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은 밤늦게 들었다. 그녀가 케이시의 병상에서 떨어질 줄을 몰라서 여학생 살롱 멤버들은 켈리의 얼굴을 아주 잠깐만 볼 수 있었다. 케이시의 부상을 모조리 자기 탓으로 돌리는 켈리의 볼은 핼쑥하게 패여 있었으며 눈 밑은 푸르죽죽했다.
그녀는 블로썸과 아주 개인적인 일로 다투었고 케이시가 거기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근본적인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켈리도 지극히 전형적인 나돈인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느긋하고 무심하게 굴지언정 내면은 격정과 의리로 충만했다.
켈리와 채프먼 교수와 학생회가 전부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시는 다음 날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올해도 그리폰 크리켓으로 대륙을 제패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농담의 달 연회를 맞이한 남자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면 <피츠시몬스 타임즈>는 최초로 언론다운 면모를 보였다. 운우지정을 섞지 않고 사실만을 보도한 것이었다. 개과천선한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했다. 단 한 번의 선행으로 판단하기에 크리스타 에드워즈는 지금껏 꾸준히 글러 먹어 왔다. 또한 로즈마리 블로썸도 인기 절정의 학생회 일원이었으므로, 자극적인 꾸밈 없이도 충분히 신문을 팔 수 있었다.
아무튼 블로썸과의 여론전을 목전에 둔 나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었다. 슬슬 블로썸이 져야 마땅한 책임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신이 나서 들썩이는 가짜 언론인과 간만에 다시 나의 일등 시녀를 자처한 브리아나에게 소문의 확산을 맡겼다.
다음으로는 염치없지만 아나이스와 켄드라에게 기대었다. 아나이스의 추종자가 물어 온 정보 중에는 농담의 달 연회에서 월시가 선물을 교환하기로 한 상대에게 바람맞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캔트렐과 썸 타다가 바람 난 것으로 잘 알려진 조던 니콜스 말이다.
월시의 쪽이 또 어디서 팔렸다는 소식은 이제 내게 즐거움조차 주지 못했다. 마과학 교재에 밑줄을 칠 때보다 무심한 표정으로 아나이스에게 추종자의 편지를 돌려주려다가 저지당했다. 혹시 골 때리는 선물 교환식에서 수상한 점은 없었느냐고 묻는 켄드라 덕택에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농담의 달 연회 때 내가 받았던 세 장의 쪽지. 하나는 제이든의 두꺼운 손가락 사이에서 쓰인 것이었고 또 하나는 켈란이 보낸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아니나 다를까 블로썸의 소행이었다.
아마도 니콜스가 적었을 낯선 글씨를 따라 향한 곳에서 팔뚝만 한 길이의 나무함이 나왔다. 안에는 깃펜이 들어 있었다. 펜촉에 구울의 피가 묻은. 그녀가 스스로의 교재를 찢을 때 썼던 깃펜이 틀림없었다.
니콜스를 추궁할 필요는 없었다.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내가 블로썸이어도 남의 뇌를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사양 없이 사용할 거였으니까. 대신 다른 쪽에 집중했다. 달랑 깃펜 하나를 담기에 나무함의 사이즈가 필요 이상으로 컸던 것이다. 반드시 이유가 존재할 것이었다.
치트는 신성력을 강하게 할지언정 마음을 강하게 만들지는 못했으며, 그로 인해 블로썸은 차츰 무너지고 있었다. 풀 먹인 듯 빳빳한 뒷덜미를 잡아챌 만큼 치명적인 실마리가 발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다.
“잘 지냈어, 달튼?”
대충 그런 것들을 되새기며 다음 수업 장소까지 가는 길을 지그재그로 걷던 찰나였다. 별안간 낭랑한 목소리가 내 귀를 잡아채었는데,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경악하여 입을 쩍 벌렸다.
“내일은 네가 주제에 맞는 촌구석으로 돌아가는 날이잖아. 기분이 어때?”
그리폰 크리켓에서도 반칙은 두 번까지 허용되었다. 메이나드와 로슨 교수에 이어 케이시에게 중상을 입힌 블로썸에게 드디어 외출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무구한 척 조잘거리는 블로썸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콘리 교수에게 결계술을 배우는 행위가 퍽 가당치 않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녀의 말마따나 학생 자치 법정이 바로 내일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는 블로썸은 스스로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무함을 수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거기에 든 것은 가짜 괴롭힘의 증거물이 아니라 블로썸의 죄를 밝힐 증거물이었다.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
“너어무 좋지. 너를 감옥이든 어디든 처넣을 생각을 하니까 떨려서 잠도 안 오던걸. 거짓말쟁이인 건 둘째 치고 사람을 죽일 뻔했잖아.”
“내가? 누굴? 케이시? 확실히, 걔가 많이 다치긴 했지. 어쩌면 죽일 뻔이 아니라 죽이게 될 수도 있고. 근데 뭐 어쨌다는 거야? ‘데이터’잖아. 삭제하면 되는 문제라고.”
또 알쏭달쏭한 단어를 섞어 알아먹지도 못할 헛소리를 떠드는 블로썸 때문에 욱하는 성질이 치솟았다. 무심코 주먹에 힘을 주자 손끝에 진물이 느껴졌다. 상처에 앉은 딱지가 떨어져 나간 탓이었다.
“‘삭제’라니… 그건 결코 사람한테 쓰여선 안 되는 단어야. 잘못 쓴 필기를 지울 때나 쓰는 단어라고! 어떻게 그만큼 야멸차게 굴 수 있는 거야? 내가 너라면 당장 식당에 널린 마법 인형도 그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대할 거야!”
나를 증오하고 죽이려고 드는 건 상관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블로썸이 야멸차게 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케이시는 아니었다. 걔가 잘못한 거라곤 전 여친을 대신하여 블로썸의 폭주에 희생당한 것뿐이었다. 블로썸이 그를 손톱에 낀 때 이상의 존재로 여기고 있다면 그딴 식으로 말해선 안 되었다.
마구잡이로 화를 내자 블로썸은 조금도 와 닿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나서는 고개를 연신 저었다. 도리어 나 때문에 답답해진 쪽이 그녀인 듯이 말이다.
“아냐, 달튼. 아니라고… 전혀 이해 못 하고 있구나. 난 너희와 다르단 말이야.”
심상히 지껄인 블로썸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등지고 있던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가냘픈 팔다리가 가파른 돌계단에 가차 없이 뭉개졌다. 내 것인지 블로썸의 것인지 모를 비명과, 뼈가 이리저리 뒤틀리는 징그러운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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