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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달튼은 졸업이 하고 싶어서-8화 (8/178)

8화

“가 보지 않아도 돼?”

멀리서 블로썸의 테이블을 세팅하는 브라이스 나돈을 턱짓하며 물었다. 라모스는 형제의 그런 모습이 웃긴지 낄낄거리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고, 볼턴은 은근슬쩍 몸을 물려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스펜서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짐작하기 힘든 무표정이었다. 오늘도 그 엄청 조그마한 캐러멜을 먹었을까? 그게 아마도 내 것보다 두 배는 거대할 그의 간에 기별을 주긴 할까? 양호실에서 마주친 이후로 나는 스펜서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넌 원래 항상 저기서 먹었잖아.”

네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블로썸도 저기 있고. 뒷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다.

“네가 같이 밥 먹자고 했잖아.”

“아니, 그 말이 아니었어. 네가 잘못 알아들었을 뿐.”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일레스티아는 그린 듯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 안 믿는 눈치였다.

더 강하게 주장해 볼까 했는데,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나 들릴까 봐 그만두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거짓말 같았다. 피츠시몬스에서 일레스티아와 밥 한번 먹고자 하는 사람들을 줄을 세우면 모르긴 몰라도 본관 두 바퀴는 돌 거였다.

그러고 보면 신기했다. 일레스티아는 왜 하필 나와 점심을 먹기로 한 걸까? 에스코트까지 해 가면서.

“있지.”

사실 그런 거를 따지고 있을 여유는 별로 없었다. 일레스티아는 피츠시몬스 아카데미에서 같이 식사하기 어려운 사람 1위였고, 반복되는 나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안은 켈란 일레스티아가 아리엘 달튼에게 잘해 주는 이유 같은 게 아니었으므로.

“네가 읽고 있던 책 말이야… <패치 노트>. 엄청 특이하던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구나. 무지 너답네.”

일레스티아가 키득거렸다. 눈이 부시니까 제발 그만 좀 웃었으면 좋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그게 뭔지 몰라.”

“모른다고?”

“그냥…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읽고 있었어. 정확히는 읽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지.”

“도움? 뭐에?”

“내… 존재에?”

그게 뭐야. 영 탐탁지 않은 설명에 인상이 절로 쓰였다.

“너는 왜 궁금한데? <패치 노트> 말이야.”

일레스티아가 되물었다. 나는 그가 포크와 스푼으로 파스타 면을 돌돌 감아올리는 것(황족의 파스타 먹는 법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을 멍하니 보며 생각에 잠겼다. 글쎄.

거기에 내가 떨어진 지옥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 같아서. 일레스티아로 하여금 ‘애덤 윌리’를 기억하도록 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올 여름이 브리가 월시와 겪는 마지막 이별이었으면 좋겠고, 지금이 카일과 편치 못하게 지내는 마지막 순간이었으면 좋겠어서.

더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 존재에?”

“그게 뭐야.”

나는 생각만 했는데, 일레스티아는 말로 했다. 어쩐지 억울해졌다.

헤어지기 전에, 일레스티아는 나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패치 노트>의 해독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곧 있을 시작의 달 연회 준비 때문에 한참 정신없던 와중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가끔 주말이나 방과 후에 만나서 같이 봐주기만 하면 된단다. 정말로 만티코어의 발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어서, 우리의 전교 석차 사이에 대충 오십여 명이 있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일레스티아는 곧 스펜서를 통해 일정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일레스티아와 내가 약속을 잡는 것과 제이든 스펜서는 당최 무슨 상관인 걸까. 조금 궁금했지만 일레스티아가 그 말만을 남겨 놓고 바로 가 버렸기 때문에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무슨 예산안이 오늘까지 나와야 한다나.

***

아침을 일찍 맞이하는 브리아나에게는 밤도 빨리 찾아왔다. 열한 시는 브리에게 거의 새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나는 두세 시까지도 눈이 초롱초롱한 편이었다. 그래서 브리가 잠에 드는 열 시쯤부터 나는 주로 창가에서 초를 켜 두고 혼자 놀았다.

오늘의 놀거리는 우리 상단에서 요새 자주 들여오는 놀이용 마도구였다. 기하학적인 형상의 나무 고리 끄트머리에 조각된 와이번을 또 다른 고리에 조각된 둥지로 데려다주면 되었는데, 두 개의 고리가 기묘하게 걸려 있는 바람에 힘을 써서는 도무지 뭐가 되질 않았다.

한참을 끙끙대고 있으려니, 별안간 창 너머에서 ‘콕’ 하는 소리가 났다.

벌레 같은 것이 부딪쳤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내 도움 없이는 영원히 알을 품지 못할 슬픈 운명의 와이번에게 희망을 주려는데, 금방 또 같은 소리가 났다. ‘콕’ 하고.

벌레 떼가 부딪치는 거라면 침착하게 도로 닫고, 픽시들이 장난치는 거라면 장단을 맞춰 줄 요량으로 커튼을 걷었다가, 나는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카일, 너 미쳤어?”

“창문을 열어 주오, 당신의 기사가 왔소이다!”

맙소사, 그리폰에 오른 카일 빌라드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사육장에서 슬쩍 빼 두었다가 타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창을 아주 조금 열었다. 그리폰의 퍼덕거리는 날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후퍼 교수가 널 죽일 거다, 카일 빌라드.”

“그런 의미에서 죽기 전에 소원이 있는데 말이야.”

카일이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다른 손으로는 안장을 가리켰다. 거기 타라고? 그리폰의 날갯짓만큼이나 격한 도리질이 절로 나왔다.

나는 다섯 살에 나무에서 떨어진 이래로 계단보다 높은 곳은 올라가지 않겠다는 나만의 철칙을 십사 년 하고 사십육 개월이나 지켜 왔다.

“모슬리가 자고 있어, 저리 가!”

“네가 이리 오지 않으면 깨는 게 과연 모슬리뿐일까?”

“개자식. 넌 전생에 애덤 월시였을 거야.”

“월시 아직 살아 있거든.”

카일이 신나게 빈정거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창을 활짝 열고 창틀에 발을 걸친 다음 카일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벌벌 떨며 그리폰에 오르는 동안, 그는 나를 마과학 교실에서처럼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도대체 어딜 가려고 이러는 거야?”

“가 보면 알아. 깜짝 놀랄걸.”

난생처음으로 그리폰을 탄 감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좋았다. 발밑으로 보이는 피츠시몬스는 너무 작고 반짝거려서 오히려 공포감보단 아주 정교한 미니어처 인형 놀이 세트를 보는 듯한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능숙하게 고삐를 당기는 카일의 심장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는 것이 나의 등으로 느껴졌다. 어쩐지 내 심장 박동까지 빨라지는 기분이 들어, 발가락이 오므라졌다.

그리폰을 타고 날아 도착한 곳은 아카데미 외곽의 온실이었다. 약초학 수업 중에 아주 가끔, 스태포드 교수가 스스로의 성취를 자랑하고 싶어질 때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그녀가 목숨처럼 여기는 곳이기도 했다.

이름모를 풀로 뒤덮인 바닥에 나와 카일을 내려준 그리폰은 평소보다 큰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었는지 헥헥거렸다. 카일이 가방에서 커다란 말고기 육포를 꺼내 커다란 혀 위에 올렸다. 육포는 개구리가 먹이를 잡아채듯 잽싸게 사라졌다.

“그렇게 큰 육포는 처음 봐.”

“라일라는 위가 크니까, 어쩔 수 없지.”

“얘 이름이 라일라야?”

육포를 먹고 기분이 좋아진 라일라가 카일에게 머리를 비벼 왔다. 그 틈을 타서, 나는 그리폰의 손바닥만 한 날개깃을 만져 보았다. 아주 부드러웠다.

“뒷발에 젤리도 있다? 볼래?”

“볼래!”

카일이 라일라를 엎드리게 하고 뒷발을 들어 올렸다. 닿기만 해도 찢길 것처럼 날카로운 발톱 아래로 깜찍한 육구가 드러났다.

우리 집 고양이 릴루는 내 손이 자기 발 근처에만 가도 아주 생난리를 치는데, 라일라는 되게 얌전했다. 배은망덕한 릴루. 내가 얼마나 지극정성인데.

“릴루는 반성해야 돼.”

“걔가 좀 까칠하긴 하지. 참고로 우리 라일라는 얌전한 데다 똑똑하기까지 해. 주인 닮아서 그런가 봐.”

내가 묻지도 않은 라일라의 자랑을 줄줄 늘어놓다가, 카일은 가방을 뒤져 다른 것을 꺼냈다. 손가락 두 마디 반 정도 크기의 마도구였다.

카일은 그것을 손아귀에 말아 쥐고 온실의 입구로 향했다. 딱 봐도 복잡해 보이는 자물쇠가 네 개나 달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가 탄성이 있고 말랑거리는 소재로 된 마도구의 일부를 집어넣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는 기겁을 했다. 아카데미 내에서 락픽용 마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교칙 위반이었다.

“그런 건 어디서 났어?”

“아리엘, 넌 다 좋은데 가끔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 당연히 만든 거지.”

아하. 카일은 우리 학년에서 마법 회로 설계로는 알아주는 편이었다. 사실, 전 학년을 통틀어도 그랬다. 그 뛰어난 재능을 이딴 데나 쓸 줄 알아서 교수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스태포드 교수가 널 죽일 거다, 카일 빌라드.”

“죽을 일이 많네, 오늘.”

카일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들어와, 그럼 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시키고 싶어질 테니까.”

밀루아는 마법 그 자체와는 별로 연이 없는 나라였다. 대지에 축적된 마나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똑똑한 사람은 많아서, 적은 양의 마나를 증폭시켜 사용하는 마도구 시장의 규모가 컸고 그 질 또한 남달랐다.

즉, 나는 순수한 마나를 태워 사용하는 마법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밀루아와는 완전히 반대로 풍부한 마나량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나돈 출신의 켈리 라미레즈는 언젠가 여러 명의 마법사가 한꺼번에 주문을 외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엄청나게 환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광경이 이와 같을까. 살면서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리, 네 턱 여기 떨어진 것 같은데 주워 줄까?”

카일이 바닥을 가리키며 놀려 댔다. 나는 그런 그에게 핀잔을 줄 생각도 않고 그저 충격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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