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74화 (274/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74화

EP 43-인과응보(6)

한국에서 가장 많이 욕을 퍼먹는 공무원 직종이 몇 가지 있다.

교통딱지 떼는 경찰관, 민원인 상대하는 구청 공무원, 체납 세금 징수하는 조사관, 임기 끝나기 직전 대통령, 등등…….

그리고 대표적인 욕받이 공무원 중 하나가 외교관이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실체 모를 괴담들과, 가끔 뉴스로 터지는 괴담보다 더한 현실은, 국민들이 ‘외교부’하면 특혜와 세습, 무능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저서에 나온 것처럼 모든 외교관이 무능하고 자기 자식 이민 보내는 데만 신경쓰는 건 아니다.

애초에 외교관의 본령은 외교가 아니다.

첩보다.

경력 쌓인 외교관들은 반쯤 스파이가 되어 해외 각지의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당연히 여기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인맥이다.

따라서 특명전권대사를 보낼 때는 순수 외교관이 아니라 인맥이 짱짱한 교수나 공무원을 외부영입해서 임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때, 나 역시 한국에서 손 꼽히는 외교관 중 하나였다.

세계초인기구World Psychic Organization 평의회 부의장도 해봤고 중국 총통, EU 집행위원장과도 친분이 있었으니…….

조금 있는 말로 표현하자면 국제기구 경험과 국제적 휴민트를 모두 확보한 특급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그게 뭔…….”

“네?”

“앗.”

하지만 중국 총통과 러시아 극동군벌 총사령관이 서울에 방문한다는 소식은 숙련된 외교관인 나조차도 실언을 하게 만들었으니.

만약 WPO 리슈잉 평의원이 나를 당황하게 하려고 노린 거라면 여간 대단한 노림수가 아닐 수 없었다.

* * *

중국 총통과 러시아 군벌 지도자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는 깜찍한 소식으로부터 간신히 멘탈을 수습한 나는 침착한 어조로 리슈잉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대체 왜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하죠?”

“죄송합니다. 한승문 시장께서 중국어에 능통하시니 따로 통역은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방금 한국어로 물어봤습니까?”

리슈잉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여유롭게 찻잔을 홀짝이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 쪽팔렸지만 티내지 않고 다시 질문했다.

“정상회담 장소를 서울로 잡은 이유가 뭡니까?”

“조금 아픈 과거이지만 서울은 한 차례 쑥대밭이 되었던 도시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한국인들의 땀방울과 한승문 시장님의 실로 훌륭한 지도력으로 다시 번영을 되찾고 있으니, 인류의 커다란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과 재생의 새 시대를 열어가자는 메시지를 세계 만방의 인민들에게 전하기에는 서울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습니다.”

나는 눈빛으로 ‘지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초상능력이 있었다. 정치를 오래 한 덕에 생긴 능력이다.

다행히 내 텔레파시를 적절하게 수신한 리슈잉이 살짝 머쓱한 표정으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흠흠, 혹시 한 시장께서는 지난 동아시아 위기를 기억하시는지요?”

“아…….”

지난 동북아시아 카타스트로피는 한국과 중국을 휩쓸고 지나가며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우선, 이차원의 마력을 대량으로 살포하며 게이트가 자연발생할 확률을 대폭 높였고, 그 탓에 한국은 이제 게이트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충청방어선만 지키면 됐던 좋은 시절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중국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 *

해양괴수가 해안도시를 습격하는 일은 중국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영토가 해안도시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광저우, 푸저우, 칭다오, 다롄, 등등…….

물론 내륙 지방에도 일부 자경단(혹은 군벌)이 대도시를 끼고 버티는 지역도 있었지만, 중앙정부가 그들에게 쌀을 갖다 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 덕에 그들은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시체에 불과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 정확히는 베이징을 근거지로 하는 선양군구가 중심이 된 군사정부는 철저히 해안도시 방어에 집중했다.

“웨이하이 시가 습격당했습니다! 옌타이 주둔군을 출격시킬까요?”

“다롄-옌타이 해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 전술핵 사용을 허가한다!”

“아, 아, 국가안전부에서 알린다. 산둥성 지역방위대가 왜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상세히 해명하라.”

“핵무기는 전략화전군의 전유물 아닙니까? 저희는 핵무기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웨이하이 시에서 솟아오른 버섯구름의 정체는 뭔가.”

“아무튼 핵무기는 아닙니다.”

비록 베이징의 중앙정부가 모든 지방정부를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적절한 소통과 배려를 통해 중국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다.

국가의 멸망을 막아내기 위해 투쟁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주먹구구에 가까운 국가 운영이었지만, 어차피 중국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해양괴수가 가끔 컨테이너선 한 척 물어가는 일 정도는 대형사고로 치지도 않는다.

국토 방위보다 중요한 건 해안도시를 무역허브로 삼아 연안 해로를 타고 쌀을 나르는 것이고, 그 쌀을 무기로 삼아 인근 국가를 중화연방에 조금씩 끌어들이는 일이다.

간단한 이치다. 사람과 쌀은 중화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족한 자원이고, 게이트 사태는 그 자원의 가치를 폭등시켰다.

이미 중국의 미래는 밝다. 이제 어떤 식으로 패권을 손에 넣느냐만 달렸다.

따라서 해양괴수가 톈진을 습격했을 때도 중국 정부의 대응은 느슨했다.

“미국에서 카타스트로피니 뭐니 호들갑을 떨던 게 아주 헛소리는 아니었구만. 대체 괴수가 어떻게 베이징 코앞까지 온 거야?”

“톈진은 이미 물에 잠겼다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텐진이 시골 마을도 아니고 어떻게 물에 잠겨요?”

“괴수가 물을 조종할 줄 안다던데……. 그거 보고 놀란 군인들이 과장을 조금 했겠지요. 설마 텐진 전체가 물에 잠겼겠습니까?”

* * *

바다는 검은색이다.

검은 색의 바다는 전조도 없이 밀려왔다. 재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할 법한 사이렌 소리나,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대피하라고 외치는 군인들도 없었다.

일반적인 게이트 사태는 대기 중 마력이 모여 이계의 게이트가 열리는 재해이지만, 인류가 ‘카타스트로피’, 즉, 대재앙이라 이름 붙인 현상은 이계의 마력이 지구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가장 신선하고 짙은 마력은 바다 속 괴수를 각성시켰다.

황해의 심연에서 잠자던 괴수가 예고 없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 거대한 쓰나미가 톈진을 덮쳤다.

밤이었다. 도시의 야경은 물소리와 함께 검게 물들었다.

군사위성은 빛을 내뿜던 도시가 순식간에 검게 변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자연은 정직하다. 괴수는 심해에서 진화한 괴수였다. 모든 경쟁자를 잡아 먹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초월적인 수압을 견디며 진화한 궁극의 포식자였다.

심해의 수압을 견디기에는 비효율적이었지만, 거대할수록 싸움에 유리했으니 톈진의 괴수 또한 거대했다. 한 번 움직이는 순간 빌딩이 무너지고, 수면으로 올라올 때 쓰나미가 발생할 정도로 거대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칼로리를 확보해 운동 에너지로 전환해야 생존할 수 있었으니, 괴수는 수많은 촉수를 가지고 있었다. 수백 개의 촉수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폐허가 된 도시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낚아챘다.

“아아악 - ! 흐아아악 - !”

“웬링이 물에 빠졌어! 제발 도와줘!”

“살려주세요! 살려- 으그극.”

빛이 없는 곳에서 사냥을 해야 했으니 괴수는 눈이 없지만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괴수는 ‘인간’이라는 생물 중 극히 일부는 그 신체에 비해 아주 풍족한 마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톈진을 수몰水沒시킨 괴수는 주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일일이 촉수를 움직여 헤엄치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행위였으므로, 괴수는 마력을 사용해 물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심해에서 인공적으로 파도를 일으키며 이동했다.

지상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괴수가 베이징으로 향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 바다는 괴수의 팔다리가 되어주기 위해 지상으로 밀려왔다.

그렇게 단지 괴수가 베이징에 도달한 순간, 거대한 파도가 도시를 휩쓸었다.

* * *

“재난을 다룬 전영電影처럼 수백 미터의 파도가 도시를 덮친 건 아니었습니다. 괴수의 근처는 해일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파도가 위세를 자랑했지만, 중국 최고의 헌터들은 괴수의 아가리로 용맹히 들어가 심장을 도려내고 마석을 품었지요.”

“…….”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최소 무릎까지 오는 물길이 베이징과 그 유역을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끔찍한 건 혼란 속에서 총통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것이지요. 도시는 기능을 정지했고, 이미 땅에 심어 놓았던 씨앗이 썩으면서 수많은 농부들이 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굶어 죽겠지요. 곧.”

리슈잉은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사람이 굶어 죽으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니까요’라고 짤막하게 첨언하고서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그 침묵에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새롭게 중국을 이끌게 된 지도자는 자신의 직할령인 베이징의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고, 수천만 단위로 쏟아진 수재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를 외국과 공유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것.

현재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괴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리충빈 총통의 정치적 동지이자, 사실이야 어찌 됐든 대표적인 친중 정치인으로 선전된 한승문이라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베이징이 무너졌지만 중국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울이 무너졌지만 남한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을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야 중국 중앙정부의 권위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안다는 것.

“……아.”

그런 구차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체면이 상하는 일이니 나는 좋게좋게 돌려 말할 때 적절하게 처신했다.

“제가 본 것이라고는 오직 톈진이 바다가 되었다는 위성사진 한 장뿐이었습니다. 헌데 그 속에서 벌어진 참상을 진즉 고려하지 못했으니 실로 인간이 덜됐다고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그게 무슨 참람한 말씀이십니까?”

“아! 인류 공존의 대의를 앞두고서도 눈이 멀어 정치적인 협상을 하려고 했으니 이게 어찌 사람이 할 짓이겠습니까?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서울에서의 정상회담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한 대인!”

리슈잉은 마치 ‘어떻게든 한승문을 잘 다독여서 협조를 끌어내라’는 본국의 명령을 기어코 성공해낸 사람처럼 화창하게 웃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아마도 중국 인민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데에서 나오는 순수한 미소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한 시장께서는 실로 중화 인민의 진실된 벗이십니다! 리충빈 총통께서 살아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일단 식량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이겠군요. 한시라도 빨리 만주를 탈환하고 그 땅에 씨를 뿌려야 하니, 한국 헌터들에게 미리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과연……! 세계에서 가장 정예하기로 이름 높은 한국 초상능력자들이 괴수 토벌에 앞장선다면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를 어떻게 하기는. 당연히 돈으로 하지. 그리고 그 돈은 마석이다. 그걸 모르는 우리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의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라 ‘만주의 쌀은 중국으로, 마석은 한국으로’라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해석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런 중국식 교감은 복잡한 만큼 편리한 점도 있는데,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으니 나중에 엎어도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엎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친구였으니 나는 환하게 웃으며 리슈잉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건 감사를 받을 정도로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리슈잉은 감격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 * *

“아, 표정 연기를 얼마나 잘하던지 진짜로 감격한 줄 알았다니까.”

“어, 음…….”

“아무튼 중국 애들이 지금 쌀이 급한 모양이야. 만주에 헌터들 보내면 마석 퍼준다니까 천 사장한테 얘기라도 해봐야지. 마침 제주도에 있으니까 오늘 저녁에 밥 먹자고 하면 되겠네.”

밖에서 대기하던 피채원은 자연스럽게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 속마음까지도 말이다.

그녀가 보기에 한승문에게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리슈잉은 애초에 정치꾼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냥개였기 때문에, 대화에서 암시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협상이 잘 풀린 것 같았으니, 정작 표정연기로 사람 마음 가지고 논 사람은 리슈잉이 아니라 한승문이라는 사실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리슈잉은 자신이 아직도 국가안전부의 일개 간부인 척 가장했지만, 사실 이미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상대 계파를 전부 척살한 뒤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한승문에게 호의를 품었으니 마석 정도는 어련히 챙겨줄 것이었다…….

“채원아, 오늘 저녁에 내가 뭐 먹고 싶어하니?”

“……흐음.”

“왜?”

“아무것도 아녜요.”

* * *

“아, 아무것도 아임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새끼야.”

“지, 진짜로 아무것도 아임다!”

“됐고, 뒤에 감춘 거 빨리 내놔 봐.”

세 사람에게 둘러 싸인 조선인민군(잔당) 조무래기는 기를 쓰며 손에 든 물건을 숨겼다.

삐쩍 마른 까까머리 인민군이 불쌍하게 보일 법도 했지만, 한 손으로 단검을 현란하게 돌리던 조정식이 발끈하며 윽박질렀다.

“아- 이 새끼가, 누님이 내놓으라시잖아!”

철컥, 여다솔은 말없이 조무래기를 노려보며 소리 나게 탄창을 갈았다.

여도연이 벌벌 떠는 조무래기를 벽으로 밀치며 다시 한 번 협박했다.

“너 나한테 한 대 맞으면 뚝배기 깨진다. 나도 실수로 사람 골로 보내기 싫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조무래기는 한참이나 저항하다가 여도연이 바닥에 있던 돌맹이를 주워 가루로 만드는 걸 보여주자 목숨만 살려달라며 물건을 헌납했다.

누가 보면 담배 피는 일진들이 불쌍한 피해자의 돈을 갈취하는 것으로 오해할 법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담배를 들고 있던 건 피해자 쪽이었다.

조정식이 검은색 비닐 봉투에 무더기로 들어 있던 담배를 꺼내 살짝 냄새를 맡았다.

“……이거 담배 아닌데요?”

“약이지?”

“대마? 대마랑 뭐랑 좀 섞은 거 같은데…….”

조무래기가 들고 있던 물건이 마약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여도연은 저도 모르게 벽을 발로 찼다. 사람을 찰 순 없기 때문이었다.

“야 이 새끼야!”

“으허헝……!”

담벼락이 굉음을 내며 쓰러지자 조무래기는 반쯤 혼절하며 주저앉았다.

“여기 강원도야! 북한 강원도가 아니라 남한 강원도라고! 이 새끼들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아나. 마약 장사 안 하면 굶어 죽는대서 봐줬더니……!”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너 뭐하는 새끼야? 대장님이 누구야. 빨리 말 해.”

“그거 말하면 저 정말로 죽습니다!”

“죽긴 왜 죽어. 감빵 가야지. 대장님 이름 대면 빵으로 보내줄 테니까 빨리 말해.”

“으흐흑……! 제가 감옥에 가면 우리 오마니는 누가 돌봐준단 말입니까……!”

여도연은 갈등했다.

북한 사람들은 본디 질서가 없는 사회에 살면서 생존을 위해 규칙을 무시하는 게 체득된 사람들로, 경찰에게 잡혔을 때 빠져나올 수만 있으면 어떤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거짓말이 상당수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 졸개가 대장이 누군지 순순히 불면 죽지는 않더라도 조직에서 쫓겨날 것이고, 그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감옥에 가더라도 남한만 갈 수 있으면 장땡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마당에, 자기가 감옥에 가면 가족이 굶으니 그럴 수 없다는 조무래기의 읍소는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칫!”

총기와 마약이 경범죄가 되어버린 기묘한 세상을 한탄하며 여도연은 자비를 베풀었다.

“너 이 새끼 남한에서 마약 파는 거 한 번만 더 걸리면 혼쭐이 날 줄 알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지!”

“누가 니 동지야. 아직 어려 보여서 봐주는 거니까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 먼저 하라고.”

말실수였다. 조무래기는 ‘공부’와 ‘학생’이라는 단어를 듣더니, 무언가 울분에 북받친 표정을 하고는 여도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용기는 1초도 되지 않아 사라지고, 조무래기는 무언가를 체념한 듯 이내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조아리고 도망쳤다.

여도연은 그 비루한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저 나이에 공부를 하지 못하는 건 개인의 잘못일까 사회의 잘못일까.

순찰을 마치고 본부에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잡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도연을 괴롭히는 건 그런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였다.

옆 건물 3층에 사는 주민 하나가 여도연이 범죄자를 풀어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여도연 시즌 32135023번째 기물파손]

[저거 마약 판매자 훈방 조치한 건가요? 딴 데서 약 팔면 어쩌려고…….]

[이럴거면 공무원안하는게낫다. 때리치워라. 그런마인드로 뭔경찰을하겠다고…….]

[동생이 서울시장이라 막 나가는가 보네 ㅋㅋㅋㅋㅋ 그래 걍 멋대로 해라]

* * *

여도연은 정신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공안관리국장실에서 나왔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가장 장난기 많은 치안관도 지금 건드리면 제대로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슬금슬금 그녀를 피했다.

여다솔이 걱정스런 얼굴로 여도연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국장님이 뭐래요……?”

“잘못했대.”

“네?”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히래.”

여다솔은 머리숱이 하루가 다르게 적어지는 공안관리국장이 한국에 몇 없는 9등급 헌터를 차마 혼내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발작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자주 보기 떄문이다.

여다솔이 국장의 머리숱에 명복을 빌며 묵념하는 사이, 조정식이 비꼬는 어투로 끼어들었다.

“꼬우면 경찰한테 가서 왜 우리한테 마약사범 잡으라고 시키느냐고 따지지. 왜 우리보고 뺑이치래요?”

“국장이 경찰 간부 출신인데 그게 되겠냐?”

“아니 애초에 마약쟁이는 우리 소관이 아닌데. 그리고 잔챙이 하나 잡아 봤자 북한 마약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참 내…….”

여도연은 조정식이 그냥 위로하려고 하는 소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사실 다 안다. 알면서 외면하는 거다’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하여튼 공무원 놈들 지들 문제 생기는 건 칼같이 알바 풀어서 지우면서…….”

“불평하면 뭐하냐. 때려치라니까? 다솔이 데리고 회사 하나 차리던가.”

“내가 그걸 선택할 사람이었으면 김춘식 대장 따라서 서울에서 좆뺑이 쳤을 것 같아요?”

“그때 서울에서 싸웠던 사람들 지금 다 길드장 됐다. 대체 왜 치안관을 고집하는 건데?”

“합법적으로 범죄자를 팰 수 있다는 쾌감?”

“어휴.”

여도연이 질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조정식은 나름 진심이었는지 한손으로 단검을 빙빙 돌리며 추억에 잠겼다.

“만주에서 말 타고 추격전 해봤어요?  국정원이 도와달래서 하얼빈까지 갔을 때, 옛날에 김정은이가 탔다던 말을 하나 주웠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트럭 타고 도망치는 놈들을 말 타고 쫓아가서 잡았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왜 말이 안 돼요? 말 타고 단검 던져서 트럭 타이어 맞추면 끝인데.”

조정식이 여다솔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그 말 이름이 뭐였지?”

여다솔이 팔짱을 끼고 고민을 시작했다.

“으음……. 되게 씹덕 같은 이름이었는데…….”

은근히 조정식의 만주 웨스턴 썰에 흥미를 가졌던 여도연은 결국 그 말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곧장 출동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조정식이 툴툴거리며 앞장섰다.

“에이씨, 경기도청이야? 또 고양이만 한 괴수 나왔다고 불러대는 거면 가만 안 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고위 헌터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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