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84화 (284/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84화

EP 44-개문開門(3)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너무 상투적인 관용구라 대개 별다른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말이지만 막상 늙어보니 원옥분 대통령은 이 말이 그토록 와 닿았다.

노쇠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건강한 정신이란 고여 있지 않은 정신이다. 끝없이 무언가를 탐하고 바꾸려고 하며, 부딪히고 깨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앉았다 일어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노인이 무슨 사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바꾸겠는가. 계단 한 칸 올라가는 것도 버겁다.

늙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끄응.”

젊었을 때는 얼굴에 자상刺傷을 입고서도 곧장 기자들 앞에 피 묻는 붕대를 두르고 나와 허세를 부렸던 원옥분이지만.

폭탄 테러 당시에 뒤로 넘어지며 꼬리뼈가 깨진 원옥분 대통령은 아직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굳어버린 온몸의 근육이 뒤늦게 풀리며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은 덤이다.

병상에 누운 그녀는 지금 누군가 온몸의 근육을 잘근잘근 쥐어짜는 것 같은 근육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나랏일이다.

* * *

“각하, 서울 지하철에 숨어 있던 8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체포 중 사살되었습니다.”

“……북한 독립군?”

“그…… 분리주의 반군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듯싶습니다.”

“하하하!”

병실 침대에 누워 보고를 듣던 원옥분이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팔에 주렁주렁 달린 수액 주입관이 웃음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흔들렸다.

그러다 결국 바늘이 빠지며 손목에서 피가 송송 솟아오르자 비서실장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각하!”

“아니, 웃기잖아 이게. 우리나라가 이제 독립군을 때려잡는 나라가 됐어.”

대한민국에서 ‘독립군’이란 어떤 일종의 신성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신화가 외세를 무찌른 독립군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정부와 문민정부를 가리지 않고 현대 한반도를 스쳐 간 모든 정부는 체제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독립군의 이야기를 신성시했고, 식민지에서 자생한 민족주의는 그렇게 한국인을 이루는 핵심적인 이념이 되었다.

그리고 독립군이 세운 나라가 독립군을 때려잡는다는 것. 원옥분 대통령은 그 아이러니함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만주에 군대 보내서 괴수 없애고 땅 고르고 농사짓고…… 그게 다 북한 안정을 위한 일인데 거기다 대고 폭탄을 던지다니. 어지간히 못 배운 놈들인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각하! 큰 그림을 못 보고 무작정 폭탄 테러부터 저지른 테러범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체조선이나 주워섬기는 주사파들이 뭘 알겠습니까? 백승일 경호처장이나 처지가 딱하게 됐지요. 요사한 사술에 당해서…….”

“거꾸로 말하면 이북 사람들은 자기네가 못 살겠는 이유가 죄다 남조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겠지. 평생을 그렇게 배우고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참으로……! 공산당 놈들이 남기고 간 민족적 상처가 정말 끔찍합니다……!”

원옥분 대통령이 혼잣말을 할 때마다 비서실장이 입안의 혀처럼 추임새를 넣었지만 대통령은 비서실장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놈은 자기 줏대라고는 없이 남 비위나 맞출 줄 아는 놈이었으니까. 물론 그래서 비서실장에 앉혀 놓았고…….

원옥분 대통령이 믿는 건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주변인의 조언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뿐이었다.

검사는 원래 수학이 아니라 사람을 파헤치는 직종이라, 감으로 때려 맞추는 일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리고 베테랑 검사인 그녀가 보기에 정권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북한 빈민들의 반한감정이나 만주에서 오가는 어마어마한 이권들 따위가 아니었다.

정권이 조심할 것은 언제나 국민들뿐이다.

“만주 진격은 어차피 중국 놈들 비위 맞춰주려고 끼어든 사업이야. 김 총리한테 우리나라 군인들 괜히 죽어 나갈 일 만들지 말라고 그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거지로 끌려 온 것도 억울한데 북으로 끌려가서 죽으면 남은 가족들 심정이야 오죽하겠어?”

“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만주고 지랄이고 그 동네에서 우리 군인이 1천 명 이상 죽으면 현 정권은 그대로 엎어지는 거야. 펜대 잡은 놈들도 종종 불러서 잘 다독여 봐. 정부에서 알아서 조심할 테니까 전사자 보도는 어지간하면 하지 말라고.”

국민들도 지금은 만주 탈환이라는 명제에 홀려 있지만, 전사자 통지서가 날아오면 슬슬 정신을 차릴 예정이었다.

원옥분은 정치를 하며 아침에는 영웅이었다가 저녁에는 역적이 되는 케이스를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보았다.

조심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쓰레기가 되고 마는 법이다.

“시류를 잘 읽으란 말이야. 나야 뭐 임기 끝나면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되지만, 자네들은 계속 이 바닥에서 일할 거 아니야?”

“각하……! 이 무슨 황망한 말씀을……!”

“제주도 졸부 놈들이 만주에서 일 도와주면 땅 부자 만들어주겠다고 살살 흘리는 모양인데, 자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어? 내가 그래도 대통령인데 장관, 의원들보고 오까네 좀 적당히 처먹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자네가 비서실장이니까 단도리 좀 해. 지금 검찰청 애들이 국회를 무서워 할 것 같애? 내가 대통령인데? 처신 잘못했다가 골로 가는 거 한순간이야.”

“아, 알겠습니다, 각하.”

“쯧쯧…….”

원옥분 대통령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토목사업에 얽힌 내각 인사들의 부정부패 문제를 그렇게 단속하고서 병실 천장에 달린 TV로 시선을 옮겼다.

[속보, 국방당 203석…… 개헌선 확보]

그녀는 삐뚜름하게 웃었다.

대통령이 되어서 국민들을 이끌기는커녕,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였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정치라는 게 참 쉬운 듯 어려웠다.

* * *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국민당은 멸망했다.

“갸아아아악!”

“구와아아악!”

당사에서 총선 출구 조사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성난 당원들을 피해 우리 집으로 도망친 이호정과 양일호가 육성으로 낸 소리다.

한 놈은 현직 원내대표고 한 놈은 전직 초상관리위 간사였다.

“아! 100석도 못 얻은 게 말이 되냐고요!”

“개헌저지선! 개헌저지선을 잃어버렸어!”

“대체 테러가 뭔데! 테러가 뭔데 200석을 여당에 몰아줘! 이거 진짜 부정선거 아니에요?”

“원옥분이 3선 개헌을 하고야 말 거야!”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는 이호정과 원옥분 장기집권 의혹을 제기하는 양일호를 바라보며 나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두 손을 들었다.

“얘들아 진정해.”

“지금 진정이 되게 생겼어요?!”

“사퇴하면 그만이야.”

“…….”

“X된 건 우리가 아니란다. 다음 지도부지.”

청중엽과 상의했던 논리대로 어차피 선거 못 이기면 대차게 망하는 게 이득이었다.

이호정과 양일호는 순간적으로 ‘그런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여당은 누가 견제하는데요?”

“국방당이 사실 한 당이라고 보긴 어렵지. 공화당이랑 민주당이 합쳐져서 생긴 정당 아니냐. 내부 계파끼리 서로 견제하지 않을까?”

“일본 자민당이 딱 그 꼴인데, 그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지지 않을까요?”

“……X된 건가?”

“그걸 이제 아셨어요?”

“아냐, 아냐, 청중엽 그 인간도 생각이 있겠지. 맨날 팬클럽 데리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양반이긴 해도, 나름 대기업이랑 가장 끈끈하게 얽힌 로비스트 아니냐.”

마침 청중엽 당 대표가 국민당 지도부 단톡방으로 한식당 주소를 보내줬다. 당장 모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호정, 양일호, 그리고 내가 한 곳에 모여 있었으니 청중엽이 오기로 했다.

그는 자기 측근인 정책위의장과 당 대표 비서실장을 데리고 (양판석이 차명으로 선물한) 내 부산 별장으로 찾아왔다.

“청중엽 대표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아, 아아…… 한승문 시장님.”

나만 보면, 아니, 누굴 만나든 일단 호탕하게 웃고 보던 청중엽은 오늘따라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눈에 살짝 맛탱이가 갔다고나 할까.

당 대표가 맛이 간 덕에 공식적으로는 당 지도부조차 아닌 내가 대표로 상황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에…… 존경하는 국민당 지도부 여러분. 총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건 여러분들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 닥친 여러 횡액 때문에 놀란 국민들께서 정부에 힘을 몰아주셨기 때문이라고 본 시장은 생각을 합니다.”

“…….”

“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 이후로 국가 수뇌부를 향한 위협이 가장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습니까? 총선 패배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난 극복을 도울 다음 지도부를 위해 총사퇴를 결의해야 할 듯싶습니다.”

청중엽이 데려온 일행들과 우리 측 인원들까지 합쳐서 도합 6명의 국회의원이 아파트 거실 식탁에 둘러앉았다.

조금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초상집 분위기라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중엽 대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 대표님. 총선 패배는 기정사실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국민들께서도 폭탄 테러라는 참사 때문에 여당에 힘을 실어주신 것 아니겠어요? 대표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걸 위로로 들으면 바보 머저리다. 나는 지금 청중엽에게, ‘저번엔 망하면 망할수록 이득이라더니 왜 이리 죽상이냐’고 물어본 거였다.

청중엽도 아직 이성은 남아 있었는지 내 질문에 올바르게 답변했다.

“예. 고맙습니다. 다만…….”

“다만?”

“제가 아무리 부산에 출마했다지만, 그렇게 지역 개발 사업을 몰아줬는데도…….”

나는 멘탈이 나간 사람한테 대고 ‘설마 낙선했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악마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 대신 청중엽의 뒤편에 앉은 정책위의장에게 눈빛으로 질문하니, 정수리가 휑한 정책위의장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젠장…….’

청중엽 낙선.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주제에 제주도에 살 때부터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낙선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재벌 자본을 등에 업고 자기 지역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처바른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도 기본적인 이해득실은 따지기 때문에 그 정도로 돈을 처바르면 어지간하면 당선되기 마련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폭탄 맞고 죽을 뻔한 건 ‘어지간한’ 일이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테러범이 외친 ‘주체조선 만세’라는 문구가 이번 선거에서 참 큰일을 한 모양이다.

“…….”

“…….”

청중엽과 견원지간이었던 이호정조차 그를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쯤 되면 ‘어떻게든 정상회담에 훼방을 놓았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올 때가 되었으니, 나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일단 도망치기로 했다.

“그…… 죄송합니다. 갑자기 서울시 긴급회의가 있어서요.”

“…….”

아무도 안 믿는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가끔은 얼굴에 철판 깔고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는 법.

나는 재빠른 결단력으로 집에서 빠져나와 부산에서 세종시까지 그대로 도망쳤다.

그리고 내가 서울시장 집무실에 도착했을 즈음, 국민당 지도부는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총사퇴를 발표했다.

* * *

청중엽은 좀 딱하게 됐지만 이호정은 지역구 방어에 성공했고, 양일호도 설진운의 선거운동 덕분에 강원도 속초에서 당선되는 데 성공했다.

국민당은 즉시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었고, 새롭게 등극한 비대위원장은 당연히 수도권 난민운동계열 인사였다.

“재생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이뤄내겠습니다. 거대 여당의 폭주를 제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하여…….”

그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아예 난민운동 인사들로 가득 채워, 수도권 난민 재산복원 요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나, 국방당이 행정안전위원회와 초상관리위원회를 각각 이호정과 양일호에게 넘기는 바람에 당권 장악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물론 한승문 시장이 또다시 국민당을 배반했다고, 이건 명백한 해당 행위이므로 당 윤리위에 넘기겠다고, 서울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난리를 치긴 했지만, 그건 어차피 맨날 하는 소리라 사람들도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다.

그리고, 총선에서 우리만 조진 게 아니라, 난민운동권도 같이 망했다.

아마 비대위원장은 난민들 재산복원이고 뭐고 운동권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이나 신경 써야 할 터였다.

원래 운동권이나 시민단체의 권력관계라는 게 좀 음습하고 복잡한 법이다. 내가 민주당 출신이라 아주 잘 안다…….

어쨌거나, 망한 자가 있으면 흥한 자도 생기는 법.

이번 총선의 최고 수혜자는 원옥분 대통령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세종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공무원사회 가족 여러분!”

불과 몇 년 전,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경제관료는 이제 수많은 지지자가 자신만 바라보는 와중에도 시원하게 주먹 쥔 손을 하늘로 치켜드는 쇼맨십을 보여줬다.

“문제는 경제입니다! 경제는 유재경입니다!”

유재경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충청도에 정착한 수도권 난민들의 표심을 장악하고 있던 국민당 난민운동권을 쓸어버리고, 경제관료 출신의 전문가들을 국회에 입성시키며 충청도를 완벽히 장악했다.

이로써 200석의 거대 여당인 국방당에는 공화당계와 민주당계 말고도, 유재경계 혹은 충청계라는 새로운 파벌이 등장했다.

하나 중앙정계의 흐름이 거센 물살에 휘말린 것처럼 격변하는 것도 결국 나와는 다른 분야의 일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서울시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서울시는 지금 총선에 신경 쓸 새도 없을 정도로 긴급한 상황에 부딪혀 있었다.

“만주에서 마석 공급이 이루어지면 서울시에 산적한 게이트에서 나올 마석들의 가치가 폭락하게 됩니다.”

서울시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두 모인 가운데, 건설과 도시 계획 업무를 담당하는 제2부시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현재 진행 중인 초상혁신도시계획은 게이트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드는 계획이고, 그 목적은 바로 마석, 그리고 게이트에서 창출되는 수많은 일자리입니다. 하지만 만주가 새로운 마석경제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면 헌터들이 서울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

“헌터들은 시베리아에 널린 괴수를 사냥하러 북쪽으로 떠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서울시에 있는 게이트에서 활동할 헌터들의 수효는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혹시 모를 게이트 재해에서 서울이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시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게이트 경제의 중심지가 서울이 아니라 만주가 되어 버린다면…… 헌터들이 서울이 아니라 만주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울에 있는 게이트를 전부 폐문하는 게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도시 계획의 방향을 수정해야 합니다.”

서울시 간부들의 피드백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이제 와서 게이트를 전부 닫아버린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재벌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 와중에 간신히 절충안을 내놓은 게 지금 방식인데, 여기서 또 도시 계획을 바꿔 버리면 시정의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그…… 의외로 저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헌터는 만주로 보내고 서울은 원래 계획대로 게이트 청정지대로 만드는 게…….”

서울시가 처한 상황은 간단하다.

온갖 부침 끝에 마석경제 부양하겠다고 게이트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막상 만주에 새로운 사냥터가 열리면서 헌터들이 전부 떠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건설업계의 주목도 만주로 향했다. 졸지에 유령도시가 되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무려 ‘서울’을 유령도시로 만들면 이 자리에 있는 공무원들의 커리어는 그대로 작살 난다.

나는 서울시장으로서 혼란과 공포에 빠진 공무원들에게 명백한 가이드 라인을 내렸다.

“기존 계획대로 갑니다.”

“시장님! 하, 하지만……!”

“만주가 마석경제 중심지가 되면, 서울은 망한다는 소리 아니에요?”

나는 말을 이어가는 대신 서울시 간부들을 평온한 눈빛으로 스윽 흩어봤다.

그러자 간부들도 서울시장에 대한 신앙심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서, 설마……!”

“내가 보기에 만주 탈환은 망합니다.”

“……!!!”

정무부시장을 맡고 있는 감 기자조차 말을 잇지 못하는 와중, 누구보다 서울 도시 계획에 진심인 제2부시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북부 방위선 계획이 실패한다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중국과 한국, 그리고 러시아 극동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인데도요?!”

나는 그 질문을 받고서 눈을 감았다.

내가 호주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UN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오스트레일리아 탈환 작전과 강대국들의 개지랄, 아니, 헤게모니 경쟁…….

군부와 헌터의 갈등, 온갖 기상천외한 괴수들의 습격, 현장을 모르는 첩보 기관의 뻘짓,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정치인의 압박…….

그 모든 것을 떠올린 나는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그냥 내가 비슷한 거 해봐서 알아요.”

“아……!”

“저거는 뭐…… 제대로 될 수가 없어.”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인민해방군이 선양 탈환에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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