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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72)화 (72/282)

<72화>

마법 수업이 있는 날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루시엘은 가뿐한 몸으로 길리아트의 서재를 찾아갔다.

“루시엘, 지난번에 예고한 대로 오늘은 마법 테스트가 있다.”

“네, 기다렸어요.”

“3서클 마법사와 대련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될 거란다. 너와 대련할 마법사는 이미 수련장에 가 있단다. 이동하자꾸나.”

“네.”

수련장에 가 보니 에레스가 길리아트에겐 정중하게 절을 했다. 그의 성격을 알고 있는 루시엘에게는 웃기는 일이었다.

“오셨습니까, 길리아트 님.”

“제법 듬직해졌구나, 에레스.”

“정말요? 저 그러면 제자로 받아 주세요.”

에레스가 절실한 눈빛을 보내자, 턱을 문지르던 길리아트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오늘 대결하는 걸 봐서 결정하마.”

“좋아, 반드시 이기겠어! 어서 와라, 루시엘.”

에레스가 루시엘에겐 손을 들어 보이며 친근하게 굴었다.

“안녕, 에레스.”

두 아이를 힐끗 바라보더니 길리아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난번에 마주쳤다더니 친해진 모양이군. 루시엘, 너와 대결할 마탑의 최연소 마도사 에레스 실베인이란다.”

“네.”

“까불거리는 것 같지만 마법 실력만은 제법 쓸 만한 녀석이니 좋은 상대가 될 거란다.”

길리아트 할아버지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에레스의 마법 실력도 범상치 않음이 분명했다.

하긴 3서클까지 실력이 올라간 데다 속성 발현까지 했으니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터였다.

전의를 불태우는 에레스를 보니, 루시엘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절로 몸에 긴장이 바짝 들어갔다.

“자, 두 사람. 이 로브를 입도록 해라.”

길리아트가 투명한 가운처럼 보이는 로브를 하나씩 건넸다.

“간단한 규칙을 설명하마. 이 로브에는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 실드가 걸려 있단다. 한마디로 안전한 대결을 할 수 있지.”

“피유, 다행이다.”

루시엘이 작은 가슴을 쓸어 올리자, 에레스는 다소 실망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에이, 그럼 진짜 마법사 대련이 아니잖아요. 아, 그렇다고 루시엘을 다치게 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어린이들은 안전한 게 최고니까!”

“그러면 서로 아무리 공격해도 피해를 받지 않나요?”

루시엘이 길리아트를 향해 고개를 들며, 물음표를 매달았다.

“물리적 피해는 입지 않지만 공격받으면 잠시 움직일 수 없다. 대신 공격받은 그 부위에 점수가 올라가게끔 마법이 걸려 있다. 머리는 10점, 심장은 10점, 나머지는 3점이란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이 강하다면 추가 점수를 받지.”

길리아트는 초록빛 지팡이와 둥그런 영상구 두 개를 소환했다. 가운데 하얀 선을 두고 나란히 소환된 영상구는 하나는 붉은색, 하나는 푸른색이었다.

“저기, 저 커다란 영상구에 각각 숫자로 표시될 거란다. 붉은색이 루시엘, 푸른색이 에레스의 영상구니까 잘 봐 두고.”

“앗, 네!”

“윽.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심드렁하던 에레스도 대련 직전이 되어서야 약간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루시엘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길리아트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하얀 선을 사이에 두고 각자 영상석 앞에 가서 대치하듯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자, 내가 손을 들면 대련 시작이다. 지팡이를 꺼내거라. 누구든 먼저 50점을 달성하면 승리란다. 다만 승부가 결정 나지 않을 경우, 10분 동안 더 많이 득점한 쪽이 승리하게 된다.”

루시엘과 에레스는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엘,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가 이길 거야. 아홉 살짜리 1서클 아기한테 질 순 없잖아? 나 첫 대련 무지무지 기다렸단 말이지!”

에레스가 지팡이를 척 꺼내 들었다. 아주 자신만만하단 얼굴이었다. 땅 속성을 상징하는 갈색 지팡이의 끝에는 작은 암석이 붙어 있었다.

“지팡이도 속성이 있는 걸 쓰는구나.”

루시엘의 눈이 커다래지자, 에레스는 지팡이가 자랑스러운지 씨익 웃었다.

“당연하지! 더 세지니깐.”

“그렇구나, 멋있다. 그치만 나도 질 생각은 없어. 열심히 할 거야.”

“그래, 그래. 실컷 덤벼 봐!”

루시엘이 속으로 지팡이를 부름과 동시에 마나를 모을 준비를 마쳤다.

손안에 착 감겨드는 이노센트 지팡이의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자태에 힉, 하고 에레스가 잠시 놀랐다.

“너 지팡이 너무 예쁘잖아.”

‘별로 안 강해 보일 것 같은데? 마법을 배운 경험도, 서클도, 지팡이도, 속성도. 모든 건 내가 우위야!’

그러고 보니 완전 식은 죽 먹기인가 싶어서 에레스는 루시엘을 조금 봐줄까 싶었다.

루시엘은 진지하게 눈을 총총 빛내면서 지팡이를 꼭 쥔 채 에레스를 마주 보았다.

“루시엘, 너 먼저 공격할래?”

봐주겠다는 말에 루시엘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럼 승부가 안 되는걸. 봐주지 마.”

“진짜? 너, 후회하지 마.”

“응. 후회 안 해.”

지팡이를 더욱 다잡는 루시엘을 보자니 에레스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저렇게 조그만 꼬맹이를 이겨서 뭐 하나 싶기도 했다.

한편, 한발 물러나서 두 아이를 지켜보던 길리아트는 흥미로운 눈동자였다.

두 아이 모두 서로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터였다.

이제 갓 마법을 시작했지만 엄청난 마력으로 잠재력을 가진 루시엘.

빠르게 땅 속성을 발현하고 2서클이나 높은 에레스.

승패를 떠나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 같았다.

* * *

어느새 수련장 뒤편에 있는 계단에 대공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에바와 솔리아페, 이벨린은 함께 걸터앉았고, 레오니는 엄마 옆에 앉아서 석류알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사탕을 빨고 있었다.

곧이어 사용인들 몇 명까지도 모여들었다. 베시와 로즈가 손나팔을 모아서 응원했다.

“와아아! 힘내요!”

길리아트가 뒤쪽을 보면서 너무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말아 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곤 숫자를 세면서 손을 하늘로 높이 들었다.

“셋, 둘, 하나……. 시작!”

시작과 동시에 루시엘은 눈을 감고 마나를 끌어 올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서클부터 속성까지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에레스는 분명, 접근하면서 몰아치듯 마구 공격을 할 게 틀림없었다.

루시엘의 무기는 강한 마력에 있었다.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해!’

“스톤 피스!”

마나를 끌어모은 에레스가 루시엘을 향해, 시동어를 외쳤다. 순식간에 주먹만 한 크기의 돌덩이가 루시엘을 향해 날아들었다.

휘익!

쿠웅!

날아간 돌덩이가 루시엘의 머리를 스쳤다. 처음부터 10점 이상을 내줄 게 뻔해서 간담이 서늘해진 루시엘은 포르르 다른 곳으로 피했다.

우선은 에레스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지켜보는 중이었다.

루시엘은 이론 수업 때 배운 땅 속성에 대해 떠올렸다.

땅의 기본 속성은 단단하고 묵직하다는 것.

‘속도와 성장도 느린 편이지.’

서클마다 가능한 마법의 개수 또한 적었고, 5서클 미만의 공격 마법은 두 개뿐이었다.

에레스가 방금 시전한 2서클의 스톤 피스(Stone piece), 그리고 4서클 마법인 스톤 에지(Stone edge).

‘그 두 가지 공격 패턴만 알면 돼.’

물론 보조 마법이나 무속성 마법도 해 올 가능성이 있었지만, 무속성 마법은 루시엘이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루시엘이 계속해서 마나를 차곡차곡 쌓는 동안 에레스는 가진 마나를 전부 소진할 때까지 공격을 시도할 생각인지 또다시 스톤 피스를 날렸다.

루시엘은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다.

“루시엘, 겁먹은 거 아니겠지? 공격 안 하는 거야?”

지팡이를 휘휘 돌리던 에레스가 못내 답답하다는 듯 물었지만 루시엘은 대꾸하지 않았다.

한편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우리 아가 마님이 왜 공격을 안 하고 계실까요?”

“그러게 말이야.”

베시와 로즈가 속상한지 소곤거렸다. 레오니도 답답하다는 듯 볼을 잔뜩 부풀리다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뉴나 모하는 고야! 빤니 마법 써 버려!”

길리아트가 쉬잇, 하면서 손자 앞으로 다가와 보슬보슬한 금발을 쓰다듬었다.

“레오니, 조용히 해야 누나가 집중을 한단다.”

한편 말없이 루시엘을 지켜보던 솔리아페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아이, 공격을 못 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지. 루시엘은 지켜보는 중인 거야.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서.’

검사와 마법사는 포지션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상대할 때의 태도는 다르지 않다.

상대의 행동을 먼저 파악하고 간파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을 하고, 대응하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었다.

솔리아페는 내심 루시엘의 침착한 태도에 놀랐다.

당장의 결과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조급하게 굴지 않고, 차근차근 움직인다면 실전에서의 경험은 쌓일 터였다.

저를 향해 웃어 보일 때는 그렇게나 순하고 귀여운 아이인데, 치밀한 움직임을 보일 줄은.

게다가 루시엘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기에 상대에게 수를 읽히지도 않았다.

파앗!

샛노란 마법진이 빛났다. 에레스가 자꾸만 피하기만 하는 루시엘을 노리고 주문을 외웠다.

“스톤 피스!”

이번에는 뾰족한 돌덩이가 두 개나 소환되어서 무척 위협적으로 보였다.

쿵, 쿠궁!

아기 다람쥐처럼 잘도 요리조리 피하던 루시엘의 움직임이 잠시 둔해졌을 때였다.

‘좋아, 지금이다!’

에레스는 습관적으로 잇새를 꼭 깨물며, 지팡이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

“스톤 피스!”

새롭게 소환된 돌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이번에야말로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루시엘의 머리를 노린 돌은 심장부에 맞았다.

로브에 걸린 실드 덕분인지 돌덩이는 튕겨져 나갔고, 뭔가가 닿은 느낌은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저 좀 놀라서 루시엘은 눈을 잠깐 감았을 뿐이었다.

“됐다!”

에레스가 기뻐하며 잠시 팔을 들어 올렸다. 삡 소리와 함께 에레스의 영상구에 푸른색 숫자가 올라갔다. 무려 15점이었다.

단번에 따낸 점수와 그 위력에 사람들도 오오 하며 놀라워했다.

루시엘은 담담하게 그 순간을 포착했다.

방어 마법을 쓰거나 피하지 못할 확률이 가장 높은 타이밍은, 공격을 맞춘 뒤였다.

사람들이 모두 동요하던 그 순간, 루시엘은 지금껏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거대한 마나를 폭발시키듯 첫 주문을 시전했다.

“……슬리프(S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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