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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30화 (30/178)

30화

많은 것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해석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답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지. 극심한 통증을 이겨 내기 위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는 것을 보고, 카일은 이를 갈며 내 머리를 감쌌다. 조금 전과 다르게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젠장, 아리엘, 무리하지 않아도 돼. 빌어먹을 □□□.”

그가 씹어뱉는 말의 일부는 약초학 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웅웅대는 소리로만 들렸다. 나는 작위적으로 몰려드는 졸음을 쫓으려고 힘을 줘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카일은 말하는 대신 그의 질문에 고갯짓으로 답해 달라고 했다. 나는 조금 흥분해서 크게 끄덕였다. 마침내 그 카일 빌라드가 자신의 새빨간 머리통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꺼내 보일 생각이 들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얘가 가진 다양한 비밀들은 우리 사이에 쌓인 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카일이 부탁했던 대로, 그가 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과학 교실에서 우리의 지정 좌석을 벗어나 나를 싫어하는 로즈마리 블로썸과 속닥거릴 때마다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우선… 네 시간은 졸업 연회를 기점으로 3월로 돌아가고 있어. 맞아?”

잠깐의 머뭇거림 후에 카일이 말했다. 나는 환희에 차 맹렬하게 끄덕였다. 역시, 얘도 나처럼 반복되는 5학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다음 질문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졸업 연회가 언제인지였다. ‘그러니까, 네가 갑자기 자퇴를 한 건 그것 때문이야?’ 카일이 덧붙였다. 내 고개는 이번에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하지만 자퇴를 했을 때가 최초로 시간이 돌아갔던 때는 아니었으므로, 잽싸게 가로로 젓는 동작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나는 답답해서 뻐끔거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이명이 뇌를 울렸다. 카일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뭐, 됐어. 대충 알 것 같으니까.”

마지막 질문을 꺼내기 전에 카일은 오래도록 망설였다.

나는 그가 반드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원하지 않는 대답이 나올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느꼈다.

카일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고 발치의 돌멩이처럼 바닥을 굴렀다.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눈은 꼭 감겨 있었는데, 흡사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간 괴물을 두려워하는 다섯 살배기 같은 모습이었다.

“혹시, 기억나는 게 있어? 켈란 일레스티아에 대해서 말이야….”

별안간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음률이 있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켈란이 왜?”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로즈마리 블로썸이 별관 뒷문의 계단참에 서 있었다. 윤기를 자랑하던 풍성한 금발을 마구 헝클어트린 채였다.

빽빽한 속눈썹 아래로 홉뜬 보라색 눈동자는 속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완벽하게 까만 동공이 나로 하여금 ‘마녀의 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나는 등줄기를 핥아 올리는 한기에 어깨를 조금 떨었다.

“또… 또 방해하려고?”

블로썸은 나를 똑바로 보며 중얼거렸다. 귀를 긁어 내리는, 유리 조각처럼 뾰족한 말투였다. “너랑은 상관없는 얘기야.”

카일이 황급히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내가 봤을 때 나는 블로썸의 밑도 끝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증오를 견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나는 결단코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리어 나의 연회 파트너를 뺏어간 것이 그녀이지 않았던가.

뭐라고 항변하려 했는데,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속박이었다.

“생각을 해 봤어. 생각을 해 봐, 봤다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으, 응?”

불가사의할 정도로 느릿하게, 블로썸이 계단을 밟아 내려왔다. 그녀의 안색은 지나치게 창백했고 말을 계속 더듬었다. 매우 불안정한 상태인 듯했다.

“근데, 모르겠어. 알고 싶지도 않아. 나는 □□을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야 해?”

“그만 해, 블로썸!”

“‘로즈’라고 부르랬잖아!”

그녀가 강박적으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바람을 타고 엄청난 굉음이 쏟아졌다. 맨드레이크의 비명을 수백 배는 키운 듯한 소리였다.

귀를 막으려고 했지만, 내 의지로는 불가능했다. 나는 고막을 찢어발기는 폭음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공기에 섞인 마나가 지면을 마구 때렸다. 그것들은 소용돌이 모양을 이루며 붕 떴다가 부스러지기를 반복했다. 세계가 블로썸의 분노에 공감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그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인 걸까?

“저, 전에 해 봤는데, □□□□ 하나 없어진다고 □□이 □□되지는 않더라고.”

“로즈마리 블로썸!”

아, 또 그 동작. 허공을 두드리는 블로썸의 손끝에 마나가 모여들었다가 확 흩어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자 카일이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 움찔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실에 묶인 인형처럼 부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블로썸. 아니, 로즈, 제발… 뭐 하려는 거야?”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네 보,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갑작스레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기나 했다.

“안 돼, 안 돼… 부탁이야, 그만둬. 뭐든지 할게. 뭐든지 할 테니까….”

카일의 손은 이제 내 목줄기에서 아주 조금만 떨어져 있었다. 그의 몸이 심각하게 떨렸고, 앙다문 잇새로 피가 비쳤다. ‘카일, 나 손수건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에드가 라모스가 가져가서 아직 안 돌려줬어. 그러니까 다치지 마.’ 하지만 혀끝이 너무 뻣뻣했다.

곧 지독한 고통을 동반하며 숨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카일은 내 목을 조르면서 흐느껴 울었다. 그의 눈물에서도 피 냄새가 났는데, 그것은 내 코가 아니라 심장에 즉시 스며들었다.

나는 버둥거리는 와중에도 기묘할 정도로 냉정하게 사고했다. 이제 블로썸이 케이틀린 대제가 말한 ‘주인공’이며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했다. 카일은 블로썸을 돕는 처지이고, 그녀에게 복종해야만 했다. 또 그는 나처럼 끄트머리가 이어진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그리, 고….

눈앞이 점멸했다. 더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야의 구석부터 빨간 그림자가 퍼졌다. 카일이 절규했다. ‘켈란 일레스티아를 고치는 방법을 알아!’ 내 의식이 완전히 침잠되기 전에, 문득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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