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63화 (263/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63화

EP 42-정통 헌터 아카데미

수렵연수원, 혹은 헌터 아카데미는 본래 각성제를 주사 받은 신규 각성자들에게 기초교육을 해주는 기관이었다.

매년 수천 명의 외국인이 제주도에 방문해 각성제를 주사 받고 헌터가 된다. 그리고 몇 주의 기초교육을 거쳐 전투에 익숙해지는 식이다.

즉, 제주 초상산업단지에서의 각성제 주사가 메인이지, 수렵연수원 자체는 기본적인 교육만 진행하는 보조적인 기관에 가까웠다.

그러나 ‘헌터’로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초상능력자가 주목받게 되면서 국내의 모든 각성자가 필수교육을 받게 되었다.

일상에서 실수로 물건을 부수거나 타인을 해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컨트롤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는 김에 어른이랑 애들이랑 같이 교육시키면 좀 그러니까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도 만들었다.

이게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합격률 99%의 신화! 실기 만점을 위한 집중 솔루션!]

[1세대 베테랑 헌터가 ‘직접’ 케어하는 소수정예 스터디]

[우리 아이 헌터만들기. 제주 헌터 아카데미 입시 세미나]

처음부터 제주 초상산업단지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존재했던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초교육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초등, 중등, 고등 커리큘럼이 따로 있었을 뿐이다.

성인용 교육에서 시체 사진을 빼고 보여주거나, 단어를 좀 순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사실 아이들을 소년병으로 만든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구제책이었다.

그러나 수렵연수원장은 예산을 수급하기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계절학기 체험교육의 문을 열어버렸고,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왜 우리 애는 못 듣냐고요! 사이트 열리자마자 신청했잖아!”

“그, 그게…… 정원이 벌써 가득 차서요…….”

“그럼 늘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몰려든 신청자는 수십 명 규모의 체험학습 정원을 강제로 수백, 수천 명 단위로 꾸역꾸역 늘려버렸고, 정치인들은 그걸 보고 학부모 표를 얻기 위해 아예 초등-중등-고등학교를 신설해 버렸다.

문제는 이게 최초의 아동 초상능력자 교육기관이었다는 거다.

“لماذا لا تقبل طفلي بالمدرسة؟”

“예?”

“هل هو للسكان المحليين فقط؟”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입학 신청자에 경쟁률은 이미 구름을 뚫고 화성까지 치솟았다.

주요 고객은 자기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그러는 김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은 각국의 권력자와 귀족들.

돈이 복사가 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걸 눈치챈 정부는 만 15세 이상의 비각성자도 입학하면 각성제를 주사해 초상능력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조항을 신설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 결과, 헌터 아카데미 미성년자 교육반 자체가 헌터 아카데미의 본체가 되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제주도 내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명칭의 분리까지 이루어졌다.

수렵연수원은 각성제를 주사받은 신규 헌터나 국내 각성자를 상대로 몇 주 동안 기초교육을 진행하는 곳.

그리고 헌터 아카데미는 세계 최고의 명문 초능력자 양성소다.

* * *

이제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개조된 제주대학교 부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교정을 거닐고 있었다.

푸른 잔디밭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허공을 날아다녔고, 교수가 눈을 부라리고 달려오자 아무도 초능력을 안 쓴 척 땅에 내려와 도망쳤다.

그리고 교실 창문에 턱을 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헌터 아카데미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한 소녀가 있었으니.

아카데미 최고의 인기인인 소녀의 이름은 바로.

“야! 감지윤! 오늘 급식 뭐냐!”

“킹금치 된장국.”

“에……. 오늘은 매점이다.”

감지윤. 대한민국에서 한 치의 이견도 없이 최강으로 인정받는 염동술사다. 그리고 모든 공사장과 건설노동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했다.

감지윤이 죽은 눈으로 친구에게 중얼거렸다.

“아…… 나도 급식 먹고 싶다.”

“먹든가.”

“나 오늘 노가다야.”

“또? 매일 어디 불려가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우리 아빠가 종군기자 시절 총에 맞아 죽어간 적은 있지만 나에게 해준 적은 없는 말이지. 그냥 오까네 때문에 하는 거야. 너는 눈물 젖은 함바집 제육볶음을 먹어본 적이 있니? 안 먹어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둘이 먹다가 하나 죽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니까…….”

“지윤짱 힘내.”

감지윤의 절친 미사키가 싱글벙글 웃으며 추욱 늘어진 감지윤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미사키는 사실상 일반인에 가까워진 화족 집안 막내딸로, 일본 내전이 격화되자 가문에서 모든 연줄과 금력을 동원해 한국으로 피신시키다시피 아카데미에 보낸 금지옥엽이었다.

하나 장전읍 사태와 제주도 테러로 반일감정이 극한에 다다른 한국인 학생들은 미사키를 은근히 따돌렸고, 감지윤도 일본에 썩 좋은 감정은 없어서 (공사판에서 배운) 야매 일본어를 못 하는 척했다.

그러나 괴롭힘이 점점 심해져 지우개를 약간 떼어 만든 알갱이를 수업시간에 미사키의 머리카락에 맞추는 게 공공연한 놀이 수준이 되자 감지윤이 나섰다.

[아잇 씨벌놈들아 이지메 좀 앵간이 해라!]

감지윤은 그 이후 미사키에게 따로 관심을 주진 않았으나, 눈치를 보며 기회를 노리던 미사키는 감지윤을 생명줄로 인식했다.

미사키는 그 이후 감지윤을 졸졸 따라다녔다. 일본어 할 줄 아냐고도 물어보고, 한국어 가르쳐 달라고 더듬더듬 계속 말을 걸며 생긋 웃었다.

비록 명가의 후예가 식민지 출신 조센징에게 굽신거리는 건 자존심 상하지만 교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끽해야 중학생이 가지고 있는 차별의식이 얼마나 깊겠는가.

그리고 감지윤이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 또한 얼마나 깊겠는가.

애들끼리 몇 주 붙어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감지윤이 미사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미사키가 감지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시간이 흐르자 둘은 절친이 되었다.

“지윤이 너 한국 초상능력자의 톱 아냐? 누가 너보고 오라가라 명령해?”

“내 마음 속 정언명령이.”

“뭐라는 거야.”

“너 도덕시간에 졸았지.”

“내가 성적이 낮은 이유는 내겐 모든 수업이 외국어 교육이라 그래. 나 갘슈인 다녔어. 그것도 고카쿠유였다구.”

감지윤은 미사키가 신분 하락, 가족 걱정, 성적 부진, 타지 생활, 이지메 콤보를 맞고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뭐……. 맨날 똑같지. 산 깎아서 바다 메우고. 그거 포크레인으로 밀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옛날엔 다떼모노까지 내가 손댔는데 요즘은 전문가가 늘어나서 그나마 편하다.”

“급료는 잘 챙겨줘?”

“많이 주긴 하는데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젠 봉사활동 시간 쌓는다는 마음으로 한다.”

“착하네-”

“근데 정권 바뀌고 나니까 자꾸 뺑뺑이를 돌린단 말이지. 주택공사는 도로공사에서 돈 받으라 하고. 도로공사는 경북도청에서 돈 받으라 하고. 경북도청은 국토부에서 돈 받으라 하고. 아니 내가 무슨 야미낑이야? 자꾸 돈을 받으러 다니게 만들어. 판석이 할아버지가 대통령 할 때는 따박따박 통장에 꽂아 줬는데…….”

미사키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 웃었다.

“한국은 내각이 너무 자주 바뀌는 거 아냐? 자민당을 봐봐. 국밥?처럼 든든하잖아.”

“거긴 국밥이 아니라 콘크리트고.”

감지윤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사키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미사키는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감지윤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곱슬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어줬다.

“출근한다. 쌤한테 대신 말해줘.”

“응. 올 때 호두과자.”

“흥.”

감지윤이 창문 너머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풍선처럼 서서히 둥실둥실 떠올랐다. 미사키는 초롱초롱 눈빛을 반짝거리며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그 신기한 모습을 관람했다.

아카데미 주차장 공터에서 원바운드를 하던 공에 미친 남자애들이 감지윤을 발견하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야! 감지윤! 그거 해줘! 그거!”

“꺼져!”

“아! 딱 한 번만! 한 번만-!”

감지윤은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감지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약간 관종끼가 있던 감지윤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후드티 모자를 쓰고 끈을 꽉 조인 다음 개구지게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청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감지윤은 그렇게 인사하며 세차게 날아올라 푸른 하늘의 점이 되었다.

학생들은 폭소하며 자지러졌고,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던 체육 선생님은 쟤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그……. 지윤 양. 정말 미안한데 보수는 국토관리청에 문의해야 할 것 같아요.”

“네? 평탄화 작업 다 마쳤잖아요.”

“이게 사업승인이 사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로 난 거라…….”

어쩐지 피자와 치킨을 사줄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감지윤은 정말 미안한 것처럼 고개를 꾸벅거리는 공무원을 보며 정색했다.

“그런데요?”

“우리가 가장 먼저 공사를 진행하는 건 맞는데, 지금 감지윤 양이 평탄화시킨 토지 용도가 좀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철도도 있고, 지방도로도 있고…….”

감지윤은 공무원의 변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차피 맨날 똑같은 래파토리다. 도로공사인지 도로관리청인지 국토부인지 지자체인지 뭔지 어쩌고 저쩌고…….

결론은 항상 똑같다. 우리 말고 다른 곳에서 돈 받아가라는 거다.

“하아…….”

“정말 미안해요, 지윤 양…….”

감지윤은 원래 돈 문제에 대해 까다롭지 않았다. 평생 먹고살 돈은 이미 벌었고, 나라가 얼마나 힘든지 똑똑히 봤기 때문에 가끔 기분 좋은 날에는 돈 안 주셔도 괜찮다고 자비를 베풀기도 했다.

실은 돈을 안 받을 때마다 칭찬받는 걸 살짝 즐기기도 했다. 어린이는 돈보다 어른의 칭찬이 더 기분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수십억 대의 돈도 푼돈과 다를 바 없다’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음습한 마음도 아아아아주 살짝 있었고.

문제는 그게 소문나면서 자꾸 이곳저곳에서 대금을 떼먹으려고 간을 본다는 거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 찔러보고 감지윤이 돈 안 받겠다고 하면 이득이고, 다른 부처에 돈 달라고 해도 이득이고, 니들이 돈 내놓으라고 하면 말단 직원 시켜서 대가리 처박으면서 원래 주기로 했던 돈을 주면 된다.

원옥분 정권이 나쁜 게 아니다. 양판석 정권 시절에도 이랬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장 한승문이 철저하게 단속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뿐.

그러나 원옥분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은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검찰 내부의 양판석 파벌을 제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지윤이 이런 고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윤 양…….”

“…….”

감지윤은 조숙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눈앞의 공무원은 고개를 숙이는 용도의 허수아비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며 더 똑똑해졌다. 그러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감지윤에게 사과하러 나오는 공무원은 주로 그녀의 어머니인 천화란과 비슷한 나이대거나, 감지윤이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여성이었다. 가끔은 인자한 꼬부랑 할아버지가 나올 때도 있다.

그리고 이곳은 공공장소였다. 피자와 치킨을 동시에 파는 음식점이다.

감지윤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주변에서 안 그런척 핸드폰으로 감지윤을 촬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원하게 감지윤이 돈 안 받겠다고 지르면 미담으로 솔솔 퍼질 정도로.

마지막으로, 감지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사정하는 공무원의 눈동자에서는 검은 탐욕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어쩌면 감지윤이 돈을 안 받게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진급이나 금전 따위의 보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음…….”

물론 감지윤은 자신의 추측에 근거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이 심증이 아예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감지윤은 어중간하게 알았기 때문에 불안했고, 불안은 짜증으로 변했고, 짜증은 울분으로 변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따위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빌어먹을 어른들 같으니라고.

결국 감지윤은 확 질러버렸다.

“괜찮아요. 돈 안 주셔도 돼요.”

“아……! 지윤 양! 정말 고맙-”

“일본으로 이민 갈 거니까요.”

서울에 열린 S급 게이트가 실시간 검색어 2위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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