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23화 (123/178)

농담의 달 연회에서 사용할 투명 옷감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을 편지에 적었더니, 아빠는 내게 새로운 투명 옷감을 보내왔다. 내가 투명 옷감을 멋지게 가공해서 최고의 농담 트로피를 타면 일종의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대륙 각지의 의상점 유통을 목전에 두고 있다니 아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카일이 내게 양보한 뱀 모형은 정말로 끝내줬다. 내가 그걸 처음으로 보여 줬을 때, 브리아나 모슬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내 면상에다 뱀을 쫓는 주문을 외웠다.

브리 같은 똑똑이가 속아 넘어갔다는 건 내 메두사 분장이 뛰어날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계피 향과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하는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면서 내 계획들을 재고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연회 당일, 나는 투명 옷감으로 만든 복면과 정말 얇은 철판으로 기분만 낸 판금 갑옷, 완전히 사람 머리통처럼 생긴 나무 조각을 구했다. 모두 목 없는 기사인 듀라한 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서였다.

갑옷을 입고, 복면을 쓰고, 나무 조각에 뱀 모형을 붙인 뒤 옆구리에 끼니 완벽한 ‘목 없는 메두사 기사’가 되었다. 성실한 파티마는 복면을 쓰고 벗을 때마다 형편없이 망가질 게 분명한 내 머리 모양을 끈질기게 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손재주가 얼마나 뛰어났냐면 뱀 모형들마저 근사하게 땋아 낼 정도였다. 대충 스무 마리의 뱀 모형은 파티마의 단풍잎보다 약간 큰 손바닥 아래에서 여러 의미로 치명적인 형태가 되었다.

“좋아요. 아리엘 님은 이제 지리게 섹시한 듀라-두사에요.”

“고마워, 파티마. 내 머리는 목 위에 있지만. 그보다 여전히 단어 선택이 대담하구나.”

“젠장, 스티아시여! 그 나무토막에다가 환영 마법 걸어 놓으니까 완전 그럴싸하다! 난 가끔 네 성적이 왜 나쁜지 모르겠다니까.”

머리에 불이 붙은 광대 분장을 한 브리가 자연스럽게 무례한 발언과 함께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내 주먹을 내밀었지만, 가짜 머리통에 씌워 놓은 환영 마법 때문에 시야가 두 개로 불어나 있어서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그리폰 크리켓 시합을 거른 대가로 공용어 말하기 대회 대륙 남부 지역 대표로 선정된 브리아나 모슬리에게는 형편없는 분장을 하고도 연회를 즐길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목표물에서 한참 벗어난 내 주먹에 브리가 다른 주먹을 갖다 맞췄다.

“그보다, 대체 그 근본 없는 분장은 뭐야?”

“제발, 아리엘. 대륙의 역사 수업을 들었잖니. 웃지 않는 공주를 위해 불에 타 죽은 궁정 광대 알피를 모른다고 말하진 말아 줘.”

“전혀 모르겠는데. 케이틀린 대제 위인전에 그런 게 나와?”

“196페이지에 나와.”

브리가 너무 정색을 해서 까불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글자먹이에 빗댄 농담들을 혀 아래 숨겼다. 그리고 궁정 광대 알베르토? 알렉스? 아무튼 알-어쩌구와 깜찍한 파티마의 배웅을 받아 살짝 이른 시간에 기숙사를 나섰다. 마구간에 들렀다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몇몇이 마구간에 있었다. 걔네가 얼마나 허접하게 진짜 머리통을 숨기고 겨드랑이나 손바닥 위에 가짜 머리통을 뒀는지 금방 알 수 있어서 우쭐해졌다. 나는 파티마 말대로 지리게 섹시한 데다가 기발하기까지 한 듀라-두사였다.

애들 생일 연회에서나 볼 법한 분장들을 제치고 가장 흰 말을 대여했다. ‘눈토끼’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암말은 눈동자가 빨간색이어서 정말로 특별해 보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최고의 농담 트로피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했다.

나의 빈틈없는 계획에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내 승마 실력이었다. 나와 눈토끼는 같이 휘청거리며 광장으로 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눈과 입이 번개 모양으로 파내어진 호박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인 아치가 보였다.

농담의 달 연회는 다른 무도회처럼 연회장에서 열리질 않았는데, 그것도 연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농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엉덩이에 가해지는 고통은 농담이 아니었다. 아치까지 눈토끼를 모는 동안 교환식용 선물을 숨길 곳을 찾고 싶었으나 꼬리뼈가 부서질 거 같아서 그러질 못했다.

“말도 너도 되게 불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야?”

“너야말로 네 형제가 엄청 불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야?”

호박 아치 앞에서 에드가 라모스와 브라이스 나돈을 만났다. 소매가 없고 허리 쪽에 트임이 깊게 들어가 야성적인 느낌이 나는 두 벌의 튜닉을 한데 꿰매 함께 걸친 모습이었다. 옆구리가 붙은 채로 태어난 신화 속 거인 형제 ‘스텐’과 ‘울프’로 가장한 듯했다.

꽤나 즐거워 보이는 에드가에 비해 나돈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스텐’ 역할이 불만족스러운가 보았다. 감히 추측해 보건대, 그가 바랐던 건 형제와 하나의 옷을 나눠 입는 것보단 폼 나는 무언가였던 게 틀림없었다. 그의 연적인 켈란이 그러듯이 말이다.

내가 엉뚱한 방향을 삿대질하며 폭소하자 에드가가 친절하게도 내 손가락의 위치를 바꾸어 주었다. 두 개로 갈라진 검지 손톱 끝에서 나돈이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는 게 보였다. ‘아가리 닥쳐, 달튼.’그가 말했다.

나돈이 쳐다보는 곳에 내 아가리가 있질 않았으므로 닥칠 수가 없었다. 진짜로 눈물을 흘리며 웃고 나서 소매에 감춰 둔 마비 가루를 뿌렸다. 듀라-두사도 일단은 메두사였으니까, 겁도 없이 그녀와 마주한 이에게 선사할 응분의 대가가 필요했다.

석상이 된 쌍둥이를 지나쳐 간 곳에 팔이 세 쌍이나 달린 여신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맥카시는, 에드가와 나돈이 돌이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나의 눈 네 개를 전부 피하기 위해 엉뚱한 곳을 보며 인사했다.

“안녕, 아리엘. 혹시 브리아나가 뭐로 분장했는지 알아? 아까 저기서 봤는데, 너무 자신 있어 보여서 못 물어봤거든.”

“궁정 광대 알리오 올리오래.”

“음, 절대 아닐 거 같지만 참고할게. 그보다 네 콘셉트 진짜 최고다. 올해 최고의 농담 트로피는 경쟁이 치열하겠는걸?”

그렇게 말하는 엘리자베스는 퍽 으스대는 태도였다. 나는 그제야 그녀의 갈빗대와 옆구리에서 자라난 팔 두 쌍이 제법 실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그럴싸하게 보이는 대가로 시야를 일부 포기해야 했던 내 분장과 달리 엘리자베스의 분장은 쓸모마저 있었던 것이다!

여섯 개의 손들 중 반은 음료를, 반은 간식을 종류별로 쥐고 있었다.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질투심이 일었다. 나는 다소 치사한 마음으로 엘리자베스에게 그녀의 결혼식 계획을 상기시켰다. 디자인만 보고 냅다 사 재낀 탓에 드레스에 몸을 맞춰야 하는 그녀의 처지도.

사색이 된 엘리자베스가 떨어뜨린 빵 세 덩어리를 마침 등장한 브레넌이 받았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 슬라임으로 분장한 그의 손아귀는 매우 미끌미끌했다. ‘젠장.’ 빠짐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빵들에 브레넌이 크게 낙담했다.

“콘셉트를 잘못 골랐어. 나 이거 때문에 화장실도 못 가. 바지에 단추가 엄청 많이 달렸거든… 지금도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이야.”

“우와, 알려 줘서 고맙다. 진짜로.”

죽어도 알기 싫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마비 가루로 보답하고 나서, 서른 개의 손톱이 나를 노리기 전에 자리를 떴다. 밤하늘을 뒤덮은 빛나는 거미줄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털 난 거미의 정체가 정말 드와이어 교수인지가 궁금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쌍둥이를 제외하고, 학생회는 광장 이곳저곳에서 지나친 혼란을 수습하거나 감당할 만한 혼란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이를테면 학생회의 공주님이자 피츠시몬스의 공주님은 평소의 연회 복장에 라즈베리 시럽을 대충 뿌린 분장만으로도 추종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녀와 함께 포즈를 취한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깃펜을 들이대는 줄이 길었다.

블로썸이 은박지를 접어 만든 칼을 휘두르느라고 분주한 동안 날다람쥐 집배원들에게 박쥐 날개를 다는 업무는 제이든이 도맡았다. 이따가 골 때리는 선물 교환식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날다람박쥐 집배원을 통해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선물을 숨긴 장소에 대한 힌트를 전달해야 했다.

제이든의 등에는 날다람박쥐 집배원과 비슷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짧게 올려 친 앞머리 아래로 드러난 이마에는 검고 굵고 반질거리는 뿔이 돋아난 채였다. 참으로 대담한 분장이었다.

분장이 맞기는 한가?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더니 제이든은 날다람박쥐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간질이다 말고 나를 봤다. 눈꼬리가 부드럽게 접혔다.

[반칙 같긴 하지만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어. 최근에 내게는 농담의 달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고… 성의 없는 분장으로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맙소사, 분장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전음에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눈토끼는 길게 울더니 방향을 확 틀었다. 얼떨결에 돌아선 등에 낮은 웃음소리가 닿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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