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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259)화 (259/282)

<259화>

툭, 투둑.

자신과 이어지던 투명한 줄이 끊어졌다. 프리다 박사의 죽음을 예감한 카일라가 입술을 짓씹었다.

“……크윽. 기어이 프리다 박사가 먼저 갔구나.”

박사는 제법 쓸모가 많은 인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벨슈타인에 붙잡혔으니 차라리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 나았다.

입을 열면 광기에 차올라 죽는 피의 맹세를 했다만 벨슈타인 놈들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바꾸고 있었다.

‘실로 제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족속들이다.’

지금도 황실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지를 않나.

제국 귀족들 중에는 황실보다 벨슈타인을 더 위로 생각하는 것들도 있었다.

“눈엣가시 같은 것들!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그놈들을 먼저 보내고 갈 것이야!”

콰드득.

카일라는 형형한 갈색 눈을 부라리면서 손에 쥔 것을 마구잡이로 꽉 쥐었다.

길쭉한 손톱과 그녀의 괴물 같은 악력에 의해, 와인 잔이 깨지고 말았다.

블루 익스큐션까지 빼앗긴 마당에 어둠의 심장과 인형 군단에 대한 것까지 벨슈타인이 알아챈다면,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절대 알 수 없는 곳에서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시체들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어둠의 심장.

그동안 레이놀드의 추종자들에게서 빼앗은 마나와 신성력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크기를 불려 가고 있었다.

성스러운 천공의 섬, 그것에 기생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제 벨슈타인에 아스트리야의 땅이 닿는 날이면, 어둠의 심장에서 소환된 인형 군단이 피의 축제를 시작할 것이야! 쿡쿡쿡……. 건방진 벨슈타인 것들의 피로 물들일 것이다!”

광기에 찬 카일라의 형형한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벨슈타인을 집어삼킬 것처럼 시커멓게 물들었다. 이내 새 와인 잔에 든 붉은 액체를 들이켜며 혀를 날름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악마 그 자체였다.

과거 인간으로 살았던 카일라는 죽고 없었다. 블루 익스큐션에 깃들었던 악마로 인해 새로 잉태된 지금의 그녀야말로 악마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피의 피날레를 기대하며 카일라가 사악하게 웃었다.

* * *

방 안에 달이 뜬 것처럼 환하게 빛무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지팡이를 본 순간, 루시엘은 눈을 떼지 못했다. 마법 세공을 하기 전에도 이노센트 지팡이는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형태로 완성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음새와 세공의 마무리 역시 완성도가 높았다. 본래부터 이노센트 지팡이에 달 보석이 존재했던 것처럼 조화로웠다.

“과연 류프델의 솜씨야.”

게다가 애써 루시엘이 마나 페어링을 하지 않아도 이미 지팡이는 그녀와 연결되어 있었다.

손에 쥐어 보니 무게감이 거의 없었고 휘두를 때마다, 매번 다른 색의 빛을 뿜어냈다.

투명한 무지개색의 영롱한 달이 품고 있는 열두 가지 속성의 힘들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인 성과는 모든 속성의 마법들이 따로 수식을 외우거나, 익히지 않아도 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거였다.

마치 지팡이 안에 마법 지식의 두루마리라도 쌓인 듯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천재 대마법사라도 된 기분이야.”

심지어는 루시엘의 실력보다 더 상위 서클의 마법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구체화가 되었다.

“한번 해 볼까…….”

날씨를 조종하는 마법인 컨트롤 웨더(Control Weather).

루시엘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심장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마나에 집중했다. 일렁이는 마나의 파도가 이노센트 지팡이로 스르륵 흡수되었다.

파아아아아.

이내 이노센트 지팡이의 달 보석이 여러 색으로 물들더니, 투명한 보랏빛이 되었다.

그러자 화창하기만 하던 하늘이 점차 흐려지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구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키제프가 얼른 별궁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루시엘! 갑자기 비가…….”

루시엘은 반짝이는 지팡이를 빙그르 돌리면서 웃어 보였다. 넘치는 그녀의 마나와 그리고 신비하게 빛나는 이노센트 지팡이의 압도적인 기운에 키제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루시엘, 방금 네가 마법으로 날씨를 조종한 거였어?”

“응…… 열세 번째 보석의 힘이야. 이 안에 그동안 내가 만든 보석의 모든 힘이 들어 있어. 막 머릿속에 마법이 구체화 되어 그려져!”

지팡이의 신기함에 눈이 왕방울만 해진 루시엘이 쉴새 없이 말했다.

“……진짜 굉장하다. 네가 만들고 완성한 거야. 그 대단한 요정의 보석을.”

키제프가 루시엘의 손을 잡자, 그녀의 긴장과 설렘, 흥분으로 인한 떨림도 전해져 왔다.

루시엘은 고개를 저으며, 사르르 웃었다.

“나 혼자 완성해 낸 게 아닌걸. 모두가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내가 벨슈타인의 마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야.”

루시엘은 모든 게 시작된 그날을 떠올리며 가슴이 차르르 울리는 걸 느꼈다.

루시엘이 보석을 만들어 낼 수 있게 감정을 이끌어 준 것도, 보석의 힘을 발견하고 이렇게 마법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는 가족들과 사람들, 그리고 키제프가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친부모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많은 애정을 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귀여운 레오니까지 모두.

그 외에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모두가 만들어 준 기적인걸. 벨슈타인에 와서야 진짜 살아 있는 감정들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눈앞에는 루시엘밖에 모르는 아름다운 남자가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과거에는 분노로 물들어 세상을 처참히 무너트렸던 남자.

울부짖던 그가 지금은 밝게 웃고 있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어 루시엘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돌이켜보니까 나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싶어서. 고마워, 키제프. 언제나 나를 믿어 줘서. 네 말대로 너는 내 심장과 가장 가까이 연결된 사람이야.”

루시엘이 해맑게 웃으며 그의 뺨을 매만졌다. 키제프도 루시엘을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앞으로도 더 행복해질 거야. 빛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러니 우리 꼭 같이 곁에 있자.”

“응.”

둘은 꼭 안았다. 품에 느껴지는 포근하고 따뜻한 여운에 루시엘의 심장도 물결쳤다.

“우선은 이 지팡이에 대해 더 알아봐야지.”

“그래.”

키제프의 품에서 벗어난 루시엘이 지팡이를 다시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돌리며, 제 마나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루시엘의 압도적인 마나에 키제프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까도 느낀 부분이었지만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루시엘의 마나가…….’

키제프가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은 후로는 그가 지닌 드래곤 마나 때문에 다른 기운에 압도된 적이 거의 없었다.

공작과 길리아트를 제외하면 비등한 힘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달 보석을 세공한 지팡이를 얻은 루시엘의 마나는 더욱 순수하고 강하게 빛났다.

“네 마나가 더 강해진 것 같아.”

“……엇, 정말로?”

루시엘이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마나를 느끼려고 애를 썼다. 키제프가 간격을 살짝 벌리고는, 보랏빛 드래곤 마나를 내뿜었다.

그러고는 루시엘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응. 아무렇지도 않은데.”

루시엘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대답했다.

“역시. 내 드래곤 마나는 보통 인간이라면 버거워하는데. 넌 전혀 그렇지 않게 된 것 같아.”

“그치만 나 전부터 키제프의 힘이 버거운 적은 없었는데.”

“이전엔 내가 일부러 조절했어.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개방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니, 확실히 네가 더 특별해진 거지.”

키제프가 소파에 느른히 기대앉았다.

“……요정의 마나랑 드래곤의 마나는 상성이 좋은 게 아닐까?”

“그건 모르겠지만 너랑 나랑은 확실히 잘 맞지.”

키제프가 낮게 소리 내어 웃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물었다.

“근데 아까 그 마법, 컨트롤 웨더는 7서클 아냐?”

“맞아.”

“그건 정말 대마법사 수준인데…….”

키제프가 심각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루시엘이 얼른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 지금 위험한 상태일지도 몰라. 머릿속에 인페르노 같은 마법을 생각만 해도…….”

루시엘이 말하자 이내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뜨거운 불꽃이 천천히 구현되기 시작했다.

화르륵.

루시엘은 얼른 다른 생각을 해서 발동으로 연결되는 것을 취소해 버렸다.

“……봐, 이렇게 된다니까. 조심히 다루어야 해.”

키제프도 턱을 괸 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입은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네 지팡이는 꼭 초월자의 무기 같은걸.”

“그러게. 내가 이런 걸 써도 될까……. 어쩜 좋지?”

불안함에 진홍 눈을 굴리는 루시엘의 모습에 키제프가 웃으며 말했다.

“행복한 고민인데, 그거. 그냥 즐겨. 마법을 원 없이 할 수 있잖아.”

루시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법을 원 없이 한다는 것.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 이렇게까지 강한 힘을 얻게 될 줄은 몰랐어.’

보석에 품은 힘을 연구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르비아 백작과 카빌 후작가에서 당하기만 할 때, 레이놀드의 발밑에서 괴로워하던 그때부터 루시엘은 강해지기를 바랐다.

연약했기에 모든 걸 잃어버렸던 과거였다.

‘이제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값진 힘들을 마음껏 사용할 차례였다.

키제프가 북돋아 준 용기에 루시엘은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자유롭게 한번 마법을 구사해 보았다.

눈을 감고 바람을 보내 다친 누군가가 있는지 살폈다. 치유의 힘으로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그림자를 불러와 조종하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반투명화 시키고, 플라이보다 더 상위 마법인 레비테이션(Levitation)으로 안정적인 부유 마법을 할 수도 있었다.

키제프와 함께 마법을 이용해 공중으로 떠오른 루시엘은 손을 잡고, 별궁의 지붕에 걸터앉아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살랑이는 바람과 떠 가는 구름, 세상이 내 것 같았다. 기분이 최고였다.

파앗.

즐거움에 페리도트와 에메랄드가 허공에 맺혔다. 키제프가 그것을 얼른 붙잡으며 싱긋 웃었다.

“이제 나보다 더 강한 마법사님이 되었네. 루시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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