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71화
EP 43-인과응보(3)
게이트 재난으로 터전을 잃은 시민들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땅값이 비쌌으므로 난민 대부분은 충청도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골목마다 골판지를 깐 난민들이 즐비했지만, 정부의 대책으로 골판지가 텐트로 변하고, 텐트가 컨테이너로 변하고, 컨테이너가 주공아파트로 변하며 상황이 안정됐다.
그러나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신축 아파트와 주공아파트 간의 차별의식이 만연한 한국 사회가 아니었던가?
난민의 대규모 유입은 (소위 땅값 떨어지니까 꺼지라는) 지역민과의 갈등과 차별로 이어졌고, 이에 1천만 난민들은 난민운동권이라는 초강경 정치집단으로 변신해 게이트 사태 이전 재산 복구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과 대립의 과정 속에서 충청도는 서서히 슬럼화됐다. 피켓 시위는 무력 충돌로 번지고, 공권력이 너무 바빠서 대처하지 못하는 동안 70, 80년대의 한국처럼 주먹패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처들고…….
여기에 조폭들이 초능력을 써대고, 난민들은 소싯적 군인 시체에서 주운 총을 지하실에 고이 보관하고 있었으니, 경찰과 치안관 입장에서 충청도는 이미 마굴이었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충청도의 중심부에 있는 세종시다.
서울이 박살 난 이후 세종정부청사를 중심으로 한국 행정부 그 자체가 되어버린 세종시는, 부산에 버금갈 정도의 번영을 구가했다.
세종시 곳곳에는 하늘에 닿을 정도의 고층 빌딩이 주르르 세워졌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 화성까지 닿았다.
당연히 땅값도 어마어마했으니 난민들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이들만 들어왔고, 행정안전부 본청이 있었으니 그 산하기관인 경찰청도 기를 쓰고 조직범죄를 단속했다.
그 결과가 이 기이한 풍경이다.
슬럼화된 지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도시.
대한민국의 행정수도 세종시의 드높은 마천루는 오늘도 끝없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중이다.
* * *
불은 물에 약하고, 물은 풀에 약하고, 풀은 불에 약하고, 에스퍼는 고스트에 약하다는 진리는 고대부터 내려져 오는 동양의 신비다.
마찬가지로 공무원은 정치인에게 약하다.
정치인, 정확히는 국회의원이 예산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문 사태 이후 일종의 ‘전시행정’ 체제를 몇 년 겪은 공직사회는 목이 조금 더 빳빳해졌다.
국가 존망의 기로에서 국회의원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실질적으로 국정을 견인한 건 자신들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의 자료 요청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게 만들고, 관료 출신 국회의원이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의 숫자를 능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차관님!”
“으응. 좋은 아침.”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오전 6시 14분. 행정안전부 차은수 차관은 부하들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세종정부청사의 로비를 가로질렀다.
양복 입은 공무원들은 그를 보고 슬금슬금 물러나거나, 허리를 굽실거리며 달려와 인사를 올렸다.
유일하게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다가오는 사람은 국토부 차관인 김경승이다. 풍채 좋은 중년인이 능글맞게 웃으며 건성건성 손을 흔들었다.
“어이, 차 차관. 아침부터 부지런하시네.”
“이 사람. 차 차관이라고 하지 말래도……!”
차은수와 김경승은 둘 다 차재균 차관의 유사 군부독재를 맛본 사람들이다. 게이트 사태 직후부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두 사람은 ‘차 차관’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안다.
그러나 한때는 군부의 최고지도자를 의미했던 이 단어는 이제 재미없는 농담거리로나 쓰일 뿐이다. 김경승이 실없이 웃었다.
“허허. 알았어요, 차은수 차관.”
“김 차관 당신은 나보고 일찍 출근했다고 말할 계제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국토부 김 차관님은 대체 몇 시에 출근하셨길래 로비에서 나를 이렇게 마중해줍니까?”
“이거 상상력이 부족하시네. 어디 한 번 맞춰봐요. 내가 출근을 일찍 한 거 같아요? 아니면 어제부터 퇴근을 못 한 것 같아요?”
행안부 차은수 차관은 대답 대신 슬픈 미소를 돌려줬다.
국토부 김경승 차관이 넉살 좋게 웃었다.
“둘 다 공노비 처지인 건 마찬가지인데 슬픈 얘긴 그만하고 조식이나 뜨러 갑시다. 설마 출근하자마자 업무 보실 건 아니죠?”
“김 차관이랑 밥 먹을 시간은 있지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이건 아침밥 먹자는 소리가 아니라 국토부에서 행안부와 상담할 내용이 있다는 통보다.
김경승이 자연스럽게 차은수의 측근들을 비둘기 쫓아내듯 밀어내고 차 차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두 사람과 그 측근들이 밀폐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회의가 시작됐다.
사람 좋게 웃던 김경승이 미소를 지우고 정색했다.
“국방당 우용택이가 지하철 지어달라고 성화야. 선거 앞두고 뭐라도 해보겠다 이거지. 경선부터 처발리게 생겼으니까는.”
“우용택이 어디지?”
“울진 을.”
“울진분천선 이미 파고 있잖아.”
“자기네 나와바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러데.”
“미친놈. 칠천억이 장난인가?”
“아, 내 말이-”
두 차관의 서슴없는 입담에 그 측근들은 귀를 닫았다. 인의 장벽에 둘러싸인 두 차관이 회의를 이어갔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이거 지어라 저거 지어라 땡깡 부리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만은 그 인간들은 아직도 국토부 예산이 자기 쌈짓돈인 줄 안다니까.”
“우리 김경승 보살님이 이렇게 뿔이 나신 걸 보니까 우용택 의원이 장난 아니게 꼬장을 부린 모양이구만?”
“지가 아직도 4선 의원인 줄 아나 봐. 나를 국회 사무실로 불러서 아주 애새끼 매 때리는 것처럼 혼쭐을 내더라니까? 옛날이었으면 나도 그냥 네네 그러고 넘어가겠는데, 지금이 뭐 노무현 이명박 시절도 아니고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쯧쯧. 우용택 그 양반은 원옥분 권한대행 시절에도 암것도 안 했잖아? 세상 다 평화로워진 다음에 정치판에 슬그머니 나와 놓고서 우리한테 그러면 안 되지.”
옛날부터 정치인을 ‘실무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비웃던 관료들은 이제 정치인을 보고 ‘우리가 나라 이끌던 동안 집에서 손가락만 빨던 놈’이라고 킥킥댄다.
이런 차별의식은 진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 관료와 정치인의 관계는 점점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하는 중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위잉-!
엘리베이터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멈추자 두 차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리 대신 지팡이가 가장 먼저 들어오자 두 차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하, 한 시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한승문 시장님.”
권위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폭넓은 넥타이. 수상할 정도로 커다란 넥타이핀. 마른 몸을 부풀리기 위한 한 치수 더 커다란 양복.
그리고 중국 정부에서 선물한 지팡이와, 무표정보다 더 건조해 보이는 은은한 미소. 마지막으로 그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주는 역사적 권위.
그 모든 것을 몸에 두른 서울시장을 보고 두 차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세종시의 대부인 유재경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 앞에서 목이 뻣뻣한 관료는 없다.
평소보다 유독 피곤해 보이는 한승문이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뻘에게 폴더인사를 받는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예,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한승문이 절뚝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무게 한도 초과를 알리는 경고음이 삑삑댔지만, 누가 감히 서울시장을 쫓아내겠는가?
두 차관의 보좌진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손히 인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엘리베이터에 바퀴벌레가 나왔어도 이보다 탈출하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고, 이러려던 건 아닌데…….”
어색한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행안부 차은수 차관과 국토부 김경승 차관은 사자와 같은 우리에 갇힌 것처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실제로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최근,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감지윤 친일파 논란’의 방아쇠를 당긴 건 국토부와 그 산하 외청이 감지윤의 등을 처먹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국토부만 욕할 문제는 아니고 일부 지자체 또한 관여한 문제였지만, 애석하게도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행정안전부의 소관이다.
국토부와 행안부에 속한 두 차관의 보좌진이 괜히 도망친 게 아니다.
‘시X…….’
‘피해 다녔는데 왜 여기서…….’
한승문과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게 된 행안부 차은수 차관과 국토부 김경승 차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중대본에서 서울 S급 게이트 사태를 함께 대처하며 안면이 있던 차은수 차관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승문에게 말을 붙였다.
“아하하. 한 시장님. 실례지만 휴가를 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휴가요.”
휴가 이야기를 들은 한승문의 표정이 묘하게 안 좋아졌다.
행안부 차은수 차관은 속으로 주제 선정을 잘못한 자신을 욕했다.
“뭐…… 고향을 갔다 왔는데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오래 있기도 뭐해서 일찍 돌아왔습니다.”
“아! 역시 나라 걱정만 하시는군요!”
“수십 년 동안 공직에 몸담은 여러분만 하겠습니까?”
한승문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식은땀을 흘리던 국토부 김경승 차관에게는 ‘수십 년 동안 공직에 있었던 놈들이 일을 이따위로 하냐’는 소리로 들렸다.
“죄송합니다!”
“예?”
“제가 조직 단속을 잘못했습니다. 공직자들이 이렇게 썩어 빠지면 안 되는데, 이 인간들이 어떻게 중학생을 상대로 돈 뜯어먹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정말 송구합니다!”
갑작스런 김경승의 사죄를 받은 한승문은 말없이 미묘한 눈빛으로 차은수를 직시했다.
차은수는 순간적으로 자기도 대가리 처박으라는 뜻인가 싶어 식겁했지만, 이내 한승문이 몇 시간 동안 함께 중대본을 이끌었던 사람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묘한 허당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고민을 마친 차은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이 사람이 국토부 차관입니다.”
“아.”
* * *
서울시장 집무실의 문짝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휴가 낸 워커홀릭 직장상사가 하루 만에 돌아오면 부하직원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괴물을 보는 표정이었다.
뒤늦게 제정신을 차리고 인사하는 비서진을 따돌리고 시장실에 들어간 나는 가죽 의자에 깊게 몸을 뉘이고 세종시 풍경을 바라보며 힐링했다.
늘 푸른 전월산. 햇빛이 반짝이는 호수공원. 향긋한 커피믹스 냄새.
그런 것들로 무너진 고향을 향한 죄악감과 상실감 따위를 다스리고 있으니, 양복은 입었지만 급하게 나온 티가 나는 피채원이 헐떡거리며 시장실로 들어왔다.
“어? 채원이 너 무슨 일이냐? 너도 휴가 냈잖아.”
“그러게요. 집에서 푹 쉬고 있었는데 비서실장님이 시장님이 갑자기 출근했다고 급하게 전화를 하셔서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는데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출근했네요.”
“넌 가끔 보면 나보다 비서실장한테 더 공손한 것 같애.”
사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피채원의 가족과 다름없었지만, 서울시 비서실장은 피채원에게 역할을 뺏겼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으니까.
비서실장 입장에선 좀 억울한 상황이다. 비서실장 업무는 비서실장급으로 하는데, 정작 비서실장이 누려야 할 권력은 피채원이 쥐고 있었다.
피채원은 비서실장이 피채원을 괴롭히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비서실장에게 빚을 진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이게 다 사람 못 믿고 예민한 서울시장 때문이었으니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별일 없어. 그냥 고향 한 번 가봤는데 맘이 편치 않아서 돌아온 거야. 채원이 너는 나 따라서 휴가 썼으니까 집에서 쭉 쉬어라. 다음 주에 출근해.”
“시장님이 일하는데 저만 집에서 쉴 수는 없죠.”
“흐음? 네가 이렇게 징그러운 소리를 하는 녀석이 아닌데. 진짜 이유는 뭐지?”
“다른 사람이 시장님 보좌하면 사소한 실수로도 자주 혼날 텐데, 그럴 때마다 시장님이 아니라 제 욕을 하지 않을까요?”
“욕하면 뭐 어때? 속으로만 욕할 텐데?”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큭.”
나는 피식 웃고서는 시장실 구석에서 은은한 존재감을 뽐내는 라꾸라꾸에 누웠다. 업무공간에서 퍼질러 누워 있으니 묘한 쾌감이 든다.
창문 너머 하늘은 푸르고, 하얀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따스한 햇살은 블라인드 틈새로 은은하게 들어와 피부를 간지럽힌다.
사무실에서의 짤막한 휴가를 즐기고 있으니 그 행복이 전염된 피채원도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짧은 고요는 갑작스레 찾아온 민원인으로 인해 깨지고야 말았다.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걸어 다니는 범죄자 척추분쇄기는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서 머쓱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야. 다리 인대 늘어났다며?”
“그거 이미 다 나았다.”
“그래? 박카스는 괜히 사 왔나…….”
“누나는 이모나 걱정해. 동생 다리 분질러졌는데 병문안도 안 오고 전화도 안 하고 문자도 안 하는 누나가 세상에 어딨냐면서 이를 갈고 계시니까.”
“아니, 내가 안 오고 싶어서 안 온 게 아니라……. 에이씨,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냐? 그리고 옛말에 참새는 해로운 짐승이랬어.”
“역사 공부 안 했냐?”
검푸른 치안관 코트 차림으로 찾아온 여도연과 나는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서로 틱틱대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 * *
“마약이라…….”
북한에 이렇게나 마약이 많이 퍼졌을 줄은 몰랐다. 내 활동무대는 주로 부산과 세종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공간이었으니까.
어느새 능숙한 수사관이 된 여도연이 물 흐르듯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 농사만 짓는 거면 모르겠는데 아예 공장까지 차리고서 전문적으로 제조하고 있다. 범죄 비즈니스가 된 거야. 문제는 일이 거기서 안 끝난다는 거다. 마약 판 돈으로 범죄조직이 몸집을 불리고 있어. 2차적, 3차적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중이다. 그런데 인력은 너무 적고 북한은 너무 넓어. 정치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맙소사. 어릴 적부터 근육으로 가득 차 있던 여도연의 전두엽에 무언가가 더 들어갔음을 이모가 알게 된다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거다. 아니면 학생 때 공부를 하지 왜 이제 와서 똑똑해졌냐고 등짝을 때리던가.
어쨌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도연이 나보다 전문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여도연에게 물었다.
“그래…… 중국산 마약이 국경으로 들어오는 건가? 북한 시민들 피해가 많이 심각해?”
“아니. 북한 시민들이 마약을 만들어서 중국으로 수출하는데.”
“아.”
어…….
음…….
“어쨌든 수출은 좋은 거 아닌가?”
“김정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