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88화 (288/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88화

EP 44–개문 開門(7)

신의주는 중국과 한반도를 이어주는 관문 도시로 옛날 옛적 김씨 왕조의 신정神政 체제 시절에도 자본가가 아파트 건설을 추진할 정도로 세속화된 도시였다.

게이트 시대의 신의주를 이끌어가는 서북 제일의 일류기업인 <평안군벌> 또한 지역 전통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단둥에 괴수 사태가 발발하며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신의주까지 위기에 처했을 때.

평안군벌은 지역 깡패답게 주민들을 (겉으로나마) 지켜주지 않고, 대기업답게 회사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기민한 처세를 보여주었다.

돈부터 들고 도망쳤다는 뜻이다.

“딸라! 딸라만 챙겼으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날래 날래 움직이라우!”

“우린 화물차하고 보총 먼저 챙긴다. 총만 우리 손에 있으면 다른 건 언제든 되찾아 올 수 있지비…….”

남한의 전직 대통령인 Y모 씨가 ‘동네 조폭보다 조금 더 체계적인 깡패들’이라고 평가한 군벌 패거리가 이토록 신속한 기동을 보여줄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평안군벌은 본디 중국과의 무역으로 성장한 대기업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일에는 급행료가 필요하다는 건 조선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

단둥 지역 중국공산당 간부들과 끈끈한 인정賂物으로 맺어져 있던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단둥에 이상사태가 발생했다는 첩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물론 공산당 간부들이 소식을 전한 진의는 평안군벌더러 빨리 도망치라는 소리가 아니라 빨리 나부터 좀 구하러 오라는 소리였지만, 훌륭한 비즈니스맨은 정보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법.

그렇게 평안군벌이 고위직부터 차례를 지켜 체계적으로 대피한 신의주는 어떤 무장 병력도 없이 민간인들만 덜렁 남아버린 꼴이 되었다.

그 결과, UN군이 신의주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 * *

사회는 인간과 인간이 엮인 거대한 그물망이다. 그물망을 엮어주는 접착제는 신뢰다.

작게는 과일가게 가판대에 올라온 아침 사과가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부터, 크게는 내 세금을 받아가는 놈들이 언젠가 날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까지.

그런 신뢰가 모여 사회를 이룬다.

이러한 시각에서 평안군벌의 후퇴는 신뢰로 이루어진 거대한 젠가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나무블록을 뺀 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탑은 이제 무너지는 일만 남았다.

그 탑의 이름은 북한이다.

[절대 평안도로 오지 마시라요. 시꺼먼 괴수들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면서 난장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북 사람들 전부 보따리도 못 챙기고 평양으로 피난 가는 중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동포들은 절대 평안도로 오지 마십시요…….]

[신의주에 계신 어머니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 영상을 보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이곳은 신의주 인근의 야산입니다. 저 아래 돌아다니는 시꺼먼 것들이 전부 괴수입니다. 새벽나절에 평안군벌이 전부 신의주를 떠난 날, 저놈들은 압록강에서 올라와서…….]

[개핏줄물려받은 평안군벌놈들 언제고큰벌을받아 모조리뒈질것이다 애미애비자식을모조리를단검으로회쳐서갈아죽일 씹새끼들아 언젠가하늘벌이 찾아가 신의주를버린대가를 피눈물로치를 것이다]

공포는 랜선을 타고 번졌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수천만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어 군벌에게 통치를 위임한 와중에도 스마트폰 보급 정책은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인 한국 정부의 쾌거였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법치국가는 법률가가 조율하며, 법률가는 재벌의 후원을 받고, 재벌의 심장은 반도체 산업이었으니까.

몇 세대 이전의 구닥다리 염가 스마트폰에 ‘알뜰폰’, ‘국민폰’, ‘인민폰’ 따위의 이름을 붙여 북한에 팔아먹었던 ‘정보화’ 정책은 북한 대중을 통제와 검열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던 북한 인민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쏟아지는 가짜 뉴스에 극도로 취약했다.

인터넷만 보면 이미 신의주는 지옥이 되었으며 평양까지 위험하고 함흥군벌은 사람들을 쏴 죽이고 있는 데다 남조선 정부는 피난민을 못 내려오게 틀어막는 중이었다.

물론 사실과는 다르다.

신의주는 지옥이 되었지만 UN군이 도착해 인명구조를 시작했고, 평양은 UN군의 사령부이며, 함경도에서의 학살은 함흥군벌이 아니라 빅토르 리 상장이 북한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오인한 블라디보스토크 군벌의 일탈자들이 저질렀으나 외교적 문제 때문에 일단 덮기로 했고, 남조선 정부가 피난민들을 못 내려오게 막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물론 한국 정부는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다른 조치를 취했다.

“인터넷 끊어.”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에 있다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뛰쳐나온 원옥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박 장관. 북한 지역 인터넷 전부 차단시키고 이제부터 북한에는 긴급재난문자만 전송되게 만드세요.”

“가, 각하……! 통신사에서 함부로 고객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끊으라면 끊어.”

주체조선의 부활을 염원하는 폭탄 테러 당시 잘못 넘어지며 꼬리뼈가 깨진 원옥분 대통령은 푹신하고 두꺼운 방석이 있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전문가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으로 항상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위적인 카리스마를 조성하고 다니곤 했던 그녀였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원옥분 대통령은 요양원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병색이 완연한 노인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는 뭔가 달관한 듯한 태도로 익숙하게 NSC를 지휘했다. 평소와 같은 말투로 내려오는 대통령의 지시는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었다.

“재난안전문자를 최대한 잘 활용해서 난민들의 피난 경로를 잘 조율해 봐요. 이미 인터넷에서 북쪽에 난리가 났다는 게 퍼질 대로 퍼졌으니 이북 피난민이 못해도 수백만은 내려올 텐데 그걸 다 한곳에 모아놓을 거야? 선양에서 나온 놈. 감염형 개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퍼지는지 규명이 안 됐는데 난민들을 남한에 들여보냈다간 난리가 날 수도 있어요. 일단 개문 사태 초기에 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 소도시를 이용해 각지에 거점을 형성하고 난민을 최대한 분산해서 수용합시다. 국민 정서도 있으니까 어지간하면 남한 지역에 들여보내지는 말고…….”

원옥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선출된 대통령이었고, 그들을 수호할 헌법적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헌법은 북한 주민들 또한 대한민국 국민임을 명시한다.

그러나 원옥분은 검사이기도 했다. 검사는 법치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종류의 법률가이고, 직업의 본질을 따져 보았을 때 통치자에 가깝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거의 평생을 보낸 원옥분 대통령은 사회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은 자본가와 법률가의 합의하에 통치되는 나라였다.

나머지는 전부 들러리다.

언론권력조차 재벌과 공권력의 사이에서 간을 보며 조금이라도 권력을 더 받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기일 뿐.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달 같은 존재다. 스스로 태양 같은 권력을 가진 주체는 오로지 재벌과 법률가뿐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정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법률가 사이의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민중 개개인은 똑똑할 수 있지만 대중은 결국 어느 정도의 관성을 지닌다. 관성은 곧 습관이고, 습관을 지닌 자는 공식대로 움직인다.

그 공식을 아는 사람은 대중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 나라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다스려져 왔다.

따라서 대중은 변수가 될 수 없다.

통제할 수 있는 자들은 변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선거는 대중이 스스로에게 주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연례행사 이상이 아니다.

그것이 원옥분 대통령의 상식이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다스리는 국가이고, 그 핵심 특권층의 이권만 보장한다면 뒤탈이 없고, 나머지 대중들의 여론은 방법만 안다면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러니 모두가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떠는 와중에도 원옥분 대통령은 명확히 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대통령 노릇만 두 번째인 원옥분의 상황제어능력이 NSC에서 빛을 발했다.

“감염형 개체…… 그게 남한에 넘어와서 한 사람이라도 죽는 순간 정권은 무너지는 겁니다. 우리는 방역 실패의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 명심들 하세요.”

최우선 목표. 남한의 방어.

아니, 정권의 방어.

“경제 위기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수천 명이 죽는 것보다 라면 가격 올라가는 게 더 치명적일 수도 있어요. 북한은 외국이지만 라면은 내 입에 들어갈 거 아니야. 라면값 100원 올라갈 때마다 한국 국민 100명 정도 굶어 죽는다고 생각하고 식량안보부터 확보해요. 호주 북부에 사놓은 농장들도 생산성 최대한 유지하고…….”

정권 지지율 방어를 위한 쌀값 통제.

“김 비서, 몇 시간 있다가 대국민담화 할 건데 연설문 좀 준비해봐. 뭐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괴수가 어떻니 이번 사태가 어떻니 지껄이다 나중에 망신당하지 말고, 일단 나라가 어려우니까 다들 힘을 합치자는 내용으로. 15분 분량.”

국수주의 고취.

“이제부터 사태 해결될 때까지 보도지침 체제로 변경합니다. 조 수석, 당신이 맡아서 너무 강압적으로 밀고 나가지는 말고,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서 데스크 통제 권한 받아와요. 지들도 눈이 있는데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는 알겠지…….”

언론 장악.

“제주도에 있는 애들 만주에 돈 많이 부었다면서. 그거 우리가 중국이랑 협상해서 나중에라도 되찾아 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미리 언질 좀 줘봐. 이거 사태 다 끝나고 만주개발계획 취소되면 나라에서 허가해 줄 테니까 민간주도개발도 널널하게 풀어주겠다고…….”

재벌 회유.

“당대표한테 국회에 특별위원회 하나 설치해서 여야가 적당히 치고받으면서 이슈몰이 좀 하라고 그래요. 청중엽 대표 그 인간도 낙선했다지만 아직은 임기 중이잖아. 적당한 직함 주고 앉혀서 체면치레라도 좀 하게 해주자고. 아니면 특별위원회 구성에서 협상력이 돋보이게 연출 좀 해주던가.”

정치권 회유.

“예, 알겠습니다, 각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해 식은 땀만 흘리며 앉아 있던 장관들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원옥분 대통령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지시에 안심하며 평정을 되찾았다.

가장 위에서부터 내려온 체계적인 명령에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각 인사들 또한 국가의 부품이 되어 움직이며 안정을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옥분 대통령이 북한을 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 * *

“버렸네.”

나는 원옥분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책을 확인한 소감을 내뱉었다.

TV 화면 속의 원옥분 대통령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게이트 사태의 국난이 또다시 한반도에 닥쳐왔으며, 우리는 또다시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희뿌연 눈이 카메라를 직시했다. 칼자국이 가로지르는 매서운 눈빛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낼 것입니다. 새 시대의 파도가 우리에게 밀려온다고 한들, 우리는 쉽사리 밀려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UN군 사령부가 다시 이 땅에 설치되었고, 국군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맹히 북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나는 원옥분 대통령의 연설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들어보았다. 그중에 ‘북한’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있었다. 정부의 지침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난민들을 철저하게 막아내는 방향으로 설정될 것이었다.

“…….”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시장실에 앉아 짤막하게 생각하고서 현실로 돌아왔다. 이 시국에 서울을 비우고 있다가 뒤늦게 찾아온 내게는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울시청에 도착하자마자 쏟아지는 간부들의 원성과 함께 업무 폭탄을 맞았다.

“시장님, 수많은 피난민들이 지하철을 통해 서울로 오고 있습니다. 군벌들이 점유한 개성시에도 밤새 총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만주에 파견된 헌터 길드가 제멋대로 후퇴하고, 고위 헌터들이 통제를 어기고 전장에 뛰어뜨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헌터들이 정부 시책을 자꾸 무시하고 있어요!”

“방금 주식 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증시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데…….”

정치를 너무 오래 하면 생기는 부작용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일단 나한테 얘기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거였다.

문제는 그 착각이 가끔 진짜일 때가 있다는 것. 나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해주고, 해결 안 되는 문제는 원옥분 대통령에게 떠넘기며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부품이 되어 행동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유럽에서 방문한 전문가들이 괴수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저명한 괴수학자가 평양 UN사령부에서 공식적인 브리핑을 진행했다.

“심양 제2게이트에서 나온 액체형 기생체, 아니, 변이체는 감염형 개체가 아닙니다.”

“다른 생물을 감염시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왜 그게 감염형 괴수가 아니란 말입니까!”

“저 괴수는 다른 유기체와 접촉하는 순간 급속도로 소화를 시켜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일 뿐이지, 어떤 숙주에 기생하며 감염을 퍼뜨리는 종류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 괴수에게 감염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석은 중국 정부 일각에서 떠도는 <단둥 핵폭격> 논의를 주류 의견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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