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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52화 (152/178)

애석하게도 그의 외모는 꽤나 악당 같았으므로 소심하게 웃다 마니까 좀 꿍꿍이가 있는 사람 같아졌다.

그게 더 웃겨서 배를 부여잡았더니 에드가는 나를 곁눈질로 흘기다가 대뜸 말했다.

“내 등에 새겨진 주술 있잖아. 엄청 아파. 진짜 눈물 쏙 빠져. 평범하게 바늘 같은 걸로 새기는 게 아니거든.”

난데없이 기대하지 않은 화제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나는 눈꼬리에 맺힌 물기를 닦아 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톱이야. 사람 손톱. 주술사가 자기 손톱으로 직접 살을 파내고 그 자리에 마나를 채워. 진짜 끔찍하지. 아무리 날카롭게 다듬어도 손톱은 결국 손톱일 뿐이잖아.”

역사적으로 많은 군주가 꼴 보기 싫은 정적을 처리할 때 초짜 망나니를 고용한 다음 날이 무딘 칼을 쥐여 주었다. 그것이 사형수를 보다 괴롭게 죽이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빠진 검으로는 풀을 베어도 서너 번이었다. 에드가의 등을 주술로 메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거듭해야 했는지 상상하면 몸서리가 절로 쳐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했는지를. 더구나 그걸 새길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다들 그게 나를 왕으로 만들 거라고 했어. 왕이 되길 바란 적도 없는데 말이야. 브라이스, 그때는 ‘에드가’였으니까 그렇게 부를게. 아무튼 걔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죄로. 불공평하다고 느꼈어.”

당연히 불공평했다. 결핍과 풍요는 동전의 양면처럼 반대에 있는 게 아니어서 바라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받는 것도 빼앗는 것만큼 폭력적일 수 있었다.

분기탱천하여 소리를 지르려다 그만두었다. 코를 찡긋거리는 에드가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탓이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드는 감정에 취해 행동하여 목전까지 다가온 어떤 것을 놓치는 대신 잠자코 있기로 마음먹었다.

“등이 찢어지는 고통에 잠을 못 잤어. 한 달이 넘어가니까 미치겠더라. 일랑 풀을 비롯해 대륙에 존재하는 진통제란 진통제는 가리지 않고 다 목구멍에 쑤셔 넣었어. 그런데도 안 돼서, 그래서….”

먼저 도망치자고 말한 것은 ‘에드가’였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브라이스’가 아파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목적지는 ‘브라이스’가 정했다. 스펜서 공자와는 워낙에 형제처럼 지냈으니 비밀을 지켜 줄 거라고 믿었다. 어차피 갈 곳이 마땅치도 않았다.

처음에 쌍둥이는 스펜서 저택의 발코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도 단순한 가출이 아니니만큼 제이든의 호의에 기대는 행위가 스펜서 공작가에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가져다주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둘이서 머리를 맞대어 구체적인 도주 계획을 짜낼 동안만은 제이든이 자비를 발휘하길 바랄 뿐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뭔가 그럴싸한 궁리를 해내기엔 너무 어리다는 사실이었다. 무작정 빠져나온 탓에 여비도 모자랐고, 차림새도 정체를 감추거나 마구 돌아다니기에 부적절했다. 무엇보다 왕궁 밖에 발을 디뎌 본 경험이 드물어 상상력이 빈약했다. 자유에 대한 막연한 갈망만이 두 사람이 가진 전부였다.

그런 주제에 지나치게 까다롭기도 했다. 어지간한 도시는 금방 들킬 것 같았고 어느 숲은 마물이 들끓었으며 다른 마을은 소문을 듣자 하니 음식이 영 구렸다. 게다가 하수 처리 시설도 엉망이어서 귀족들도 아무 데나 막 싸지른다고 했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이것저것 재는 시점에서 이미 실패였어.”

에드가가 그루터기를 짚은 내 손가락을 자기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장난스러운 태도였다.

“충분히 절실하지가 않았던 거야. 네 말대로 어리광에 불과했고. 제이든이 스펜서 공자로서 진 막중한 책임을 저울에 영영 달아 두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으니까.”

나는 미안한 마음에 손을 움츠렸다. 그러자 그가 엄지와 검지로 내 손끝을 가볍게 잡았다. 꽤나 간질간질한 접촉이 아닐 수 없었다.

여드레째에 제이든은 스펜서의 403번째 아들이 해야 마땅한 일을 했다. 기사들이 부르는 소리에 ‘브라이스’는 잔뜩 겁에 질렸다. 손목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밤마다 끙끙 앓기나 해야 하는 왕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자 온몸이 떨려 왔다. 벨벳 커튼에 얼굴을 묻은 채 서럽게 울었다. 더는 ‘브라이스’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에드가’가 나섰다. 언제나 형제를 대신해 왔으므로, 그에게 ‘브라이스’를 흉내 내는 것은 식은 수프 마시기였다. 초상화에 약초를 발라 준 덕에 병이 나았으니, 거기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지기에는 가당치 않게 큰 짐인데도. 실은 ‘브라이스’보다 더욱 왕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는데도.

“금방 들통날 거라고 생각했지. 무엇보다 내 등짝에는 그 엿같은 주술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안 들켰어. 아무도 모르더라. 우리가 바뀌었다는 걸. 그게 무슨 의미겠어.”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태양이고 달이었다. 빛이며 그림자였다. 왕좌에 손을 뻗을 만큼 자라게 되면 날아들 무수한 위협에 맞서 ‘브라이스’를 지킬 유일한 수단이 형제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러려면 완벽하게 같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무 말도 안 했어. 걔는. 내가 매일같이 화풀이를 하는 동안. 내게 주어진 권리를 증오하고 그에게 주어진 의무를 무시하는 동안. 자기 연민에 빠져서.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근데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더라.”

쓴맛이 나는 에드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자니 그가 형제에게 그토록 헌신적인 까닭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를 따라 그루터기에 드러눕자 대낮의 하늘에도 쌍둥이별이 떴다. 나는 엄지와 검지 끄트머리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 다음 그 안으로 쌍둥이별을 집어넣었다. 한쪽 눈을 감으니 세상에 걔네 둘만 남았다.

“내 운명이 저주스러워. 누군가의 뒤에만 서야 하는 삶은 지긋지긋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걔의 운명이 안쓰러워. 걔를 거기 세운 건 나고 거기서 버티게 만든 건 로즈마리 왕비야. 걔는 자기가 그걸 선택했다고 하지만….”

말끝을 흐리며, 에드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똑같이 했다. 어머니와 꼭 닮은 빨간 눈동자 속 휘몰아치는 감정 중에는 여태껏 보지 못한 희망도 있어서 기분이 꽤나 들떴다. 여섯 번째 아리엘 달튼이 된 이후에 나는 운명을 거스르려는 모든 시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만일 귀걸이에 대한 네 가설이 옳다면, 미스 달튼… 네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준 건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약간 벅찬 듯이, 에드가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아까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조금 일그러뜨렸다.

“한번 안아 봐도 돼?”

“완전 친한 친구로서?”

“흑심 약간 있는.”

요망하게 눈웃음을 치는 꼴이 도무지 약간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그는 어차피 내 의사 같은 건 고려도 안 했다는 듯이 내 어깨를 안았다. 눈웃음만큼 끈적한 포옹이 아니었으므로 겨우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았다.

“어떡하지… 또 반한 것 같은데.”

이건 확실히 끈적했다.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데워진 목소리를 남의 목덜미에 내뱉는 무뢰한의 등에 피투성이 손도장을 찍었다.

볼턴만큼은 아니어도 에드가 또한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으므로 썩 괜찮은 응징이 되었다. 지난 몇 개월이 여간 다사다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청결 마법이 핏자국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교복 몇 벌을 버려 가며 몸소 증명한 바가 있었다.

***

내 이상형에 가까워지고자 채프먼 교수를 찾았던 카일은 저녁 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나타났다. 붕대를 장갑처럼 감은 탓에 식기를 쥐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듯했다.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식사하느라 그는 살코기가 부드러운 작은 새 구이의 대부분을 흘리고 말았다.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내 포크를 들이밀었더니 히죽거리는 꼴이 얄미웠다.

“다음에는 손모가지를 자를까 봐. 네가 나 계속 챙겨 줄 거 아니야.”

그러고 나서는 ‘호’ 해 달라고 하도 까불길래 기특한 마음이 싸그리 사라졌다. 호는 무슨, 호되게 깨물었다.

손가락이 부러진 거 같다고 호들갑을 떠는 카일과 함께 마녀의 길로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운명의 물레가 전에 비해 확연히 그 위용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은하수처럼 늘어진 실들 사이로 부서진 바큇살이나 부품 비스름한 나무토막들이 마구잡이로 굴러다녔다.

여기서 뭐 전쟁이라도 났냐고 묻자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고 했다. 말인즉슨 낮에 벌어진 사건이 물레에 큰 충격을 가했다는 뜻이었다.

“내가 봤을 땐 블로썸의 행동 때문에 물레가 혼란을 느낀 것 같아.”

카일이 말했다. 확실히 켈리와 케이시를 공격하고 내 의식을 주물러 죽이려고 한 건 일반적으로 로맨스 소설 주인공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악역이면 모를까.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좋은 신호였다. 최근에 나에게는 스스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절실했다. 무의식적으로 카일과 악수를 나누었다가 찌릿한 고통에 허리를 수그렸다. 그도 나도 검으로 손바닥을 헤집어 놓은 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처사였다.

눈물이 찔끔 나서 남 탓을 했다. 지력 2야 그렇다 치고 탤론 시청 채용 예정자가 멍청하게 굴기 있냐고 비난했다. 그러자 뻔뻔하게 대꾸하는 소리가 손잡고 싶어서 까먹었단다. 아주 가면 갈수록 혀 놀리는 솜씨만 일취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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