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사 달튼과 로한 달튼이 피츠시몬스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제일 용맹한 고양이 릴루도 함께였다. 분명히 온 가족이 총출동할 필요까지는 없고 그래 봤자 내가 부끄러워질 뿐이라고 말했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빠가 입은 장식이 과한 반팔 셔츠와 엄마가 쓴 챙이 넓은 모자를 보아하니 애초에 내 진로 상담이 목적이 아닌 것 같기는 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마법 자물쇠로 가득 채운 궤짝 두 개와 릴루를 건네고 험프리스 교수의 사무실로 갔다. 그러고는 어떠한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익히 예상하던 일이므로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연중 삼백 일이 흐린 달튼 영지에서 지내다 보니 여행할 기회만 생기면 결코 놓치지 않는 두 사람은 4월 초만 되면 득달같이 내려와서는 학부모 상담 주간이 끝나는 날까지 해가 나는 밀루아 남부를 만끽하곤 했다.
그러면 이제 청천벽력인 건 브리아나였다. 그녀에게는 고양이 공포증이 약하게 있었으므로, 불쌍한 릴루는 브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방에 있는 동안에는 내 이불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내게는 릴루를 최고로 아끼는 주인으로서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빌 때면 함께 피츠시몬스를 누비는 것으로 릴루를 달랬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귀여움을 뽐내는 것은 릴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광장에서는 브레넌과 카일의 마법 자물쇠 좌판이 아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손수 그린 알록달록한 간판 앞에 귀족으로서의 면을 세우기 위해 바리바리 챙겨온 쌈짓돈을 죄 털리게 생긴 1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카일이 그가 제일 잘하는 짓-말로 누군가의 혼을 쏙 빼놓는-을 하는 동안 브레넌은 얼렁뚱땅 벌린 손아귀에 물건을 쥐여 주고 금화를 강탈했는데, 감탄스러울 만큼 손발이 착착 맞았다.
“장사가 잘되시나 봐요?”
“아휴, 그럼요. 이게 다 누구 덕분이겠습니까.”
브레넌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수익이 제법 나온 모양이었다. 카일은 내 품에 릴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간판을 뒤집어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마법 자물쇠 : 악마 같은 레프러컨으로부터 용돈을 지키세요!’ 대신에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마법 자물쇠 : 5학년 카일 빌라드와 브레넌 스톡스에게 문의하세요!’라는 문구가 보이게끔 했다.
가까이 다가온 카일을 알아본 릴루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내려놓으니, 릴루는 잽싸게 카일에게로 달려가 머리통이며 몸뚱이를 부벼 댔다. 꼬리가 바짝 서 있었다.
“얘는 여전히 너보다 날 더 사랑하네.”
“좋겠다, 그래.”
“진작에 릴루한테 잘해 주지 그랬어.”
나는 릴루한테 충분히 잘해 줬다. 얘가 환장하는 간식만 챙겨 줬고, 팔이 빠져라 놀아 주곤 했으며, 혹시 안 좋은 인상이 남을까 봐서 청결 주문 한 번 내 손으로 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고양이 대회가 열리면 트로피는 따 놓은 당상인 릴루는 카일을 훨씬 따랐다.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카일이 리드미컬하게 엉덩이를 두드려 주자 릴루는 되게 마음에 든다는 듯이 가르릉거렸다. 그러는 동안 브레넌이 릴루의 발바닥을 만지려다가 무자비한 손톱에 손등을 내주고 말았다.
나는 아주 허탈해졌지만 브레넌의 손등이 너덜거리는 것을 보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릴루는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카일을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저기는 뭐야?”
좌판의 건너편에도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묻자, 카일도 브레넌도 아는 바가 없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발돋움을 하고 그쪽을 들여다보았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보이는 거라곤 색색의 뒤통수뿐이었다.
“업어 줄까, 꼬마 아리?”
“됐거든.”
카일이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다리를 굽히고 등짝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얄미운 등짝을 손바닥으로 한 대 치고 수금용 궤짝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누군가가 색색의 뒤통수를 가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대륙의 역사 교재에서나 봤던 케이틀린 대제가 거기에 있었다.
케이틀린 대제는 키가 훌쩍 컸고, 어깨가 딱 벌어져 있었으며, 자세가 매우 곧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살집이 있는 몸매였는데, 그것은 그녀를 혹독한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은퇴한 기사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녀는 교재나 신문에서처럼 치렁치렁한 예복을 걸치고 열서너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증오스러운 애덤 월시와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월시 후작은 신성 일레스티아에서 케이틀린 대제의 공공연한 정부로 취급받았으며, 애덤 월시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으므로 놀라울 것 없는 꼴이었다.
케이틀린 대제는 살아 있는 황제임에도 이례적으로 ‘대제’라 칭해질 만큼 화려한 위업을 달성한 인물이었다. 치료술을 가르치는 채프먼 교수는 매 수업 시간마다 그녀가 부상병 막사 한가운데서 신성력을 발휘하여 수백 명을 단번에 치료한 일화를 떠들었다.
전술학 수업에서는 그녀가 대륙 동부 통일 전쟁에서 사용하였던 기발한 전술을 찬양했고, 정치학 수업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교묘하게 정적들을 무력화해 왔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를 ‘대제’라 불러 마땅한 존재로 만든 전설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