰는 수단이 아니라고. 이번 전쟁이 남대륙한테서 지키내는 전쟁이었나.”
“아닙니다...”
“국왕인지 영주인지는 몰라도 두 병신이 어지간히 설득을 잘 했나봐. 반드시 너네의 도움을 받아서 남대륙을 정벌해야겠다고 떠들었을 거 아니야.”
“아닙...”
“그럼 설득될 이유가 없네. 마법 좀 쓸 줄 아니까 들떴던 거였어.”
“......”
“내가 책에 써놨지? 멋대로 마법 휘갈기고 다니면 내가 죽이러 간다고 말이야.”
스슥 스스슥
흑심이 종이에 위에서 선을 긋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내 주위에 회전하는 4개의 청색 마법진은 발밑에 있는 놈까지 포함해 모두 제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무표정으로 훑었다. 최세린의 눈매를 따라 하며 말이다.
그 마법진은 조용히 회전한다. 제자 중 한 놈이 바닥에 머리를 박은 건 그때였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폐하에게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이런 한심한 짓을 벌였습니다!!”
“기세 좋게 소리치면 죄가 없어지나, 너희는 사람을 해치려 했고, 나한테 들켰어.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 아니야?”
“하,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폐하에게 거슬렀다가 혹여나 저희 가족이 위험해지거나 제국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허억!
내가 발을 떼자 부들거리던 두 번째 제자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놈에게 눈총을 쏘아주곤 마나 조작으로 저기 있는 소파를 내게로 당겼다.
끼기기기긱!
소파가 바닥을 긁으며 칠판 긁는 듯한 소리가 마탑 전체에 울린다.
저 멀리에서 수면독을 제작하던 최세린이 귀를 틀어막곤 짜증 난 표정을 지었다.
“오빠, 개 시끄러워!!”
“그럼 나가. 방해하지 말고.”
“...뭐야, 화났어?”
“내 마탑이야. 좋은 말로 할 때 나가.”
왜 저래.
중얼거리곤 최세린은 마탑에서 퇴장했다.
제자 일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감정이라고는 없는 그 암기 용사조차도 내게 한 수 접고 물러났다.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는 건 당연했다.
마법사는 자기 뜻이 확고하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강한 무기를 멋대로 다루면 그건 흉기다. 그리고 마법은 강력한 무기다.
나는 대의 없이 무기를 멋대로 휘두르는 망나니를 기른 적은 결단코 없다.
제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구두로 말했던 것과 마법 교본에 적힌 내용.
그중 5할 이상은 언제나 정신교육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마법사는 어느 누구보다 냉철하고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그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서 들은 제자가 왕의 권력을 핑계로 전쟁에 참여하려 했다.
속이 쓰리다. 뒤에서 누군가 둔기로 내려친 기분이다.
“......”
내 제자들은 오늘 반병신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들만을 탓할 건 아니다.
전쟁을 계획한 필라기리아의 왕 아들러 프리브룩스가 궁극적인 문제다.
“...그냥 만족하면서 살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이건 너희한테 한 말 아니... 아닌 게 아니야. 만족하면서 살아."
저 죄송하다는 단어가 얼마나 진정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요점은 아들러가 경고장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다.
그래도 당분간은 잠잠하지 않을까.
나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아들러의 수하가 다시 너희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렇게 전해. ‘제 스승님이자 마법 용사님이 한 번만 더 개수작 부린다면 서대륙을 자기 손으로 무너트려 주겠다고,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지 없을지 의심이 든다면 한번 전쟁을 펼쳐보라고’ 말이야. 그때가 서대륙이 멸망하는 날이다.”
“...알겠습니다!”
“마법은 1년 정지다. 이것도 알겠다고 대답해. 심장에 걸고.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 아니라면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심장에 맹세합니다. 1년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의 심장에 마법진을 걸며 언약을 건다.
이거면 충분히 벌이 됐겠지, 나도 이만 뒤를 돌아 마탑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조금 전부터 한 가지 거슬렸던 게 떠올랐다.
다시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첫 번째 제자이자 수제자이자 유일한 여제자.
“너는 왜 아까부터 같이 벌 받고 있어? 너는 잘못한 거 없어. 오히려 같이 혼내야지.”
디안,
그녀도 다른 제자처럼 벌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녀를 향해 호통치지도, 마법진을 겨누지도 않았지만 저 정좌를 고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디안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투가 조금 풀죽은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아니에요. 후배들을 못 말린 제 잘못이 가장 커요. 마탑주님에게 가장 두터운 신뢰를 받는 만큼 잘 관리했어야 하는데...”
“디안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니까. 자책은 그쯤 해줄래?”
“제가 이런 사태를 미리 직감하고 마탑 전체에 사일런스 마법을 펼쳐두거나 후배들에게 다가오는 영주의 서신을 불태웠어야 했어요. 그렇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자리가 없었겠죠. 아니, 그 전부터 마탑주님의 정신 교육 내용을 제가 재차 읊조렸더라면 이들은 어리석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 거예요. 모두 제 실책이에요. 저도 벌을 받아야 해요”
“미치겠네.”
누가 봐도 ‘나 마법사입니다.’라고 광고라도 하는 듯한 요란한 모자 위로 특유의 푸른 장발을 묶어올린 여성. 전체적인 인상은 고양이, 이목구비는 너무나도 뚜렷하다. 누가 봐도 미인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얼굴.
처음 거뒀을 때에는 15살짜리 애였는데, 세상 어떤 마법보다 신비로운 성장기라는 마법을 내게 보여주듯 디안은 어느새 내 가슴팍 위로 키가 커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도저히 애라고 부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때문에 디안이 옛날처럼 안겨 오면 모르는 척 스르르 몸을 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빠를 보는 마음으로 내게 애교를 부리는 거겠지만, 그림이 솔직히 범죄의 냄새가 가득하다.
우리가 떳떳하건 아니건, 남들이 보기에 좀 아니다 싶으면 아닌 게 맞다.
그래서 요즘 디안을 멀리하고 있었다. 남자친구 생기면 아빠한테 쌀쌀맞아지듯 내게서도 멀어지겠지.
‘...참 별생각 다 한다.’
심경이 착잡했다. 아직 20대인데...
그걸 알 리 없는 디안은 주절주절 자기 죄를 고했다.
“죄송합니다. 마탑주님은 제게 과분한 사랑을 주셨는데, 저는 이런 것 하나도... 히끅.”
그녀의 귀찮은 특징이라면 자책이 심하다는 것과 내게 한없이 충성적이라는 것이다.
그 충성심은 도가 지나칠 때가 많았다. 이럴 때마다 한 방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녀는 피곤한 성격이었다.
“사랑은 무슨, 그냥 거둬주고 밥 먹여준 거 말고는 없는데 무슨 사랑이야. 아무튼 알겠으니까 자책 그만해.”
“...정말 그 정도로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너는 마법 써도 된다니까...?”
“...알겠어요.”
잔뜩 사기가 꺾인 제자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본 후 방을 나서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최세린이 보였다.
“마탑주님~ 군기 잡기 놀이는 끝나셨어요? 화난 연기 잘하던데?”
“연기가 아니라 화난 거 맞아. 장난치지 말고 슬슬 움직이자. 원래 지금쯤 도착했어야 정상인데,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어디까지 이동할 건데?”
“일단 마왕성이 있던 곳과 가장 가까운 마을 주피아로 이동하고 그 이후 도보로 이동해야 돼.”
“아예 마왕성 있던 곳으로 이동하면? 눈치챈 몬스터가 있다고 한들 쓰러트리면 되는 거잖아.”
“아니야, 몬스터는 내버려 두자.”
“왜?”
석연찮아서.
뭐가 석연찮냐면, 전 사천왕의 모순된 행동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사천왕과의 전투를 하나씩 떠올렸다.
암전(??)의 단검 긴은 최세린의 목을 긋기 전 일부러 트래쉬 토크를 하며 우리에게 반격할 타이밍을 제공했었다.
그 말고도 다른 사천왕 또한 우리와의 전투에서 일부러 몇 수를 무르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듯이 말이다.
용사 초기 시절, 처음부터 강한 몬스터를 보내지 않은 이유와 같은 걸까?
그들은 멍청한 놈들이 아니다. 특히나 흑마장 메이블 토진은 굉장히 두뇌 회전이 빠른 사내다. 그와 몇 번 맞붙어봐서 몸으로 이미 알고 있고, 들은 바도 많다.
그는 나 따위는 가지고 놀 수 있을 법한 영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메이블 토진을 상대로 우리 용사 일행이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우리는 승리한 게 아니라 어거지로 승리 ‘당한’ 것 같다는 불쾌감이 든다.
그 찝찝한 내 예상과 마지막 사천왕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도 서글피 울던 마왕 단탈리온의 얼굴이 얼기설기 섞여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마왕군의 행동은 모순이 많았다.
“마왕이랑 사천왕이라는 놈들이 그토록 이상했잖아.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몬스터는 마왕군의 꼭두각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왕군이 괴멸한 다음에 놈들이 인간에게 피해 끼친 사건은 정말 드물잖아.”
“...그것도 그렇네.”
그녀는 괜히 열 번째 사슬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메이블 토진에게 궁금한 게 많듯이 그녀도 긴에게 의문점이 차고 넘치는 것이겠지.
절그럭
그를 파헤치기 위한 시간의 파편이다. 그리고 과거에서 몸을 지키기 위한 시그니처다.
내 마력은 지난 3년간 18,000 수치까지 도약했다.
아직도 메이블 토진의 마력에는 미칠 바가 못 되지만, 그나마 이제야 사천왕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승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전투에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위기의 순간이면, 시그니처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τηλεμεταφορ 텔레포트 }”
지이잉
불투명한 차원문이 허공에 열렸다.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몸을 던졌다.
머잖아 차원문은 아가리를 벌리듯 우리를 집어삼켰고, 곧 닫힌다는 걸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알렸다.
“......”
그곳에는 뒤늦게 한 여성이 서서히 어둠 속에서 나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푸른 머리칼의 장발, 메고 있는 무식하리만큼 큰 가방은 빵빵하게 채워져 있었다.
디안이었다.
“...마탑주님, 이번에는 저도 따라갈 거예요.”
중얼거림은 잠시, 차원문은 서서히 닫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