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46화 (146/178)

“곧 대관식을 가질 새 여왕벌, 그러니까 공주 벌은 딱히 대단한 전사가 아냐. 나는 날개가 망가지고 대부분의 전투력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걔한테는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해. 문제는 공주 벌을 추대한 병정 벌이지. 그것들이 동시에 달려들면 내게는 승산이 없어.”

“즉 어떻게든 너와 공주 벌이 일대일로 붙을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여왕벌이 날개를 부르르 떨어 긍정을 표시했다. 그러자 공학자는 통통한 앞다리로 테이블을 쓸어 빈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바르작대고 나서는 어디 구석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종이 한 장을 꺼내 왔다. 이윽고 지도 비스름한 무언가가 테이블에 가득 펼쳐졌다.

“이건 내가 극비리에 입수한 꿀벌 왕국의 구조야. 호박벌과는 달리 여왕벌이 기거하는 공간이 벌통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어.”

앞다리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공학자는 종이 맨 윗부분을 짚기 위해 테이블 위로 올라가야 했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 웃음을 참았다. 사마귀는 내 허벅지를 꼬집어 웃음을 참았다.

“꿀벌은 특출난 비행 솜씨를 가지고 있어.”

우리의 옥신각신에는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고, 공학자가 말을 이었다.

“특히나 수직 이착륙을 끝내주게 하더라고. 그러니까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여왕을 모셔 두고도 왕국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그놈의 비행만 제대로 못 하게 막는다면 공주 벌에게 갈 지원을 차단할 수 있어.”

“어떻게?”

“이제 그걸 짜내어 봐야지.”

여왕벌이 시무룩해져서 테이블에 기대었다. 공학자도 지도 여기저기를 가리키다 말고 축 늘어졌다.

나는 나의 안쓰러운 곤충 친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랐다.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굳이 시련이네 시험이네를 따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하필 사마귀와 나에게 주어진 이상 우리 중 누군가는 타개책을 쥐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침묵 속에 벌들이 빠르게 날개 치는 소리만이 사방에서 들렸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규칙적이기만 한 연속음에 도리어 번뜩이는 발상이 떠올랐다. 나는 엄지와 중지를 엇갈리게 부딪쳐 한 명과 두 마리의 이목을 끌었다.

“연기를 피우는 건 어때?”

“연기?”

“네 말대로 나는 돈 없고 사고 잘 치는 애였어서,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기 일쑤였어. 부모님은 집에 잘 안 계시고 내 유모는 되게 물렀거든. 어쩔 수 없지.”

쪼끔이라도 찔리라고 소금을 쳐서 강조해 보았는데 정작 인간은 눈썹 한번 꿈틀거리질 않았으며 곤충들만 ‘저런’하고 형식적인 추임새를 넣을 뿐이었다. 입맛을 다신 다음에 계속 말했다.

“어쨌든, 그러다가 안면 튼 산지기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연기를 쐬면 일시적으로 꿀벌의 감각 기관이 상해서 제대로 못 난다는 거야. 또 산불이 났다고 판단해서 벌통을 떠나기도 한대.”

“진짜 그래?”

사마귀의 물음에 여왕벌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갸웃거렸다. 딱히 연기에 노출되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만 꿀벌들이 여왕의 위기를 주로 후각을 통해 감시하므로, 연기로 후각을 마비시키는 식이라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했다.

다행히 사마귀의 특기가 원소 마법, 그중에서도 불 마법이었으므로, 세세한 계획은 금방 세워졌다. 일단 여왕벌을 공주 벌의 방에 들여보낸 뒤, 나와 사마귀가 입구에서 연기를 피워 지원군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원소 마법에는 젬병이었지만 불꽃을 흐트러뜨릴 정도의 산들바람은 만들어 내고도 남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사마귀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공학자와 여왕벌도 따라서 앞다리를 들이밀기에 똑같이 했다. 여전히 소름 끼치는 감촉이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면서 근질근질한 느낌이 남은 손바닥을 바지에 비비었다.

사마귀는 참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징그러워 죽겠다고 곧이곧대로 지껄이자 기껏 띄운 분위기가 곤두박질쳤다.

켈란도 그렇고, 걔네 엄마도 그렇고, 에드가 라모스와 브라이스 나돈도 그렇고, 하다못해 제럴드 퍼셀까지, 대체 내가 아는 보라색 피라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성격에 결함이 있는 걸까? 진짜 마탑이나 어디에 제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

아다만티움은 달았을 때 두드리라는 말이 있었다. 벌들의 세계에선 ‘날개 친 김에 꿀을 따라’였다. 밤의 장막이 나무를 뒤덮자마자, 나와 사마귀, 여왕벌과 공학자는 스리슬쩍 호박벌 왕국을 빠져나왔다.

공학자는 꿀벌 왕국으로 향할 때 나와 사마귀가 그것의 비행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서 조금 서운해했다. 하지만 약간의 편의성에 목숨을 태울 마음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1할 확률로 폭발하느니 고물 비행 장치의 당김줄을 죽어라 하고 당기면서 감히 태양에 도전하여 스티아의 분노를 산 올레아를 저주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꿀벌 왕국을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 첫 번째 위기가 왔다. 호박벌 야간 작업조를 만난 것이다. 새벽이 다 되었는데 어디를 가냐고 캐묻기에 등에 땀이 좀 났는데, 공학자가 나서니 부드럽게 해결되었다. 잔뜩 끌어안고 있던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를 내보이며, 공학자는 세기의 발명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호박벌 야간 작업조에 속한 모두가 우리와 그만 엮이고 싶어진 듯했다. 대신 그 많은 낱눈을 죄다 촉촉하게 적시며 부디 살아 돌아오라고 결연히 굴었다. 뭐라 답하기가 애매해서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꿀벌 왕국의 벌통이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하자 잠시 멈췄다. 공학자가 호박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발명품을 시험하는 시늉을 하는 동안 나와 사마귀는 호박벌 왕국의 사절이 되어 새로이 꿀벌 왕국을 차지한 공주 벌에게 공물을 바칠 예정이었다.

왕족의 사고방식을 잘 아는 사마귀가 말하길 공물을 마다하는 왕은 전무했다. 그 왕이 권력을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아 기반이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당연하게도, 공물의 정체는 독침을 몸에 품은 복수자였다. 우리는 억센 꽃줄기로 여왕벌의 몸뚱어리를 각자의 허리에 나눠 묶었다. 속도를 맞춰 날면 아슬아슬하게 찢어지지 않을 듯했다.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여왕벌은 내가 건네는 것을 받아 뒤집어썼다. 마지막 순간에 혹시나 해서 챙겼던 투명 복면이었다. 최고의 농담 트로피를 차지한 듀라-두사와 같이, 여왕벌의 머리통이 멋지게 사라졌다.

원래는 다른 물건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주 벌은 영민하지 않아도 의심이 많았으며 병정 벌들은 코가 좋았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을 맞춰도 공물에서 풍기는 여왕벌의 페로몬을 설명 못 할 듯했다.

숨길 수 없다면 드러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물은 복수자에서 복수자의 가짜 사체로 바뀌었다. 어쩌면 공주 벌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암만 쇠락하였더라도 여왕벌의 존재 자체가 공주 벌에게는 위협이었다.

꿀벌 왕국에 막 도착하였을 때 두 번째 위기가 왔다. 입구를 막고 선 병정 벌 두어 마리가 우리의 공물을 만져 보려고 든 것이었다.

사마귀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사용하는 몇 가지 보조 마법으로 병정 벌들의 정신을 쏙 빼놓은 사이 나는 잽싸게 가방을 뒤져 릴루의 초상화를 꺼냈다. 초상화 속 릴루가 용맹하게 울부짖자 벌들은 ‘고양이다!’라고 외치면서 혼비백산 도망쳤다.

그러고 나서는 일사천리였다. 찢어지는 하품과 함께 나타난 꿀벌 재상은 늦은 시간에 사절을 보낸 호박벌의 미개함에 대해 욕을 좀 하더니 곧 놀라 나자빠졌다. 그것이 여왕에게 보고하겠다며 튀어 오르듯 사라졌다가 메다 꽂히듯 돌아온 뒤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여왕벌의 몸뚱어리를 온전한 형태로 알현실까지 옮기는 것과 연기를 피우는 것이 전부였다.

우여곡절 끝에 공주 벌의 알현실 앞에 섰다. 고개를 한참 꺾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거대한 문짝 왼편, 늠름하게 비행 중인 공주 벌 부조는 당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처럼 생생했다.

오른편에는 기존에 조각되어 있던 여왕벌을 공주 벌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장미 가시와 호두나무 가지로 여왕벌의 날카로운 턱을 깎아 내던 꿀벌 작업자가 우리를 보고 뻣뻣이 굳었다.

성가시다는 듯 앞다리를 휘둘러 작업자를 쫓아 보낸 꿀벌 재상이 문을 정중히 두드렸다. 곧 가느다란 합창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왕께서 들라 하신다!”

사마귀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 뒤 발을 옮겼다. 문 안쪽은 바깥쪽보다 훨씬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죄다 꿀과 밀랍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얼핏 금을 바른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주변을 구경하면서 알현실을 지키고 선 병정 벌의 숫자를 세었다. 문가에 둘, 드라이어드를 위한 제단 근처에 하나, 눈 돌아갈 만큼 화려한 왕좌 양쪽으로 하나씩. 총 다섯 마리.

일부러 걸음을 크게 해서 무릎으로 여왕벌의 엉덩이를 다섯 번 쳤다. 그러자 그것이 중간 다리를 안 보이게 움직여 내 배를 꼬집었다. 다섯 마리 정도는 혼자서 처치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슬쩍 미소 짓고 왕좌 앞에 깔린 붉은 카펫 위로 여왕벌의 몸뚱어리를 내려놓았다. 사마귀와는 호흡이 맞았던 적이 거의 없어서, 불쌍한 여왕벌은 퍽 험하게 바닥과 충돌해야만 했다.

‘끙.’ 미세한 신음이 새었다. 나는 재빨리 사마귀의 발등을 지르밟아 걔의 비명으로 다른 소리를 덮었다. ‘여기서 나가면 죽는 줄 알아라.’ 그녀가 은밀히 속삭였다.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확실히 그년이로군.”

무슨 세리머니라도 하는 것처럼 가짜 사체 주변을 으스대며 걷는 공주 벌은 여왕벌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꿈자리가 좋다 했지. 드라이어드께서 내게 선물을 내리신 게 틀림없어.”

“호박벌 여왕께서는 두 왕국의 평화를 위하여 불온 분자를 엄히 처벌하셨습니다.”

“아주 마음에 들어.”

사마귀가 정중히 지껄이자 공주 벌은 매우 흡족해진 듯했다. 그것이 뒤이어 말했다.

“이리 기쁜 선물을 그냥 받을 수는 없지. 재상.”

“일전에 개미 사절단으로부터 받은 비단벌레의 날개가 적당할 듯 사료됩니다.”

“좋아. 저들에게 들리어 주게.”

꿀벌 재상이 머리를 깊이 숙이고 뒤로 걷기에 우리도 따라서 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발을 잠시 보고 있자니 붉은 카펫이 사라지고 밀랍 바닥이 나타났다. 이윽고 둔중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허리를 펴지 않은 채로 고개만 돌려 옆을 봤다. 마침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사마귀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색 입술이 매혹적인 곡선을 그린 바로 다음 순간 문틈으로 찢어지는 비명과 아우성이 마구 뒤엉켜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그년! 그년이 살아 있다!”

“여, 여왕님!”

순식간에 온 벌통이 들썩였다. 급히 날갯짓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마귀가 공중에 불덩어리를 띄웠다. 붉은 눈에 일렁이는 불꽃이 비치자 그녀의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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