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끝내 쏘아 올린 세 음절의 폭탄은 용의 발등에 떨어졌다. 아까까지 날지도 못할 정도로 기운 없어 했던 주제에, 퍼뜩 놀라 펄쩍 뛰는 움직임이 되게 민첩했다.
수상하게시리. 나는 팔짱을 끼고 엄지와 검지로 턱을 문질렀다. 코넬리아 빌라드에 따르면 그건 최고의 탐정에게 꼭 필요한 동작이었다.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맞잖아! 처음 만난 것도 탤론에서였고, 나 구해 준 것도 그렇고, 단거도 좋아하고, 그리고, 요새 식당을 거덜 내는 중이고….”
인간이 용이 되거나 용이 인간이 되는 건 분명히 말도 안 됐으나, 말도 안 된다고 하면 정화된 숲이 아닌 곳에서 성체에 가까운 용을 만난 거부터가 그랬다.
더구나 나는 이미 검은 용이 반 정도 인간이 된 모습을 봤다. ‘악마’ 말이다! 따지면 따질수록 확실하다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그러고 보면 ‘악마’일 때에 용은 제이든 스펜서와 닮아 있었다. 날개와 꼬리와 뿔이 달리고 검은 피부에 비늘이 돋아난 제이든을 떠올리면 얼추 비슷했던 것이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마구 쏘아붙이자 검은 용, 제이든은 내가 익히 아는 친구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흉흉하던 기세가 한풀, 아니 다섯 풀은 꺾였다.
“그래서 왜 이런 곳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수확의 달 연회 시상식도 빠지고. 켄드라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아? 그 모습은 뭐고? 너 용이야? 인간일 때는, 그러니까, 마법 같은 거야? 내가 알기로 용의 신체 구조는 너무 복잡해서 변신이 불가한데.”
[말했잖아, 배가 고프다고….]
“그 모든 소동이 단순히 배가 고파서 일어난 거라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물음표에 제이든은 정신이 없어진 듯 했다.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너무 깊어서 물이라도 고일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몇 발짝 물러서서 배낭을 뒤집어 호박등 토피를 전부 꺼냈다. 그리고 물음표 하나에 하나씩 제이든에게 먹여 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유는 나도 몰라. 몇 주 전부터 갑자기 허기가 심하고, 기분이 들쭉날쭉하고, 또… ‘스펜서 공자’를 유지할 수 없게 됐어.]
전음술의 좋은 점은 먹으면서 동시에 말해도 더러운 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쁜 점은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거였고. 나는 머릿속을 침범하는 내 것이 아닌 생각에서 제이든이 다른 누구를 부르듯이 스스로를 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티려고 했어. 험프리스 교수님도, 켈란도, 방법을 찾아 보겠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알다시피 메이나드 사건이 벌어졌고… 에드워즈의 기억을 지우는 건 쉽지 않더라.]
“기억을 지워?”
[메이나드처럼 애매한 상황이 아니었거든. 에드워즈는.]
길게 찢어진 동공에 내 얼굴이 비쳤다. 아하. 숲에서 에드워즈를 만났던 날의 이야기로군. 돌이켜 보면 그 뒤로 피츠시몬스 타임즈에 실린 기사는 가짜 언론인의 깃펜에서 태어났음을 감안해도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문장으로만 가득했다. 이를테면 ‘악마’와 나 사이 농밀한 접촉에 대한 묘사 같은 거 말이다.
기억이 지워진 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자기를 기절시키고 취재 장비들을 부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거였어. 그래서 내 방문 틈에 보상 청구서를 끼워 놓고, 내게 지대한 악의를 품어 그 통속 소설 같은 기사를 써 내린 거였다고.
그것도 모르고 에드워즈의 전시를 망친 것에 대해 쪼끔의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걔의 인성이라면 기억이 온전했더라도 내 탓을 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초 심지만큼 짧은 반성을 마치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가만뒀어?”
[응?]
“내 기억 말이야. 왜 안 지웠냐고. 에드워즈가 ‘애매하지 않았’던 거면, 나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음….]
그러자 제이든은 약간 곤란해 보였다. 두 개의 눈꺼풀 아래에서 유리구슬 같은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아래, 오른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까지. 희미한 빛이 숲의 구석구석을 비추자, 어둠에 몸을 숨기고 기웃대던 야생 마물들이 분주히 도망치는 소리가 났다.
[너는 기억하길 바랐나 봐.]
한참의 정적 끝에 그가 덧붙였다. 썩 적절한 대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만족스러운 대답이기는 하였기 때문에 호박등 토피를 하나 더 깠다. 적어도 제이든의 저울에서는 내가 크리스타 에드워즈나 다른 애들보다 무거운 거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지만 일단은 접어 둘게. 지금 급한 건 네게 일어난 영문 모를 재앙을 걷어 내는 거니까. 혹시 모나한 교수님의 지혜를 빌릴 수 있을까? 내 말은, 용도 일단 마물이잖아.”
느슨해진 신발 끈 매듭을 고치며 묻자 제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커다란 머리통이 좌우로 흔들리자 거인족 혼혈인 채프먼 교수의 재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이 불었다. 안 그래도 매듭 짓기에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탓에, 내가 묶던 리본은 엉망이 되었다.
“그리폰도 모르고, 용도 모르고, 그 사람은 대체 어쩌다가 마물학 교수가 된 거래? 젠장, 듀간 교수님이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도와주려는 건 고맙지만… 난 괜찮아, 아리엘. 조금만 참으면….]
“그런 주장을 펼칠 거면 그렇게 신경 쓰이는 꼴로 내 눈에 띄지를 말았어야지… 잠깐, 난나 교수님은?”
[난나 교수님?]
“엘프잖아!”
필멸자와 불멸자를 통틀어 엘프만큼 용과 가까운 종족은 없었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이미 난나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도 되었다.
험프리스 교수로 대표되는 마탑 출신과 휴스턴 교수가 이끄는 비마탑 출신, 그리고 드와이어 교수를 내세운 비인간 교직원의 파벌은 각각 사이가 더럽게 좋지 않았다. 험프리스 교수가 제이든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난나 교수는 모를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난나 교수는 엘프 종족의 고질적인 건강 문제로 인간이나 드워프 교직원이 묵는 숙소와는 동떨어진 곳에 살았다. 내 기억에 그녀의 오두막은 글로윈 숲 근처에 있었는데, 검은 용의 덩치와 존재감으로도 곤히 잠든 피츠시몬스를 깨우지 않고 이동하기에 완벽한 위치였다.
아다만티움은 달았을 때 두드리라고, 목적지를 정했으니 즉시 움직이는 게 맞았다. 나는 눈꺼풀에 스프리건의 고약을 다시 발라 오두막의 방향을 파악했다.
그러고 나서 배낭의 안주머니에서 혹시 몰라 챙겼던 투명 옷감을 끄집어냈다. 그것을 제이든에게 걸치자, 목덜미쯤에 솟아난 지느러미 몇 개가 겨우 사라졌다.
나는 거대화 주문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형편없는 마법 실력 덕에, 내가 사용하는 가속 주문은 간혹가다 거대해지는 결과를 낳곤 했다.
총 스물다섯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진짜로 집채만 한 용을 완전히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의 등에 올라탄 인간 여자애와 그녀의 배낭도.
***
모든 불멸자는 언젠가 삶을 저주하게 된다. 고룡 이그나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신화 시대부터 살았고, 신화 시대에 용은 지금과는 달리 인간과 꽤나 친했으므로 그 유명한 르네 레베스크와 그녀가 베어 낸 몽마의 목도 두 눈으로 봤다.
성마전쟁은 이그나스에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승패를 따지자면 승리하긴 하였으나 용은 수도 없이 많은 필멸자 친구를 잃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며 전부 죽었다. 또한 용의 심장을 조각내며 태어난 더러의 생명들은 선조만큼 용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으로부터 애정보다 다른 것을 원했다. 반은 이기적이었으며, 반은 지나치게 깍듯했다.
어떤 삶은 죽음보다 괴롭다는 사실을 이그나스를 포함한 대개의 용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더는 필멸자의 역사에 간섭하지 말 것을 불멸자가 공유하는 새로운 종교의 율법으로 삼았다. 그리고 산이나 계곡이나 사막으로 숨어 들어갔다.
용의 콧바람에는 정화 효과가 있었으므로 마기에 취약한 엘프들이 모였다. 자연스레, 엘프는 용을 숭배하게 되었다.
인간의 친구에서 엘프의 수호신이 되어 누리는 영생은 괜찮았다. 그러니까 처음 두어 세기는 말이다. 곧 용들은 영원한 무료를 벗어나기 위한 자신만의 유희거리를 개발해야만 했다.
어떤 용은 직접 엘프의 왕이 되어 폭정을 일삼았다. 그는 어린애가 소꿉놀이를 하듯이 엘프를 쥐고 흔드는 것을 즐겼다.
또 어떤 용은 입에 댈 수 있는 것이라면 죄다 맛보고 싶어 했다. 그녀에 따르면 목 넘김이 특출난 것은 엘프 여성이었고, 악취가 나는 것은 인간 남성이었다. 드워프는 질기긴 했지만 특유의 감칠맛이 있었다.
이그나스의 유희는 인간 아이를 납치해 그것의 유일한 벗으로 삼는 것이었다. 왜 아이여야 하냐면 머리가 굵은 인간에게는 이미 소중한 게 많아서 이그나스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탓이었다.
다른 인간보다 비교적 오래 살기도 했다. 육십여 년은 이그나스와 같은 불멸자에게는 눈 깜빡일 찰나였으나 아무튼 찰나의 지루함이나마 달랠 수만 있다면 기껍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짧은 검은 머리에 암록색 눈의 남자애는 이그나스가 엘프 바람잡이로부터 선물 받은 대충 스물서너 번째의 말벗이었다. 호들갑을 떠는 엘프의 말에 따르면 인간들 사이에서 꽤나 떠받들어지던 아이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걸친 반바지의 천이 꽤나 부드러웠다. 멜빵은 최고급 바실리스크 가죽이었고. 이그나스는 흡족스러웠다. 이전의 말벗 중 그만큼 귀엽고 또 귀한 신분의 아이가 없던 까닭이었다.
또 침착하기까지 했다. 파도에 휩쓸려 버둥거리다가 문득 늘어지는 것처럼 아이는 정확히 사흘 울고 안 울었다. 포기해서 무기력해진 것과는 달랐다. 아이의 이끼색 눈에는 채 갈무리하지 못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이그나스는 평소보다 다소, 아니, 많이 흥분했다. 그래서 필요 없는 말까지 지껄이고 말았다.
“보물고에 있는 보물은 전부 네가 가져도 돼. 단, 물방울 모양의 푸른 보석만은 건드리지 말아 줘.”
만일 이그나스의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높았다면, 혹은 불멸자들이 필멸자의 역사에 간섭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조금이라도 늦게 했더라면, 그런 식의 말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수순으로 아이는 물방울 모양의 푸른 보석, 즉 용의 심장을 손에 넣었다. 울지 않게 된 이후 보름만의 일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룡의 손톱은 아이에게 닿지 못했다.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용의 둥지를 빠져나오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가 용의 심장을 삼켰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였다. 산드쉘 계곡을 빠져나와 탤론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이그나스의 능력과 일부 기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