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153)화 (153/282)

<153화>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거로 할게요.”

페넬로페가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는 생긋 웃었다. 사람들이 웃음기 없이 박수 쳤으나 분위기는 축 가라앉았다.

신난 건 페넬로페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발루크 후작 부인뿐인 것 같았다.

기괴한 인형극 내용에서 루시엘은 기시감을 느꼈다. 류프델이 해 주었던 소울 이터의 이야기가 떠올랐던 터였다.

‘이건 마검을 소울 이터로 만드는 방법이다. 네가 말한 보석이 들어갈 구멍, 그건 누군가의 영혼을 삼켜 만들었다는 흔적이지.’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는 물건이란 뜻이다.’

종합해 보자면,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죽은 왕비와 아기, 특별한 물건, 열두 명의 제자.’

이상하게 전부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가?

열두 명의 제자를 말할 때 페넬로페는 살짝 멈칫하며 망설였다. 제자가 아니라 제물이었겠지.

만일 왕비가 죽은 카일라 황비이고, 아기는 황자, 특별한 물건이 블루 익스큐션이 맞다면.

검에 있던 열두 개 홈은 명의 제자가 희생된 소울 이터…… 열두 개의 흔적이 되겠구나.

검은 황자가 가지고 있지 않으니, 발루크 후작 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되겠고.

그렇다면 지금 페넬로페가 저렇게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도 전부 그녀의 계략일까?

황자의 뒤에 누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발루크 후작 부인이라면.

‘그렇다는 건…….’

루시엘은 심각한 사실에 잠자코 있던 발루크 후작 부인을 주시했다.

‘그렇다면 저 여자의 진짜 정체는 죽은 카일라 황비? 아니면 잠시 몸을 빼앗겼을 뿐인가?’

그럼 황비의 목적은 검의 힘을 완전히 깨워 내려는 것인가?

자신은 이미 죽었는데 황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아니, 다른 목적이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루시엘이 그렇게 여러 추리를 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주변으로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스르르.

앞이 보이지 않는 희뿌연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루시엘은 순간 주변을 살폈다.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최하는 황후도, 다른 귀족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루시엘은 눈을 살짝 감고 주변의 마나 흐름을 느꼈다. 공기 중에는 마나가 섞여져 있다.

정상적이라면 둥실둥실 떠돌며 순환해야 할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뭔가가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루시엘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뇌었다.

짙은 향수 내음과 함께 사라락, 검게 드리운 천이 루시엘을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다. 굶주림과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노출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들리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되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후각과 촉각마저도 생생한 환상.

혹자는 그걸 두고 미쳤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것과 닮았으면서도 더 기분 나쁜 서늘함이 루시엘의 온몸을 훑었다.

이내 검은색 베일로 얼굴을 가린 발루크 후작 부인이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서늘한 공포감이 루시엘의 작은 몸을 짓눌렀다. 그러나 루시엘은 입술을 사리물었다.

‘정신 차리자. 두려워하면 지는 거야. 분명히 가족들은 곁에 있어.’

베일을 걷은 그녀가 루시엘에게 다가와 코를 벌름거리면서 말했다.

“……귀여운 아이야. 네게서 달콤하고 맑은 냄새가 나. 하지만 무언가에 가리어져 있군. ……무슨 짓을 했니? 응?”

번뜩이는 눈동자가 인간의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루시엘은 두려움을 이겨 내고 말했다.

“……당신은 누구야? 그 얼굴로 왜 있는데?”

“후후……. 오호라. 아는 얼굴인 모양이지? 그랬구나. 그럼 찾아봐야겠구나.”

소름 끼치도록 창백한 얼굴로 대답한 발루크 부인이 눈동자를 굴리면서 다시 루시엘의 곁을 빙빙 돌았다.

“…….”

“얘, 어디 좀 자세히 보자.”

‘겁먹거나 넘어가면 안 돼, 루시엘. 어차피 이건 전부 환상일 테니까.’

루시엘은 떨림을 감추면서 말했다.

“내게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쿡, 조그만 것이 겁도 없구나. 너, 무얼 감추고 있지?”

발루크 후작 부인이 루시엘의 차림을 샅샅이 살피려고 할 때였다. 루시엘이 몸을 움츠려 뒷걸음질 치면서 마나를 끌어모으려다 관두었다.

아까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

‘어차피 여기선 마법을 못 써. 그렇다면 그 수밖에…… 없겠어.’

루시엘이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그녀를 똑똑히 보며 태세를 바꾸었다.

“뭘 감추고 있는지 궁금해? 직접 날 잡아서 찾아봐.”

그러곤 작은 몸으로 포르르 도망가기 시작했다. 달려가면서 루시엘은 생각했다.

‘뭘 감추고 있냐고 물었어. 환상이지만 할머니의 드래곤 마나 부적은 먹히는 모양이야.’

발루크 후작 부인은 루시엘의 맑은 마나를 일부 느꼈지만 가려져서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제게 걸린 여러 가호와 실드 마법도 그대로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마나 부적도 할머니의 마법으로 만든 물건이니까.

쉽게 말하면 마나 사용은 어렵지만, 몸에 걸려 있던 실드 마법은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여자, 기운을 읽는 능력이 섬세한 것 같아. 그대로 있다간 실드가 걸린 걸 눈치챌지도 몰라. 아무런 의심 없이 손대게 해야 해.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최대한 움직이자.’

루시엘이 요리조리 다니면서 몸을 피하자 약이 바짝 오른 발루크 후작 부인이 말했다.

“꼭 생쥐처럼 돌아다니는구나.”

부지런히 따라오더니 긴 팔로 여지없이 루시엘을 붙잡았다.

그 순간 루시엘에게 걸려 있던 가호와 실드가 동시에 발휘하면서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타아아!

팅! 팅! 팅!

퍼어엉!

촤촤촤!

쿠우우!

“……으응? 도대체 몇 개야?”

종류가 다른 가호와 실드 마법이 무려 다섯 가지였다. 마법이 발휘하면서 개중에는 상대를 멀리 튕겨 내는 마법과 눈을 부시게 하는 블라인드 마법 같은 것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아악, 하고 발루크 후작 부인이 제 눈을 붙잡은 채 내동댕이쳐졌다.

그러자 그녀가 걸었던 환상이 모두 풀렸다. 자욱하던 안개가 모두 사라졌다.

루시엘이 눈을 뜨자 키제프와 눈이 마주쳤다.

“많이 고단했던 모양이네. 그렇게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다니…….”

“응? 내가 잠들었어?”

루시엘은 놀라서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래, 페넬로페가 발표하는 동안 졸았잖아.”

“……어? 아니야. 다 봤는걸. 페넬로페가 발표한 마리오네트 인형극. 내용이 엄청 이상했는데……. 게다가…….”

키제프의 이야기를 듣던 루시엘은 발루크 후작 부인부터 찾았다.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뭐지? 정말 꿈이었나?”

루시엘은 뭐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페넬로페가 입술을 삐죽이면서 다가왔다.

“공자비? 내 인형극이 어쨌단 거죠? 재투성이 아가씨 이야기는 유명한 동화인데 뭐가 이상하단 거예요?”

“재투성이 아가씨? 아니, 다른 이야기를 발표했었잖아. 왕비가 아기를 낳다가 죽고, 열두 제자를 죽였다는…….”

“뭐야, 그딴 기분 나쁜 이야길 내가 왜 한단 거야?”

페넬로페도 그렇고, 키제프도 그렇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꿈이었을까?’

루시엘이 멍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을 때쯤, 발루크 후작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적의 어린 시선을 보냈다.

루시엘은 확신했다.

‘꿈이 아니었어.’

공작이 루시엘에게 변화가 있음을 알고는 다가와 보호하듯 에워싸면서 이마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었다.

그는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잔뜩 좁히고 있었다.

“루시엘, 괜찮으냐?”

“네, 잠깐 피곤했나 봐요.”

루시엘은 주변의 시선도 있으니 그 일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내 황후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일곱 가문 모두 열심히 준비해 주신 소중한 글과 풍부한 볼거리들에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문학 살롱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황후 전하의 마음을 울린 글은 누구의 글인지 알려 주실 거지요?”

클로디아 황녀가 웃으면서 물었다. 사실 알고 있는 거지만 굳이 물었다. 루시엘이 더 주목받게 해주고 싶었던 터였다.

“모두 훌륭한 글을 준비하셨지만, 단연 제 마음을 울린 글은…… 벨슈타인 공자비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져온 스테인드글라스 유리공예품 역시 그러했지요.”

황후가 유리공예품을 바라보면서 훈훈하게 말했다. 모두 박수로 축하해 주었고 루시엘은 쑥스러우면서도 인사했다.

“영광입니다, 황후 폐하.”

그렇게 시끄러웠던 문학 살롱이 파했다. 가장 먼저 인사도 없이 사라진 건 발루크 후작 부인과 페넬로페였다.

다른 참가 귀족들과 인사를 나눈 공작도 가족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황성을 빠져나가도록 하지. 시간이 꽤 늦었군.”

벨슈타인가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형님, 아직 뒤풀이도 즐기지 못했는데 벌써 가십니까?”

라리에트의 남편인 세리안 백작이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클로디아와 다나가 다가와선 루시엘에게 말했다.

“루시엘도 오늘 황성에서 머물고 가면 어때요? 내 방에서요.”

즐거운 제안이었지만 루시엘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클로디아 황녀님. 오늘은 고단해서 그만 가 볼게요. 대신 타운하우스에 머물고 있으니까 와 주시면 어때요?”

“그것도 좋겠군요. 이쪽은 루시엘의 친구?”

“마랑드 후작가의 다나라고 해요, 황녀 전하. 여, 영광이에요……!”

클로디아와 다나가 인사하는 동안, 루시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전의 그 일로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심란했다. 게다가 황성에 더 오래 있으면 드래곤 마나 부적이 발휘되는 시간도 다 소모하게 된다.

발루크 후작 부인과 페넬로페가 사라지긴 했지만, 황성엔 아직 레이놀드 황자가 남아 있었다.

레이놀드 황자의 죽은 어머니가 발루크 후작 부인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접촉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발루크 후작 부인이 처음 도착할 때, 레이놀드 황자와 함께 나타났었다.

‘아, 그럼 그때 이미 접촉하고 온 것일까?’

루시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자 뜻밖의 상대가 엣헴 헛기침을 하면서 다가왔다.

“감명 깊은 글에 팬이 되었습니다, 영애. 아, 아니 공자비라고 부르면 되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