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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47화 (147/178)

나는 귀찮게 얼쩡거리는 꿀벌 재상을 벌통 바닥까지 걷어찬 뒤 폭풍을 일으키는 마법진을 그렸다. 어느새 우리의 얼굴에는 레몬 껍질로 만든 간이 방독면이 씌워져 있었다. 그건 공학자의 발명품 중 드물게 폭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온통 밀랍으로 이루어진 벌통을 모조리 녹이지 않기 위해서는 바람의 방향을 섬세하게 조정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작성한 마법진에서는 폭풍은커녕 흥분한 황소의 콧김보다 약간 강한 바람이 일었다. 아무리 마나를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공주 벌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던 병정 벌들이 희미하게 날리는 연기에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연기가 퍼지는 모양새를 따라 방사형으로 멀어지던 벌떼가 슬금슬금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명백히 눈에 들어왔다.

“고얀 것들! 감히 여왕께서 베푼 은혜를 원수로 갚아?”

전열의 선두에 선 장군 벌의 일갈은 죄다 틀렸다. 공주 벌은 여왕벌이 아니었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으며, 내 마력은 로즈마리 왕비의 귀걸이를 끼고도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원수를 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급한 대로 검을 꺼내 가까이 오는 벌들을 쳐 내려니 마법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황소의 콧김 같았던 바람은 이제 겨울에 기차 창문에 하트를 그리기 위해 내뱉는 입김이 되었다. 고전하는 내 등 뒤에서 사마귀가 악을 썼다.

“어림도 없어! 바람이 너무 약해서 연기가 안 퍼져! 그냥 태워 버릴게!”

“안 돼! 여왕벌이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더구나 자칫하다간 왕국이 통째로 녹아 버릴 수도 있다고!”

“그럼 어쩌란 거야?”

사마귀는 날개가 뜯긴다면 이와 잇몸까지 써서 엉겅퀴 덤불을 걷겠노라고 말했다. 마법을 쓸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등에 지고 있던 비행 장치를 잽싸게 벗어 가슴에 매었다. 당김줄을 세게 당기자 조악한 가짜 날개가 퍼덕이며 그런대로 괜찮은 돌풍이 일었다.

훅 흩어진 연기에 맞은 병정 벌 몇 마리가 휘청거리면서 추락했다. 알현실 문짝에 찰싹 붙어 안에서 들리는 소음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불덩이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가다듬던 사마귀가 휘파람을 불고 환호했다.

“아, 젠장! 이제 좀 쓸 만하네! 역시 넌 마나보다 몸을 써야 한다니까!”

아무리 얘 말이 맞아도 나는 마법사였다. 입술을 비죽이며 당김줄을 고쳐 쥐었다. 아지랑이 사이로 몰려드는 벌떼가 꽤나 가까이 보였다. 서운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었다.

무아지경으로 오른팔을 움직였다. 진짜로 어깨가 떨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내 바람이 조금이라도 약해졌다간 사마귀가 벌통을 불바다로 만들 것임을 아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 왼팔과 다리로는 운 좋게 연기를 뚫고 들어온 일부 병정 벌을 쥐어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확실한 건 당분간은 오른팔을 쓰기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또 곤충이라면 꼴도 보기 싫겠다는 거.

악문 잇새로 욕을 막 뱉으면서 다짐했다. 이 짓거리 또 하기 싫어서라도 반드시 올해 그 지랄 맞은 물레를 박살 내고야 말리라.

“그만!”

딱 죽겠다는 생각이 들쯤에 벼락같은 노호가 내리쳤다. 그러자 마법처럼 모든 벌의 움직임이 멎었다.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팔을 늘어뜨리고 돌아보니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마귀가 먼저 보였다. 다음으로 활짝 열린 알현실의 문과 그 안에서 굴러나온 둥그런 무언가가.

머리통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하던 어떤 벌의. 이윽고 날개가 완전히 엉망이 된 꿀벌 한 마리가 수천 개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그것의 장엄한 선언이 다른 소음들을 전부 찢어발긴 순간, 그야말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들의 여왕이 돌아왔노라!”

***

꿀벌들의 여왕이 돌아왔다. 성치 않은 몸으로도 병정 벌 다섯 마리를 제압하고 반역자의 모가지를 따다니, 샐러맨더의 무지개 비늘에 맹세코 그보다 강한 꿀벌은 없을 것이었다. 그것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는 동안 나와 사마귀는 마치 여왕벌과 한 몸이라도 된 듯이 우쭐댔다.

호박벌 왕국에서 비렁뱅이 생활을 하던 이단아는 꿀벌 왕국에서 왕실 공학자로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꿀벌 여왕은 반절이 채 남지 않은 날개를 대신하여 왕실 공학자의 비행 장치를 등에 졌다. 폭발하면 어쩔 거냐고 물으니 뒤통수를 또 맞지 않으려면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완전 멋있었다.

여왕벌의 호방함에 감탄하던 중에 입술에 뭐가 문질러졌다. 찻잎이 들어간 벌꿀 술이었다. 격렬한 전투 이후 내가 진짜로 팔을 한 뼘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여왕벌은 어린 시종 한 마리를 내게 붙여 연회 내내 시중을 들도록 했다.

톡 쏘는 향이 사뭇 유혹적이었으나 나는 당분간 술을 경계해야 하는 몸이었다. 고집스레 고개를 젓자 꿀벌 시종은 술잔 대신 잘게 잘린 산딸기 조각을 집어 들었다. 꿀을 듬뿍 찍어 삼키니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매우 좋았다.

느타리버섯 너덧 개를 이어 붙여 만든 최고급 소파에 누워 남이 들이미는 음식을 받아먹고 있으려니 굉장한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알현실 문짝에 공주 벌을 조각하던 꿀벌 작업자가 나와 사마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고 허리를 배배 꼬았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마귀는 나처럼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다. 극진한 대우 따위는 평생 받아 온 것처럼 대범하게 군 것이다. 그녀가 하도 그럴싸하게 보이는 각도를 찾겠노라고 뒤척인 까닭에 꿀벌 작업자는 계속해서 작은 빵 조각으로 그림을 고쳐야만 했다.

“있잖아, 사마귀.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 나 혼자였다면 수월하게 해내기 어려웠을 거야.”

평생 본 중 가장 커다란 산딸기를 이로 부수며 말하니 사마귀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내일이면 우리는 각자의 피츠시몬스로 돌아가게 될 거 아니야. 헤어지기 전에 말해 두고 싶었거든.”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속이 따끈따끈했다. 나는 달아오른 볼을 소파의 팔걸이에 문대며 웅얼대었다. 그러자 사마귀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머리통만 한 술잔에 넘실거리는 벌꿀 술을 단번에 넘긴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표정이 꽤나 결연했다.

“일어나.”

“뭐?”

“꿀벌! 우리 이만 갈게!”

그녀가 안 그래도 욱신대는 내 팔을 거세게 잡아끌어서 혼이 쏙 빠졌다. 멍청하게 허우적거리는 사이 가방이 품으로 떠밀렸다. 꿀벌들이 알뜰살뜰 챙겨 준 꿀벌 왕국 관광 기념품도 함께였다. 나비 날개 망토하고 코르크 마개를 깎아 만든 벌통 모형이었다.

만일의 상황에서 포식자의 급소를 찌르기 위한 솔잎 단창은 사마귀의 허리춤으로 갔다. 그녀가 스스로의 마법 실력을 너무 믿은 나머지 무기를 전혀 안 챙겼기 때문이다.

내가 더는 호박벌의 비행 장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또 그것이 지독하게 비효율적이었으므로, 여왕벌은 왕좌 탈환의 주역을 위해 최고로 비행 실력이 뛰어난 병정 벌 두 마리를 흔쾌히 내주었다. 걔네들이 우리를 나무 꼭대기까지 안전하게 운반해 줄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꿀벌의 털 난 등짝을 껴안는 기분은 전혀 좋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네 장의 날개를 거의 맞붙였다 떼며 날갯짓을 해서 옆구리를 엄청 맞았던 것이다. 죄 환각이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팔뚝에 이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뻔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왕벌과 꿀벌 무리와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공학자는 우리가 끝끝내 그것의 발명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토라진 나머지 배웅을 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왕벌은 그녀가 새로 사귄 다리 두 개짜리 친구를 제대로 된 대접 없이 보내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것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급히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엉덩이 아래 병정 벌에게 날개 똑바로 치라고 을러대다 말고, 사마귀가 모가지를 쭉 빼고 나를 턱짓했다. 그러고 나서는 지껄이는 소리가, 날이 밝기 전에 나무 꼭대기로 가서 내 나약함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당해져서 펄펄 날뛰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된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시련은 끝났잖아!”

“여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너를 나무 꼭대기까지 데려가겠노라고 마음먹었다면, 반드시 그리되어야만 해.”

단어 하나하나를 극적으로 내뱉는 사마귀의 태도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단호함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이 끔찍하게 거대한 나무의 끔찍하게 높은 꼭대기까지 끌려가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 아연실색하여 도망치려 했으나 몸이 붕 뜨기 시작한 탓에 실패했다.

꿀벌 왕국의 은인이자 다리 두 개짜리 친구의 여행에 행운이 깃들길 기원하며, 벌들은 짧은 시간 우리와 함께 날았다.

꽃가루를 휘날리며 어지러이 움직이는 벌떼 틈에는 밝은 녹색으로 빛나는 가짜 벌이 끼어 있었다. 누에고치를 실로 동여매 벌처럼 꾸민 솜씨가 정교했다. 나는 그것이 공학자가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자동인형임을 깨달았다.

아침이 오는 중인지, 뺨을 어루만지는 공기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은 점차 싸해져만 갔다. 발밑에 보이는 것들이 아담해질수록 손끝과 발끝이 뻣뻣하게 굳었다.

노련한 묘기 비행으로 나에게 용기를 주던 꿀벌 곡예단은 공학자의 자동인형이 폭발하는 바람에 해산한 지 오래였다. 슬슬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공포스러워지기 시작해서, 나는 스스로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꿀벌의 몸에 얼굴을 파묻었다.

속으로 숫자를 오백쯤 세었을 때 몸이 엄청 흔들렸다. 내 생각에 그건 이착륙 시 느낄 법한 진동 같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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