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95화
EP 44–개문 開門(14)
나는 보잘것없는 불구자였다.
장애를 업신여기는 세상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장애를 이용하며 일신의 영달을 꿈꾸는 기회주의자였다.
이 약아빠진 다리 장애자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상대방 후보의 사퇴로 당선된 정치인에게는 어떤 민의(民意)도 없다.
그런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시대가 기회주의자를 원했기 때문이다.
기회를 낚아채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나는 남의 기회를 빼앗고, 나의 재앙을 남에게 돌리며, 선동으로 진실을 흐리고 적을 분열시키며 생존을 쟁취했다.
하지만 나의 방식이 이제 답을 구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 내가 선을 그어보겠다는 것이 오만함에 지나지 않는다면.
세상에 초인이 없다면.
이제 너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 * *
대한민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팀전이 아니라 개인전이다.
양당제와 다당제는 배경일 뿐이다. 당이 져도 지역구에서 이기는 제도적 기반이 있는 이상 이 바닥은 언제까지나 개인전일 것이다.
커다란 정치 이슈는 몇몇 오피니언 리더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강력한 실세들은 저마다의 계보를 거느리며 국가의 중대사를 좌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한 정치인이 여러 정치인을 압도하는 경우가 생긴다. 모든 지역구의 표가 같은 위력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국회 정중앙의 연단에 선 한 절름발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국회의원을 압도되게 만든 건 그깟 제도적 모순 때문이 아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국민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한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웅변하는 초췌한 안색의 정치가.
서울시장 한승문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조금 더 봉건적이고, 어쩌면 후진적인 종류의 권력이었다.
그는 게이트 전쟁에서 활약한 전쟁영웅이었고,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초상능력자들이 개인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였다.
세상이 뒤집혔을 때부터 저 젊은 승부사는 오직 새로운 권력- 즉, 초상 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올인했고, 결국 성공했다.
전직 초상관리부 장관이나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따위의 감투는 그의 비헌법적인 권력을 공권력 안으로 가져오려는 합법적인 명함에 불과하다.
한승문 서울시장은 헌터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그가 허락받은 법률적 권력보다 명백히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항상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세종시를 돌아다니는 저 절름발이가 통계적으로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 정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항상 피곤한 얼굴을 할 정도로 국익에 헌신했기 때문이고,
권력 좀 가졌다 싶으면 뒤에서 칼부터 찌르는 국회의원들이 한승문 서울시장을 암묵적으로 우대하는 이유는, 그가 그와 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의 무력에서 비롯된 권력을 언제나 공권력 안에 가두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국회에 자리를 차지한 그 누구도 한승문을 변호할 수 없었다.
그는 국가를 배신했다.
국익을 등졌다.
“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으로서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이재민들의 이동을 제한할 그 어떤 법률적 근거를 찾지 못했음을 알립니다.”
“따라서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에 의거하여 서울특별시의 위수령을 해제하고 이동제한명령을 중지합니다.”
국회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는 이미 서울시 자치경찰과 초인지원청의 치안관들이 휴전선의 관문을 장악하고 문을 열어버린 뒤였다.
이미 수많은 북한 난민들이 남쪽으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고, 그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깔끔하게 청소된 지하철을 통해 서울로 쏟아지는 중이다.
놀랍게도 합법이었다.
오히려 법적 정당성을 따지자면 엄연히 국민에 속하는 북한 주민들을 군벌 패거리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둔 것부터가 위헌이다.
북한에 굳이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고 ‘특수 위수령’이라는 기괴한 제도를 만들어 이동제한명령을 내린 것도 이것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시장은 관습적 수도의 지자체장으로 특별 취급되기 때문에 위수령을 해제시킬 법적인 권한이 존재했고,
명목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되는 북한 지역의 시민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에 한해서는 법적 정당성보다 우선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적 정당성이다.
모든 북한 사람들을 폭력과 굶주림의 구렁텅이에 방치하는 것.
휴전선을 복구해 저들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내는 것.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저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검은 괴수에게 밀어 넣는 것.
이 비정한 생각은 어떤 거대한 악의를 가진 독재자의 발상이 아니라, 이 국가를 이룬 수많은 시민들의 보편적 의지였다.
그 의지에서 나온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를 통치하는 국회의원들은 그러한 의지를 받들어 대리하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공론에 부딪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국회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북한 문제는 북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한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저들을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자로 볼 것인가, 혹은 저들을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동포로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가장 거대한 폭풍이 밀어닥치기 직전인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내릴 선택이 앞으로의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같은 한민족 동포를 위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일을 위해 시를 쓰고 노래 부르며 행진하던, 수많은 운동가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와 말과 문화가 비슷한 이들이 사회의 새로운 동력이 되리라는 허언도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내일은 해가 뜨리라는 희망이 아니라,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나갈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한승문은 명백한 모험주의자였다. 그는 선동과 도박으로 판돈을 따오던 국민의 승부사였다. 국제정치학은 그와 같은 사람에게 ‘미치광이’라는 이름을 붙여 분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300인의 국회의원들, 그보다 더 많은 보좌관들, 기자들, 국회 공무원들, 그리고 카메라 너머의 국민들은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범죄율은 높아질 것입니다. 난민 문제는 심화될 것입니다. 중장기적인 치안 악화가 기다릴 것이며, 경제에도 타격이 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정치인으로서, 여러분의 앞에 처음 서는 순간부터, 공동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제 방식은 틀렸습니다. 진정으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비정한 생존자로 살아남지 맙시다. 더 어려운 길을 갑시다. 화합과 연대의 길을 갑시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눈물을 닦아낸 그가 차분한 어조로 쉴 새 없이 풀어놓는 단어들은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가 이 나라에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가 이 나라에 독을 풀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 한승문이 이 나라에 무언가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아주 강력한 무언가를.
“쉬운 길은 아닐 겁니다. 우리 앞에 수많은 시련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건 저들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념’이다.
그는 지금 지난 수백 년 동안 세계를 불태웠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정치인 한승문은 이 순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진화했다.
이제부터 그가 내뱉은 모든 말들을 누군가가 책과 영상으로 저장할 것이고, 이는 제3자에 의해 해석되고 교조화되어 퍼질 것이다.
지금 탄생한 어떠한 생각에는 그의 이름이 붙을 것이며, 그의 사상을 따르는 자들은 ‘한승문주의자’라고 불릴 것이다.
“이는 북한 지역 주민들에게만 해당하는 조치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서울의 문은 모두에게 열릴 것입니다.”
“나이, 성별,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유린되었을 때 분노할 줄 아는 모든 시민들에게 각성제가 지급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모든 시민에게 각성제가 지급될 것입니다.”
“각성촉진제의 최초 개발자로서 공언합니다. 각성제의 대량 양산은 결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서울의 헌터 아카데미는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제서야 국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착각을 바로잡았다. 이것은 평화를 노래하는 유약한 목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징집령이다.
총력전을 위한 징집령이었다.
연단 위의 저 정치인은 평생토록 괴수를 잡아 죽이겠다고 시민들의 넋 앞에 맹세한 사냥꾼이었고, 그가 지금 동료들을 증식시키려고 들고 있었다.
반쯤 공포에 질린 국회의장이 체면을 잃고 연설에 난입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하, 한승문 시장. 그건 일시적인 조치이겠지요? 그렇지요?”
“네, 물론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 조치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국회 한가운데에 선 헌터가 한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카메라를 직시했다.
“이 땅의 모든 공포를 분쇄할 때까지!”
그날, 대한민국 국회는 한승문 서울시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올렸다.
* * *
“검은 괴수의 위험성은 과대평가됐습니다.”
야밤에 근처 공원까지 달려 나온 유재경 전 총리는 흘러내린 린드버그 물소뿔 안경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선양 게이트의 문을 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재경의 앞에는 헌터용 코트를 입은 한승문이 지팡이를 짚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코트에는 흙먼지가 아직 묻어 있다.
아무래도 선양 공략전에서 후퇴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유재경은 이 징글맞은 정치꾼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벌써부터 조금 두려워졌다.
밤하늘 아래 샛노란 가로등으로 벌레들이 날아드는 가운데, 공원 벤치에 앉은 한승문은 지팡이를 까딱여 유재경을 옆자리로 초대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검은 괴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용해제가 개발된 이상, 우리는 이미 멸망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경제적인 여파만 해도 이미…….”
“경제는 회복이 됩니다. 치안도 회복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죽을 일이 이제 없어졌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유재경은 경제관료다. 다시 말해, 경제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지렁이들과 평생을 싸워왔다는 소리다.
따라서 그는 한승문의 입에서, ‘경제는 다시 살리면 된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왔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운 말이 나가지는 않았다.
“선양의 검은 게이트를 닫을 방법은 생각하시고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평범한 게이트를 닫을 방법이 없을 때도 이 나라를 다시 재건했습니다.”
“그러면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저 검은 괴수들을 상대할 겁니까? 영원히?”
“우리는 이미 괴수와의 영원한 소모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용해제가 개발된 이상, 추가적인 발명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강에 흘러든 괴수를 죽이는 정화제나, 바다에 섞인 괴수를 죽이는 독도…….”
“그럼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낙진은 어떡합니까. 언제 어디서 침식이 시작될지 모르는데요! 당장 내일 부산에서도요!”
“게이트도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모릅니다. 당장 지금이라도 해양 괴수가 부산을 덮칠 수도 있고요. 아니면 혹시 모르죠, 지구보다 커다란 게이트가 열릴지도…….”
“그게 말이……!”
문답이 오갈수록 유재경은 점점 초조해졌고, 한승문은 점점 차분해졌다. 유재경은 결국 자신이 설득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참으로 냉혹하고 비정한 곳임을 이제야 실감했다. 그것이 너무 한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그럼 나보고 뭐 어쩌란 말입니까!”
“각성제를 풀어버리세요.”
“예?”
유재경이 당황하여 말도 못 하는 사이, 한승문은 그가 고민하는 문제가 너무나도 간단하다는 듯이 해답을 줄줄 늘어놓았다.
“북한 사람들을, 아니, 고통받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헌터로 만든 다음, 마석의 분배 구조를 개선해서…….”
“아니, 아니, 잠깐! 그걸 우리나라 국민들이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책임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 그럼…… 외국! 외국은 어쩌고요! 헌터의 숫자는 곧 군사력입니다! 그놈들이 한국 혼자 강해지는 꼴을 두고 보겠습니까?”
“제조법도 풀어버리십쇼. 어차피 중국이랑 미국 첩보부는 이미 들고 있을 겁니다. 아마 자체개발도 가능할 거고요. 그놈들은 생체실험 안 해봤겠습니까?”
“아, 아니…….”
“하지만 누구도 우리보다 각성제를 더 싸고,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원래 블루오션이라는 게 한 번 앞서기만 하면 뻘짓만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쭉 앞서거든요. 차라리 확 풀어버리시고 생산력으로 쇼부 치시죠. 그럼 경제는 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재경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가로등에 꼬인 나방이 그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는 손을 휘저어 벌레를 내쫓았다.
한승문은 여전히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다. 유재경이 이제는 경악에 가까운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그게…… 그게 과연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뇨. 어려울 겁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럼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승문이 지팡이를 짚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지팡이를 짚은 정치인은 벤치에 앉은 유재경을 내려다보며 살짝 웃었다.
“중요한 건 희망이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향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굳건하다면 국가는 이어집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생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한승문은 자신의 넥타이핀을 빼 유재경에게 건넸다. 정계에 파다한 소문과 오랜 공직생활에서 우러나온 눈치를 통해, 그는 이 넥타이핀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님을 직감했다.
“……녹음기입니까?”
“원옥분 대통령님께 전해주십시오. 제가 국회에서 한 건 터뜨리면 곧장 탄핵소추를 발의하시라는 부탁도 전해 주시고요. 적절한 시기가 되면 의결 전에 알아서 사임하겠습니다.”
“사임이라니요! 시장님이 아니면 대체 누가 서울을……!”
“국민의 의견에 반기를 든 공직자는 물러나는 선례를 남겨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의 인구가 폭증할 테니 선거도 어려울 테고요. 200석 넘게 얻으셨을 테니 서울시장을 다시 임명직으로 돌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아…….”
“현직 서울시장이 정부에 반기를 들었으니 명분도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무부시장 감 철은 권한대행으로서 적절하고, 차기 임명직 서울시장으로는 경제를 아주 잘 알고, 관료 사회와 친밀한 사람이 좋겠군요.”
넋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재경의 손아귀에 넥타이핀을 확실하게 넘겨준 한승문은, 마지막으로 한번 싱긋 웃고서는 뒤돌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믿겠습니다.”
그러고는, 헌터 옷을 입은 정치인은 노란 가로등의 불빛 아래를 지나, 공원 저편의 그림자 속으로 훌쩍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