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마침내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의 문이 열렸을 때 거기에 서 있던 것은 나의 룸메이트 브리아나와 학생회장인 일레스티아, 새끼 용 클레이의 주인인 스펜서 그리고 여자 기숙사 사감인 레이디 에드워즈였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시간외 근무 때문에 제법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라모스, 달튼.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면 이런 데 갇히는 거니?”
나와 라모스는 아주 답답해졌다. 우리가 갇힌 것은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었고 무슨 짓을 당해서였다. 필사적으로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니, 레이디 에드워즈는 그런 건 모르겠고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표정으로 자세한 사건의 정황은 나중에 묻겠다고 했다.
내가 마누엘 클리블랜드의 이름을 꺼냈을 때 브리아나는 작게 움찔거렸다. 똑똑한 그녀라면 그가 관련되었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충분히 알 것이었다.
브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월시는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아야 했다. 나는 그가 자신에게 매몰찬 전 여친에게 앙심을 품을 정도로 찌질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에 가둘 정도인 줄은 몰랐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돌아가는 길에 일레스티아가 다정하게 물었다. 기껏 괜찮다고 말하는데, 라모스가 친절하게도 가짜 열쇠를 만졌던 내 손바닥이 약간 빨갛고 부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일레스티아는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 손을 잡고 치료 주문을 걸었다. 나는 화끈거리는 감각이 가라앉자마자 그에게 감사를 전하고 아주 질색을 하는 브리아나의 팔짱을 꼈다.
밖은 어렴풋이 동이 트고 있었다. 대충 여덟 시간 정도 갇혀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 마과학 수업을 들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완만하게 굽어진 계단을 밟으며 아무 생각 없이 눈길을 던진 2층 복도 끄트머리쯤에 로즈마리 블로썸이 있었다. 밤이 새도록 줄곧 거기에 있었던 걸까? 카일이 귀띔해 준 무언가를 위하여?
우리가 있는 계단참이 갑자기 시끄러워졌기 때문인지, 멀리서 그녀와 시선이 맞았다. 최초의 졸업 연회에서 봤던 초점 없는 보라색 눈에 영문 모를 책망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구렁이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공포가 또다시 온몸을 마구 핥아 댔다.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우며, 문득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부분에 생각이 닿았다. 어쩌면 로즈마리 블로썸이 안고 있는 것은 나만큼, 혹은 나 이상의 괴로움이 아닐까. 어쩌면, 그녀는, 어떠한 절실한 이유로 인하여 이 끔찍한 시간의 타래를 계속 풀고 또 되감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부지불식간에 곯아떨어지기 전까지, 그 생각은 열 번쯤 고이 접혀 내 머릿속의 ‘가능성’ 상자에 들어갔다.
***
[A.달튼과 E.라모스의 잃어버린 여덟 시간…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꼭두새벽부터 엄청난 제보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나흘 전 피니건 거리에서 교직원과의 밀회가 목격된 나돈의 탕아 E.라모스가 이번에는 동급생과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에서 여덟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였죠.
여자 기숙사 사감인 레이디 에드워즈 측으로 급하게 취재팀을 파견하여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E.라모스는 형제인 B.나돈보다 더욱 파격적인 행보로 피츠시몬스에서 생긴 거의 모든 염문의 주인공이 되어 왔죠. 우리는 지금까지 그의 뜨거운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빛나는 금발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새롭기 때문에 더 끌렸을 수도 있겠지요. 미스 달튼의 칙칙한 갈색 머리와 깊은 청색의 눈동자가요!
그렇습니다. A.달튼입니다. 그녀가 바로 어젯밤에 E.라모스와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에 들어갔다가, 오늘 날이 밝고서야 나온 장본인입니다.
그야말로 놀랄 노 자입니다. 피츠시몬스의 모두가 그녀가 5학년 최고의 장난꾸러기이자 지금은 R.블로썸을 두고 B.나돈과 경합 중인 K.빌라드와 그렇고 그런 사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취재팀에 그녀가 최근 K.빌라드에게 차여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넌지시 밝혔습니다. 그래서 E.라모스에게 몸을 맡기게 된 것일까요.
(후략)
브리아나가 기껏 사 온 신문을 자기는 세 번을 정독해 놓고도 건네줄 생각을 않길래, 가까스로 빼앗아 보니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라 화도 나질 않았다.
“달튼, 괜찮아?”
내 눈치를 보며 브리가 물었다. 그녀의 볼과 이마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를 참고 있는 듯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난 아무렇지도 않아.”
“너에게 사과하라고 할게. 애덤도 그 정도는 이해할 거야. 맙소사,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알았으면 레이디 에드워즈까지 끌어들이진 않는 건데!”
애덤 월시가 정말 브리아나의 설득에 넘어가 나에게 사과하려 할까? 그건 아닐 것 같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브리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탓이었다.
피츠시몬스 타임즈가 바로 지난밤의 일에 대한 신속 보도가 가능했던 까닭은 아마도 제보를 한 자식이 나를 라모스와 실습용 마도구 보관실에 가둔 범인과 같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야말로 저열하기 짝이 없었다. 3년간 내 눈에 끼어 있던 콩깍지가 두꺼웠던 건지, 월시의 낯짝이 두꺼워서 본성을 잘 숨겼던 건지 헷갈렸다.
오늘은 수업이 없는 시간에 사정 청취를 받아야 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자 둬야 했다. 나는 그녀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브리를 달래고 침대에 몸을 실었다.
“잠깐만, 모슬리.”
내 부름에, 브리아나가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봤다.
“혹시 어렸을 때 나무에서 떨어진 적 있어?”
“아니?”
그건 왜 묻냐는 듯이 대답하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그냥 우연이었던 거야.
“미케일라 메이나드는 그런 적 있다고 하긴 하던데, 난 아냐.”
‘왜 로즈마리 블로썸하고 친하게 지내는 애 있잖아. 걔랑 대륙의 역사 과제 같이 하거든….’ 구구절절 말하는 브리아나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