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전쟁의 상징
* * *
머리가 브로콜리처럼 지독한 곱슬끼가 있음에도 얼굴 자체는 평범하다 못해 인상마저 희미한 남성이 화려하고 거대한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똑똑.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비서관입니다.”
“들어오게.”
끼이이익
문은 크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가벼웠다.
마법 용사 악쿤 토든이 경량화 마법을 걸어둔 덕이었다.
마법 용사의 마탑이 있는 지역인 만큼 영주의 방은 마도구로 가득 차 있었다.
악쿤 토든에게 선물 받은 것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구매한 물품이다.
실용성보다는 외향을 중요시하는 마도구들이 태반이다.
가끔가다 그 마탑으로 찾아오는 직위 높은 귀족이라도 오는 날에는 이 대 마법 도시 데미투의 영주라는 걸 뽐내기 위해 방을 잔뜩 꾸며둔 것이다.
이 집무실은 영주의 허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를 잠시 감상한 비서관은 겨드랑이에 끼워둔 문서를 빼내며 읊조렸다.
“보고드립니다. 마법 용사 악쿤 토든에 이어 암기 용사 진 키아라를 포섭하러 간 용병과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마 살해되었을 거라 추정됩니다.”
“...제길!”
쾅!!
주먹을 말아쥐어 보는 이가 아플 만큼 강하게 탁자를 내려쳤다.
바닥에 우수수 결재 서류가 떨어진다.
비서관은 재빨리 달라붙어 그 종이를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지만 영주의 분노는 조그만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악쿤 토든과 진 키아라 계집은 너무나도 건방지다! 핏줄도 천박한 놈들이 폐하 덕택에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것인데, 그 은혜를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특히 악쿤 토든! 그 자식이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가?”
“음... 추하다고 했던가요.”
“그래!! 자네가 보기에 그게 영주에게 보일 태도인가? 내가 그의 편의를 봐주어서 마탑까지 건설해주고 그 빌어먹을 마법 교본의 출판도 허락해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내가 그에게 선물한 물품의 가격은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금액이란 말이다. 내가 얼마나 더 해줬어야 하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답을 잘못하면 비서관의 신변은 끝장이다.
영주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채 이마에는 핏줄이 드리운 채다.
여기서는 용사를 대변하기보다는 맞장구를 치는 게 이로운 행동이었다.
“너무 시건방진 녀석들입니다. 감히 영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폐하의 은혜를 모르고. 이방인인지라 멍청함의 극을 달리는군요.”
“그래! 그 말이 맞다! 용사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더러운 피를 가진 이방인들이다. 예절이나 품위라고는 없으며 머릿속은 살육을 제외하곤 텅텅 비었다. 그 천박한 특기를 살릴 기회를 주겠다는 폐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겠지.”
“하하. 영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결재 서류를 다 정리하고 찻장으로 걸어가 진정하라는 의미로 대충 눈에 보이는 차 하나 집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캐모마일 차로군.”
그 차를 받아준 영주의 표정은 아직도 신경질 가득했다. 그에 비서관은 빙긋 웃었다.
“예. 캐모마일입니다.”
“......”
영주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는 비서관을 뚫어버릴 듯 쳐다보다 피식 콧방귀를 뀌며 차를 한 모금 넘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무거운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이번에도 비서관이었다.
“영주님.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폐하께서 두 용사들을 포섭하여 어떻게 하실 계획이었는지 너무 짧고 좁은 제 소견으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견이 좁은 것과 궁금증은 또 다른 문제인지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말한 적 없던가?”
“...예,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래, 좋네.”
말해주도록 하지.
영주는 왕의 계획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놨다.
처음에는 남대륙 진출이다.
두 용사와 백금 , 황금 기사단의 두 단장을 선두에 세워 남대륙을 침략하여 승리를 얻어내고 데미투가 포함되어 있는 서대륙의 제국 필라기리아를 초강국으로 성장시킨다.
그 이후로는 굳이 용사의 도움 따위 없이도 동대륙, 북대륙까지 진출하여 무너트릴 수 있다.
그리고선 천하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탐욕이었다.
여기서 비서관의 질문.
“동대륙과 북대륙도 용사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보다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텐데요?”
용사라는 카드는 강력하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다.
단 4명만으로 마왕군을 괴멸시킨 괴물들인데 더 말해봤자 뭐 하겠는가, 그 카드를 안 쓴다는 건 도통 이해 가지 않았다.
“아니, 요점은 용사를 사용한다는 데에 있다. 필라기리아의 기사는 용맹하고 강인하다. 그리고 남대륙은 전쟁이나 살육이라고는 모르는 마법사 샌님들이지. 전쟁의 승패는 용사가 없어도 당연히 압승이다. 용사는 그저 간판일 뿐일세.”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용사가 두 장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까?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두 단장이 용사에 비할 바가 못 되지,용사를 더 사용하지 않는 건 다른 이유다. 다른 대륙 놈들이 멍청이는 아니라는 점이지.”
그 의문을 지워주려는 듯 영주는 친절하게 입을 나불거렸다.
“용사는 비겁하고 교활한 독사 같은 놈들이고, 폐하의 은혜라고는 모르는 늑대 같은 놈들이다. 만약 타대륙에서 필라기리아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우리를 배신할 가능성이 크다. 그거야말로 변수로 작용하지. 그러니 남대륙을 징벌하면 두 용사는 살해할 거다. 그럼 필라기리아를 향한 위험요소는 마침내 사라지는 것이지.”
“암기 용사와 마법 용사를 제외한 다른 두 용사는 전혀 고려하시지 않는 겁니까?”
“검술 용사는 사람을 죽이길 겁내는 겁쟁이고, 주술 용사는 애초에 인간에게 관심도 없으니 그 둘은 전쟁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합류한다고 한들 압도적인 군력으로 짓밟으면 그만이다.그들개개인의 힘은 높이 사지만, 군대에 비할 바는 못 돼.”
영주는 찻잔을 들었다가 표정을 찡그리곤 다시 내려놨다.
큼큼, 헛기침 후 물을 한 모금 넘기더니 말을 이었다.
“암기 용사와 마법 용사는 또한 폐하의 그늘에서 살던 놈들이다. 우리를 도울 명분은 충분하다는 말이네.”
“하지만 모두 거절했죠.”
“...속이 쓰리군.그놈들이 협조하거나아예 세상에 없었더라면진작에 남대륙은 필라기리아의 손에 떨어졌을 것인데...”
요약하면, 용사가 특출나게 강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 봤자 인간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개개인은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나 그 이름만은 굉장히 거슬린다는 얘기였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사기(??)다. 그 사기를 북돋기에 용사만 한 간판은 없다.
왕이 원하던 건 용사를 간판으로 사용하여남대륙을 징벌하는 것이다.
...까지가 함정이다.
용사는 저들 덕분에 전쟁에 승리했다 굳게 믿을 것이고, 그 자만심에 취해 있을 때 뒤에서 칼을 꽂는다.
실상 용사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대륙 징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암살을 위해서라는 얘기다.
그들도 인간이다. 칼을 맞대고 있으면 해치우기 어려울지언정, 칼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으면 뒤에서 찌르기 수월하다.
그 이후로는 파죽지세다. 변수 따위 없다.
ONE(?)은, 천하는 필라기리아의 손에 떨어진다.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비서관은 팔짱을 낀 채 턱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저는 영주님이 용사를 저평가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자네 오늘 왜 이러는가? 내가 홍차만 마신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차를 타오지 않나, 평소에는 과묵하던 놈이 오늘따라 자꾸만 질문을 쏟아붓지 않나. 그리고 내 의견에 토를 달아? 자네가 날 가르칠 입장이던가?!”
영주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욱 붉어졌다.
그는 찻잔을 들고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한마디만 잘못 던지면 저 찻잔은 비서관에게 명중하리라.
“아고, 죄송합니다. 근데 헛소리도 계속 듣다 보니 좀 열이 받더라고. 악쿤 토든도 당신한테 선물 많이 주지 않았냐?”
그러나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뻔뻔한 태도에 영주는 주춤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비서관이 왜 이럴까?
“뭐, 뭐?! 술이라도 처마셨나?!”
“아니요? 비서관 씨는 술 대신에 잠에 취해 있답니다. 그것도 아주 깊~은 잠에.”
딱!
비서관은 핑거 스냅을 하며 실실 웃었다.
그의 머리 위에 짙푸른 마법진이 서서히 그려졌다.
“{ Ματαωση 캔슬 }”
마법진은 머리서부터 발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그렇게 지나간 부분부터 외형이 바뀌기 시작한다.
특유의 곱슬머리가 생머리로, 평범한 인상이 날카로운 인상으로.
영주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몸을 벌벌 떨며 뒤로 물러가다가 벽에 몸을 박곤 히익 기겁하며 비서관이었던 사내에게 삿대질했다.
“이, 이 무슨...? 이게 무슨...?! 자, 자네가 왜 여기에...!!”
“오랜만이라기에는 일주일도 안 됐네요. 아무튼 잘 지내셨죠?”
“악, 악쿤! 악쿤 토든!!”
“그렇게 크게 말 안 해줘도 제 이름쯤은 압니다. 그리고 아무리 비명 질러봐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침묵 마법으로 방 전체를 덮었거든요.여기서는 폭탄이 터져도 소음이 손톱만큼도 새 나가지 않습니다.”
“어, 언제부터... 그, 그! 지금까지 말한 건 전부 농이었네! 자네는 모르겠지만 이건 내 비서관과 자주 하는 농담이었다네! 폐하는 용사를 사랑하시고 내가 자네를 아끼는 건 누구보다 잘 않잖은가! 그, 그치?”
영주의 당황한 표정이 썩 웃겼다.
그 표정에 보답하고자 뭐라도 떠들어주고 싶은데, 때로는 침묵이 어떤 대답보다 중압감을 부여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고 영주를 지긋이 쳐다봤다.
그는 내 눈을 못 마주치고 여전히 횡설수설 떠들고 있었다.
“뭐, 뭐라도 대답 좀 해보게! 농이라고 말했잖는가! 자네가 안 웃어주면 내가 뻘쭘하지 않겠는가? 자꾸 짓궂게 놀리지 말고... 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억지로 웃는 모습이 부모의 꾸중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영주님, 제가 원했다면 서대륙 쯤이야 마법 한두 번으로 무너트릴 수도 있었습니다. 마왕군에 벌벌 떨던 서대륙, 그리고 마왕군을 물리친 단 4명의 용사. 계산이 안 되는 건 아닐 테죠?”
“하, 하하... 농담이랬지 않는가.”
“용사를 죽인다라... 유일한 변수 차단. 누구 생각인지 알 것도 같네. 아들러 프리브룩스.”
“아닐세! 폐하는 그런 권모술수 따위 취급하지 않으신다네! 하하! 그보다 아까부터 농담이라지... 않았는... 가...”
무표정을 고수하자 영주도 넉살 좋게 더 웃음을 유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의 영주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옆에 있는 창문으로 끝을 옮겼다. 내 손가락에 맞춰 영주의 시선도 움직여 창문에 도달했다.
“......”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저는 용서할게요. 하지만 저는 그 친구 말릴 자신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영주님. 암기 용사 진 키아라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진, 진...!”
“저도 마법 용사처럼 이름쯤은 안답니다.”
최세린은 내게 눈짓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 마법진은 영주의 머리 위에서 발동되고 있었다.
“으, 으으으!”
“엄살부리지 마세요. 다치는 거 아니니까.”
우우웅
영주 머리에는 자주색 마법진이 회전하고 있었다.
정신 계열 마법, 그 중 기억 더듬기.
영주는 잠시 의식을 잃었고, 나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가 의식을 잃은 사이, 나는 그와 왕이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되짚었다.
그렇게 약 10분이 흘렀을까,나는 눈꺼풀을 들며 천천히 입을 뗐다.
“세린아, 더 알아낼 게 없다.”
영주와 왕의 대화에서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정말 손톱만치도 없었다.
그는 알고 있던 것을 모두 비서관으로 변장한 내게 술술 불었던 것이다.
‘입 엄청 싸네...’
영주의 천박한 입에 대한 감상도 잠시, 최세린은 검지에 뒷부분을 끼운 채 붕붕 돌리던 단검을 고쳐잡고 영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살, 살려 주게엑”
스걱
깔끔한 일격!
무슨 기술인지는 몰라도 목이 덜렁거리는 시체에서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최세린은 덤덤한 표정으로 끄적끄적 편지 한 통을 쓰곤 영주 머리였던 것 위에 붙였다.
그 편지에는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다음에는 당신 차례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며 물었다.
“바로 마왕성으로 가는 거야?”
“아니... 영주에게서 전쟁 관련된 건 몰라도 재밌는 걸 알아냈거든.”
영주에게서 얻어낸 게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기억을 읽던 중, 내 다섯 명의 제자 중 무려 4명이 전쟁에 가담한다고 영주에게 약조하던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제자 얘기야?”
“응. 전쟁 참여하려고 했더라. 내 마법을 살육 무기로 쓰려고 했다니...넘어갈 수가 없네.”
쿵!
대화를 나누며 창문에서 1층으로 곧장 몸을 던졌다.
내 주위에는 흙먼지가 잔뜩 피어올랐다. 반면 최세린 쪽은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커허어... 음냐... 음냐...”
“배불러... 더는 못 먹... 못 먹어요...”
경비병들은 최세린의 수면 독에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