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69화
EP 43-인과응보
초상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몸 밖의 마력을 다루는 정신계.
몸 안의 마력을 다루는 육체계.
여기서 정신계는 어떤 물질을 다루는 원소술사나 순수한 마력을 다루는 염동술사로 나뉘고, 육체계는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강체술사, 칼에 마력을 덮어씌우는 나이트, 시력이나 청력 따위의 감각을 극한까지 발달시키는 탐색꾼 등으로 나뉘는데…….
사실 이건 정확한 분류가 아니다.
똑같이 염동술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라도 마력을 칼날처럼 날리는 사람이 있고 마력을 파도처럼 운용하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근력을 강화하는 강체술사는 강체술사로 부르고, 시력과 청력을 강화하는 강체술사는 탐색꾼으로 부르는 이유가 뭔가?
결국 다 편의상 만들어낸 용어들이었다.
어떤 점에서 편리하냐면 전투 현장에서 편리하다.
괴수와의 싸움에서 강체술사와 탐색꾼은 구분될 필요가 있으며, 원소술사와는 달리 딱히 상성을 타지 않는 염동술사는 대충 하나로 묶어도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모든 초상능력은 제각각이었다. 세상에 동일한 초능력은 없다.
같아 보이는 초능력이라도 자세히 따져 보면 다르다.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초상능력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치안관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야 했다.
“야. 드루이드라고 하면 원래 자연을 벗삼아 노래하면서 숲과 동물을 지키는 이미지 아니냐?”
“보통은 그렇죠.”
“근데 이 새낀 왜 비둘기 뱃속에 마약을 집어 넣을 생각을 했지.”
* * *
초상 사회.
즉, 초현상이 일상으로 들어온 사회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수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혁신을 이루어냈다.
마석 에너지, 포션 의학, 초능력 건설, 사이오닉 신소재, 괴수 생물학, 초현상 군사기술, 등등등…….
그렇게 혁신을 이룩한 분야엔 범죄도 있다.
“비둘기 뱃속에 마약을 넣겠다는 정신 나간 발상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사고 자체가 기승전 마약이냐? 아니면 이 집은 마약을 시키면 치킨도 주는 거냐?”
“그거 은근히 혜잔데요.”
“비둘기 먹어 봤냐?”
“압구정에 갇혔을 때 살짝……?”
검푸른 치안관 코트를 입은 여도연과 조정식이 시덥잖은 비둘기 이야기나 지껄이고 있었지만, 그들 앞에 무릎 꿇은 범죄자는 차마 ‘비둘기가 아니라 왜가리’라고 항변하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방금 전, 아지트로 처들어온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장판이 된 건물 내부에는 여전히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약간 음침한 인상의 치안관 조정식이 수첩을 꺼내 무릎 꿇은 범죄자의 정수리를 툭 툭 두들겼다.
“너, 사람은 조종 못 해?”
“아, 아닙니다…….”
“아니라고? 뭐가 아니란 거야? 질문 못 알아들어? 니 능력이 뭔데?”
“세뇌입니다! 그런데 사람한테 쓸 정도는 아니고 평생 짐승들만…….”
“사람한테 통하긴 통한다는 거네? 딱 봐도 마약 먹이고 헬렐레- 하면 세뇌시켰겠는데?”
“아닙니다!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조정식이 여도연을 슬쩍 쳐다봤다. 고도로 발달한 초상능력 덕에 짐승 수준의 육감을 가진 그녀는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였다.
여도연이 판결했다.
“했는데?”
“안 했습니다! 즈, 증거 있습니까?!”
“내 느낌.”
“아.”
말문이 막힌 범죄자가 여도연을 삿대질하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조정식이 수첩으로 머리통을 찰지게 내려치며 범죄자를 제압했다.
“이 새끼가 누님이 했다면 한 거지 어디서 삿대질이야 손가락을 그냥 확!”
조정식의 특기는 단검술이었고, 그 실력은 건물 안에 남은 폭력의 흔적이 증명하고 있었다. 범죄자가 오들오들 떨며 입을 다물었다.
여도연이 범죄자에게 질문했다.
“짐승 뱃속에 마약을 집어넣고 철새로 위장해서 고객님한테 직배송한다는 계획은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거냐?”
“절대로 제가 생각한 사업이 아닙니다! 고저 박 대좌라는 인간이 있는데, 이게 로씨야에서 유행하는 방식이라며 헛바람을……!”
“그래? 전부 박 대좌가 시켜서 한 거구나? 하여간 대좌란 계급에 뭐가 씌였나 봐. 세상 나쁜 새끼들은 다 대좌야.”
“맞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조무래기입니다!”
“응. 그래. 박 대좌 그 새끼 어딨어.”
범죄자는 사방에 처참하게 널브러진 사람들 중 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인간 나무가 된 군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정식이 읊조렸다.
“운이 좋군.”
* * *
나라에 돈이 없으면 뭐라도 만들어서 수출해야 한다는 건 제3세계 독재자나 할 법한 생각이다.
예를 들면 김정일 같은 사람 말이다.
그는 마약을 만들어 수출했다.
북한은 개문 사태 이전부터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국 중 하나였고, 특히 필로폰은 ‘빙두’라고 불리며 민간에도 비교적 넓게 보급됐다.
배고프면 빙두 한 대 피우고서 현실을 잊고, 빙두가 마약인 줄도 모르고 감기약이나 자양강장제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물론 북한에서 마약을 팔면 불법이다. 총살당한다.
그러나 마약을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오면 애국이다. 국책사업이다.
이 내로남불 정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멸망 이후 새로이 들어선 평양 민주정부와 각지의 조선인민군 잔당들에게도 이어졌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이 남한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태백산맥 일대에서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했는데 헌터들이 북한의 현지인 마약 공급책과 접촉하는 것을 일일이 감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위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일하며 종종 지인의 죽음을 접했으니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고.
한편 고위 헌터들은 재력과 인맥이 넘쳤으니 심심하면 마약 먹고서 집에 굴러다니는 최고급 포션 한 병 때린 다음, 수사 들어오면 아는 검찰 아저씨한테 전화 걸어서 범죄 혐의에서 벗어나곤 했다.
즉, 마약 판매 단속도 불가능하고 마약 중독자 검거도 어렵다.
2단계인 ‘유통’과 3단계인 ‘소비’를 막을 수 없으면 1단계인 ‘생산’을 조져야 한다.
따라서 마약을 근절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에서 마약을 만드는 조직의 본거지를 덮치는 거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여기까지가 정부의 생각이었지만.
현장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그쪽 애들이 마약 팔다 걸린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마약에서 손 떼라고 명령하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여도연 치안관님.”
북한에 어떤 ‘악마 같은 마약 조직’은 없다.
마약 업계에 종사하는 수많은 민간인과, 그 유망 업계에 취직하고 싶은 그보다 더 많은 취업 희망자가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마약 판매 혐의가 들통난 지역 군벌에게 찾아가서 따져 물어도 이런 대답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치안관님. 철원에 마약을 팔던 박 대좌라는 인간이 제 밑에 있는 군관은 맞습니다. 그놈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닐 겝니다. 아마 지금도 마약 공장 돌리고 있는 놈들이 있겠죠. 그런데 제가 명령을 한다고 그놈들이 제 말을 듣갔습니까?”
“그럼 군대인데 상명하복이 안 됩니까?”
“조선인민군은 군대가 아닙니다. 그냥 회사라고 생각하십시오. 공산국가에서 경제활동하는 대기업은 군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씨 왕조 시절부터 그랬지요.”
북한 지역 강원도 일대를 통제하는 조선인민군(잔당의) 상장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도연을 구워삶았다.
“물론 제가 작정하고 마약 장사 틀어막으면 잠깐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약 팔면 총살한다고 협박하고서, 말 안 듣는 놈 몇 명 광장에서 공개 처형하면 두어 달은 잠잠해질 겁니다. 그런데 남조선, 아니, 우리 대한민국 정부 당국에서 그런 걸 원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당연히 저도 아편 문제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고저 인민의 건강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몹쓸 물건 아닙니까. 그런데 당장 저만 해도 밑에 애들이 마약 판 돈 상납받아서 간신히 조직 유지하고 있고, 인민들도 마약 수출 안 하면 길바닥에서 굶어 죽습니다. 이거 비유 아닙니다.”
한숨을 깊게 내쉰 여도연이 부쩍 자신감이 없어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럼 중국이나 러시아에 수출하지 왜 남한에다 팔아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
“저도 우리 민족끼리 이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중국 수출은 평안군벌이 하는 중이고, 로씨야 수출은 함경군벌이 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진짜 군사깡패입니다! 저는 고저 강원도 인민들 먹여 살리라고 남한 당국에서 임명한 지역 군관이에요. 떳떳하지 못한 일도 조금 하고…….”
“그래도 마약은 좀…….”
“여도연 치안관님.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인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이곳에 살림살이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까? 무슨 물건이든 만들어 봤자 남한 물건에 비하면 싸움이 안 되고, 애초에 우리 자본가들이 남조선- 아니, 남한으로 건너가지도 못하니 경제활동이 일절 아니 됩니다.”
강원군벌을 책임지는 조선인민군 상장이 최대한 불쌍하고 아련한 눈빛으로 여도연을 쳐다봤다.
“결국 남은 건 몸뚱아리 밖에 없으니까는. 남성들은 남한 헌터들한테 가서 형님- 형님- 거리면서 짐꾼 노릇하며, 맨몸으로 괴수 시체에서 마석 꺼내다가 재수 없음 괴수한테 물려 죽고. 녀성들은 결국 술 따르거나 몸을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번에 남한 당국에서 장전읍을 완전히 때리부쉈잖습니까? 고저 남한 헌터들은 물론이고 자기네 나라 인민들까지 간을 빼먹어 미제에 팔아먹은 악질 리용수 정권의 패악질이 1차적 원인이라지만은, 제가 보기에 퇴폐문화랍시고 앞뒤 못 가리고 술집이랑 유흥가까지 전부 냅다 때리 부순 남조선 당국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 봅니다. 그때 일거리 잃은 사람들이 전부 마약 만들어다 팔고 있잖습니까.”
“저기…… 농사는 안 짓습니까?”
“농사는 개뿔 땅뙈기라고는 남조선 농협에서 죄다 가져가 놓고서는 무슨 우리더러 농사를 지으랍니까?”
“그…… 미안합니다…….”
“여도연 치안관님이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저번에도 이야기를 드렸지만 저는 김씨 왕조 시절부터 국가정보원에 이런저런 말을 전하던 현지 협력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남한 당국에서도 제가 강원도 군벌이 되도록 밀어주지 않았습니까? 저는 언제나 우리 조선민족이 잘됐으면 하는 걱정만 있습니다.”
조선인민군 (잔당) 상장은 감동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서는 인자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고저 한승문 시장님은 언제쯤 만나 뵐 수 있갔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칫.”
* * *
초상관리국 산하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의 치안관들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강의 공권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찰특공대? 군 특수부대? 법원 집행관? 대검찰청 이능수사부 검찰수사관? 다 필요 없다. 치안관이 최강이다.
물론 정치적인 힘이 강한 게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 강한 거였다. 전부 7급 이상 고위 헌터였으니까.
이게 가능한 건 돈보다 사람 구하는 일이 더 좋은 헌터들이 공무원을 자청했기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고위 헌터의 몸값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거였다.
반면 세상은 점점 평화로워지고 있었으니, 치안관의 봉사 의식보다 몸값이 높아질수록 치안관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죄송해요, 언니, 저 이제 관두려고요.”
오늘도 사직 희망자가 여도연을 찾아왔다.
경찰 간부 출신 공안관리국장은 맘만 먹으면 전직 검사까지 치안관보로 데리고 다니는 치안관들을 컨트롤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여도연이 치안관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뭐? 무슨 일이야? 누가 괴롭혔어?”
“괴롭혀요? 사실 공무원 아저씨들이 자꾸 대시하는 게 좀 부담스럽긴 했는데 그것 때매 관두는 건 아니구요.”
“그럼 뭐 때문인데?”
여도연의 질문에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는 사직 희망자였다.
마음은 이미 부산에 가 있는지 검푸른 치안관 코트 대신 화사한 핑크톤 사복 차림이었다.
“그냥…… 친구들은 다 떵떵거리고 사는데 저만 과로에 야근에 박봉에…… 일도 옛날처럼 보람차지도 않구…… 정권 바뀌고 한승문 장관님 없어지면서 위에서 자꾸 물정 모르는 소리만 하구…….”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총알 막는 건 네가 가장 잘 했는데 아쉽네. 이제 헌터로 돌아가는 건가? 배리어 능력자 엄청 귀하다며?”
“그건 아니고요. 선아 언니가 일자리를 소개시켜줘서요. 무슨 매니지먼트라던데? 아마 연예인 겸하는 헌터가 아닐까 싶어요. 설마 아이돌을 시키진 않을 거구. 히히.”
“너 홍선아 싫어한다며.”
“그건 그 언니가 옛날에 데이빗 대장님 버리고 튀어서 그런 거고요! 근데 나중에 괴로워한다는 소식 들으니까 맘이 좀 아프더라구. 그래서 용서했어요.”
귀중한 인력 하나가 그렇게 사라졌다. 여도연은 착잡한 심정으로 휴게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들이켰다.
그런 여도연에게 치안관 조정식과 치안관보 여다솔이 다가왔다. 음침한 인상의 탐색꾼 조정식이 딴청을 부리며 농담을 건넸다.
“이제 배리어는 누가 쳐주냐.”
“왜 반말이냐.”
“반말이 아니라 인터넷에…… 아닙니다.”
여도연의 날카로운 눈빛에 치안관 조정식이 자동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괴수는 안 무서운데 이 누나는 좀 무서웠다.
매일 조정식을 졸졸 따라다니는 여다솔 치안관보가 항상 들고 다니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여도연을 쿡쿡 찔렀다.
“정식이 오빠 그만 괴롭혀요!”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그래.”
“언니는 그 험악한 눈빛이 폭력이야!”
* * *
뭔가 살짝 양심에 찔리는 듯한 여도연.
그런 여도연을 째려보는 조정식.
그리고 머리에 난 혹을 부여잡고 탁자에 엎드려 움찔움찔 몸을 떠는 여다솔이 휴게실에 둘러앉아 침묵을 지켰다.
지나가던 치안관이 의아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셋이 지금 뭐해요? 눈치 게임?”
“닥쳐.”
오늘도 초인지원청은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