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21화 (121/178)

애초 시스템의 붕괴를 목표로 하는 이상 나는 시스템의 유지를 바라는 케이틀린 대제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를 갈며 욕을 내뱉자 볼턴이 퍼뜩 움츠렸다.

눈에 보이는 글자들을 마구잡이로 읽어 내려가다가, 별안간 기시감이 들었다. 아까도 봤던 문장 아닌가? 해독이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다른 페이지에서 비슷하게 생긴 글자가 비슷하게 나열된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두 페이지를 반대 방향으로 넘기자 똑같은 문장이 나타났다. 그다음 페이지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켈란이 찢어진 페이지를 기준으로 특정한 문장을 공유하는 페이지들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문장이 이것인가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의 찢어진 페이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플로렌스 벨의 세계에서, 나는 <패치 노트>를 거의 신경 쓰지 않았으나 훼손된 흔적이 전무한 것은 확인했다. 즉 <패치 노트>가 찢어진 부분보다 이전의 기록 중 어떤 것은 그 세계에서 쓰인 것이 되었다.

수색 범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환영할 만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작업을 이어 나가다가,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켈란이 말했던 ‘특정한 문장’은 처음에 제법 간격을 두고 등장했다. 날짜로 따지면 보름가량이었고, 페이지로 따지면 두어 페이지였다. 중요도가 엄청 큰 내용도 아니었는지, 몇몇 다른 항목과 뒤죽박죽 섞여 등장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특정한 문장’이 나타나는 빈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매일같이 기록되는 모든 페이지에서 해당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특정한 문장’만 달랑 쓰여 있는 페이지가 나타났다. 한 장이 아니었다. 대충 세어 봐도 열 장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페이지들의 바로 뒤 페이지가 찢어진 페이지였다.

<패치 노트>는 게임에 발생한 문제와 그것의 해결 방안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정한 문장’이 여러 번,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같은 문제가 여러 번, 자주 일어났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전전긍긍하던 문제가 해결된 직후 기록이 말소되었다. 대충 봐도 수상한 흐름이었다.

‘특정한 문장’은, 동일한 내용을 여러 번 적고 싶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페이지에만 해독이 되어 있었다. 그것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략 대상 ‘켈란 일레스티아’의 호감도가 정상적으로 표시되지 않는 현상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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