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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50화 (50/178)

50화

“‘도살자’, ‘척추 분쇄기’, ‘핏빛 어금니’.”

“와.”

확실히 굉장하긴 한데, 애완동물의 이름보다는 흉악범의 별명에 가까웠다.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자, 켈리가 진지하게 열변을 토했다. 만일 최고급 마력석이 담긴 금고가 있고 그걸 지키는 문지기가 있을 때, 문지기의 이름이 ‘사랑둥이’인 것과 ‘핏빛 어금니’인 것 중에 어느 쪽이 도둑질하기 용이하겠냐는 것이었다.

듣고 있으려니까 일리가 있기는 했다. 마침 스태포드 교수가 우리가 앉은 테이블의 왼쪽에서 로즈마리 블로썸의 토룻 줄기가 미케일라 메이나드의 귀밑머리에 엉킨 것을 해결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켈리에게 방금 했던 말을 약간 더 크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켈리는 스태포드 교수가 마침내 우리 테이블로 와서 ‘그것참 좋은 생각이구나.’라고 말할 때까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가 마나와 신성력의 차이를 간과하는 바람에 축 늘어진 일레스티아 학생들의 토룻을 살피러 떠나자, 손바닥 두 개가 경쾌하게 맞부딪혔다.

“경품 타면 나눠 주기야.”

“물론이지. 여학생 살롱 멤버들끼리는 모든 영광과 고난을 함께하기로 했잖아.”

나는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다 말고 급격히 조용해졌다. 당장 오늘 아침에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에게 닥친 고난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고대마법과 신화 수업에 결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으로 찾아갔을 때, 아나이스는 말하지 않는 순간마다 훌쩍이는 중이었다.

나는 솔직히 아나이스가 우리에게 남자에 대해 털어놓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무리 친해졌다고는 해도 그만큼의 신뢰가 쌓일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이스는 브리의 신발코가 문지방을 채 밟기도 전에 그녀의 허리에 매달렸다. 듣기로 재클린 포크너가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일련의 사건에 대한 보고를 마친 참이라고 했다.

‘어쩌면 좋아.’ 아나이스가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당장 나를 히스론드 수도원에 처박으실 거야.”

안색이 희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대답을 구하듯이 브리아나를 봤다.

“재키는… 재키가 정말로 말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니까, 전부?”

“오, 안나 아가씨.”

브리에게는 기분이 나빠지면 아무에게나 빈정거리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저라면 오브라이언 공작께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없는 말이라도 지어냈을 거예요.”

준남작가 출신인 브리아나 모슬리는 수상하게 부유한 아버지를 얻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시녀 일로 배를 채워 왔다. 그래서 그녀는 시녀들의 충성심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잘 알았다.

나는 포크너의 출세 욕구가 하위 귀족의 일반적인 수준에 미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밀루아 남부와 나돈 동부, 일레스티아 서부의 우체국으로 편지를 옮기는 날다람쥐들을 저지하고자 했다.

간절한 시도는 처참한 실패만을 남겼다. 때마침 날다람쥐 사육장에 들른 5학년 남학생 제임스 패닝턴이 목구멍이 정어리로 메워지는 희생을 당했을 뿐이었다(에드워즈의 악의적인 보도 이후, 나는 ‘정어리 마녀’라는 별명이 가지는 위엄을 최대한 누리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자 켈리는 아주 심각해졌다. 그녀는 다음 수업인 마물학을 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빼먹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토룻처럼 쇠약해진 아나이스의 용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다른 애들이 토룻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켈리는 나에게 ‘나올 것 같다’는 대사를 실감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뭐가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건 내가 종종 써먹는 방법이었는데, 마물의 생리에는 전문가일지언정 인간의 생리에는 까막눈인 모나한 교수에게 아주 잘 통했다.

***

신문부실이 자리한 별관 3층은 성난 학생들로 아비규환이었다. 다들 제각기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는데, 일부는 아나이스를 공격하는 기사에 대한 항의를 하는 듯했다. 기묘한 광경에 잠시 멍하니 있자, 곧 글렌 차베즈가 나타나서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브라이언 관련 민원은 왼쪽, 나머지는 오른쪽으로 서세요!”

그러자 반 이상이 왼쪽의 벽에 어깨를 붙이고 섰다. 가히 피츠시몬스의 여왕다운 인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자연스럽게 차베즈에게 다가갔다. 그의 귀에 대고 학생회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속삭이자, 차베즈는 발등에 불이라도 놓인 듯이 움직였다.

“아, 글렌. 달튼은 병적인 거짓말쟁이야.”

차베즈의 안내를 받아 등장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에드워즈가 말했다. 피곤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라고 병적인 거짓말쟁이가 말했습니다.”

“시비 걸러 왔니?”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차베즈는 문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노려봤다. 나는 카일이 상대의 화를 돋우기 위해 자주 하는 행동-한 눈을 장난스럽게 찡그리는 것-으로 그의 성의에 화답했다.

“저번에 보여 준 괴상한 콘셉트는 때려치우기로 한 거야? 꽤 재미있었는데.”

“그때는 언론인 에드워즈였잖니. 지금은 네 친구 크리스타고.”

내 생각에 에드워즈는 언론인도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쓸데없이 거대한 책상에 걸터앉았다. 반질거리는 돌로 만든 명패가 허벅지에 닿았다. 거기 새겨진 글자를 손끝으로 따라 그려 보았다. ‘취재 부장 크리스타 에드워즈’.

“네가 바깥의 얼간이들처럼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을 사모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미안하지만 번지수 잘못 찾았어.”

에드워즈는 내 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깃펜 끄트머리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얼핏 보니 그건 기사였다. 커크패트릭이 점술에 능한 새어머니를 맞이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점술가가 아니라 나돈의 첩자인 미스 프록터는 당장 내일의 저녁 메뉴조차 점칠 수 없을 거였으므로, 그녀가 가진 정보는 지극히 사소한 착오를 제외하면 사실에 가까웠다. 나는 에드워즈의 수완에 조금 감탄했다.

“네 짓이 아니라고?”

“저거 보여?”

에드워즈가 깃펜 끝으로 신문부실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쇠로 만든 제지기 같은 것이 털털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다가가자 위에 반듯하게 접힌 종이가 가득 쌓인 바구니가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뭘 어쨌단 거야?”

“자세히 봐. 언제 자 신문이고, 일 면에 실린 게 어떤 기산지.”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그녀의 말을 따랐다. 손아귀에 들린 신문을 펼치자, 내 시선은 단숨에 그것에 사로잡혔다. 피츠시몬스 타임즈 말이다. 오늘 발간되었으나, 아침에 읽은 것과 전혀 다른 기사를 싣고 있는.

새로운 신문의 일 면에서는 아나이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추잡한 문구들일랑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모나한 교수와 스태포드 교수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다룬, 아주 약간 덜 추잡한 기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턱이 빠질 만큼 놀랐다. 카일 역시도 그들의 사이를 언급한 바가 있었으나,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던 탓이었다. 크리스타 에드워즈가 병적인 거짓말쟁이라면 카일 빌라드는 연쇄 쾌락 농담마였다. 걔는 내가 ‘뻥치지 마’라고 소리치는 모든 순간들을 사랑했다.

“‘S 교수’라고 적힌 것 맞지? ‘S 교수 온실의 픽시’나 ‘S 교수가 키우는 삼두견’이 아니라?”

“지금 그게 문제야? 어떤 자식이 내 신문을, 실수, 우리 신문을 바꿔치기한 게 분명하다고. 이건 신문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야.”

에드워즈가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이를 갈았다. 무지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봐, 나는 매일 밤마다 자동 기술 장치에 충분한 양의 마법 잉크와 종이 그리고 기삿거리를 채워 놓곤 해. 그래야만 아침까지 오백 부의 끝내주는 신문을 얻을 수 있거든. 그래야만 글렌이 너희에게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말이야.”

“끝내주긴 하지. 누군가의 평판을.”

“모욕하지 마, 달튼. 나는 선을 넘은 적이 없어…. 적어도 이 기사는 내가 쓴 게 아니니까.”

“아하, 네가 나와 에드가에게 붙인 더러운 단어들은 전적으로 네 ‘선’ 안에 있었다?”

“뭘 모르나 본데, 내가 너희에 대해 그렇게 적은 건 너희를 믿어서야.”

“무슨 개소리야?”

신경질적으로 묻자 에드워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뻔뻔한 태도였다.

“어떻게든 해결할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그게 맞았고.”

“해-애-결?! 그 지랄맞은 ‘인터뷰’가 에드가를 어떤 쓰레기로 만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게 ‘해결’이라고?”

“솔직해지자, 제발. 에드가 라모스는 그 ‘지랄맞은 인터뷰’ 이전에도 쓰레기였어.”

“아니, 넌 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왜 그렇게 라모스를 싸고돌아? 혹시 진짜 뭐라도 있는 거야, 너네 둘?”

아까만 해도 대충 죽어 있던 에드워즈의 눈에 갑자기 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너네 둘’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와 검지를 몇 번 뗐다 붙였다. 끈적한 제스처였다. 적어도 크리스타 에드워즈에게만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으므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네 궤변은 아무래도 좋아. 아나이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상관이 있지. 방금 말했잖아. 내가 자극적인 기사들을 쓰는 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대상에 한해서야. 피츠시몬스의 ‘얼음 여왕’에게는, 당연히, 불가능하지.”

“아나이스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기는.”

내 비아냥에 에드워즈는 양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눈가에 대며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입꼬리는 비스듬하게 말아 올린 채였다.

“난 걔랑 친하지 않지만, 걔가 토룻처럼 섬세한 애인 건 멀리서 봐도 훤하던데.”

나는 크리스타 에드워즈에게서 더 이상 얻어 낼 정보가 없을뿐더러 그녀와의 대화가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자 이제 피곤해 죽겠는 것은 내 쪽이 되었다.

“아무튼 이 기사는 내가 쓴 게 아냐. 누군가 ‘S 교수’와 ‘M 교수’의 아름다운 연애담을 지저분한 망상으로 덧칠하고는 글렌으로 하여금 온 아카데미에 돌리게 만들었다고.”

별다른 대꾸 없이 신문부실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살짝 비틀어 열자 복도에 넘실거리던 아우성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아나이스에게 달려가고자 하는 충동이 일었다. 알려 주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기사화하지 않을 유일한 소재가 있다면 그건 늙은 남자 때문에 인생을 말아먹게 생긴 젊은 여자의 이야기일 거야. 나는 언론인이자 사업가이고, 내 글을 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 왔지만 이번만은 아냐. 날 믿어.”

복도로 향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에드워즈가 말했다. 다소의 쓴맛이 가미된 탓인지, 그건 지금까지 그녀가 지껄인 헛소리 중 가장 진지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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