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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256)화 (256/282)

<256화>

벨슈타인의 지하 감옥.

심문관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사내가 바르작거렸다.

“대체 그 보라색 덩어리가 뭐냐고 물었다.”

“……으으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할 뿐이었다. 깨진 안경 너머로 실핏줄이 터진 동공은 공허했다.

퍼억!

한 대만 맞아도 술술 불던 크루거 백작과는 다르게, 프리다 박사는 오랜 고신에도 입을 꾹 다문 채였다.

벨슈타인은 이미 프리다 박사가 연구하고 만들었던 인형들과 인체 실험 등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정보를 죄다 뽑아 살핀 후였다.

하지만 발루크 상단 소유의 건물을 샅샅이 뒤져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프리다 박사의 최면 기억에서 빼낸 영상 중에, 그 쓰임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덩어리에 대한 기억이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라색의 덩어리는 살아 있는 것처럼, 숨 쉬고 있었다. 아주 기분 나쁘고 혐오스러운 생김새였다.

공작은 고문실에 들어와, 축 늘어진 프리다 박사를 살폈다.

“……아직도 입을 열지 않았나.”

“예.”

“최면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거라면, 이놈 머릿속에도 없단 이야기겠지.”

서늘한 붉은 눈이 구르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명했다.

“두 놈 다 처리해.”

“……알겠습니다.”

영상 속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지만, 지금은 단서가 없었다.

후우우.

시가를 베어 문 공작이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프리다 박사의 죽음을 지켜볼 무렵이었다.

그의 통신구가 빛을 냈다. 상대를 확인한 공작은 잠시 손을 들어, 심문관을 멈추게 했다. 그러곤 얼른 시가의 불을 끄고는 통신구를 받았다.

―아빠, 저예요.

“알지, 우리 딸.”

조금 전의 싸늘한 공작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몹시 온화했다. 이에 심문관은 물론, 목에 칼이 드리워진 채 의식이 불분명해진 프리다 박사 역시 공작에게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어디 계신 거예요? 너무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요.

“잠깐 지하에 있단다. 그의 머릿속에서 빼낸 영상 중 이상한 게 하나 발견됐는데, 프리다 박사와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박사를 힐끗 보며 공작이 답했다. 루시엘의 얼굴에도 호기심이 일어났다.

―이상한 거라고요? 저도 한번 봐도 될까요?

“네가 보기에는 흉측할 텐데…….”

루시엘이 보기에 몹시 징그러운 생김인 건 틀림없었다.

“그래, 우리 딸의 시각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 보여 줘야겠군.”

―지금 아스트리야에 있는데, 본성으로 이동할게요. 드릴 말이 아주 많아요.

“기다리지.”

루시엘과의 통신을 마친 공작이 프리다 박사 쪽을 서늘하게 보며, 말했다.

“처리는 조금 뒤로 하지.”

“예.”

그리 말한 공작은 기이한 덩어리를 비추고 있는 영상구를 들고, 층계를 올라갔다.

심문관이 널브러진 프리다 박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허, 네 놈, 운 좋아서 산 줄 알아라.”

뒤이어 휘둘러진 채찍질에 프리다 박사는 쏟아지는 고통을 참아 내며 이를 꽉 물었다.

“크윽……!”

죽음은 잠시 미루어졌을 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 * *

아스트리야에서 귀환한 루시엘은 공작의 집무실부터 찾았다.

“이거다.”

공작이 슥슥 그린 스케치를 받아 본 루시엘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비정형의 타원만이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 원 안에는 눈을 표시한 것인지, 점 두 개도 그려져 있었다.

루시엘은 자못 고심하다가 대답했다.

“……아빠, 동그라미 안에 눈이 달린 괴물이에요? 슬라임?”

“아니, 눈은 없는데. 네가 무서울까 봐 그린 눈이다만.”

그의 대답에 마도사와 보좌관들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모두 웃음을 참는 듯한 모양새에 공작이 습, 하고 경고하자 다시 얼어붙었다.

“……그냥 원래 모습을 살펴볼게요. 이래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을 거예요.”

루시엘의 요구에 마지못해 공작이 마도사가 들고 있던 영상구로 손을 뻗었다.

그걸 받아 본 루시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윽, 정말 기이하게 생겼네요. 이게 프리다 박사의 머릿속에 있었단 말이죠?”

“그렇단다.”

공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마치 괴물이나, 무언가의 신체 일부 같기도 해요. 내장 같은…….”

루시엘의 표정도 자못 어두워졌고, 공작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절대로 말을 안 한다면, 그만큼 중요한 것이겠지요? 둘 중 하나와는 확실히 관련이 깊을 것 같아요. 카일라와 인형.”

루시엘이 추측하며, 제르다를 떠올렸다.

“인형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 같은 인형사인 제르다씨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그게 좋겠군.”

루시엘은 통신구로 제르다와 통신을 연결했다. 제르다는 그걸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고, 결론을 내주었다.

―형이 인형을 제작하는 방식은 분명 악한 방법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이용하는. 저건 아마 희생자들의 피와 살을 재료로 만든 인형의 핵이 되는 심장 같습니다. 그가 제작한 모든 인형의 동력원 말입니다.

제르다의 말에 루시엘과 공작의 미간도 좁아졌다.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제르다의 추측만 들어도 아주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특히 카일라가 저 심장의 위치를 알게 된다면, 다른 음모를 꾸밀지도 몰랐다.

“정말 끔찍하네요. 잠깐만요. 그럼 저게 카일라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지 않을까요? 반드시 찾아서 없애야겠어요.”

루시엘의 말에는 공감했지만 공작도 답답했다.

“하지만 프리다 박사가 좀처럼 입을 열질 않더구나. 그래서 처리할까 하는데…….”

루시엘이 프리다 박사를 죽인다는 말에 공작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아빠. 제가 한번 그를 만나 볼게요. 그런 다음에도 소득이 없다면 처리하셔도 좋아요.”

루시엘의 제안에 공작은 승낙했다.

“그러려무나. 대신 안전하게 자르가 단장과 함께 들어가도록 해.”

“알겠어요.”

“참, 그건 그렇고 내게 해 줄 이야기가 아주 많다고 들었는데…….”

공작이 다정하게 루시엘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그의 집무실을 나와 가족들만 들어가는 소응접실로 이동한 루시엘은 그간의 일들을 알려 주었다.

새로운 보석을 어떻게 발견했고, 그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구나. 들어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

“다음에 아빠도 시간 여행 시켜 드릴 테니까, 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해 놓으셔야 해요. 아셨죠?”

“그러마. 루시엘 너는 정말 보물 같은 아이다.”

공작이 흐뭇하게 웃었고, 루시엘은 아스트리야의 추기경과 손을 잡은 일도 마저 이야기했다.

어느새 솔리아페와 이벨린까지 소응접실에 모여서 루시엘이 열세 번째 보석을 만든 일을 축하했다.

이벨린은 루시엘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안아 주었다.

“우리 루시엘, 언제 이리 컸을까. 그 조그맣던 아이가 정말 많은 것을 해냈구나.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았지. 아주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걸.”

이벨린의 따스하고 상냥한 말에 루시엘은 볼이 발그레해졌다.

또로롱.

루시엘의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다. 몹시 기뻐서 그만 에메랄드와 토파즈가 만들어졌다.

“그건 제가 벨슈타인에 왔기 때문일 이만큼 해낸 거예요. 가족들이 없었다면, 그 무수한 감정들도, 보석들도 전부 만들어 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벨린의 말에 솔리아페가 직접 우린 다즐링 홍차를 내오며, 싱그레 웃었다.

“루시엘, 너야말로 벨슈타인을 변하게 했어. 우리 모두를 말이야.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평화로운 그림은 없었을지도 몰라.”

루시엘도 조용히 미소 지었다. 솔리아페는 이제 누구보다 건강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녀가 죽고 벨슈타인 사람들이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이 무너지던 미래도, 행복이라곤 모른 채 고통스럽게 죽어 가던 제 미래도.

“한데 어째 허전하구나. 우리 루시엘 옆에는 키제프가 꼭 붙어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이벨린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그래, 황성의 유리온실 공사도 보류되었으니 잠시 귀환해도 될 텐데 말이다.”

두 사람의 말에 루시엘이 무화과 파이를 오물거리며 한 입 먹다가 말했다.

“아…… 실은 키제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어요.”

“부탁?”

“네, 황성의 장서관에서, 황실 보물에 대한 서적을 좀 찾아봐 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어쩌면 블루 익스큐션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한 게 있을지도 몰라요.”

루시엘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솔리아페가 말했다.

“꼼꼼하기도 해라. 그래, 키제프가 뭐라도 찾아냈으면 좋겠구나. 이제 신전 맞이가 열흘도 안 남았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그것들을 보내 버렸으면 좋겠구나.”

“그러게 말이다. 솔리아페. 그래야, 우리 애들이 마음 편히 지내지! 그놈들 때문에 우리 루시엘의 생일도 마음껏 준비하지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있지 않니! 아휴, 속상해.”

이벨린은 다른 부분에서 화가 난 듯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천사 같으세요. 너무 귀여우셔요.”

루시엘은 길리아트가 불렀던 그녀의 별명을 떠올리며 장난스레 말했다.

“어머머, 루시엘. 그이가 혹시 내 얘길 했니? 주책이라니까…….”

“앗, 아뇨. 그건 아니었어요.”

루시엘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말했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몹시 부끄러워하실 게 틀림없었다.

‘가족들과 있으니 계속 웃을 일만 생기는 것 같아.’

루시엘은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 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이 행복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어.’

루시엘은 뱃속까지 따뜻해지는 차를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엄마. 저 먼저 일어나 볼게요. 처리할 것이 있어요.”

루시엘이 일어나자 문득 멍하니 앉아있던 그 역시 몸을 일으켰다.

“프리다 박사에게 가 볼 참인가.”

“네, 아빠. 자르가 단장님을 호출해 주세요. 바로 그를 만나러 가겠어요.”

이윽고 자르가 단장과 함께 루시엘은 프리다 박사가 갇혀 있는 지하 감옥으로 들어갔다.

프리다 박사가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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