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14화 (1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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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과학 교실에 카일이 없었다. 듣기로는 또 무슨 사고를 쳐서 험프리스 교수에게 불려 갔다는 모양이었다. 나도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 건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험프리스 교수 사무실로 가야 했으므로, 잘하면 얼굴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잠이 부족한 날에 마과학 교실 앞자리에 앉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나는 평소 앉던 자리를 한참 지나 교단 근처까지 갔다. 블로썸과, 아마도 다섯 살에 감탕나무에서 떨어졌던 적이 있을 미케일라 메이나드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일과 블로썸에게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커다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일이 말할 수 없다면, 블로썸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입으로 어떤 것이든 듣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자마자, 메이나드가 가자미눈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있지, 달튼. 로즈는 너 싫어해. 나도 그렇고.”

“헉, 왜?”

아연해져서 묻자 메이나드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손만 움직여 나를 쫓아냈다. 블로썸은 나와 메이나드가 있는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아직 휴스턴 교수가 도착하지 않은 교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엮이기 싫다는 태도였다.

물론 나라고 해서 블로썸이 사랑스러운 건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 그녀는 브라이스 나돈을 포함한 학생회 다섯 명이라는 강적 때문에 상처만을 남기고 실패로 끝날 것이 뻔한 소꿉친구의 로맨스 상대였고, 끝나지 않는 5학년과 관련된 중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접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블로썸에게도 그녀가 처한 상황이 달갑지 않다면. 내가 그녀의 소름끼치도록 공허한 눈에서 얼핏 엿본 것이 고통이 맞다면.

그녀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장인이 혼신을 다해 빚어놓은 도자기 예술품 같은 옆모습은 깨질 듯 아름다웠지만 유약이 발린 것처럼 희게 질려 있었고 단단했다. 꼭 다물린 입매가 퍽 고집스러워 보였다.

하는 수 없이 평소 앉던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걷는 걸음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간간이 라모스와 카일의 이름이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피츠시몬스 타임즈 얘기를 하는 듯했다.

나는 수업 내도록 공중에 마법 수식을 그리는 척하며 뭣도 모르고 떠들어 대는 모리스 스위니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휴스턴 교수는 두 번까지는 나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내가 끝까지 실수라고 우기며 그칠 생각을 하지 않자 이내 포기했다.

스위니는 그의 연약한 두피를 노린 공격이 정확히 다섯 번 가해졌을 때 입을 다물었다. 로즈마리 블로썸에게 거절당하고 곤두박질쳤던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험프리스 교수는 5학년 진로 상담 및 징계 담당으로, 마탑 출신 마법사답게 아주 꼬장꼬장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가장 높은 층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 본관 꼭대기에 사무실을 얻었는데, 그때문에 많은 장난꾸러기 학생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다.

본관 계단은 비교적 신식 건물인 별관에 비해 매우 가팔랐으므로 오르는 데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했다. 요새 건물은 층마다 공간이동 마법진 하나씩은 있다고 하던데. 대륙 전쟁 이전부터 유서가 깊은 피츠시몬스 아카데미에는 그런 걸 바라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험프리스 교수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라모스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음, 달튼, 잘 지냈지?”

“몇 시간 전에 봤으면서 무슨 ‘잘 지냈지’야?”

핀잔을 던졌더니 라모스는 어쩐지 안도한 듯했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나니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한결 덜리었다.

“다행이다. 화가 나지는 않은 것 같네.”

“내가 왜 너한테 화가 나?”

“피츠시몬스 타임즈 말이야. 기사가 그렇게 난 건 어느 정도 내 책임이잖아.”

“네가 낸 기사야?”

“당연히 아니지. 내 말은, 적어도 너랑 갇힌 게 켈란이었다면 그런 논조로 기사가 나지는 않았을 거 아냐.”

라모스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일 그가 아카데미 재직 십여 년 동안 은밀한 곳에서 누군가와 목격된 일이 없고 지루하리만큼 금욕적이기로 유명한 휴스턴 교수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와 80시간을 갇혀 있었다고 한들 아무도 우리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추문에 휩싸인 게 라모스 탓이라는 소리가 되지는 않았다. 나와 그리고 라모스는 명백한 피해자였다. 누군가의 탓을 한다면 그건 마누엘 클리블랜드와 배후의 애덤 월시 그리고 그 자식들의 주장대로 웃기지도 않는 기사를 써 제낀 신문부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말했더니 라모스는 꽤나 기뻐 보였다. 내가 생각보다 착한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조용해졌다.

“아무튼 시작의 달 연회에 같이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소문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라모스와 시작의 달 연회를 함께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라모스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다른 소원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해 줄게. 아기 그렘린 마니는 빼고.”

“생각해 볼게.”

애덤 월시의 온몸의 털을 태워 달라고 할까 했는데 타는 게 털만은 아닐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야 어느 쪽이든 딱히 상관없었지만 험프리스 교수의 사무실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얼마간 기다리자 안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한쪽은 내가 익히 아는 카일 빌라드였다. 안색이 상당히 밝은 걸 봐서 험프리스 교수를 찜 쪄 먹어 원하는 결과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은 레이디 에드워즈의 딸이자 피츠시몬스 타임즈의 취재 부장인 크리스타 에드워즈였다. 그녀는 뭔가 훔쳐 먹기라도 한 듯이 입을 꼭 가리고 있었는데, 나와 라모스를 마주치자 깜짝 놀라 작은 비명을 질렀다.

곧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뭐가 튀어나왔다. 잘 보니 그것은 무지개 색의 기다란 슬라임이었다.

슬라임은 혼비백산 도망치는 크리스타 에드워즈를 따라 꾸물꾸물 움직였다. 마치 그녀에게 무지개 색의 꼬리가 달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카일이 저질러 놓고 뻔뻔하게 굴 때의 표정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표정이기도 했다.

“꽤 하는데, 카일 빌라드.”

“아무렴, 아리엘 달튼.”

카일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교대하듯 험프리스 교수가 기다리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험프리스 교수는 카일에 이어 내가 등장하자 갑자기 약간 늙어 버린 듯했다.

그녀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험프리스 교수의 명예에 대한 열망만큼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달튼. 그리고 라모스.”

“네, 교수님.”

나는 내 목소리가 아주 선하게 들리기를 바랐다. 옆에 앉은 라모스가 웃음을 참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 시도는 실패인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월시 그 자식이….”

“마누엘 클리블랜드가 달튼에게 커닝엄 교수님께서 영원히 어질러진 옷장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며 가짜 열쇠를 주었습니다. 저는 달튼을 도우러 같이 갔고요. 들어가자마자 문이 잠기더군요.”

라모스가 재빨리 내 말을 끊고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달튼의 말에 따르면 마누엘 클리블랜드는 애덤 월시의 친구이고, 그의 요청에 따랐을 거라 합니다.”

“월시가 저에게 원한이 있거든요.”

“너에게 원한이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달튼.”

험프리스 교수가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콧잔등을 눌렀다. 나는 3학년 때 카일과 함께 그녀의 마법약 수업을 들었는데, 신체의 일부분을 키우는 약을 만들어 팔다가 제조용 솥을 터트린 전과가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약효가 다할 때까지 이마가 길게 늘어난 채로 있어야 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냐면 아직도 농담의 달 연회에서 당시의 험프리스 교수로 분장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라모스가 또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3학년 때 교수님의 이마를 늘려 놓은 일에 대해서는 지금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악마 같은 카일 빌라드의 속삭임만 아니었다면 교수님께 그런 폐를 끼칠 일은 없었을 텐데….”

“빌라드와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이제 라모스는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다. 험프리스 교수는 테이블에 놓인 종이에 마누엘 클리블랜드와 애덤 월시의 이름을 적고 있었으므로, 라모스가 그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주먹을 쥐어 라모스의 허벅지를 세게 때림으로써 웃지 않기 위한 그의 노력에 손을 빌려 주었다. 얼마나 효과가 좋았는지 라모스는 순식간에 정색을 했다.

“클리블랜드와 월시를 불러 보마.”

험프리스 교수의 말이 끝나자 들어올 때처럼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나는 몇 분 전보다 확연히 피곤해 보이는 험프리스 교수를 뒤로 하고 그녀의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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