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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43화 (43/178)

43화

나는 일용직 하녀들의 빨랫감에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의 숄을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이틀이 지나자 그것은 아주 뽀송하고 장미 향기가 나는 물건이 되었다.

오브라이언의 고귀함과 장미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파티마에게 상을 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곧 죽어도 금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쿠키는 저번에 준 게 다여서, 하는 수 없이 파티마의 조그만 머리통을 꼭 끌어안았다.

착한 파티마는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나돈에서는 가족끼리 포옹이나 뽀뽀로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에드가 라모스의 형제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이 얼마나 꼭꼭 숨었는지, 나는 그녀를 찾는 동안 아카데미의 거의 모든 장소를 돌아다녔다. 포장해서 방문 앞에 둘까도 생각해 봤지만 구애자의 선물로 착각될 게 분명해서 말았다.

또 그녀가 장미 향기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직접 말해 주고 싶기도 했다.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은, 성직자 가문 출신이라서 그런지, 항상 신전의 향로에서나 날 법한 향기를 몸에 두르고 다녔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녀의 미모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생각에, 장미 향기를 끼얹으면 오브라이언은 거의 꽃송이처럼 보일 것이었다.

더구나 브리에게 듣기로 오브라이언 공작가의 상징은 장미라고 했다. 얼마나 완벽한 조합인가!

마침내 기숙사 뒤편의 구석진 곳에서 오브라이언을 발견했다. 키가 큰 수풀과 정원수에 가려 이를 악물고 뒤지지 않고서야 알아채기 힘든 곳이었다. 발품을 파는 동안 진이 다 빠져 버린 나는 오브라이언에게 가까이 가는 대신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웬 남자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명백히 무리가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사랑의 달 연회 기간에 여학생이 남자와 목격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피츠시몬스의 어떤 염문에도 등장하지 않은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상대가 대충 봐도 마흔쯤 된 남자라면 더욱 그랬다.

“안나.”

그는 거만하게 말했다.

“아름답고 연약한 나의 아나이스. 졸업을 앞두고도 여전히 오브라이언 저택에서처럼 어리게 구는구나. 너는 더 이상 오브라이언의 장미 봉오리가 아니고, 나는 네 가정 교사가 아니거늘.”

내가 만일 가정 교사로부터 저런 말을 들었다가는 달튼의 말괄량이가 검을 들면 얼마나 어른스러워지는지 가르쳐 주었을 것이었다. 오브라이언의 장미 봉오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무력하게 남자의 품에 안겼다.

“수도원에 입회하면 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어요, 선생님. 발레아로 데려가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곳은 사시사철 꽃이 피고, 호수마다 금물결이 반짝이는 곳이라고요.”

이윽고 이어진 가느다란 목소리에 나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이? 정말로? 절세의 미남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착하지도 않은, 늙어 빠지기나 한 남자와?

“아, 물론이지. 너는 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질 못하잖니.”

말하는 것을 잠깐 들었을 뿐이지만 나는 그를 평생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무시하고 편협한 견해를 계속해서 떠들며 자존감을 채우는 부류에게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저주만이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였다.

“맞아요. 저는 장미 봉오리고 당신이 물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부디 제가 언제쯤 미세스 도넬리가 될 수 있는지 가르침을 주세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져 마땅할 악질에게 오래도록 시달리면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눈이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나의 유모 매디가 그것의 산증인이었으므로 잘 알았다. 그녀가 대충 깎은 감자처럼 생겼고, 술에 취해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에게서 벗어나기까지는 십여 년이 소요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구제 불능의 쓰레기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남자와는 결혼해선 안 돼요.”

주름진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건네던 당부가 떠올랐다.

“누구도 아가씨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어요. 아가씨 자신이라도요.”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수도자가 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 위해 늙은이의 성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오브라이언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금물결이 반짝이는 발레아의 호수에 갈 수 있었고,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의 밀회 장면에 뛰어들어 아나이스 오브라이언을 설득하기에 나는 그녀와 고작 한두 번 말을 섞었을 뿐이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단단하게 굳어진 그녀의 비틀린 인식은 더 강인하고 신뢰감 있는 조력에 의해서만 깨어질 것이었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 오브라이언의 숄을 맵시 나게 포장했다. 그리고 오브라이언의 방이 있는 2층으로 가서, 그것을 집어 들지 않으면 문을 열 수 없는 위치에 두었다.

윗면에는 큼지막한 종이를 붙였는데, 그건 언젠가 엘리자베스 맥카시의 마물학 교재에 그렸던 것과 거의 비슷한 초대장이었다. 단 이번에 손님들은 4대 원소 감자칩을 반드시 지참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난 살롱에서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나는 그것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

이변은 없었다. 피츠시몬스 역사상 최고 괴짜 후보들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연회의 여왕’으로 선정된 것은 로즈마리 블로썸이었다.

정확히는, 최다 득표자는 카일이었는데, ‘카일리’의 존재가 아카데미장인 마담 바틀렛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기꺼이 블로썸에게 관을 넘겼다. 그래서 엄밀하게 ‘선정된’ 것은 아니어도, 여하튼, 그랬다.

나는 카일이 ‘연회의 여왕’에게 주어지는 관을 블로썸의 정수리에 얹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1열에서 직관했다.

솔직히, 마담 바틀렛이 카일에게 여왕 선정권을 넘겼을 때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냐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어쨌든 나는 걔랑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내가 만일 같은 입장이 된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카일을 골랐을 것이기 때문이다(그가 ‘연회의 왕’에 어울리냐 아니냐를 떠나서! 치사하긴 한데, 사회에서 대부분의 결정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있어 ‘연회의 여왕’은 블로썸이었다. 아리엘 달튼을 너무 싫어해서 죽이려고까지 했던 로즈마리 블로썸 말이다. 그날 이후로 폐기했던 가설을 다시 꺼냈다. 카일 빌라드는 로즈마리 블로썸을 사랑하는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어쩌면, 블로썸에게 복종해야 하는 그의 운명 탓일 수도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기분이 나았으므로, 낯이 두꺼운 것이 장점인 나로서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상한 티를 내기는커녕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비단 피츠시몬스 타임즈의 취재 부장 크리스타 에드워즈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든 ‘연회의 여왕’은 로즈마리 블로썸의 성취였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것을 빼앗을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조용히 질투할 권리쯤은 있겠지. 블로썸의 로맨스 소설에 등장할지도 모르는 삼류 악역 조연처럼, 비열하게. 나는 젤리를 얹은 크래커를 초콜릿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에 담갔다. 오로지 너만이 나의 성취로구나.

“아까 캠든 보우만이 거기 발 담그던데.”

“우웩.”

막 입으로 가져가려던 크래커를 집어 던졌다. 카일이 나와 분수를 번갈아 가리키며 낄낄댔다.

“오, 아리. 이런 장난을 칠 거면 나랑 같이 했어야지. 네가 물을 초콜릿으로 바꾸면, 나는 초콜릿의 일부를 스프링클로 바꿨을 거라고. 그럼 크래커는 더 맛있어졌을 테고.”

“네가 보우만 얘기를 한 시점에서 맛을 논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거 알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마법 인형이 내가 버린 크래커를 치우기 위해 다가왔다. 나는 발을 조금 물려 그것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게다가, 내가 한 거 아냐.”

“차라리 모나한 교수한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소문을 믿겠다.”

“말도 안 돼! 그 사람은 마물에게만 끌리는 이상 성욕자라고!”

“의심할 나위 없이, 교수님은 나와 난생처음 만나는 트롤이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트롤을 구할 거야. 하지만 나의 기나긴 삶에서 그 어떤 가능성도 없었던 건 아니거든.”

카일 빌라드의 ‘기나긴 삶’이라… 카일은 그 단어를 평범하게 발음하지 않았다. 아마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십구 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었다.

“어떤 가능성이 있었는데?”

“제일 재밌는 경우를 말해 줄게. 딱 한 번이지만 스태포드 교수님이 ‘라나 모나한’이 된 적이 있었어.”

“미친! 대체 얼마나 ‘기나긴 삶’이었던 거야?”

나는 고블렛에 넘실거리는 포도 주스를 입술로 갈무리하느라 카일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주 쓸쓸하게 들렸다.

“알고 싶지 않을걸.”

내가 기억하는 5학년은 단 여섯 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완전히 무너졌었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수복된 상태라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맞서는 것 외에 도리가 없는 이상 강한 척, 단단한 척하는 것뿐이지.

카일은 아마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피츠시몬스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작은 조각이 되어 있을까. 나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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