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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40화 (140/178)

“나는 농담의 달 연회를 좋아해서, 거기서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면 너무 슬퍼져. 반 정도는 그런 이유에서였어.”

“소문을 들었군. 하긴, 모슬리 같은 떠버리가 여태 가만히 있었을 리 없지. 그깟 알량한 동정심으로 사람을 가지고 놀면 재미있니?”

“가지고 놀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어. 샐러맨더의 무지개 비늘에 맹세코, 네가 카일에게 왕창 빠질 줄 알았다면 절대 안 그랬을 거라고.”

“별로 왕창 빠지진 않았어.”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너랑 잘 해 보고 싶었거든. 네가 내게 관대해지길 바랐어.”

잘 보이고 싶었다는 말을 대 놓고 하려니까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서로 엿을 먹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크리스타 에드워즈에게 말이다. 목덜미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나서 조금 긁었다.

“첫 번째는 그렇다고 치자. 두 번째는 뭐라고 변명할 거야? 빌라드가 내게 외출을 권유한 것도 너 때문이라며?”

“그건, 좋아. 그건 확실히 네 마음을 염두에 두고 저지른 행동이야. 비열했어. 네가 걔를 진지하게 대하는 거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해선 안 되는 짓이었다는 걸. 미안해.”

세모꼴로 뜨인 에드워즈의 눈을 바라보며 정중히 사과했다. ‘근데 너도’로 시작하는 수많은 말이 혀 아래에서 마구 날뛰었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결국에 사달을 낸 건 내 손이었고 당장 아쉬운 쪽도 나였다. 에드워즈가 너무 상처받은 듯이 보여서이기도 했다.

“최악이네.”

“…….”

“최악이야, 달튼. 기만하려면 끝까지 하지 그랬어.”

“원한다면 마음껏 욕해도 좋아. 그렇지만 카일은, 그에 대해서는 너무 나쁜 감정을 품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어. 별로 안 내켜 했는데, 내가 엄청 매달렸거든… 네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욕해도 된다는 건 다소 충동적으로 꺼낸 소리였다. 근데 에드워즈가 마치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서 매우 얼떨떨해졌다.

우선 얼간이, 쓰레기, 위선자 같은 욕설을 어림잡아 삼 분은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알바라도 교수의 홍보용 펜던트가 떠들어 댄 것보다 더욱 다양한 저주를 귀에 담았다.

깃펜으로 돈 버는 애 아니랄까 봐 표현력이 참으로 풍부했다. 가령 ‘매일 양말 한 짝을 분실하길 바란다’나 ‘멋진 구두를 신을 때마다 물웅덩이를 밟았으면 좋겠다’는 그럭저럭 멋진 저주였다. 하지만 ‘입에 넣는 초콜릿 칩이 죄다 건포도로 변할 거다’를 듣고는 욱하지 않기 어려웠다.

이 악물고 얌전히 굴었다. 나의 사소한 불행을 오래도록 기원하여 에드워즈의 속이 후련해지고 그 빌어먹을 신문에서 내 존재가 말소된다면 감내하고도 남았다. 또 10대 여자애를 평소보다 두 배는 짜증 나게 만드는 게 실연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근데, 왜?”

“응?”

“내 도움이 왜 필요한데?”

한참 씩씩대다 말고 대뜸 묻는 에드워즈의 표정이 오묘하기에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가 처한 고난과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역경,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 지팡이가 될 그녀의 깃펜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내 고난에 지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에드워즈의 기분은 아주 살짝 나아진 듯했다. 얄팍한 입술의 양 끝이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걸출한 사업가이지만 동시에 언론인이기도 해.”

그녀가 젠체하며 말했다.

“내 글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을 택하는 것뿐이지, 실은 누구보다 진실을 좋아한다고. 아까는 화가 나서 너를 비난했는데, 껄끄러운 상황에서도 솔직히 말한 점에 대해서는 높이 사고 싶어.”

내 기억에 크리스타 에드워즈가 언론인이었던 적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묻겠어. 정말 블로썸을 괴롭히지 않았어?”

“걔를 열받게 한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맞아. 블로썸과 나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입장이거든. 하지만 걔한테 협박 편지를 보내고, 걔 교복을 더럽히고, 걔 교재를 찢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야.”

“좋아. 그럼 이제 사업가로서 말할게. 만일 네 편을 드는 쪽이 블로썸의 편을 드는 쪽보다 돈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어. 네 가치를 높여 보라는 뜻이야. 혹은….”

“블로썸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잘 아네.”

에드워즈가 샐쭉 웃었다. 얄궂은 미소였다.

“아니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 진실로 나를 눌러 보라고. 가능하다면 말이야.”

잘난 듯 으쓱이며, 에드워즈는 두 뭉치의 기삿거리 중 왼편에 놓인 것들을 쓰레기통에 담고 나서 오른편에 놓인 것들을 테이블 가운데로 끌고 왔다. 그건 우리에게 있어 휴전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분간 그 거지 같은 초상화-재클린 포크너의 웃음 버튼인-를 안 봐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소 성가신 과정을 거치긴 했으나 결과만은 만족스러웠다. 선심 엄청 써서 에드워즈에게 먼저 악수를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무슨 병균이라도 다루는 듯이 엄지와 검지만 펼쳐 내 손끝을 겨우 쥐었다. 겨우 가라앉힌 심사가 도로 배배 꼬였다.

원래 급할 때만 구부러지는 게 허리였다. 에드워즈에게 실연의 고통을 선사한 게 나이긴 하였으나 내 평판을 시궁창에 처박은 것은 에드워즈였고. 잘잘못의 크기를 따져 봐야 드워프 키 재기라고 느꼈다.

에드워즈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헐레벌떡 마법진을 그렸다. 이디스 페터슨이 피츠시몬스를 떠났대도 이디스 빌라드의 마법만은 고스란히 남았다. 곧 뾰족가시 달팽이의 점액보다 끔찍한 냄새가 온 신문부실에 퍼졌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열어젖히는 에드워즈를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으로 응원한 다음 발을 옮겼다. 질리지도 않고 문간에서 쭈뼛거리는 글렌 차베즈가 보였다. 어떻게든 애틋하게 여기는 여자애의 속을 뒤집어 놓은 무뢰한을 응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리 치워, 글렌. 또 맞고 싶지 않으면. 달튼은 네가 상대하기엔 너무 지저분한 애야.”

이번에는 어디를 차 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멀리서 에드워즈의 타박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일이라고.”

딱딱하게 선 긋는 태도에 잔뜩 시무룩해진 채 비켜나는 차베즈가 불쌍했다. 도대체 차베즈는 왜 에드워즈 같은 애를 좋아하는 걸까? 복도와 광장을 나다니는 여자애 중에 반은 에드워즈보다 예뻤고 반 이상이 훨씬 착했다.

누군가는 카일을 보며 똑같이 뇌까렸으리라는 깨달음 덕분에 즉시 반성했다. 그와 나에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쌓아 올린 관계의 탑이 있듯이 에드워즈랑 차베즈도 둘만의 역사서를 편찬했으리라. 적어도 문이 닫히기 직전에 신문부실 안쪽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직전에 들은 것에 비해 열 배는 상냥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나서 준 건 고맙게 생각해….’

***

몇몇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남은 문제는 모조리 끌어안은 채 아등바등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도서관에서 빌린 열두 권의 법학 서적 중 <말싸움 무패 신화>를 겨우 완독하고 나니 졸업 시험 날이 밝았다.

피츠시몬스의 졸업 시험은 매년 11월 셋째 주에 치러졌다. 이름 없는 자의 무덤에는 입구가 여러 개 있었으므로, 매 시간 너덧씩 들여보내다 보면 대개 일주일 안에는 모든 학생이 시험을 마치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올해 5학년 머릿수는 예년보다 적어서, 졸업 요건을 채운 인원을 추려내니 백 명이 채 덜 되었다. 밀루아 북부 출신인 내가 시험을 치를 닷새째에 남은 수험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브리아나는 첫날에, 엘리자베스는 어제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 브리아나는 배가연산으로 곱셈하는 고대인들을 도와 물건의 판매량을 속이는 상인을 붙잡았다. 자애롭고 자비로운 스티아에 회의적인 철학자와 한바탕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어떤 광산에서 벌어진 고블린과 노움 사이 싸움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

두 사람 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시련을 겪었다. 올해 게임에 일어난 변화가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내가 겪은 다른 9개월에서 엘리자베스는 광산 사업가가 아니었고 브리아나는 방학을 상인의 저택이 아니라 피츠시몬스에서 보냈다.

어쩌면 내가 치를 시험도 알던 것과 다르리라는 생각을 하니까 사뭇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카일에게 그의 시련에도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출신지가 같아 시험 시간이 겹치는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튼 직접 부딪쳐 보면 알 일이었다. 나는 매우 긴장하며 짐을 챙겼다. 몸뚱어리만 한 가방을 열어 간식거리나 장난감을 빼고 탐험에 유용한 마도구와 보존식을 더 넣었다. 릴루의 초상화를 욱여넣으면서는 여기저기서 전쟁 나가냐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브리아나의 베개 밑에는 아직도 단검이 있었다. 피츠시몬스에 도사린 위험은 내가 무사히 졸업하기 전까지는 가시지 않을 것이었다.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았다.

로즈마리 왕비의 귀걸이를 챙긴 것 또한 그래서였다. 고룡 이그나스의 비늘을 쥐면 체력이 오르듯이 로즈마리 왕비의 귀걸이는 내 마력과 매력 수치를 약간 상승시켰다. 약간 부정행위 같기는 하였으나 치트로 능력치를 부풀린 누구에 비하면 나 따위는 별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내 마력은 올라 봐야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누굴 다치게 할 일도 없었다. 반면 블로썸의 신성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주하여 메이나드나 추종자들에게 약한 부상을 입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난폭한 애를 두고 왜 애먼 사람한테 흉악하네 어쩌네 운운하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너 얼굴에 뭐 했어? 오늘따라 이상하게 예뻐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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