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65화
EP 42-정통 헌터 아카데미(3)
한국 정계에는 특이한 전통이 있다.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PC주의가 유행하면 한국 정치인들은 갑자기 젠더 문제를 거론하고 다문화 가정을 배려하자고 한다.
미국에서 국수주의와 쇼비니즘이 유행하면 한국 정치인들은 유달리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이는 답안지를 베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보려면 검증된 전략을 밀어붙여야 할 것 아닌가?
한국 헌터 업계도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헌터는 연예인에 가깝다.
유럽에서 헌터는 민병대와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영주 역할을 수행하며 EU라는 공동체 안에 느슨하게 묶여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헌터들은 빠르게 기득권에 편입되어 특수요원, 혹은 군인이 되었다.
남미와 중동처럼 범죄 조직이 국가를 대체한 지역은 힘의 논리에 따라 헌터들이 국가 지도부가 되었다.
인도와 동남아처럼 지역색이 강한 곳은 하나로 묶어서 평가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지방 토호 노릇을 하고, 누군가는 공산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지하투쟁을 이어간다.
그리고 미국은 헌터 산업을 대기업이 장악하며 초상능력자들이 연예인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의 싸이킥-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가파르게 발전하는 중이다.
헌터를 본명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르고 헌터에게 고유한 전투복을 별도로 제작하고, 헌터를 영화와 쇼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내보내고 헌터의 얼굴이 박힌 머그컵과 티셔츠를 판매하며 초상능력자 개개인을 일종의 브랜드로 만든다.
이제 히어로 영화의 주연조차 비각성자가 맡기는 어렵다. ‘초능력이 없어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어필하려는 영화가 아닌 이상에야.
한국도 어느 정도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헌터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서 K-pop 전도사로 임명해 월드투어를 시키는 수준은 아니지만, 헌터가 방송에 나가고 팬클럽을 거느린다. 특정 기업의 홍보대사가 되거나, CF 시장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따라서 언론 보도 지침 또한 연예인들과 비슷했고.
감지윤에게 향하는 시선 또한 사고 친 연예인과 비슷했다.
[감지윤, “일본으로 이민가겠다” 누리꾼 ‘경악’]
[공무원 협박 감지윤 발언에 일본 전전긍긍 한국은 발칵]
[갑질인가? 열정페이인가? 수백억 연봉 미성년 각성자에 SNS ‘시끌’]
감지윤이 조회수가 된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감지윤의 수입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됐고, 감지윤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일본인이라는 사실마저도 감지윤이 이미 일본에 포섭되었다는 음모론을 낳았다.
언론은 인터넷을 떠도는 과격한 발언조차 여과 없이 보도하며 논란을 확산시켰다.
그때까지는 여느 연예인 사건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승문 서울시장이 감지윤의 자택에 대놓고 드나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표정한 보좌관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한승문은 난처하게 웃으며 단 두 문장만을 남겼다.
‘수많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낸 감지윤 헌터가 속상해서 내뱉은 말 한 마디로 이토록 공분을 사는 것이 안타깝다.’
‘나라의 동량이 앞으로도 수십 년간 무책임한 소문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여기서 첫 번째 문장은 신문 기사에 들어갔고, 두 번째 문장은 기자들 머릿속에 들어갔다.
‘수십 년간’.
S급 헌터 감지윤의 장기집권을 암시하는 용어다.
* * *
내가 은근히 귀띔해주니 정신줄 놓고 달리던 기자들이 이성을 되찾았다. 상황을 파악한 언론사 데스크에서 헐레벌떡 보도 전략을 수정했다.
그러자 감지윤 연봉을 적시한 기사가 내려갔고, SNS 악플을 그대로 복사한 기사도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다.
수상할 정도로 언론의 논조가 변했다.
[모든 원인은 헌터 감지윤의 아동노동. 부끄러운 어른의 자화상]
[일은 시키고 돈은 안 주는 추태. S급 헌터조차 열정페이의 희생양이 되다]
[감지윤 친구 간첩설……. ‘사실무근’]
[목숨 걸고 나라 지키는 헌터들……. 야구선수보다 돈 못 번다?]
성능 확실하구만. 정권 바뀔 때마다 피바람이 불어오는 지옥불반도에서 수십 년간 살아남은 언론의 판단력은 역시 날카로웠다.
언론은 자신의 실수(기득권을 못 알아본 죄)를 사죄하는 것처럼 감지윤에게 온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지금껏 신나게 감지윤을 불판 위에 올리고 물고 뜯던 일부 네티즌은 언론의 태세변화에 격분했으나.
나는 참된 언론인들을 지켜주기 위해 폭탄을 하나 터뜨렸다.
식상한 아이돌 연애설 따위보다 더 커다란 파급력을 가진 폭탄이었다.
“서울형 초상혁신도시계획은 성큼 다가온 초현상 시대에 서울을 가장 미래적인 매트로폴리스로 만들기 위한 정책이며, 게이트 산업과 부동산 정책 안정이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서울에 열린 게이트들을 폐문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헌터 길드가 상주하며 게이트 내부를 주기적으로 청소한다면, 다시 말해, 게이트 폭주를 예방한다면 해당 지역을 주택단지와 상업단지로 개발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미국에서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오히려 헌터 산업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며, 로컬 헌터가 지역 방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역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서울시장이 게이트 옆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데 무시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한민국이 또다시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나는 장작을 계속 던져 넣으며 여론에 불을 붙였다.
[<속보> ‘재개발 총력전’ 하반기 30만 가구 추가 공급… 안전모 쓴 헌터들이 해냈다.]
[송파구-강동구 탈환 완료. 고덕동 게이트는 ‘청산’ 길드에 낙찰.]
[충격! 게이트 옆에서 일상생활… 뉴욕에서는 이미 하고 있다?]
서울시장이 작정하고 쥐불놀이를 시작하니 순식간에 나라 전체가 불타올랐다.
서울에 집을 짓는다니까 부산과 광주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게이트도 닫지 않는다니 마석 산업체 주가가 폭등했다.
국방당에서는 서울시장이 재벌에게 비굴하게 무릎 꿇고서 국민의 목숨으로 도박을 한다고 비난했고, 국민당에서는 미국을 방패 삼으며 마석산업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감지윤?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 * *
간신히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난 감지윤은 이틀 만에 헌터 아카데미로 등교할 수 있었다.
드넓은 공원 같은 아카데미 부지를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으니 멀리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긋지긋하게 스토킹하는 기자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감옥에서 나온 느낌이었다.
며칠 새 눈가에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앉은 감지윤을 미사키가 반갑게 반겼다.
“지윤짱-”
미사키의 다크써클은 감지윤의 다크써클보다 대략 2배 정도 짙었다.
감지윤이 그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목에서 약간 뭉개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해? 일본인이야?”
“야! 일본 얘기하지 마!”
“스미마셍-”
감지윤은 힘없이 웃었다. 왕따에서 은따로 변하고, 서서히 이지메에서 탈출하던 미사키가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생각하니 괴로웠다.
감지윤과 친하게 지내던(혹은 부모님의 지령을 받고 감지윤과 친해지려는) 같은 반 친구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지윤아 괜찮아?”
“B반 애들 뒷담화 장난 아니더라. 근데 그 새끼들 여론 바뀌자마자 입 싹 씻었어.”
“와……. 나라에서 돈 안 주려고 지랄해 놓고 감지윤 탓한 거야? 개소름돋네.”
1교시를 진행하러 들어온 초현상 생물학 선생님도 언뜻 무뚝뚝하게 감지윤의 안부를 물었다.
“어이, 감지윤이……. 기레기들 루머에 시달렸대매? 니는 이미 ‘국민 여동생’이니까 어쩔 수 없다. 운명인갑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감지윤은 그날 온종일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며 고통받았다. 친일파보다는 나은 별명이라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날 저녁. 학교가 끝나고 감지윤은 진홍색 노을빛이 내려앉은 교정을 걸었다.
보통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어딘가로 휙 날아가서 강을 흙으로 메우거나 산을 평지로 만드는 공사현장에 동원됐지만, 정부 놈들도 양심은 있는지 ‘그 사건’ 이후로 감지윤을 호출하지 않았다.
그 덕에 감지윤은 아주 오랜만에 걸어서 하교할 수 있었다. 왠지 노을에 젖은 풍경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시야가 트이며 세상이 보인다. 아카데미의 교정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모여 티격대는 아이들, 목검과 페인트건을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예비 헌터들, 그들의 얼굴에 그려진 희로애락.
주황색 세상에서 새삼 짙어 보이는 그림자. 상록수 공원 한가운데의 위령비.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저녁 바람. 서서히 하늘 저편에서 스며드는 새벽의 군청색.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었건만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았을까?
“하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만, 큰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유년기를 잃어버렸다.
공사장에서 보낸 수많은 추억들이 이번 일을 겪으며 부질없는 헛고생으로 변해버렸다.
공사장 아저씨들을 도우며 칭찬받았던 일, 폐허를 치우다 시체를 보고 슬퍼했던 일,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맛있는 음식을 양껏 사먹었던 일, 노가다 용어를 익히며 즐거워했던 일…….
추억이 검게 물들며 과거는 무의미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라에 헌신했지?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감지윤의 마음에 시꺼먼 무언가가 스멀스멀 차올랐다. 지독한 사춘기가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성기가 막 시작된 소년의 목소리.
“감지윤. 왜 그래?”
“어? 시호?”
강시호였다. 양일호와 이호정이 거둔 강석호의 넷째이자 유일한 동생.
하나 양일호와 이호정은 직업 정치로 바빴으므로 사실상 감 기자와 천화란이 강시호를 돌봤다.
어렸을 때부터 잠깐이지만 같이 자란 강시호를 감지윤은 동생처럼 생각했다.
“누나라고 불러.”
“지랄 마.”
“확!”
그러나 강시호는 감지윤을 누나가 아니라 친구로 생각했다. 감지윤이 한 학년 높지만 빠른년생이었으니까. 그건 중대한 문제다.
소년은 오늘도 너덜너덜한 교복을 입고서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피멍을 본 감지윤이 언짢은 기색으로 물었다.
“어휴. 오늘은 또 누구한테 맞고 다녔어?”
“맞고 다닌 거 아냐. 대련에서 진 거지.”
“그게 그거지. 너 이긴 적 없잖아.”
“능력이 아직 안 나타나서 그래.”
“각성제 맞고서도 마석 흡수 못 하면 그냥 각성이 안 되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비각성자가 각성자들 사이에서 맞고 다닐 거야?”
“한승문 삼촌도 마석 흡수 못 하잖아. 나도 특이능력자일 수도 있어.”
“어휴…….”
강시호는 실종 후 사망 선고를 받은 강석호의 유족이라는 자격과 순직 보상금을 통해 각성제를 구입하며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그러나 강시호에게 이능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각성제를 맞긴 했으니 헌터 훈련을 받고 있었지만, 강시호는 항상 순위의 밑바닥을 차지했다.
강시호가 비각성자 반으로 쫓겨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소년의 명목상 부모가 권력자라는 것뿐이었다.
그 덕에 강시호를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폭행하는 학생들은 부모 빽 믿고 설치는 금수저를 징벌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감지윤은 강시호를 볼 때마다 열불이 났다.
“야! 대체 언제까지 거기서 맞고 다닐 거야! 비각성자는 헌터 못 해? 그냥 총 들고 싸워!”
“비각성자가 헌터 면허 따려면 20살이 넘어야 해. 각성자는 15살이고.”
“미친놈. 15살 찍자마자 괴수 잡으러 갈 거야?”
“니가 하는데 나는 왜 못해?”
“그럼 같은 반 애들한테 학교폭력 멈춰라고 지랄이라도 해보든가.”
“신경 꺼.”
“아, 씨발, 개나 소나 이지메야. 무슨 나뭇잎 마을도 아니고…….”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감지윤의 등 뒤에서 미사키가 나타났다.
“나 불렀어?”
“이지메라고 하면 자동으로 오는구나.”
“어? 시호도 있네? 안녕-”
강시호가 얼음처럼 굳었다.
“아, 안녕…….”
감지윤은 조금씩 얼굴을 붉히는 강시호를 보며 벌레를 본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섞여 노을이 내려앉은 아카데미의 교정을 걸었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