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64화
EP 42-정통 헌터 아카데미(2)
미국에 서부개척시대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서울개척시대가 있었다.
전국민이 ‘서울 탈환’이라는 마성의 단어에 꽂혀서 반쯤 정신이 마비됐었다.
“게이트 사태가 시작되자마자 몇 개월도 안 돼서 수도권이 쑥대밭이 됐습니다! 그 치욕을 갚지 않고서는 고혼이 된 일천만 국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무너진 서울을 재건하는 대사업을 통해 일자리도 만들고, 부동산 시장도 안정시키고, 경제도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서울 없는 한국은 한국이 아니다! 지긋지긋한 게이트 전부 닫아버리고 게이트 청정지대로 나아가자!”
서울에 열린 수많은 게이트에서 알차게 마석을 캐던 헌터 업계와 마석재벌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긴 했지만 이 광기를 막을 순 없었다.
일단 서울만 되찾으면 부동산 가격도 낮아지고,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도 좋아지고, 온 우주의 기운이 몰려들어 국운이 흥성해진다는 이야기가 온종일 들려왔다.
물론 토목사업으로 웃는 건 결국 관료와 토건 재벌이니 그들이 열심히 부채질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울 재개발? 건설경기 부흥? 관료 주도 경제성장? 경제관료와 토건재벌의 꿈과 희망?
전부 S급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끝장났다.
“서울에 게이트가 열린 건 우연입니다! 당장 내일 부산에도 열릴 수 있어요! 서울 재개발은 멈춰선 안 됩니다!”
“국민 여러분! 서울은 위험합니다! 서울에 벌써 두 번이나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게 우연이겠습니까?!”
S급 게이트가 서울에 열린 건 우연이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이 확 줄어들었다. 그토록 서울 탈환을 소망하던 수도권 난민들마저도 일부 마음을 돌렸다.
즉, 서울 부동산 수요가 폭락했다.
서울 개발 계획을 백지화시키려면 지금이 가장 큰 기회다.
숨죽이고 있던 마석재벌이 토건재벌에게 달려들었다. 국회의원을 후원금으로 조종하고, 토론회에 논객을 내보내고, 시민단체 대표를 매수하고, 인터넷 기사를 의뢰하고, 커뮤니티 댓글란에 알바를 풀고…….
정관계와 방송가가 활활 불타올랐다.
“폐허가 된 서울을 헌터들 사냥터로 쓰자는 건 소수의 헌터들을 위해 전 국민을 희생시키는 겁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게이트 청정지대로 나아갑시다!”
“서울에 열린 수많은 게이트로 많은 사람이 죽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5차 산업혁명인 초상혁명을 거치며 게이트는 자원이 되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금광을 닫는 바보가 어딨습니까?”
“1천만 난민이 주거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서울을 재개발해야 부동산 광기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충청도에 아파트를 그렇게 짓고, 새만금은 통째로 개척해서 신도시를 만들어 놨는데 아직도 집이 부족합니까? 굳이 서울에도 난민 전용 아파트를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언제 난민 전용 아파트를 짓자고 그랬습니까? 서울에 주거단지를 지어서 부동산 가격을 잡으면 난민들의 빈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죠!”
“그게 왜 난민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입니까? 부동산 가격 안정은 전국민을 위한 정책이지 난민 정책이 아닙니다!”
“제가 언제-”
“대체 언제까지 난민들 위주로 생각할 겁니까! 난민들과 일반 국민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난민 차별 프레임입니다. 난민과 국민의 차이가 뭡니까? 난민은 국민이 아니에요? 21세기 초상사회에서는 새로운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게이트는 자원입니다! 마석이 미래입니다!”
대체로 여론전은 마석 재벌에게 우세했다. 전국민이 S급 게이트라는 뿅망치를 얻어맞고 헤롱헤롱거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론전에서 이긴다고 서울 재개발 계획이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모든 싸움의 승패는 서울 개발의 주도권을 쥔 단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으니…….
“시장님-!”
“한승문 서울시장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주택단지 건설이-”
“서울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된다는 소문이 있던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입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시끄러운 목소리로 소리치는 건 덤이다.
국회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늘어난 인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가 많았고, 기자들이 앞을 막으면 꼼짝없이 멈춰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짜증나지 않았다. 휠체어 탄 장애인 앞을 가로막으면 어떡하냐며 배려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훈계하지도 않았다.
이 기자들은 내게 몰리고 있는 권력을 수치화시킨 성적표였는데, A+ 성적표를 보고 화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허허……. 최대한 많은 분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신중하게 결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주거단지 건설 계획은 철폐된 게 맞습니까?”
“S급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들이 서울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괴수를 최우선으로 제거하고 있고요, 서울을 어떻게 개발한 것이냐의 문제는 시민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 논의할 사안 같네요.”
“결국 서울에 있는 게이트는 전부 닫히는 겁니까?”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 정치인 한승문. 짧고 굵은 정치인생 동안 오로지 빠른 판단과 행동력으로 승부를 본 해결사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역대급 간잽이질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애태웠다.
왜? 정치인은 관심을 먹고 자라는 생물이니까.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나를 주목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 상황을 빨리 끝내야 하지?
모두가 애타는 마음으로 내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건재벌의 말대로 게이트를 전부 닫아버리고 아파트를 지을 것인가?
아니면 마석재벌의 말대로 게이트를 남겨 두고 서울을 사냥터로 쓸 것인가?
사실 답은 이미 정해졌다.
헌터아파트다.
게이트 옆에 헌터 길드 하나를 통째로 상주시키고, 주기적으로 게이트 내부를 청소하며 괴수가 바깥으로 기어나오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아파트에 사는 헌터들은 인근에 게이트가 새로 열리면 즉시 출동해 게이트 사태를 제압하는 것.
이건 임시방편으로 만든 미봉책이 아니라 홍선아가 미국에서 물어온 검증된 정책이었고, 심지어 검토가 다 끝나고 발표만 기다리고 있던 정책이었다.
그러나 신나게 달려가서 주절주절 떠드는 건 아마추어의 방식.
진정한 고수의 방식이란 축구선수가 공을 드리블하는 것처럼 여론을 몰고 가서 극적인 타이밍에 터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인 내게 여론을 조작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일단 재벌 고위층에게 살살 정보를 흘려 싸움을 멈추게 만들고, 싸움이 멈추자마자 9시 뉴스에 기어나가 상생과 협치를 운운하며 중재자 이미지를 조성하고…….
SNS에 의미심장한 컨셉샷을 올리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갈팡질팡하는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계각층과 간담회 릴레이를 벌이며 신문 기사를 쏟아내고…….
‘헌터아파트’는 쪼끔 유아용 애니메이션 이름 느낌이니까 ‘서울형 초상혁신도시계획’이라는 깔끔한 이름도 붙이고…….
그렇게 기를 모아 전국의 어그로를 모두 흡수한 다음, 마지막으로 발표만 남겨놓은 시점에 일이 터졌다.
“의원님!”
피채원이 내 옛날 호칭을 부르며 시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졌다. 나쁜 징조다.
“대체 무슨 사고가 터진 거야?”
“인터넷……! 인터넷 확인해 보세요.”
“……?”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위풍당당하게 장식하고 있는 ‘감지윤 친일파’라는 단어를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한국 최강의 헌터가 ‘일본으로 이민 가겠다’ 선언하자 전국이 뒤집어졌다.
교복을 입은 감지윤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문제의 발언을 하는 영상은 유튜브 실시간 조회수 급상승 랭킹 1위에 올랐다.
모든 인터넷 신문이 감지윤의 이민 논란을 내보냈다. 저녁 뉴스에서도 감지윤의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 7초가량 편집되어 방송됐다.
당연히 인터넷은 불바다가 됐다.
「정석관 : 중학생이 진짜 이민간다고 그랬겠습니까? 당연히 뭔가 불만이 있어서 투정을 부린 거죠. 왜 이리 호들갑인지;;」
「asdf12 : ㅋㅋㅋㅋ 공무원이 돈 떼먹었다고 이민간다고 바로 협박하는 싸가지 봐라.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거면서 갑질부터 박네. 싹수가 노랗다. 평소 기부는 했냐?」
「명란비빔 : 맘먹으면 바로 이민갈 수 있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댐. 법적으로 못 나가게 막아놨어야 하는 거 아님??」
「냥이노비 : 애한테 일을 시켜놓고 돈을 안 주는 어른들이 문제죠. 부끄럽네요…….」
「asdf12 : 공무원 졸라 불쌍하네. 당연히 위에서 시켜서 나온 건데 SSS급 헌터한테 찍혀서 조리돌림당하고 ㅋㅋㅋㅋ 공무원 자살하면 감지윤이 죽인 거다」
「dornrwjstk : 감지윤평소가장친하게지내던친구,, 일본인이라는충격적인사실!! 당장출국금지시키고 일본인친구잡아서조사해야합니다!!!!」
「우남정 : 독재자 원옥분이 하는 일이 전부 이따위.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ALAM : 이건 감지윤 친일 논란이 아니라 감지윤 열정페이 논란 아님?」
「1원月 : 근데 ㄱㅈㅇ 돈 엄청 많을건데 그깟 수억 원 떼먹었다고 이민간다고 그러는 거 좀 그렇네……. 좋게 봤는데 실망임.」
「우국충정12 : 댓글조작여론조작조작으로 불법적가짜로튕겨져나온양판석정권!! 엉터리로정권잡고 자유대한민국과 참스러운국민들을위하여 참잘했다고자인하는것이 쌀한톨만이라도 있능감!? 단언컨대티끌만큼도없구나!!!1 농촌어촌박살내고호의호식누리는 친일친북친중독재자양판석과 개버러지못한북괴사기꾼한승문을감옥에넣어야한다!!!1」
「MPA : 감지윤 친구가 일본 귀족이라는 썰이 있던데 좀 싸하네. 진짜로 스파이한테 포섭당해서 이민가려는 거 아닌가」
「에릭송 : 가무지윤상www 일본인이되어버리는wwww」
「vhcjdcjs : 중학생이 돈 얼마나 버는지 봤는데 ㄹㅇ 현타오네. 나는 1억만 주면 개처럼 짖을 자신 있다. 진짜 배가 처불렀나 이민드립이나 치고 어이가 없다 ㅋㅋㅋㅋ」
“아, 씹…….”
감지윤은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벽 말고 이불에.
그리고 핸드폰의 뒤를 이어 몸까지 폴짝 집어던졌다. 푹신푹신한 침대가 쿠션처럼 감지윤을 감싸안았다.
감지윤은 1.5m 크기의 고양이 베개에 얼굴 박고 외쳤다.
“아, 씨발!”
감지윤이 살짝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러나 푹신한 이불로 눈물을 닦고서, 씩씩하게 욕했다.
“씨발! 씨발! 씨발! 나쁜새끼들아!”
감지윤의 일상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온갖 사람들이 감지윤의 사정을 콘텐츠로 소모했다.
애가 돈을 떼먹혀서 불쌍하다, 싸가지가 없다, 일본 못 가게 막아야 하다, 이게 다 원옥분 때문이다, 돈 많아서 부럽다, 등등등.
“아으으……!”
살아 움직이는 괴수를 곤죽을 내서 죽여버리는 거? 괜찮다. 피바다가 된 서울에서도 탈출했는데 그게 뭐가 대수라고.
공사장이나 무너진 산을 치우다가 시체나 백골이 나오는 거? 괜찮다. 그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애도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건 괜찮지 않았다.
“흐잉…….”
감지윤은 이불에 얼굴을 처박고 조금씩 울었다.
미안했다.
일본에서 감지윤을 포섭하기 위해 파견된 쪽바리 소리를 듣는 미사키한테 너무 미안했고, 심지어 감지윤을 살살 구슬린 죄로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공무원에게도 미안했다.
그리고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한 행동이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였다.
감지윤은 그렇게 자책하며 한참 동안 훌쩍이다가,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어른이 세 명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한승문.
“안녕.”
“아저씨 왜 여깄어?!”
“왜 여깄겠냐.”
한승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천화란은 딸에게 존댓말 쓰라고 눈을 부라렸지만, 감지윤은 저도 모르게 눈물샘이 터졌다.
“아저씨이이이. 흐이이…….”
“으이그. 못났다. 못났어.”
감지윤은 눈코입에서 채액을 흘리며 아장아장 걸어가 한승문의 양복에 얼굴을 처박고 눈물과 콧물을 슥슥 닦으며 웅얼거렸다.
“나 조땐 것 같애…….”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욕설에 감 기자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공사판을 못 가게 했어야 하는데…….”
* * *
감지윤은 제주도에서 가장 부자들만 산다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덕에 기자들이 문앞까지 찾아와 딩동딩동 벨을 누를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입구에 기자들이 수북했고, 카메라는 감지윤이 창문 밖으로 나와 도망칠까 봐 창가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거 해결하기 전까지 지윤이 일상생활 못 합니다. 여기서 끝을 봐야 해요.”
감지윤 이미지 세탁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됐다.
식탁에 둘러앉은 인원은 서울시장 한승문, 서울시 정무부시장 감철, 그리고 초상연구본부장 천화란.
“장관급 하나. 차관급 둘. 든든하네요.”
“…….”
“죄송합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었지만 감 기자와 천화란 박사는 정색했다. 자식이 뻔히 괴로워하는데 웃는 부모가 없다는 걸 간과했다.
“크흠! 의외로 상황은 그렇게까지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감지윤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지만, 대중선동과 여론조작의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는 초점이 미묘했다.
일단 감지윤의 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팩트만 놓고 보자면, 원옥분 정권의 고위공직자들이 예산 절감을 위해 감지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걸 미뤘고, 그러다가 감지윤이 폭발해서 말실수를 한 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지금까지 공개된 건 ‘일본으로 이민갈 거니까요’라는 발언이 담긴 음식점 동영상뿐이다.
나머지 정보는 전부 기자들이 취재해서 알아냈거나, 아니면 뇌피셜로 소설을 썼거나, 혹은 작정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린 헛소문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감지윤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실체는.
-일본 가지 마라.
-돈 많아서 부럽다.
-싸가지가 없다.
이 3가지가 모호하게 뒤섞인 ‘감정’이다.
“즉, 주장과 근거로 된 공격이 아니라는 소리죠.”
“시장님……!”
여기까지 설명해 주자 감 기자와 천화란은 복채 내놓으라면 골드바 꺼낼 것 같이 눈빛을 번뜩거리며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그들은 눈빛으로 ‘제발 우리 애 좀 도와주십쇼’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속전속결로 해결해야 합니다. 감 기자님이랑 천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논란이 커질수록 상황이 아주 더러워져요. 특히 서울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형성하고 싶은 사람들은 감지윤을 빌미로 헌터 전체를 음해할 동기가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론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죠.”
인터넷과 뉴미디어가 등장하며 언론사가 맛탱이가 가긴 했지만, 그건 재정적인 위기에 가까운 것이지 정치적인 위세는 여전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언론이 억울한 사정으로 음해를 당하는 S급 헌터를 옹호하고, 음모론에 현혹된 우매한 대중들을 계몽하는 그림’을 만들면 일이 해결된다.
여기서 감지윤에게 돈을 안 주려고 추한 모습을 보인 정부를 지나치게 까면 안 된다. 선거철이기 때문에 이념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지윤이한테 돈 안 준 인간들은 원옥분 대통령님과 잘 상의해서 해결할 테니까, 일단 복수는 나중에 합시다.”
“시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 우리 애 억울함부터 풀어주세요…….”
감 기자가 거의 울먹거리는 수준으로 읍소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어디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독재자를 미행하던 종군기자도 자식이 공격받으니 멘탈이 흔들린 모양이다.
“감 기자님. 사실 언론은 계산기만 잘 두들겨 보면 지윤이 편을 드는 게 맞아요.”
“제가 언론인 출신이라고 편을 들어주는 건 너무 나이브한 발상 아닌가요?”
“아뇨. 대통령도 5년 집권하는데, 지윤이는 앞으로 수십 년 집권할 거잖아요.”
그렇다. 언론은 감지윤 편을 들어주고 호감을 사는 편이 이득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데 어디 세상일이 그렇게 흘러가나?
아니지.
일단 조회수 나오겠다 싶으면 냅다 지르고 보는 본능, 혹은 습관이 있으니까 감지윤을 조리돌리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길게 해명하지 말고. 그냥 딱 이것만 언론에게 인지시키면 됩니다. 감지윤은 애가 아니다. 기득권이다. 권력이 있다. 앞으로도 있을 거다. 그러면 언론사에서 알아서 지윤이를 보호할 논리를 만들 겁니다.”
내가 대강 방향만 잡아주니 감 기자도 이성을 되찾았고, 천 박사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리고 감 기자님이 언론인 출신이라는 것도 도움이 되죠. S급 헌터가 무서워서 권력에 굴복하는 느낌이 아니라, 업계 동료의 자식을 밀어주는 그림이 되니까요.”
“하하! 우리가 똥고집이랑 자존심만 남은 인간들이긴 합니다.”
“근데 그 일본인 친구 보통 사람 맞지요? 화족이라던데…….”
“미사끼요? 귀족이라기보다는 그냥 유서 깊은 준재벌 정치인 집안 아이입니다. 그리고 예의도 바르고 인사성도 밝은 어린애예요. 스파이니 뭐니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도 헌터를 전략무기 취급하는 풍조가 남아 있으니까요. 사람을 물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장님. 어쩔 줄을 모르고 불안해하기만 했는데, 이제 좀 마음이 진정되네요.”
“아닙니다. 자식이 걸린 문제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습니까.”
어른들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사이에 소파에 앉아 초코파이를 우물거리던 감지윤이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
“지윤아! 시장님이라고 해야지!”
“시장님!”
감지윤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집까지 어떻게 들어왔어요? 기자들 엄청 많이 있던데…….”
“그냥 들어왔지.”
“예?”
얼빠진 대답은 감지윤이 아니라 감 기자 쪽에서 들려왔다.
“그냥 들어오셨다고요?”
“그러면 안 됩니까?”
감 기자는 뇌가 일시정지된 것처럼 몇 초 얼어붙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러면 이미 기사가 올라왔겠네요?”
“뭐……. 한승문 서울시장. 칩거 중인 감지윤 헌터 사택 방문…… 이렇게 떴겠죠?”
감 기자가 넋 놓고 허공을 쳐다봤다. 지금쯤 내가 했던 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냥 감지윤에게 권력이 있다는 것.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권력이 있을 거라는 것. 감지윤은 절대적인 기득권이라는 것.
그것만 딱 언론에게 인지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