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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252)화 (252/282)

<252화>

한편 황성의 황자궁 빈터에서는 터 파기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인부들이 굴착 마도구를 이용해, 지하를 깊이 파내던 중 무언가가 턱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여,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인부 한 명이 소리쳤고, 가까이 가 본 자들은 굴착 마도구 사용을 주의하면서 조심조심 파기 시작했다.

현장의 중간 관리자가 곧장 갈리우스 백작과 키제프에게 보고했다. 키제프는 황제에게 이를 알렸다.

“폐하, 황자궁 터의 지하를 파다가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황실의 귀한 자산일 수 있으니, 저희 측에서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키제프의 말에 황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 그런 건물이 있다고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노이슈반이 자못 의아한 듯 턱 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황성의 옛 건물과 문헌, 역사 기록에도 지하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암암리에 만든 공간이리라.

아니면 보물이 숨겨진 비밀 공간이 더 있었던 건가?

황제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 가운데, 키제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해당 공간에 대한 황실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공사는 중단하겠습니다.”

“아아, 그래. 소공작 말대로 본 공사는 임시 중단하고 해당 공간은 황실에서 면밀하게 살펴보겠소. 공사는 추후 때가 되면 재개하도록 하지.”

만일 그곳에서 아주 중요한 황실의 물건이라도 나온다면, 벨슈타인에 굳이 알릴 필요는 없었다.

“예, 많은 시간이 소요되실 줄 압니다. 공사 재개까지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양해 고맙소.”

일에 차질이 생긴 탓에 키제프와 갈리우스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키제프는 루시엘의 말을 떠올렸다.

‘……증거가 발견된 후로는 우리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게 좋겠어. 자칫하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모든 건 뒤에서 몰래.’

이제 황성에서 조사하다 보면, 결국 황자의 죄임을 깨닫게 될 터였다.

루시엘의 말대로 벨슈타인은 한발 물러나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날 곧장 노이슈반 황제는 대신들을 불러서 황자궁의 빈터에서 발견된 건물 흔적에 대해 의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의에 참석한 대신들 중 일부는 벨슈타인 공작과 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황자를 몰아가기 쉽도록, 오래전부터 설계해 둔 터였다.

* * *

통신으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에리카는 루시엘의 깜짝 방문에 얼른 제 연구실 문을 열어 주었다.

“미안. 급한 일이라 이렇게 찾아왔어.”

“집이라고 생각해도 된다니까. 잠깐 침실에 누워서 쉬고 있어. 따뜻한 거 갖다 줄까?”

“고마워.”

에리카는 주억거리는 루시엘의 자그만 어깨에 자신의 가운을 걸쳐 주고는 연구실을 나가 에레스의 방문을 두드렸다.

“어이, 혈육. 루시엘 왔으니까 허브티 좀 가져다줘.”

“……루시엘이 갑자기 여긴 왜? 근데 차 심부름을 왜 나한테 시키냐.”

깜짝 놀란 에레스가 핀볼 게임기를 떨어뜨렸다.

“급한 용무. 잔말 말고, 가서 차나 타 와. 빨랑! 나는 연구 중이란 말이야.”

“……아오, 저 성격 파탄자. 연애는 도대체 어떻게 하나 모르겠어.”

에리카에게 등판을 맞고 나서야, 에레스가 움직였다.

그사이에 루시엘은 에리카의 마탑 내 연구실에 딸린 침실로 들어왔다. 예전에 루시엘이 사용하던 작은 침대와 인형까지 아직 그대로 있었다.

“내 침대 안 치웠네.”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자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새로운 보석을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면, 도대체 어떤 궁극의 보석이 나올까?’

도무지 예측이 되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비밀을 풀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루시엘이 맑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생각했다.

‘요정의 용광로로 만들어 낸 보석. 그 어떤 보석보다 강한 힘을 지녔을 거야.’

에레스가 홍차를 가져다주더니, 흘긋 루시엘의 상태를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들어와도 모르냐.”

“아, 에레스구나. 차 고마워. ”

“필요한 거 있으면 또 말해. 그리고, 웬만하면 마탑의 다른 층에는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너 왔다는 거 소문나면, 시끄러워지니까.”

마탑 내에 루시엘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고마워, 에레스.”

루시엘이 잔을 받아 홍차를 마셨다. 에레스도 조금쯤 철이 든 모양이었다. 마탑에 있을 때는, 이상한 벌레로 루시엘을 놀라게 하는 장난꾸러기였으니까.

에레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다들 별일 없는 거지? 길리아트 님이랑 키제프도 잘 지내고?”

“물론이지. 그간 벨슈타인 성에 안 와서 궁금했구나. 다음에 놀러와.”

“뭐, 초대해 주신다면 기꺼이. 마법 대련에서 널 이기는 건 포기했고 네 남편은 반드시 꼭 이겨 주겠다고 전해 주라.”

“……키제프도 안 될 텐데. 완전 강해졌어.”

“뭐야. 나도 강해졌거든?”

발끈한 에레스와 루시엘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에리카가 가운 포켓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들어왔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며 에레스를 쫓아냈다.

“이 자식. 루시엘 쉬게 해 주라니까 귀찮게 하고 있네.”

“와, 억울해. 홍차도 내가 갖다 줬다고!”

“그래, 그래. 잘했어. 인제 가.”

에리카가 동생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리더니 용돈을 쥐여 주곤 내보냈다.

에리카가 걱정스레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자수정의 비밀을 아직 못 풀었는데, 어쩌지? 물에도 넣어 보고, 얼려도 봤는데 변화가 없네.”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볼게.”

루시엘도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에리카에게 그저 맡겨 두기만 하고 고민을 제대로 해 보지 않았다.

그동안 보석의 힘을 발견했던 경험을 미루어 보면, 보석의 힘은 자신이 느낀 감정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질투와 동경, 선망. 자신도 상대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느끼는 감정들이야.”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에 루시엘이 에리카의 연구실 안을 살펴보았다.

“에리카 언니, 여긴 거울이 왜 없어?”

“응? 아 난 세수할 때만 보는데…….”

에리카가 머쓱해져선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거울은 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누군가가 되고 싶은 감정이 간절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문득 그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루시엘이 진홍빛 눈을 깜빡이면서 묻자, 에리카가 말했다.

“……난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아, 루시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 내가 너라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만 사랑할래!”

에리카가 루시엘을 와락 껴안았다. 그녀의 애정이 담긴 행동에 미소 짓던 루시엘도 똑똑하고 당당한 에리카가 항상 부러웠다.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은 적이 많았어.”

“나를……?”

“물론이지.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하고, 똑똑하고 완벽하니까.”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 그런 동경과 부러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기도 했다. 전생에서도 그녀의 능력은 부러울 만큼 대단했으니까.

루시엘은 에리카에게 애써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파아아.

또로롱, 또롱.

쉴 새 없이 바닥으로 자수정이 떨어져 내렸다.

“봐, 에리카 언니를 향한 내 선망의 마음은 거짓이 아닌걸.”

“루시엘, 흑. 감동받았어.”

맑게 웃는 루시엘의 고백에 에리카가 흐윽,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잠깐만 언니. 일단 거울에 이 자수정을 비춰 보자.”

루시엘은 만들어진 자수정을 하나 주워 들며 말했다.

함께 욕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보랏빛의 자수정을 거울 앞에 비춰 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거울 속의 자수정은 완전히 다른 보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아한 회색빛이 도는 다이아몬드였다.

블랙 다이아몬드.

오묘한 보석이었다.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는 듯한.

“뭐…… 뭐야. 거울에는 다이아몬드로 보이잖아?”

에리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거울 밖은 여전히 자수정이었다. 루시엘이 조용히 거울 속 블랙 다이아몬드로 손을 뻗었다. 거울에 손을 대자마자 물결처럼 잔잔히 일렁이며 이내 블랙 다이아몬드가 잡혔다.

원래 있던 자수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내가 뭘 본 거야?”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에리카를 보면서 루시엘이 말했다.

“이래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나 봐. 자수정의 진짜 모습이 거울 속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그러게 말이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가! 블랙 다이아몬드의 힘이 뭔지 알 것 같은데.”

“……나도 그래.”

루시엘이 고개를 주억이면서 거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블랙 다이아몬드를 손에 쥔 채로 눈을 감고 상상하면서 다시 거울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눈을 뜨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길 바라면서.

이내 눈을 뜨자, 거울 속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연갈색 머리카락과 보랏빛의 눈, 커다란 키를 가진 미녀.

바로 조금 전 루시엘이 상상한 클로디아 황녀였다.

“……! 루시엘, 맞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거야?”

“응, 언니. 나야, 루시엘.”

입을 채 다물지 못하며 놀라워하던 에리카를 보며 루시엘도 제 얼굴을 매만졌다. 가넷의 힘처럼 블랙 다이아몬드의 힘 역시 감쪽같았다.

하지만 거울 속을 다시 살펴보자, 원래 루시엘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변신한 후에는 거울을 다시 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야.”

“그런가 봐. 루시엘. 사용할 때 주의하는 게 좋겠다.”

둘은 나머지 가지고 있던 자수정도 전부 블랙 다이아몬드로 바꾸었다.

‘이 힘도 레이놀드와 카일라의 눈을 속이기에 유용한 무기가 될 것 같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둘까.’

드디어 자수정의 비밀을 풀었으니 어서 돌아가서 요정의 용광로에 넣어 볼 생각에 루시엘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열두 개의 보석을 모두 모아 완성될 열세 번째 보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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