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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157)화 (157/282)

<157화>

제르다의 마법 장난감 상점은 과연 어린이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했다. 입구부터가 사자의 입 모양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마치 동굴을 탐험하듯 무지개색 터널 내부는 온통 반짝거렸다.

“재밌어!”

“그쵸, 루시엘?”

짜릿함을 느낀 클로디아와 루시엘이 웃으며 말했다. 키제프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모양인지 나직이 불만을 내뱉었다.

“입구가 일반적이지 않군.”

일 년에 오픈하는 시즌이 정해져 있는 이곳은 평소대로라면, 손님을 받지 않지만 클로디아 황녀와 벨슈타인 가문은 예외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모든 장난감이 움직이고 있었다.

공중에는 날아다니는 나비와 새, 물고기 모빌, 풍선들이, 바닥에는 목마와 동물 인형들이 마치 생명을 불어넣은 듯 저 혼자서 움직였다.

심지어 커다란 배와 마차마저도 소릴 냈고, 인형의 집들이 있는 숲속 마을에는 자그만 토끼, 다람쥐, 고양이, 강아지 얼굴을 한 인형들이 돌아다녔다.

루시엘은 래빗 성의 인형들이 생각나 무릎을 굽히면서 그 안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귀여워.”

그때 어디선가 아장아장 걸어온 삼 등신의 커다란 백곰 인형이 루시엘의 다리를 꼭 껴안았다.

새까만 눈코입이 귀여웠다. 루시엘은 몽실몽실한 인형을 들어서 안아 보았다. 따뜻하고 포근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안녕.”

루시엘의 말에 백곰 인형이 고개를 까딱하고는 말없이 또 안아 주었다.

“어머, 윌슨의 포옹을 받았네요. 허그 베어라는 인형인데 주인을 껴안아서 위로해 준대요.”

“‘고민하는 곰 인형’이랑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는 인형이네요.”

루시엘은 클로디아의 우울증 양성 사업의 아이디어였던 곰 인형을 떠올렸다.

“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그나저나 제르다 씨는 어디에……. 거기 있었군요.”

호리호리한 남자가 다가왔다. 비대칭의 긴 보라색 단발머리에 푸른 눈, 묘하게 고양이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어쩐지 쇼를 하는 마술사 같은 반짝이는 소재의 보라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윌슨은 그 애들보다 초기에 제작된 아이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품어 주는 아빠 같은 인형이랄까. 그래서 별명도 허그 베어입니다.”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던 키제프도 주인 제르다가 나타나자, 그쪽을 힐끔 보았다.

“벨슈타인 공작가의 자제분들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제르다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군요.”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제르다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루시엘이에요. 래빗 성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에요.”

제르다가 루시엘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난감들을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윌슨을 마주 안아 주시는 모습에서 그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상냥한 꼬마 숙녀님.”

곁에서 보고 있던 클로디아도 거들었다.

“제르다 씨는 장난감을 소중히 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유독 친절하시군요.”

“그거야 장난감을 제작하는 입장으로써 당연합니다. 제 자식 같은 아이들이 입양 가서도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그가 싱그레 웃었다.

“그렇구나. 멋진 생각이에요.”

루시엘의 품에 있던 윌슨이 키제프에게도 안기려고 팔을 벌렸다. 루시엘이 윌슨을 키제프의 어깨에 올려 주자, 꼬물꼬물 움직이던 인형이 키제프를 더 큰 움직임으로 꽉 끌어안아 주었다. 동그랗고 짧다란 팔로 토닥토닥도 해 주었다.

“…….”

“키제프는 더 큰 위로가 필요한가 봐.”

키제프는 인형의 위로를 받으면서 제르다에게 물었다.

“이 장난감들은 마정석을 동력으로 하는 겁니까?”

“일부는 그렇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제작한 마법 인형들은 살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마음이 들어 있지요.”

“원리는 같다는 거군.”

“동심이 부족하신 공자님이로군요.”

“동심이 필요할 나이는 지났는데…….”

“윌슨은 그렇지 않다고 하네요.”

인형의 토닥거림을 받으면서 그리 말하는 걸 보니, 루시엘도 동의할 수 없었다.

키제프가 아무리 어른인 척 굴어도 아직 애인 건 맞으니까. 한번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던 루시엘보다도 성숙한 듯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제르다 씨. ‘고민하는 곰 인형’ 수량이 아주 많이 부족하거든요.”

클로디아의 재촉에 제르다가 잠시 난처해진 얼굴로 말했다.

“음, 얼마나 더 필요하신 겁니까?”

“삼십 개 정도 더요.”

“그건 무리입니다.”

그의 단호한 말에 클로디아가 다시금 고민스러운 얼굴로 사정하듯 말했다.

“그, 그럼 스물다섯? 우울증 치료 양성사의 도우미로 곰 인형들을 쓸 계획이에요. 수도 고아원에도 보내 줄 계획이고요. 제작 기일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황녀님, 재차 말씀드리지만 완성하기까지 한 아이당 적어도 한 달은 걸립니다. 제가 빨리 만들고 싶어도 아이들의 마음과 저의 마나를 연결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리죠. 솜 하나하나, 헝겊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 넣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작은 아이들일수록 제작이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으으음, 조금 더 빨리는 안 될까요?”

“더 빨리 만들면 아이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클로디아의 조급한 마음도 이해는 갔지만, 인형을 제작하는 제르다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루시엘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인형을 제작하는 다른 장인을 고용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국에서 저만 한 실력을 가진 사람은…… 못 본 것 같습니다.”

자신감에 가득 찬 그의 말에 루시엘이 말했다.

“클로디아 황녀님, 수량을 더 줄이거나 천천히 진행할 수는 없어요?”

“……그것도 곤란해요. 올해 안에는 시범으로 치료소를 운영할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조사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에게는 낯선 상담사보다 귀여운 인형이 더 위로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상냥한 클로디아 황녀님.”

“그럼 작은 인형은 제작이 오래 걸리니까 대신 이 큰 녀석을 제작하는 게 효율이 더 나은 것 아닙니까.”

키제프가 윌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아이는 제작하는 데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합니다. 마정석 소비를 줄이려면 작은 인형을 만들어야 하고요.”

그러자 루시엘이 해결책을 찾았다는 듯 방긋 웃었다.

“음…… 마정석 문제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 전에 비밀 유지 조항을 넣은 계약을 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서류는 준비가 되면 제 쪽에서 사람을 보낼게요.”

루시엘의 말에 클로디아가 감탄했다.

“오, 벨슈타인에서는 최상급의 마정석을 생산한다더니 사실인가 보군요.”

클로디아의 그 말에 루시엘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클로디아 황녀님께는 죄송하지만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우우, 알겠어요. 나도 보고 싶은데.”

클로디아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고, 제르다는 아직 루시엘의 말이 쉬이 와닿지 않아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말씀만 듣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루시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고 계약한 후에 보석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벌써 보여 주기는 곤란한데, 하고 루시엘이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그게 있었지.’

에바가 준, 진실만을 쓸 수 있는 깃펜. 그게 지금 루시엘의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제르다 씨, 잠시만 저쪽에서 볼까요?”

“예.”

제르다와 장소를 옮긴 루시엘은 가방에서 깃펜을 꺼내 제르다에게 건넸다. 노트도 한 장 찢어서.

“이 펜으로 이렇게 적으세요.”

“…….”

종이와 깃펜을 건네받은 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지금부터 보게 된 물건에 대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각사각. 그가 휘갈기듯 종이에 적었다.

루시엘은 그가 다 적은 걸 보고는 이어서 말했다.

“어길 경우, ‘고민하는 곰 인형’ 백 개를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예에?”

“이 정도 제약은 걸어 두어야 안심이 되어서요.”

루시엘은 순간 이 조건까지는 너무했나 싶었지만, 끝내 수정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어서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용을 마저 적었다.

루시엘은 가방 주머니에서 꺼낸 토파즈 하나를 건넸다. 예상했던 마정석이 아닌 보석을 받게 되자 제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마정석이 아닌데.”

“쉿, 마력만 확인해 보고 돌려 주세요.”

“그냥 보석이 아닙니까?”

“일단 절 믿고 확인해 보세요.”

루시엘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어서 제르다가 의문을 지우고는 마도구로 마력을 측정했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재주는 좋았지만 몸에 지닌 마력이 낮아 항상 인형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법 인형사로서 그에게 마나는 인형을 만드는 연료와도 같은 것.

하지만 줄곧 최상급의 마정석을 사서 쓰는데도 인형을 만들 때마다 마나를 금방 소진하고 말았다.

물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면 정성이 더 들어가긴 했지만, 그만큼 지치기도 했다.

인형 제작에 집중하는 시간 내내 계속 다량의 마나가 필요했기에 힘이 달리면 중단이 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계속해서 마나의 부족함 없이 인형 제작에 오로지 충실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냥 빛나는 보석처럼 보이는 것이 이처럼 커다란 마력을 품고 있다니 놀라웠다.

도대체 얼마큼의 가치를 지닌지알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툭. 데구르르.

놀라서 보석을 떨어뜨린 그가 말을 채 잇지 못하자, 루시엘이 보석을 대신 주웠다.

“……어떠세요, 거래를 하시겠어요?”

“예, 하지만 이 정도로 높은 마력을 지닌 마정석은……. 얼마를 원하십니까?”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거래해도 될까요?”

루시엘이 눈을 빛냈다.

‘탐나는 솜씨야.’

제르다의 장난감을 만드는 솜씨라면, 루시엘도 그와 단순히 보석을 거래하는 데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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