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75화 (275/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75화

EP 43-인과응보(7)

산산조각난 도시에 산성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은 물방울이 잔해를 때리는 소리가 퍼진다. 누군가의 추억이 으스러진 채로, 조각난 도시는 흙탕물 위에 흐트러져 있다.

“염병할…….”

여도연은 흙탕물을 해치며 나아갔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검붉은 진흙이 발목을 부여잡는다. 피를 머금은 땅이다.

“여기가 의정부라고……?”

허망한 시선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한때 청춘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번화가는 이제 없다. 으스러진 콘크리트 사이로 찢어진 옷가지만 나뒹구는 폐허만이 있을 뿐이다.

대지진에 휘말린 도시의 모습이 이러할까? 먹구름 낀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는 이 잔해에 파묻힌 수많은 고혼孤魂 대신 울고 있었다.

그러나 감상은 여기까지다. 여도연은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 치안관의 상징인 검푸른 코트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앞머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빗방울.

인상을 찌푸린 여도연이 물었다.

“찾았냐?”

[아뇨.]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치안관 조정식이었다.

[분명히 사람 발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야, 인마. 방송 나가서 대한민국 최고의 탐색꾼이니 뭐니 지랄염병은 다 떨어놓고 이제 와서 모르겠다 그러면 어떡해?”

[저는 청각보다 후각이 발달해서 비 올 땐 힘을 못 써요. 시체 썩는 냄새랑 물비린내가 고루고루 섞였는데 사람을 어떻게 찾습니까? 우리 동네 멍멍이들한테 물어보세요. 걔네들도 여기서는 냄새로 사람 못 찾습니다.]

“세금 도둑놈.”

[아니, 시발…….]

여도연은 무능력한 헌터의 변명 따위는 듣지 않고 무전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

이곳은 의정부. 감염형 괴수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사람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란 말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때 나타난 괴수를 S급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위험성을 가졌다고 추정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때의 마력이 아직까지 남아 검은 비가 내릴 수는 없다.

당시 벌어졌던 대참사처럼 비에 맞은 인간이 좀비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 미쳐 날뛰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괴수에게 물린 사람은 재수 없으면 예비 감염원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이곳의 감염방식은 이미 연구가 끝났으니 괴수로 변해봤자 다시 인간으로 돌리면 되지만, 북한 같은 곳에서 감염이 퍼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참사로 이어질 터.

심지어 감염되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시 이성을 되찾게 만들더라도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라 이성을 가진 괴수에 가깝다는 사실이 안타깝게도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었다. 특히 미국 중부에서.

그게 바로 의정부에서 이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 하나에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의 고위 헌터가 세 명이나 출동한 이유였다.

여도연과 조정식은 어떤 성당 입구에서 합류했다. 개문 사태 당시 신을 부르짖으며 몰려든 사람들이 비극을 맞이한 장소였다.

“찾았냐?”

“못 찾았다니까요. 발소리는 들리는데 미치겠네 진짜…….”

“대체 무슨 발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여도연은 단순한 강체술사였지만 극한으로 발달한 운동신경은 초능력과 구분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도 발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탐색꾼인 조정식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에요. 분명히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요. 어! 봐봐. 지금도 들렸다.”

“귀신 들린 것 같으니까 적당히 해라. 나 오컬트에 약하다…….”

“아, 진짜라니까요!”

그때, 어둠에 묻힌 성당 안쪽에서 사람 얼굴이 스윽 튀어나왔다.

“저거 말하던 거냐?”

“저거 말고요.”

대롱대롱 매달린 얼굴에서 길게 삐져나온 혓바닥이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찐득한 검은 진액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봤을 때, 부릅뜬 눈알이 검은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면상은 사람 몰골로 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몸뚱이는 흉물凶物에 가깝다.

“씨발,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도시의 폐허에서 잔해더미를 해치며 손쉽게 시체를 파먹을 수 있도록 진화한 그 몸뚱아리는 지구에 존재했던 그 어떤 벌레나 짐승으로 비유할 수 없는 형태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발광체 대신 사람 머리를 내건 4족보행하는 초롱아귀 정도가 될 것이다.

보기 드물게 울상을 짓던 여도연이 조정식에게 짬을 때렸다.

“니가 잡아.”

“제가요? 저걸?”

“나, 오컬트에 약하다…….”

“아니, 뭔-”

“캬아아아악-!”

사람 얼굴을 달고 있는 괴수가 발톱을 마구 휘두르며 달려왔다.

그리고 탕, 소리와 함께 맥없이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K-2를 든 명사수가 말총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왔다.

“다들 괜찮아요?”

“정식이가 잡는다는데 왜 쐈어?”

“옷 더러워지니까.”

조정식의 치안관보 여다솔이었다. 꼬깃꼬깃한 교복 차림의 그녀에게 여도연이 핀잔을 줬다.

“너 교복 입을 나이는 맞냐?”

“1년 꿇었다고 생각하면 아슬아슬하게 군필여고생이라고 봐야죠.”

헌터들이 기벽 달고 다니는 게 하루이틀인가. 여도연은 옷차림에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아까부터 계속 억울해하던 조정식이 물었다.

“야, 너도 발소리 들렸지?”

“발소리? 조금 들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기분 탓인가 했죠. 아니면 귀신들이 떠도는가보다 싶었는데?”

“그만해라. 나 오컬트에 약하다.”

“도연이 언니는 뭐라도 찾았어요?”

“아니.”

여도연은 답 없는 발소리 논쟁은 관두고, 아까 쓰러진 괴수에게 다가가 구두 코등이로 몸을 뒤집었다.

흉측한 신체 일부분에서 인간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 본래 모습이 어땠는지 추측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거 원래는 사람이었던 거 맞지?”

“아마도요.”

“허. 처음엔 분명 사람 모양이었는데 몇 년 지나니까 완전히 괴물이 됐네. 미국 중부에는 이런 녀석들이 넘친단 말이지…….”

“의정부 감염은 그나마 사람 몰골을 유지하는 편이에요. 홍콩은 뭐랄까- 물린 사람들 전부 짐승으로 변하는 느낌이고, 몰도바는 식물성 감염이라 한 번 감염당하면 나중에는 버섯으로 변하죠. 미국은 우리랑 비슷하게 혈액에 퍼지는 감염이고요.”

“다솔이 너 외국물 많이 먹었구나.”

“히히. 예전에 우리 다 같이 런던 간 적 있잖아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랑 아직도 가끔 만나요. 그거 알아요? 숨바 섬에 사람 세뇌해서 노예로 부리는 초상능력자가 있다던 소문, 알고 보니까 최초로 발견된 정신감염 괴수였던 거?”

여다솔이 태연하게 주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어쨌든 거수자 수색은 어떡할까요? 이렇게 장대비가 내리는데, 축축한 옷을 입고서, 답도 없이 우울증 걸릴 분위기인 폐허를 계속 떠돌까요? 아니면 강원도에서 순두부찌개에 계란 풀어서 뜨끈하게 한 입씩 먹고 집에 돌아가서 샤워한 다음에 런닝맨이나 보다가 잘까요?”

“그냥 집에 가자고 땡깡을 부려라. 그게 질문이냐?”

“일개 치안관보가 어떻게 치안관님께 강요를 해요? 그냥 그렇다구요…….”

여다솔은 충분히 정규 치안관 자격을 받을 수 있는 고위 헌터였지만, 조정식 옆에 붙어다니고 싶어서 치안관보를 자처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당돌한 소리였다.

여도연은 여다솔의 정수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저번에 힘조절 못하고 갈긴 꿀밤으로 생긴 혹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으니 꾸욱 참았다.

“쯧, 그래! 오늘은 끝이다! 집에 가라!”

“오예.”

“나이스.”

그러나 갑작스레 울려 퍼진 비명소리에 그들의 퇴근은 늦어졌다.

“아악! 살려주시오!”

세 사람의 고위 헌터는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옥상을 성큼성큼 건너뛰며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압구정파 정찰조장 출신의 조정식이었다. 조정식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시력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의정부역 근처의 허름한 골목길. 누더기를 걸친 두 사람이 칼부림을 벌였다. 승부가 이미 결정 나 한 사람의 명줄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온몸 곳곳의 상처로 피칠갑을 한 승자가 패자를 짓밟고 이를 갈았다.

“크흐……! 이 개새끼가……!”

“살려주시요! 제발 살려주시요!”

“야 이 개간나 새끼야. 누구 허락받고서 웃동네를 나다녀? 불알을 잘라 아가리에 물리기 전에 바로 말해라.”

“내가 잘못했습니다! 아들이 굶고 있어서 그랬소! 제발 한 번만 봐주시오!”

“그런 이야긴 칼을 꺼내기 전에 했어야지 이 개씹종간나 새끼야…….”

끔찍한 참극이 벌어지기 직전, 골목길 쓰레기통 위로 누군가 쾅 떨어졌다.

누더기를 걸친 두 사람이 기겁하는 가운데, 잽싸게 칼을 빼앗은 조정식이 익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치안관 조정식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신변사항은 제가 통제합니다. 혐의가 확인될 시 체포될 수 있고, 교전을 시도하면 사살될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여도연이 허탈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북한 사람이 의정부에 왜 있어?”

* * *

중국-한국-러시아 극동군벌의 3자회담은 착실히 준비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몇 가지 변수가 생겼다.

일단 미국이 긍정적이지 않았다.

“국제개발은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UN이 주도하는 게 관례였지요. 한국 또한 국제개발의 가장 큰 수혜자에서 공여자로 거듭난 역사가 있으니만큼 우리의 입장을 잘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동북아시아가 동북아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찌 미국이 필요하단 말이오? 한국과 이미 상의가 끝난 일이니 대사는 부적절한 이야기로 중조우의를 폄훼하지 마시오.”

“중조우의라. 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우정을 나타내는 단어였던가요? 아무래도 단어 선정에서조차 외교적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미국은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북부방위선’ 계획을 UN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만주에 진출하려면 UN을 거쳐서 일이 진행되는 편이 숟가락 얹기에 좋았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는 만주 재탈환에 긍정적인 국가들 사이의 의견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일이 진행되기 직전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거였다.

“블라디보스토크 군벌에게는 외교권이 없소! 저들은 우리 러시아 연방의 영토를 무력으로 점거한 반란군이란 말이오!”

“그건 당신네들이 동부를 버려서-”

“심지어 저들은 러시아의 위대한 지도자셨던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한 극악한 반동분자요!”

“푸틴 대통령의 암살은 아직까지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지금 우리 러시아 연방의 외교권과 독립적 수사권을 부정하는 거요? 누구든 간에 저 군벌 놈들을 정식국가로 승인하는 순간 모든 수단을 써서 보복할 테니 각오 단단히 하시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냉전.

이 모든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게이트 사태가 터지자마자 모스크바 수도권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지역을 포기한 데서 시작되었다.

물론 러시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스크바와 러시아 서부 지방이 국가의 근본이다. 인구 분포도 그렇다.

그러나 드넓은 시베리아와 극동 지방에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건 아니었고, 심지어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등을 노리는 핵무기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 결과,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주요 근거지로 하여 살아남은 러시아 극동군벌은 시베리아의 생존자들을 구출하며 극동인의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그 악에 받친 군인들은 아주 잘 무장되었고,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핵무기를 손에 쥔 채로, 모스크바를 향한 원한을 불태우고 있다.

푸틴의 측근들이 정권을 고스란히 계승한 모스크바 정부로서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하지 않을 수 없다.

“엄중히 경고한다! 독립을 선포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선전포고하겠다! 즉시 중국과의 유사 외교 협상을 중단하라!”

이에 블라디보스토크 군벌은 독립선언문 발표로 대답하려 했지만, 미국 CIA와 중국 국가안전부가 뜯어말린 끝에 무산되었다.

냉전은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그 끝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 * *

무력도발용으로 날린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곳곳에 떨어지며 유라시아 대륙을 후끈하게 달구는 가운데.

서울시청도 3자 회담을 앞두고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중대한 외교 행사를 고작 두 달 앞둔 공무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장 남산타워부터 복구해! 정상들이 사진 찍었을 때 뒷배경으로 나오도록!”

“중국 총통이 왔을 때 게이트 폭주라도 일어나면 당신네 길드가 책임질 겁니까? 내부에 있는 괴수 싹 다 못 없앨 거 같으면 폐문하던가 다른 길드에 게이트 소유권 넘기세요.”

“외교부는 왜 우리한테 정상회담 좌석 배치를 물어보는 거죠……?”

서울시장 또한 충격과 공포의 업무폭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부 방위선’ 계획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대통령이나 중국 총통은 무서우니까 만만한 서울시장에게로 몰려왔다.

“만주 국제경제협력특별지구 조성에 관여하신 바가 있으십니까?”

“서울 난민들을 만주로 강제이주시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중국이 영토를 할양한다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온종일 기자들에게 시달린 나는 관사로 돌아오자마자 넥타이부터 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나는 두어번 통통 튀고서 이불에 안착했다. 아직 양복도 벗지 않았지만, 새벽에 튀어나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옷을 굳이 갈아입지 않았다.

사실 귀찮아서 그런 거지만, 막상 새벽에 전화가 걸려오니 옷을 안 갈아입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분노가 먼저 치밀었다.

하필 여도연에게 온 전화였다.

“또 뭐 뿌숴먹었어!”

[야. 의정부에 북한 사람 나왔다.]

“응. 지금 갈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