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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228)화 (228/282)

<228화>

입학식은 간소했다.

마흔 명 정도의 신입생 아이들이 쪼로록 줄지어 담당 선생 앞에 서자 학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브랑카르 학술원은 신입생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여러분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가길 응원하겠습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레오니는 탐험 과목 선생님이 담당이라 만족하는 눈치였다. 키는 제법 크면서 맨 앞에 초롱이는 눈동자로 서 있었다.

이제 학원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가족들과는 난생처음 헤어지게 되었다. 힐끔 뒤돌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과 누나까지 가족들을 보던 레오니가 손을 흔들었다.

교복을 입고 한결 의젓해진 레오니를 보며 가족들도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벨슈타인 일가 전원이 함께 있는 모습은 황성의 무도회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라, 주변 학부모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베이지색으로 의상 컬러를 맞춘 그들은 누가 봐도 가족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선대부터 차기 공작까지 모두가 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 아이가 벨슈타인 공자와 같은 학원이라니…… 여기로 정하길 잘했어요.”

“그 무시무시한 벨슈타인 공작가 맞나요? 정말 화목해 보이는군.”

“당신은 언제 적 이야기야. 며느리가 들어온 후로 확 달라졌잖아요.”

귀족 부부의 말들이 오가며, 학원의 평가가 남몰래 올라가는 데에도 벨슈타인이 한몫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저 녀석 적성에 맞는 교육기관을 찾아 이제 한시름 덜었군.”

레오니를 멀리서 보던 공작의 입가에도 한결 여유로운 미소가 걸쳐졌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계속 신경 써 주어야 하는 건 똑같아. 애들은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깨달았어.”

솔리아페는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자신보다도 훌쩍 키가 커진 큰아들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저 아이는 많이 힘들었을 터였다.

그러곤 키제프 옆에서 맑게 웃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확실히 제 아들의 표정은 과거와 달리 밝아졌다.

‘그건 루시엘, 저 아이가 있기 때문일 거야.’

미소 짓는 솔리아페를 보며 길리아트가 며느리에게 슬쩍 말했다.

“얘 며늘아가, 우리 레오니는 그럼 이대로 아주 가는 것이냐? 선물을 아직 못 주었는데…….”

“아니에요, 아버님. 여기 행사 순서를 보니 가족들과 인사 시간을 다시 준다고 하네요.”

“다행이로군.”

이내 식이 끝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레오니에게 가족들은 선물들을 안겨 주었다.

길리아트는 공들여 준비한 선물 상자를 마법 소매에서 꺼냈다. 루시엘의 루비 보석과 류프델의 솜씨로 만들어진 화염 지팡이였다.

레드 드래곤을 새겨 아주 멋진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서 레오니는 보자마자 기분이 붕붕 날아오르는 모양이었다.

“레오니, 이건 할애비가 주는 선물이다. 네 성장에 따라서 이 지팡이가 달라지게 될 거란다. 학원 생활을 마칠 때쯤 얼마나 변화해 있을지 궁금하구나.”

“우와! 최강 마법사 지팡이처럼 생겼어요. 할아버지.”

길리아트는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마나 페어링을 도와주었다.

이벨린은 자꾸 악몽을 꾼다는 레오니에게 마법이 걸린 드림캐처를, 솔리아페는 호신용 로브를 선물했고 공작은 아이들용 통신구를 주었다.

“형은 모 없어?”

레오니가 키제프에게 손을 벌리자 그가 장난스럽게 동생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진심이 담긴 애정을 줄게.”

“필요 없어…….”

레오니가 가느다랗게 눈을 뜨며 외면하자 키제프는 드락카에서 가져온 수련의 돌을 주었다.

“너무하는군. 자, 진짜 선물은 이거야. 빨리 나를 따라오도록 해. 기다리고 있으니까.”

키제프가 내민 수련의 돌에는 따뜻한 기운이 흘렀고 불꽃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드락카의 고대 드래곤의 마력이 깃든 수련의 돌로, 이걸 만지면 가상의 화산이 있는 수련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키제프의 설명을 들은 레오니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돌을 깊숙이 챙겨 두곤 형에게 안겨 배시시 웃었다.

“사랑해, 형.”

“……이 녀석.”

형제를 지켜보던 루시엘도 레오니에게 입학 선물이 든 상자를 건넸다.

“이건 내 선물이야. 입학 축하해. 레오니.”

“이게 뭔데?”

“풀어 봐.”

초록색 리본을 풀자 보석으로 눈이 달린 새하얀 눈토끼 인형이 나왔다.

제르다의 마법 상점에 갔다가 새로 발견한 토끼 인형인데, 당근 가방에는 루시엘의 다이아몬드를 성수에 담가서 만든 작은 워터볼도 숨겨 놓았다.

“나 이제 다 커서 인형 필요 없어!”

흥 하고 레오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등에 멘 가죽 가방에는 루시엘이 주었던 까만 토끼 베니의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루시엘이 레오니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베니는 그렇지 않다는데?”

“……이, 일단 받아는 줄게.”

“조그만 선물도 있으니까 혼자 있을 때 잘 찾아봐.”

그러나 참지 못한 레오니는 금세 워터볼을 찾아내곤 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찾았다.”

“아프거나 지친 날에는 이걸 흔들어 봐. 치유될 거야.”

“으응…… 고마워. 형수님 최고.”

어느새 선생님들이 다시 신입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발그레하게 귓불을 붉힌 레오니가 뒤늦게 생각났는지,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루시엘의 손에게 꾸깃꾸깃한 종이를 넘겨주고는 두다다 가 버렸다.

“레오니의 편지인가?”

루시엘이 웃으면서 종이를 펼쳐 보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내린 편지가 적혀 있었다. 편지와 함께 레오니의 아기 영지 땅문서가 봉투에 들어 있었다.

본래 마법 두루마리에 봉인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풀어낸 모양이었다.

「루시엘 누나. 최강 영지 땅문서 줄게. 나 학원 졸업하고 나서 결혼할래…… 요?」

레오니의 편지를 읽어 내린 루시엘이 자랑하듯 키제프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봐. 레오니가 나한테 땅문서 줬어. 너무 웃기다……. 키제프?”

“요 녀석, 형수님한테 뭘 주는 건데…….”

뜻밖에 만난 내부의 적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키제프였다.

* * *

휘오오오.

북부 피네 설원, 얼음 제단의 입구는 여전히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 채였다.

모자를 벗으며 카일라 앞에 예를 갖춘 크루거 백작이 빙그레 웃었다.

“……카일라 님, 제 쪽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과연 백작이야. 빠릿빠릿해서 좋구나.”

크루거 백작의 뒤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주욱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와인 재배지에서 일꾼으로 일하는 이들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마검을 가져오기 위해서 기사 석상의 양팔 저울 위에 바칠 죄인들.

‘처형’ 의식을 위한 열두 명의 제물이었다.

감옥의 죄수들을 몰래 빼내는 일은 레이놀드 황자의 도움으로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그가 신성 지구로 추방된 이후 그 방법이 막혔다.

대신 부랑자를 조종해 죄를 저지르게 만들었다. 그건 은화 한 닢이면 간단했다. 재배지의 일꾼 중 한 여자가 말했다.

“여기는 어디지요? 우릴 일터로 다시 돌려보내 줘요.”

“조금만 참으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될 거다. 얌전히 있어.”

크루거 백작이 웃음을 거두곤 차갑게 말했다. 대충 새로운 일터에서 작업을 한다고 둘러대고 그들을 데려왔다.

어차피 소모품에 불과한 데다 연고지도 없는 죄인들이었기에 적당히 속여넘기면,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터였다.

그동안에도 크루거 백작은 늘상 거짓말을 일삼으며 그들의 노동력을 오랫동안 착취했다.

와인 재배지뿐만이 아니었다. 대형 유리 공예 작업장도, 가구를 만드는 작업장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다 박사의 인형도 있었지만, 발루크 상단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것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을 둘러본 카일라가 다가가 아까 나섰던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 얘야.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구나.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지. 후후.”

카일라가 낮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그에게 다정한 척 다가와 속삭였다.

“그렇지 않니?”

이내 그녀의 형형한 적갈색 눈동자가 빛을 내며, 잠시 검게 물들었다.

카일라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도 이내 까맣게 물들더니 순종했다.

“……감사합니다.”

“모두에게도 내 뜻을 잘 전해 주렴.”

여자는 얌전히 돌아갔고 나머지 사람들을 막아 냈다.

여자의 이름은 마야였다. 페넬로페가 오기 전에 카일라의 관심을 받던 아이였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꾼으로 전락했다.

그런 신세가 된 여자아이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페넬로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카일라는 뻐근해진 눈을 문질렀다. 힘을 완전히 되찾으면 더욱 강력한 ‘세뇌’를 쓸 수 있을 테지만 지금으로는 이것이 한계였다.

카일라가 눈동자를 굴렸다.

“프리다 박사가 늦는구나. 페넬로페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페넬로페.

열두 명의 제물 중 한 명은 반드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여야만 소울 이터의 힘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카일라는 신봉하고 있었다.

사실 페넬로페는 제물로 소모하기엔 퍽 아까운 아이였지만, 데리고 있던 붉은 머리의 아이들이 모두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고 말았으니 도리가 없었다.

이내 이동포탈을 타고서 프리다 박사가 페넬로페를 데리고 나타나자 카일라가 그리로 가며 반색했다.

“페넬로페, 간밤에는 푹 쉬었니?”

“어머니. 여기 너무 추워요.”

두꺼운 털 망토를 두르고 있었지만, 페넬로페는 아직 몸이 채 회복된 것이 아니었기에 추위라면 진저리가 났다.

“있어 보렴. 이거라도 두르거라.”

카일라가 어깨에 두른 숄을 풀어, 페넬로페에게 다정하게 둘러 주었다.

“감사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미소 지은 페넬로페가 무심코 주변을 돌아보다가 붉은 머리의 여자들이 몇 명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독 붉은 머리가 많네요?”

“우연의 일치구나. 자, 이제 모두 도착했으니 검을 탈환하러 가야지.”

카일라가 페넬로페의 주의를 돌리며 어깨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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