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87화
EP 44–개문 開門(6)
단둥丹东은 신의주과 맞닿은 국경도시로, 가끔 북한 간첩들이 사람을 몰래 납치해 간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살기 좋은 도시였다.
북한이 가끔씩 국경을 걸어 잠글 때마다 지역경제가 파탄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경제도 나름 괜찮았다.
심지어 국경도시인 탓에 사복경찰이 널려 있었으니 공산당 욕하면 바로 공안에 끌려갈 정도로 치안도 좋았다.
총체적으로 동네가 좀 엿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문 사태가 발생하면서 단둥은 동북아시아의 핵심 물류 허브로 거듭났다.
게이트 사태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발전이 보장되는데, 심지어 해로가 막히면서 중국과 한반도의 모든 무역이 단둥을 통하게 된 것이다.
부패와 무능으로 자주 힐난 받는 중국공산당이지만, 정부가 작정하면 대도시 하나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저력이 있다는 건 선전深圳이라는 도시가 이미 증명했다.
경제특구 지정, 행정적 편의 부여, 신도시 건설, 그리고 해외자본 유입.
선전의 전철을 밟으며 대도시가 된 단둥은 유례 없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 * *
개문 사태가 발생한 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괴수의 모습에 썩 익숙하지 못한 시민들은 많았다.
당초에 괴수와 마주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기도 했거니와, 매스컴에서도 괴수를 직접적으로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정부가 고용한 군중심리학자들은 사회 안정을 위해선 국민들이 옛날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상에 새롭게 등장한 비현실로부터 대중의 인식을 괴리시키라는 지적이었다.
그런 지침에서 수많은 정책이 파생되었다.
파산을 앞둔 유튜브의 공기업화,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거주지 분리, 야간 소등 정책 폐지, 초능력 보도 통제, 헌터의 연예인화, 등등.
그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괴수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뉴스에서 괴수의 사진과 영상을 없애고, 괴수를 귀여운 SD 캐릭터로 바꿔서 보도하자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그 덕에 정부의 언론 통제력이 남아 있는 선진국에 사는 시민들은 괴수와 헌터를 반쯤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흑인은 백인에게 복종해야 하고 여자가 투표를 하면 안 되는 게 상식이었던 세상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상식을 교묘히 바꾼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게이트 사태의 피해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어본다면.
그들이 연상하는 건 도시를 습격하는 무시무시한 괴수가 아니라, 도시를 떠돌며 경제를 망치고 치안을 어지럽히는 난민들이었다.
“하여튼 난민들이 문제야!”
단둥 시에 거주하는 48세의 주부 가오이팅은 상추를 씻으며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다.
마트에서 상추를 사오는 길에 구걸하는 난민들을 거칠게 뿌리쳤다가, 분노한 거렁뱅이들에게 한 대 맞을 뻔했기 때문이다.
자식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이 화들짝 놀랐다.
“진짜 맞을 뻔했어?”
“그랬다니까요!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요즘 걸뱅이 새끼들 진짜 막나가네…….”
가오이팅의 남편은 콩기름 만드는 회사에 콩을 갖다 파는 평범한 자영농이었지만, 단둥시 부동산 폭등으로 떼부자가 된 졸부였다.
그 덕에 신의주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었지만, 끔찍한 실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
그나마 막내딸이 집구석에서 끄적이는 성인웹툰인지 뭔지가 그럭저럭 팔려서 아파트 관리비는 낼 수 있었지만, 들어오는 돈은 없이 저금만 계속 까먹는 갑갑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런 그들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건 당연히 그들보다 못 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깎아 내리는 일이었다.
“저 거지 새끼들 공안이 싹 다 안 잡아가고 뭐하나 몰라. 맨날 행패만 부리잖아.”
“나 진짜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베이징에 물난리 났다던데 그것 때문에 난민들이 하필 이쪽으로 다 몰려와서…….”
“요즘 만주에서 뭐라도 한다잖아. 거기 땅 불하받으면 난민들이 북으로 가겠지.”
“당신도 농사 다시 지어볼래요? 만주로 가면 지원금도 준다던데.”
“미쳤어? 괴수 천지인 곳에 내가 왜 가. 나는 죽어도 단둥에서 죽어.”
“하긴 그래요. 어휴, 지긋지긋한 거지들 빨리 만주로 내보내야 하는데. 동네 땅값 떨어지기 전에…….”
장녀와 차남 사이에서 밥을 먹던 막내딸이 밥상머리에서 오가는 천박한 욕설을 못 견디고, 그나마 돈을 벌어오는 소녀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부모님을 틀딱이라고 매도하려던 찰나.
쾅 쾅 쾅-!
누군가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어찌나 거세게 문을 두드리는지 찬장에 놓인 물잔까지 덜컹거렸다.
그러나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과 상추를 씻던 가오이팅은 깜짝 놀랐을지언정 문밖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구걸하러 온 난민일 게 뻔했으니까.
“조용히 해!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해……!”
“아빠나 조용히 해요……!”
도시 면적에 비해 과도하게 몰린 난민들은 밥 한 끼만 달라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애원하며 온갖 집을 두드리고 다녔다.
길바닥에서 자다가 얼어 죽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중범죄에 휘말릴 바에는, 구걸이라도 하며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였다.
문제는 이게 사회현상이 되었다는 것.
만악의 근원은 역시 공산당이다.
최대한 돈을 안 들이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중국 정부는,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과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것이 바로 ‘밥주기’, ‘재워주기’ 캠페인.
난민들을 집에서 재워주는 것을 언론이 미담으로 포장하고, 중국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는 프로파간다였다.
그리하여 한때는 SNS에서 난민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같이한 인증샷을 올리는 챌린지가 유행하고, 예쁜 난민에게 밥을 대접했더니 결혼까지 이어졌다는 내용의 웹드라마가 흥행하기도 했지만.
그 프로파간다는 난민이 저지른 성범죄와 연쇄살인 몇 번에 완전히 무너졌다.
쾅 쾅 쾅-!
“어휴, 미치겠네. 언제 가냐…….”
“드라마가 다 망쳐놨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구걸이나 다니는 걸 미화하고 말야…….”
“엄마, 아빠……! 좀 조용히 하라고…….!”
중국 정부의 뻘짓은 난민들이 구걸을 좀 더 당당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심지어 난민들은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만약 집에서 재워주는 것을 거부하면 공안에게 찾아가 저자들이 정부 시책을 안 따르는 반동이라고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더럽게 풀리면 공안에게 뇌물을 줘서 범죄 혐의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가오이팅 가족이 밥 먹다가 말고 입을 꾹 다물고 숨죽이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난민을 집에 들여보내도 문제고, 썩 꺼지라고 호통을 쳐도 문제이니,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쾅-!
참다 참다 못 한 가오이팅이 상추를 씻다 말고 현관으로 향했다. 얼마나 욱했는지 수돗물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였다.
“문 뿌서진다! 이 개새끼야!”
“여보! 뭐해!”
“안 열어줄 테니까 안심해요. 욕이라도 한 사발 해줘야겠어.”
여전히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리는 가운데, 잔뜩 성난 가오이팅은 발걸음마다 쿵쿵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현관 렌즈로 밖을 내다보았다.
렌즈 너머로 온 핏줄이 검게 물든 괴인이 눈물을 흘리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입에서 혓바닥 대신 촉수다발이 튀어나와 뒤집어진 벌레처럼 발버둥치느라 말을 못 하고 있었지만.
괴인의 검게 물든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채로 살려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 가오이팅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자, 그녀의 남편이 서둘러 렌즈 너머를 확인하고서 말했다.
“여보, 애들 데리고 방에 들어가.”
“다, 당신, 당신은 저게 뭔지-”
“몰라. 괴수겠지. 별거 아냐. 별거 아냐…….”
가오이팅의 남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떠는 와중에도 두 딸과 아들 하나를 안방에 집어넣었다.
“뭐, 뭔데요, 아빠? 밖에 뭔데?”
“괴수야. 일단 빨리 신고해.”
“뭐? 괴수? 괴수가 왜 아파트에 나와!”
“소리 지르지 말고, 빨리 공안이든 헌터 길드든 국가안전부든 인터넷에 전화번호 검색해서 신고해라. 여기 주소부터 말하고. 알겠어?”
가오이팅의 남편은 아이들을 방 안에 숨기고 소파를 들어 낑낑거리며 문을 막았다.
가오이팅 또한 제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남편을 도왔다.
“당신도 안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문만 막고. 문만 막고 같이 들어가요…….”
“거, 참…….”
가오이팅이 상추를 씻기 위해 틀어놓은 수돗물에서는 어느새 검은 물이 나오고 있었다.
* * *
“캬아아악-!”
탕-!
압록강 철교의 방어선으로 달려오면서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치는 감염체의 머리에 총성과 함께 구멍이 생겼다.
조준경에서 눈을 뗀 여다솔이 뒤편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소리쳤다.
“고 투 더 브릿지! 고! 고! 런!”
단둥에서 탈출한 민간인들 상당수가 신의주로 넘어가기 위해 압록강 철교로 몰려들었다.
그 민간인들을 노리는 검은 점액질의 군체 또한 압록강 철교로 달려들었다.
사투가 시작되었다.
탕-! 탕-! 탕-!
여다솔은 차분하게 소총을 쏘며 다리를 향해 달려오는 민간인과 이곳을 향해 달려드는 감염자를 구분해 사살했다.
여다솔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다리를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사람들 중, 기생체에 감염된 사람들만이 실 풀린 인형처럼 고꾸라졌다.
저격이든 식별이든 초인적인 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다솔이 제거할 수 있는 건 검은 액체에 감염된 기생체들뿐.
점액질 자체는 총알을 맞아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걸 해결한 건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헌터들이었다.
“아임 싸이커! 유 옵저버!?”
“옵저버 앤 슈터! 스나이퍼! 스나이퍼!”
“오케이! 오케이! 아임 싸이커! 앤 쉬 이즈 하이드로! 앤 히 이즈 나이트!”
헌터의 포지션을 규정하는 용어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다며 온갖 욕을 퍼먹지만, 이러나저러나 현장에서는 잘 통하니까 표준이 된 거였다.
즉석에서 파티를 구성한 헌터들은 압록강 철교를 틀어막고 지연전을 펼쳤다.
이들은 정식으로 파견된 헌터들이 아니라, 호텔에서 쉬다가 긴급사태에 급하게 뛰쳐나온 개인들이었다.
선양 봉쇄선의 붕괴 이후 단둥의 감염 확산까지는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단둥에서 항전하는 헌터들은 마침 도시에 있었거나 주변에서 급하게 달려온 의용군들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한국 출신 헌터들이 난전에서 이점이 있었다.
한국인 헌터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강했던 건 아니다.
한국 고위 헌터들은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야! 정식아!”
“형이 왜 여깄어요!”
“선양 방위선 박살나고 후퇴할 때 민간인들 몇 명 단둥에 데려다주는 김에……. 아 지금 그게 중요해?!”
“압록강 다리에 여다솔 있어요! 그 친구 총알 떨어지면 바보 되니까 형이 옆에서 커버 좀 해줘요!”
“시청 앞 호텔에 김수중 아저씨 있더라!”
“내가 거기로 합류할게요!”
선양 봉쇄선 붕괴 이후 후퇴한 각국 헌터들 상당수가 단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덕에 도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검은 점액질에 잠식된 괴수와 사람들이 기괴하게 변이하며 날뛰긴 했지만, 애초에 만주 탈환을 위해 모인 헌터들은 수준 높은 베테랑들이었다. 그 많은 돈이 오가는 판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낄 수는 없었으니까.
그들 모두가 숭고한 마음으로 시민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임한 건 아니고, 그저 갑작스런 습격에 놀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그들이 벌어준 시간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
남쪽 방향의 지평선에서 자욱한 먼지구름과 함께 수많은 미군 전차와 장갑차가 다가왔다.
“단둥에 봉쇄선을 형성한다!”
UN군이 단둥에 도착했다.
* * *
6.25 전쟁 당시 설립된 UN군 사령부의 사령관은 전통적으로 주한미군 사령관(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맡는 게 관례였다.
그렇기 때문에 UN군 사령관이라는 지위는 미국과 관련이 없음에도 미군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국경없는 기사회의 총재, 노아 뤼미에르의 이름값이 더해지니 UN군 사령부는 졸지에 동북아시아의 전권을 통솔하게 되었다.
주한미군, 미 7함대, 대한민국 국군, 국경없는 기사회, 러시아 극동군벌, 그리고 선양 봉쇄선에서 후퇴한 중국군까지 UN 사령부에 합류했다.
“적어도 이번 주는 우리가 이 사태의 컨트롤 타워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 주부터는 어떻게 되죠?”
“각국 지도부가 정신을 차리겠지요. 내가 UN에 작전권을 넘기다니, 잠깐 미쳤던 건가?”
농담은 아니었지만 뤼미에르는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웃었다. 몸을 들썩일 때마다 코트에 달린 훈장이 쇳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낭비할 시간도 없다는 듯이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사령관실 책상에 걸터앉은 그녀는 허공에 자연스레 손짓하며 토의를 시작했다.
“장관. 감염형 개체의 출현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인공적인 게이트가 열렸다는 일입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검은색 게이트라죠?”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쪽에서 열었다는 거죠. 닫을 수 있는지, 애초에 들어갈 수는 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나온 괴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5번째 S급 괴수라고 난리던데요.”
“어떤 괴수든 등급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C급 괴수라도 번식력만 뛰어나면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고, S급 괴수라도 공격대가 침착하게 대응하면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어요.”
뤼미에르는 굳은 얼굴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길은 선양과 단둥, 그리고 압록강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보다 더 최악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압록강을 타고서 퍼진 괴수가 한반도 전체에, 아니, 바다로 흘러들어 황해 전체로 퍼진다면…….”
“그건……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까?”
“장관, 게이트 전쟁에서 가능성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 일입니까?”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요.”
“아무래도 지금 당장 행동해야겠습니다.”
파리 방어전과 상트페테르부르크 후퇴, 북프랑스 카타스트로피와 베를린 탈환까지.
노아 뤼미에르는 현존하는 게이트 전쟁의 전문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괴수가 물을 타고 번집니다! 압록강 상류와 하류를 장악하고 강의 흐름을 막아야 합니다! 비행이 가능한 헌터들은 당장 이동하십시오! 감지윤 헌터는 압록강을 메울 수 있습니까?”
“괴수가 이미 만주 일대에 퍼진 이상 완전히 사멸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봉쇄에 집중하지 말고 민간인 구조에 집중하세요!”
“이 넓은 지역에 봉쇄선을 형성하느니 만주 인근의 산과 호수를 전부 태워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불로 방어선을 형성하지요. 화염술사들은 제가 짚어주는 좌표로 이동해 산과 들에 불을 붙이십시오.”
뤼미에르는 획기적인 전략과 기책을 내며 전황을 뒤집지는 않았지만, 오랜 전훈으로 하나의 실수도 없이 방어선을 구축했다.
나는 각국의 장성들과 고위 헌터들을 불러모아 열정적으로 단둥 탈환을 논의하는 뤼미에르의 뒷모습을 보며 평양 사령부에서 빠져나왔다.
사령부 바깥에서 피채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님.”
“그래.”
이제 뤼미에르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줄 차례였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에 있었다.
나는 피채원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국군이 길을 열어준 덕에 관용차는 텅 빈 도로를 질주했지만, 도로 양편으로는 수많은 난민의 행렬이 남쪽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불안에 가득 찬 얼굴로 피난을 가는 수많은 북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이어질 일들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
올해 겨울은,
아무래도 가장 지독한 계절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