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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194)화 (194/282)

<194화>

갈팡질팡하는 루시엘을 내려다보던 키제프의 심장도 두근거렸다.

“마음의 결정은 내렸나?”

“…….”

“이러다 하루 종일 고민하겠다.”

“아니야.”

루시엘이 고개를 붕붕 젓자, 키제프가 피식 웃었다가 자못 심각해진 얼굴이 되었다.

아직도 루시엘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5년이나 기다렸으면 많이 기다렸잖아.

‘얼마나 나를 더 안달 나게 만들 건데?’

키제프가 루시엘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받고 싶은 거 있어.”

“……뭔데?”

“5년 전 내 고백에 대한 대답. 아니면…… 행동으로 해도 좋은데.”

키제프의 귓불이 새빨개지며 눈빛이 타올랐다. 점점 그의 상체가 루시엘을 향해 다가왔다.

“자…… 잠깐만.”

당황한 루시엘이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행동으로 보여 줘? 그게 뭔데?”

“……그, 그게.”

키제프가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그런데도 루시엘은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술 톡톡? 입술 만져 달라고?”

“……아니.”

키제프가 옅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 정도 알려 주면 보통은 알지 않나?’

아무래도 그의 어린 아내는 알려 줘야 할 것이 한참 남아 있는 듯했다.

드락카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주워들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입맞춤은 짜릿하고 달콤해서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그랬다.

하지만 단순히 남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가 아니었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상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니까.’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 와중에도 토끼 같은 루시엘은 눈만 댕구르르 굴리고 있었다.

‘순진한 애한테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괜스레 그런 죄책감이 들면서도 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몸을 하루 종일 껴안고 싶고, 뽀얀 얼굴에 당장 뽀뽀하고 싶다.

쿵쿵쿵.

죄지은 사람처럼 혼자서 얼굴이 붉어진 키제프가 고개를 숙일 때쯤, 루시엘이 말간 얼굴을 들이밀며 다가왔다.

“……무슨 생각 하는데?”

“어? 아니, 아무것도.”

“나 결정했어. 뭐 해 줄지.”

루시엘이 말갛게 웃으면서 그를 향해 말했다.

“저거 터트려 주는 순간에 해 줄게. 하나둘셋 하면 터트려 줘. 꽃비가 살랑살랑 떨어지면 너무 예쁘겠다.”

루시엘이 열매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여기 앉자.”

키제프가 벤치를 가리켰다.

“응.”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하나, 둘, 셋을 외쳤다.

슈우!

키제프는 매직 애로우를 날려 열매의 반을 갈랐다. 로맨틱하게 살랑살랑 휘날리는 꽃송이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펑, 펑! 퍼엉!

우수수수!

“헉. 이…… 이게 다 뭐야?”

깜짝 놀란 루시엘이 외쳤고, 키제프의 미간도 일그러졌다.

‘망했다.’

“……어떻게 된 거지?”

하얗고 분홍빛의 작은 꽃들이 끊임없이 펑펑 쏟아져 내리더니, 어느새 두 사람이 앉은 벤치까지 꽃잎이 수북하게 쌓여 버렸다.

주변이 온통 둥글게 동산을 이루었다.

“아…… 원래 이만큼 많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니야?”

“어…… 뭐가 잘못됐나.”

키제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만 예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루시엘은 기분이 좋았다.

“예쁘기만 한데. 근데 이거 내가 한 거 같아. 보석을 같이 심었거든. 미안…….”

그 말에 키제프가 고개를 들자, 루시엘이 벤치에서 일어나서 옆으로 푹 쓰러졌다.

꽃들 덕분에 푹신푹신했다. 루시엘은 수영하듯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움직였다.

“이거 봐. 수영해도 되겠다. 그치?”

“그렇네. 네 보석 때문이었다면 납득이 가네.”

“키제프도 여기 누워 봐.”

편안하게 누워서 놀고 있는 루시엘의 머리 위로 키제프가 짓궂게 꽃을 한 움큼 집어서 뿌려 주었다.

“바보에게 내리는 벌이야.”

“아잇, 간지러!”

루시엘도 고개를 붕붕 저어서 털어 냈지만 꽃이 여기저기 달라붙었다. 지지 않고 꽃을 뿌렸지만 키가 큰 키제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루시엘이 장난스레 주문을 외웠다.

“슬리프!”

“어어……? 뭐 하는.”

휘청거리던 키제프가 앞으로 넘어져선 루시엘을 그대로 덮쳤다.

“으아! 안 돼!”

“야, 정말 다칠 뻔했잖…….”

충돌해서 크게 다칠 줄 알고 루시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도 키제프가 팔로 꽃이 깔린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둘이 포개져 몸이 맞닿은 건 피할 수 없었다.

사과처럼 얼굴이 빨갛게 물든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근두근, 쿵쿵!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만큼 뜨겁고 세찬 심장 박동이었다.

‘뭐야. 이렇게 뛰다가는 터져서 죽는 거 아니야?’

루시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키제프도 숨을 몰아쉬었다.

“…….”

그녀가 뭘 줄지 기다리다가 심장이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더는 못 기다리겠어.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챈 루시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른 채 몸을 살짝 일으켰다.

분명히 자신도 자각한 분홍빛 마음.

‘나도 키제프, 너를 좋아해.’

루시엘이 눈을 감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두근두근. 쿵쾅대는 심장이 날뛰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내가 주려던 거 이거야.”

루시엘이 멋쩍은 듯 그렇게 말하며 떨어져 꽃 위로 풀썩 다시 머리를 댔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키제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루시엘이 먼저 허락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키제프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폭발할 것 같은 심장의 설렘에 당황한 루시엘이 꽃을 집어서 그의 입술에 대 버렸다.

‘지금 더 다가오면 두근거림이 너무 커져서 큰일 날 것 같단 말이야.’

루시엘이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파아앗, 그녀의 심장으로 모인 거대한 마나도 이윽고 페리도트와 스피넬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힐긋 뜬 키제프가 그녀를 보면서 꽃을 잡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싫으면 거절해 줘.”

묘한 눈빛, 나른하게 잠긴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쿵쿵.

쉼 없이 뛰는 심장.

키제프의 붉은 입술이 루시엘을 저격하듯 아찔하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루시엘도 피할 수 없었다.

떨림 끝에 맞닿은 입술의 감촉은 꽃잎보다 부드러웠다. 살포시 닿았다가 떨어져 루시엘이 안도한 순간 키제프의 입술이 다시 도장을 찍듯 꾹 눌렀다.

가슴 깊이 피어오르는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어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 좋아해, 루시엘.”

아니, 사실은 그 이상의 감정이지만 여기서 그 말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또로롱.

루시엘도 멍한 얼굴로 떨어지는 보석을 바라보았다. 꽃 위로 떨어진 스피넬들 사이로 붉게 생성된 하트 모양의 보석.

‘……하트 모양 보석도 있었나?’

키제프가 추측하며, 조심스럽게 루시엘의 반응을 살폈다. 루시엘도 그의 눈을 오래도록 담으면서 긴장했던 게 풀렸는지 말했다.

“나 떨려서 죽을 뻔했어.”

“그건 내가 더할걸?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나도 심장이 마구 뛰었는걸. 아직도 쿵쿵거려.”

루시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싫었다면 이렇게 함께 있을 리가 없었다.

루시엘이 배시시 웃으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옆으로 좀 가 봐. 너 너무 커져서 무거워.”

루시엘이 민망해져선 그리 말했다.

“첫 키스도 했는데 이러기야?”

키스라기엔 뽀뽀에 가까웠지만.

키제프에겐 한참 부족하지만 루시엘이 너무 부끄러워하니 그쯤에서 물러나며 그녀의 말랑한 볼을 만지다가 그는 어기적 일어났다.

자그맣고 여린 몸을 일으켜 주고 나서 키제프는 다시 루시엘을 폭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나 진짜 미쳤나 봐.”

쿵쿵쿵, 그의 열띤 심장이 뛰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루시엘은 가만히 손을 들어서 그의 심장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키제프.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어떡해, 다이아몬드라도 대줄까?”

“아니. 난 너만 있음 돼.”

키제프가 루시엘을 품에 안은 채, 조금 전의 입맞춤을 다시 떠올렸다.

짧지만 잊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키스였다. 심장에 아로새겨진 느낌을 기억의 페이지에 기록할 수 있다면, 이 페이지에 항상 머물고 싶을 만큼.

아직도 입술과 온몸이 뜨거웠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시선에 루시엘이 아까 만든 하트 모양 보석이 다시 잡혔다.

“루시엘, 근데 이 보석은 어떤 거야?”

“그건 나도 뭔지 모르겠어. 궁금해.”

“아까…… 만들어진 거 같은데.”

키제프가 눈을 내리깔며 쑥쓰럽게 말하자, 루시엘이 말했다.

“아니야, 전에도 만들었어!”

“언젠데?”

그가 집요하게 묻자 루시엘이 분홍빛으로 물든 얼굴로 답했다.

“……그건 널 떠올리면서 만든 것 같아.”

키제프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더 자세히 말해 봐.”

“너가 제발 무사히 마지막 시련을 이겨 내고 돌아오길 바랐어. 보고 싶고 그립고 걱정되어서. 그리움이 커졌나 봐.”

루시엘이 자신을 깊이 생각했다는 말에 키제프가 입매를 올렸다.

“나에 대한 마음이 커져서 진심으로 하트를 느꼈나.”

그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루시엘이 발끈해 외쳤다.

“바보야, 입으로 해석하지 마.”

“……내 아내가 너무 부끄럼쟁이라.”

키제프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재회 첫날이니, 이 정도도 그로서는 쾌거였다. 앞으로 함께할 날들은 많으니까, 루시엘의 마음을 확인할 시간도 많을 터였다.

한편 곰곰이 생각하던 루시엘이 말했다. 그동안 키제프에게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 주지 않았구나.

그런데도 그는 항상 루시엘만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키제프, 널 기다리는 동안 나도 너무 힘들었어. 네가 항상 내 곁에 있어서 잘 몰랐나 봐.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내게 아주 힘이 된다는 걸. 어느새 너 없는 날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워졌다는 걸.”

“……루시엘.”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에 키제프의 마음도 벅찬 감동이 가득 채워졌다.

“키제프, 나도 널 좋아해.”

드디어 듣게 된 그 말에 흐무러진 입가를 다물지 못한 키제프가 답했다.

“아직 내 마음을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표현해 줘서 고마워.”

키제프가 루시엘의 손등에 깊이 입 맞췄다.

사랑에 관해서는 무지한 루시엘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었으니까.

“근데 키제프. 가족들은 아직 아무도 안 만났지?”

“당연하지. 네가 우선이니까.”

“앗, 그 말 들으면 다들 서운해하실 거야.”

“……딱히 그렇지는.”

아웅다웅하면서 두 사람은 온실 정원 가득한 꽃잎들을 클린 마법으로 치우기 시작하는데 파아앗, 하고 이동포탈이 생겼다.

냉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공작이 말했다.

“귀환하자마자 루시엘을 독차지하다니…….”

“루시엘은 제 아내입니다, 아버지.”

뒤이어 다른 포탈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어, 형. ……왔어? 여긴 나와 형수님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인데!”

“요 귀여운 녀석들, 여기에서 재회를 나눈 모양이군. 둘 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간데.”

레오니에 이어서 길리아트까지 나타나 그리 말했다. 키제프의 예상대로 가족들은 별로 서운해하는 것 같지 않아 루시엘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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