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피닉스를 찾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렇게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그럴 만도 했다. 루시엘은 책의 내용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전 피닉스를 발견했다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쿠엔트.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여러 전설의 식물을 만났다고 주장하면서 이 책을 냈지.”
“움……. 사실일까요?”
길리아트는 고개를 가로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진짜 발견된 마법 식물도 있었고, 영영 발견되지 못한 것도 있었지. 어쨌든 그의 말에 의하면 피닉스를 만나 장미를 얻었다고 한다.”
“그럼 그 장미는 어디로 갔을까요?”
“글쎄다. 나도 거기까지만 알고 있다. 그는 피닉스의 장미를 얻은 후에 돌연 행방불명되었다더구나.”
길리아트가 안타깝다는 듯 대답했다.
“피닉스 정도의 강한 기운을 가진 존재라면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루시엘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면서 말했다.
“정말 어딘가에 있는 거라면,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거예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루시엘의 눈에 책의 뒷면이 들어왔다. 손톱만큼 작은 문양이 뒷면에 찍혀 있었다. 검과 마법, 넝쿨이 휘감긴 문자 P와 조화로운 금빛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루시엘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폴리체 아카데미에 갔을 때, 교문과 교복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어쩌면 피닉스의 장미와 폴리체 아카데미가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게다가 쿠엔트라는 사람은 책까지 남길 정도로 마법 식물에 대해서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루시엘은 책에 적힌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할아버지, 이거 폴리체 아카데미의 문양 맞지요?”
“음? 글쎄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저 잠깐만 확인해 볼 것이 있어요.”
루시엘은 장서관을 나와 도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시아빠라면, 폴리체 아카데미 관련 서류 같은 걸 갖고 계실 텐데.’
공작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긴 했지만 다른 가신들과 이야기 중인 모양인지 에바가 루시엘을 응대했다.
“아가 마님? 주인님께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에바! 혹시 키제프 공자의 교복은 없나요? 아니면, 폴리체 아카데미 물건이라도요.”
“도련님 방을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 폴리체 아카데미의 문양을 확인해야 해요.”
“한번 찾아볼게요.”
종종종.
루시엘이 에바를 따라서 이동했다. 키제프의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아카데미에 간 지 오래되어서인지 키제프의 흔적은 별로 없었다.
“여기 있어요.”
에바가 옷장에서 남색의 겨울 교복을 꺼내 주었다. 가슴 포켓 부위에는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문양이 금실로 자수가 놓아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야.’
폴리체 아카데미와 이 책은 분명 연관이 있다.
“보여 줘서 고마워요, 에바! 급해서 먼저 갈게요.”
‘키제프에게 물어봐야겠어.’
근래 들어서 그는 답장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부엉이는 꼬박꼬박 보내 주니까.’
연락할 수단은 그것뿐이었다.
* * *
창가에 포로롱 날아든 부엉이에게서 편지 내용을 확인한 키제프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궁금한 게 있어. 『전설의 마법 식물』이라는 책과 폴리체 아카데미랑 관련이 있는 거 맞지?
만약 그렇다면 피닉스의 장미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난 피닉스의 장미를 꼭 찾고 싶어. 부탁해.」
“피닉스의 장미? 그걸 왜 알아봐 달라는 거지?”
학교 도서관을 뒤져 보면 있을 것 같았다. 선배들의 과목 중 마법 생물학이 있긴 했으니까. 예상대로 도서관에도 그 책이 있었다.
책을 펼쳐 본 키제프의 눈이 가늘어졌다.
테드라는 아이가 말한 피닉스의 장미라는 식물.
진짜 존재하는 것이었다.
「피닉스의 장미 : 전설의 불사조 피닉스의 깃털을 심으면 자라나는 꽃. 장미와 흡사한 모양을 가져 장미라고 부른다. 불꽃처럼 붉은 꽃잎을 가진 장미. 향기를 맡으면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며, 드래곤의 수면을 깨우기도 한다.」
심상치 않은 설명에 키제프는 입술을 살짝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
“……부엉이 주인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때였다. 누군가 책과 편지를 홱 낚아챘다.
노마라는 아이였다. 그의 뒤로 역시나 다른 아이들과 막시무스까지 우르르 도서관에 전부 몰려와 있었다.
“이게 뭐냐?”
“……내놔.”
노마가 다른 아이에게로 편지를 전달했고, 그건 곧 막시무스의 손에도 들어갔다.
“……피닉스의 장미? 네 여자친구가 갖고 싶대?”
편지를 읽은 막시무스가 빈정거렸다.
“내놓으라고 했다.”
키제프가 눈에 힘을 주며 짧게 말했다. 살벌하게 노려보는 붉은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막시무스도 지난번에 당한 것이 있어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반말이야? 진짜 건방지게.”
키제프와 막시무스. 둘이 다가서며 대치할 때쯤 교수가 서가를 지나갔다. 그녀는 마법 생물학 교수 제이나였다.
“너희들, 여기에서 뭐 하는 거니? 지금 수업 시간 아니야?”
교수의 말에 막시무스와 아이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제이나가 그들이 버려 두고 간 책을 탈탈 털어서 키제프에게 내밀었다.
“여기. 쟤네들이 괴롭히진 않았니?”
키제프가 책을 받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닙니다.”
제이나 교수의 안경 너머 시선이 키제프가 들고 있던 책에 슬쩍 닿았다.
“그거 내 과목 교재인데. 설마 벌써 예습 중이니?”
지레짐작한 그녀가 흐뭇한 얼굴로 물었다. 키제프는 이때다 싶어 질문했다.
“저…… 교수님. 혹시 피닉스의 장미라는 마법 식물을 아세요? 그 꽃은 어디에서 구하죠?”
“……피닉스의 장미는 불사조 피닉스가 피워 내는 꽃이잖니. 그걸 구하겠다니, 설마 농담이지?”
제이나 교수가 말도 안 된다며 말했다.
“이제 피닉스의 장미를 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단다. 그 책을 쓴 쿠엔트가 아카데미에 피닉스의 장미를 기증했는데, 하필 그날 식물원에 큰 화재가 났다고 해. 다음 날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는데! 정말 너무 안타깝지 않니?”
“그렇습니까. 그럼 식물원은 어디였죠?”
“……금지구역 숲이었을 거야.”
“피닉스의 장미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거군요.”
“그럼, 이 넓은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것들이 있단다! 선생님도 자그만 마법 식물을 하나 키우고 있는걸.”
제이나가 환상에 푹 빠진 얼굴로 말하자 키제프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녀는 나중에 보자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키제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닉스의 장미를 기증하자 불이 났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공교롭게도 피닉스는 불의 속성을 가진 생물이었다.
설마 정말 불사조라도 튀어나와 식물원을 불태운 걸까?
그게 아니면 누군가의 방화일까?
‘식물원과 큰 불이라…….’
어쨌든 그 일로 식물원도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현재는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고.
키제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편지를 썼다.
「그 책 우리 아카데미의 수업 교재로 쓰이고 있어.
피닉스의 장미는 향기를 맡으면 강한 생명력을 가지며, 드래곤의 수면을 깨운다고 해.
교수 말로는 그 책의 저자가 피닉스의 장미를 아카데미의 식물원에 기증했고, 그날 바로 화재가 나서 타 버렸대. 전부.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서 찾을 수 없을 것 같군.
식물원이 있던 장소도 금지 구역으로 바뀌어 버렸거든.」
“쿠엔트가 아카데미에 장미를 기증했다고? 그리고 행방불명된 걸까.”
동이 트자마자 루시엘은 잠옷 차림으로 길리아트를 만나기 위해 총총총 달려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숨을 몰아쉰 루시엘이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루시엘? 무슨 일이냐?”
“제가 알아봤는데 아카데미와 피닉스의 장미가 확실히 연관이 있었어요. 책 뒤의 문양, 폴리체 아카데미의 문양이 맞아요. 그리고 이것 좀 읽어 보세요.”
루시엘은 키제프의 편지를 직접 보여 주었다. 편지를 전부 읽은 길리아트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쿠엔트가 장미를 기증한 그날, 식물원에 화재가 났다?”
“네, 그래서 장미도, 식물원도 전소되었대요. 우연의 일치라기엔 조금 이상해요. 그렇지! 그렇게 큰 화재라면 분명 신문에 났을 것 같아요.”
길리아트 역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는 온갖 마법 실드가 있을 텐데, 그걸 뚫고 불이 날 정도라면 아주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네 말대로 기록이 남아 있겠구나.”
“네. 기록을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고서를 기록하는 마도구가 장서관에 있을 거다. 그리로 이동하지.”
두 사람은 함께 장서관으로 걸어가면서 대화를 계속했다.
“근데 벌써 친구를 사귄 것이냐?”
“어쩌다 보니까요.”
그 친구가 키제프인 줄은 모르실 테지만, 루시엘은 괜히 멋쩍어 웃음으로 넘겼다.
“축하한다, 루시엘. 기회가 된다면 여러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구나.”
“아…….”
“벨슈타인 핏줄들은 다들 친구가 없거든. 아, 나 빼고.”
길리아트는 잠시 턱을 짚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라는 걸 보니, 키제프인가?’
내심 키제프와 루시엘이 도란도란 사이좋게 잘 지내길 바랐는데. 길리아트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결혼도 결정되었는데……. 녀석들, 사춘기가 일찍 와서 부끄러워서 그런가?’
길리아트의 의문을 뒤로하고 어느덧 둘은 장서관 앞에 다다랐다. 길리아트는 루시엘을 데리고 바로 2층으로 향했다.
2층 한쪽에는 황금색 손잡이를 가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 길리아트가 손바닥을 대니 곧 찰칵 소리가 나며 열렸다.
안에 발을 들여놓자 길리아트는 다시 한번 허공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렸다.
그러자 순간 허공에 나타난 붉은색의 가느다란 실선들이 전부 사라졌다. 아무래도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마법인 모양이었다.
내부는 1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유리 안에 진열된 물건들도 많았고, 오래된 책이나 두루마리들, 한쪽에는 신비한 마도구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루시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주 드나드는 장서관인데 2층에 이런 공간이 숨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시엘, 기록용 마도구는 이쪽이다.”
“네!”
기록용 마도구가 있는 곳은 작은 방이었다. 커다란 서랍장에 액자처럼 생긴 사각형의 마도구가 있었고, 마도구에 끼울 수 있는 마법 두루마리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꺼내 마도구에 끼운 길리아트는 마나를 그에 집중하며 쉼 없이 속삭였다.
“폴리체 아카데미, 화재…….”
두루마리의 내용이 자동으로 촤르르륵 넘어갔다. 그러다 일곱 번째 두루마리를 살펴보았을 때 비로소 멈췄다.
“찾았구나. 여기. 7년 전이구나.”
「폴리체 아카데미에서 제국 최초로 피닉스의 장미가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의문의 화재가 발생해 식물원과 내부의 식물들이 전소되었다. 근처를 지나던 학생들은 모두 대피하였으며 해당 구역은 이후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폐쇄 처리되었다.」
‘키제프의 말대로야. 근데 불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식물원을 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다고?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