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60화 (260/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60화

EP 41-적응(3)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는 다르게, 서울시장은 밀실에 재벌들을 불러 모아 수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 사업을 쑥덕거리지 않는다.

자기 비리를 파헤치려는 정의로운 검사를 불러들여 양주를 따라 주면서 ‘이봐 젊은 친구, 너무 피곤하게 살면 큰코다쳐’ 따위의 구린 멘트를 치지도 않는다.

그런 건 영화에나 나오는 일이다.

같은 논리로, 정계의 배후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날려버린다거나, 대통령과 쇼부를 쳐서 군산분리법 개정안의 방향을 틀어버린다거나, 그런 흉악한 일은 절대로 일어난 적이 없다.

서울시장의 공식업무는 다음과 같다.

멧돼지, 고라니, 괴수를 비롯한 유해조수 구제사업 승인. 정례회의, 비각성 건설노동자 복지 정책 발표, 제천 사태 1주년 추모기념식 참석, 제주 헌터 아카데미 분원 꿈빛어린이 헌터교실 강연, 서울시 공무원노조 조합장 면담, 도쿄 인터네쇼날 싸이오닉 앤 디벨롭먼트 컨퍼런스 화상회의 참석, 뉴스 9 생방송 인터뷰, 서울형 초상혁신건설전략 기자간담회, 등등등.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업무량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법률은 서울시장에게 분신술을 허락했다.

행정1부시장, 행정2부시장, 정무부시장. 이들은 국가에서 내게 허락한 오토드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행사만 참석하고, 나머진 모바일 게임 자동사냥 돌리는 기분으로 부시장들을 이곳저곳에 파견 보내면 된다.

서울시장의 ‘진짜’ 업무는 딱 두 가지.

첫째. 가만히 앉아서 사고 안 치기.

둘째. 누가 사고 치면 가서 수습하기.

이건 모든 정무직 윗대가리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무지 바쁘다.

그 넓은 서울에 사고가 안 터지는 날이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휠체어를 질질 끌고 출근하자마자 피채원이 오늘도 긴 생머리를 꼬리처럼 휘날리며 사건사고를 물고 왔다.

“시장님, 대략 40분 전에 신림동 건설 현장 외벽이 무너지면서 인근을 순찰하던 A급 헌터 두 명이 다쳤는데요.”

“아이고, 많이 다쳤대?”

“아뇨. 강체술사라 조금 까지고 말았다네요.”

“그나마 다행이네.”

“그런데 건설사 대표랑 친한 서울시 공무원이 사고를 은폐하려고 하면서 헌터들한테 ‘크게 안 다쳤으면 된 거 아니냐’는 투로 말을 했는데, 그게 지금 기자들한테 포착돼서…….”

“아잇, 씻팔!”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지는 소식이다. 서랍에서 타이레놀 두 알 챙겨 먹고 방송국 사장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내가 대통령 비서실장 하던 시절에는 전화도 두 손으로 고이 받잡던 인간들이, 이제 야당 서울시장 신분으로 전화하니까 한숨만 푹푹 내쉬는 게 아닌가?

[하아……. 이러시면 많이 곤란합니다.]

“정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지금 데스크에서 막 속보로 쏘려고 하는데 방송국 사장이란 인간이 막아버리면 후배들 볼 낯이 없어요. 시장님, 제 입장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쇼.]

이해? 정치인은 남의 사정을 이해할 정도로 아이큐가 높은 생물이 아니다.

사실 지능이 좀 오락가락한다.

“사장님! 제가 없는 사실을 보도하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조금만 더 늦춰달라 이거예요. 아침에 보도하지 말고 저녁에 보도해 달라. 딱 이것만 부탁드려요. 예?”

[하아. 진짜 안 되는데…….]

“아니, 서울시에서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뉴스로 때려버리면 이게 서울시 조지는 것밖에 더 됩니까? 시장인 제가 방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사태를 파악해서 징계를 내리고, 그다음에 보도자료를 돌리고, 그리고 뉴스에서는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그게 순서에 맞는 거 아녜요!”

[시장님, 저기.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뉴스 논조가 이럴 거 아녜요. 서울시 공무원이 건설사한테 돈 받아먹고, 건설사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들한테 ‘안 다쳤으면 됐지’라고 망언을 했다.”

[그건 팩트 아닙니까?]

“맞아요. 여기까진 팩트인데, ‘상황이 이러한데 서울시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이럴 거 아니에요. 아니 우리도 대응할 시간을 주고 나서 까야지, 사고가 터지자마자 속보로 때려 놓고서 왜 니들은 아무것도 안 하냐 그러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이제부터 최대한 신속하게 대응을 할 겁니다. 당연히 담당자는 자세한 조사를 거쳐 중징계를 받을 거고요. 그러고 나서 서울시 대변인이 우리가 이런 잘못을 했다. 국민들에게 송구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이렇게 발표를 한 다음에, 언론이 나서서 저녁 뉴스에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그런 식으로 보도를 해야지 이래 버리면은…….”

이건 절대로 징징대는 게 아니다. 방송국 사장과 ‘애국적 보도’ 관행에 대해 의논하며 민관협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결국 현란하게 이빨을 까며 방송국 사장과 쇼부를 치는 데 성공한 나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시장님. 인터넷으로 올라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방송에 뉴스 속보로 올라가는 건 막아보지요.]

“감사합니다! 아이, 참.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공무원 망언, 부실공사, 헌터 인명사고……. 조회수 기똥차게 뽑아내는 키워드 아닙니까. 우리 애들이 마음이 좀 급했나 봅니다.]

“아, 언론인을 탓한 건 아니고요. 어쨌든 고마워요. 선배.”

[하하하! 선배라뇨. 생각해 보니까 선배 맞긴 하네요. 어쨌든 정 그러면 시장님이 나중에 우리 예능이나 한번 나와주십쇼.]

“예. 꼭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느새 행정1, 행정2, 정무부시장 3인방이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시장실에 몰려와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으며 믿음직스럽게 얼굴을 끄덕였다.

“음! 해결했습니다!”

부시장 3인방이 일제히 환호했고, 특히 건설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2부시장은 지옥에 떨어졌다가 간신히 도로 건져 올려진 얼굴이었다.

“허허, 오늘 저녁까지 시간 벌었으니까 관련자 징계 절차 착수하고, 대변인 논평 뽑아서 깔끔하게 정리합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수상할 정도로 도시계획을 사랑하는 행정2부시장이 내게 연거푸 고개를 조아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서울시 재개발 사업이 지켜져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저 양반이 뇌물도 안 받고 저런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가끔 두려움을 느낀다.

괜히 사고현장 들락거리면 일 커지니까 부시장 3인방에게 뒷수습 맡기는 선에서 사건을 일단락했다.

“아, 당 땡긴다…….”

아침부터 열일을 하니까 괜히 달달한 게 땡겼다. 점심은 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피채원에게 하문했다.

“피 비서. 오늘 점심에 자경위 사람들이랑 구내식당에서 논의하기로 한 사안 말인데, 조금 더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외식하고 싶으시다고요.”

“응…….”

“자치경찰위원회에 전화해서 가게로 나오라고 전할게요. 돈까스 괜찮으시죠?”

“채원이 너는 어떻게 매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척척 맞추냐. 나도 모르는 건데.”

“다 방법이 있죠.”

그러나 우리는 국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세금으로 돈까스를 먹으러 갈 수 없었다.

연락도 없이 먼 곳에서 찾아온 민원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어? 진운 씨?”

“안녕하세요, 시장님.”

S급 헌터 설진운이 얼굴에 근심걱정을 가득 안고서 터덜터덜 찾아왔다.

* * *

한국 헌터 업계는 1세대 헌터가 지배한다. 그리고 그 1세대 헌터의 주류는 압구정파와 동대문파다.

압구정 생존자 캠프에서 시작된 압구정파가 신분당선 대탈출을 계기로 일찌감치 정부에 합류하여 집단전 경력과 조직력을 쌓았다면.

동대문 생존자 캠프에서 시작된 동대문파는 지옥이 된 서울에서 거의 끝까지 살아남은 독종 중의 독종들이었다.

그런 동대문파 헌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었던 대장이 바로 설진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쇠파이프를 들고 괴수들 골통을 까부수며 동대문 인근의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생존자들을 규합했고, 결국 헌터들을 이끌고 서울 게이트 폭주 사태를 제압했다.

그렇다 보니 동대문파 헌터들은 아직도 설진운을 추종한다. 아마 단톡방에 문자 하나 올리면 3시간 안에 전부 모일 것이다.

압구정파의 창시자, 데이비드 김의 사망 이후 정신적인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며 지도력을 상당수 상실한 홍선아에 비하면 설진운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헌터인 이상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고민이 생기자마자 내게 쪼르르 달려오는 바람직한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요. 우리 진운 씨가 무슨 용건이 있어서 나를 찾아왔죠? 뭐든지 말해 봐요.”

“저기…… 그게…….”

설진운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왔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헌터들이 전부 빠진다는데…… 사실인가요?”

“아.”

“시장님! 이건 아닙니다!”

“아니, 저기…….”

“지금 한국 헌터들이 동남아에서 전부 빠져나가면 현지 주민들이 괴수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그게…….”

“거기는 지금 S급 헌터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평범한 한 명의 헌터가 간절하단 말이에요!”

S급 헌터가 간절하게 읍소했지만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조금 억울했다.

이 자식……. 내가 무슨 개수작을 부린 것처럼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대체 왜 제가 저질렀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시장님이 명령하신 거 아닌가요?”

“아닌데요.”

설진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단단히 오해한 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 그러면……! 대체 왜 한국 헌터들이 동남아에서 전부 빠져나가는 거죠?”

“아.”

이제는 내가 입을 닥칠 차례였다. 아니 이걸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일본에서 나온 마석에너지 신기술을 미국이 가져갔다. 근데 한국은 그게 없으면 경제 망하게 생겼다. 그래서 원옥분 대통령이 미국이랑 쇼부를 쳐서 동남아시아 사업장을 미국에게 전부 내주는 대신, 신기술을 받아왔다.]

[근데 대놓고 지랄하다가 중국한테 밉보이기도 좀 그렇잖아? 그래서 시원하게 3대 길드 해산명령 때리고 헌터 사회를 마비시킨 다음 우린 일제히 동남아시아에서 빠지고, 미국이 눈치껏 빈자리에 들어오기로 합의를 했다.]

……라고 대답을 한다면.

설진운은 이렇게 말하겠지.

‘맙소사……! 그러면 한국이 빠지고 미국이 들어오는 사이에 현지 주민들이 괴수에게 희생당하면 어쩌실 거죠?!’

‘그걸 우리는 불가피한 피해라고 부릅니다.’

‘아! 부패한 정치인들의 망동에 천하가 도탄에 빠졌구나! 이 썩어 빠진 세상을 내가 베어버리겠다! 일단 한승문 당신부터!’

‘끄악.’

‘동대문파…… 집결!’

이렇게 설진운이 나를 슥삭한 다음 동대문파를 이끌고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고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선포할 수도 있었다.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제6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설진운을 최대한 달랬다.

“지금 한국 헌터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전부 빠지는 건 대통령께서 결정하신 사안이에요.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전부 원옥분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동이에요.”

“그, 그러면…… 제가 청와대로 가서…… 정중하게 부탁을…….”

“아니! 아니! 절대 그러지 말고! 일단 내가 전화를 해서 여쭤볼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봐요. 우리 설진운 헌터가 조언한 바에도 충분히 숙고할 만한 점이 있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이건 국가비상사태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긴 했지만 S급 헌터가 나랏일에 조금이라도 환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안보상 위협이었다.

통화 내용 숨기겠다고 설진운을 내보내봤자 S급 헌터의 청력을 상대론 아무 소용 없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대통령과 직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신뢰를 쌓으려던 건 절대 아니다. 다행히 원옥분 대통령은 바로 내 전화를 받았다.

[뭐야.]

지금 이 순간, 나는 양판석으로부터 이어진 민주당계 정당의 신념을 포기했다.

“각하!”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포기하고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호칭을 누구누구 ‘씨’로 하느냐 누구누구 ‘의원’으로 하느냐를 가지고 목숨 걸고 싸워대는 정치판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뭐? 각하? 허, 무슨 일인데 그래요.]

“외교권은 국가원수의 확고한 권한이지만 제가 감히 각하께 사소한 조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끼는 동생을 반병신으로 만든 지가 한 달이 안 지났는데 뭐? 이미숙 전 민정수석비서관은 아직도 집에서 술이나 퍼마시는 중이야. 그 친구 아들이 검사장인데, 오죽하면 나한테 전화를 해서 자기 어머니 이러다가 술병 걸려 돌아가시겠다고 제발 말려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런데 내가 뭐가 예쁘다고 녹취록까지 터뜨린 놈 말을 들어줘?]

이건 싫다는 말이 아니다.

이건 부탁은 들어주겠는데, 니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뭔가 대가를 제시하라는 이야기였다.

맘 같아선, 이미숙 민정수석은 GS 천 사장 조지겠다고 깝죽거리다가 골로 간 거 아니냐고, 니들이 먼저 내 사람 건드린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각하, 정치를 하다 보면 능력 있는 인재들이 유탄 맞고 신세 망치는 경우가 하루이틀입니까? 저도 그분을 콕 찝어 괴롭히려던 게 아닙니다. 그런 분은 조만간 자기 능력에 맞는 자리로 가시겠지요.”

이건 ‘당신이 이미숙을 어디 좋은 자리에 꽂아서 세금을 슈킹하게 만들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원옥분 대통령의 목소리에서 노기가 빠졌다.

[뭐…….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내가 지금 밥 먹다가 전화 받고 있으니까 용건만 빨리 말해요.]

“지금 설진운 헌터가 제 옆에 있는데, 듣기로는 동남아 사람들이 괴수들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헌터들이 단체로 귀국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물론 미국 업체가 곧 들어오겠지만, 그런 일련의…… 혼란스러운 교체 과정 속에서 다칠 현지인이 많이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사실이고요. 정부 차원에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한국인 헌터 빠지고 미국인 헌터 들어오는 사이에 잠깐 다치는 외국인들까지 나더러 책임을 지라는 소리인가?]

이건 원옥분 대통령의 말이 맞다. 국가 정책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쓸려나간다. 현실적으로 그걸 전부 신경 쓸 수는 없다. 그게 국정이다.

그치만…… 나는 야당이잖아?

“각하! 동남아에서 한국인 헌터가 전부 철수하는데 치안공백이 안 생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미국이 곧 들어온다지만 초당적인 차원에서 인도적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이. 한 시장. 알 만큼 아는 놈이 뭔 개같-]

“설진운 헌터가 그렇게 말했다 이거죠.”

[생각을 해보니까 외교부에서 현지인이 입을 피해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군.]

“그렇지요?”

역시 원옥분 대통령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태세전환은 보여줘야지.

방금의 대화로 일단 최중요 S급 헌터를 둥기둥기 해주자는 정치적인 합의가 있었으니, 우리는 본격적인 실무 협상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부에서 대놓고 그 부분까지 챙기면 우리가 일부러 미국이 동남아 먹으라고 그 지역에서 빠지는 게 너무 티가 난단 말이야.]

“어차피 중국도 알고 있잖습니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건데요.”

[아무리 시늉만 하는 거래도 그렇지. 조금이라도 티가 나면 중국에서도 자기네 체면 때문에 항의한다고. 쓸데없이 환구시보로 때려버리고 이래 버리면 무역에도 차질 생겨.]

“그럼 미국에 요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기업 PMC끼리 밍기적거리면서 땅따먹기 하지 말고 현지인 보호 차원에서 잽싸게 헌터부터 파견하라고요. 아니면 미국 헌터 길드가 동남아에 자리 잡기 전까지는 미군이 현지 주민들을 최대한 보호하던가요.”

[그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맞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미국이 어디 해달라면 다 해주는 나라야? 우리도 뭔가를 줘야지.]

부가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대통령 각하의 말씀이었다.

해법은 간단하다. 원옥분이 미국에게 뭔가를 주는 대신, 나도 대통령에게 뭔가를 주면 된다.

“그러고 보니 헌터협회장 선거에 양일호 전 장관이 출마한다고 하던데요.”

[임명직 공기관장을 선출직으로 바꾸자마자 야당이 채가는 건 양심이 없는 게 아닌가? 뭐 대충 그런 내용의 신문 기고도 있더군.]

“제가 이래라저래라할 위치는 아니지만 친한 동생이니 말은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래라저래라할 위치는 아니지만 미국에 요청은 해보도록 하지.]

“부족한 의견을 보태자면 백악관이 미국 PMC 교통정리만 잘 해줘도 동남아 치안공백이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내가 전문가니까 알아서 하겠네. 그럼 난 오찬 일정이 있어서 이만.]

“네. 들어가십-”

뚝. 원옥분 대통령이 통화를 끊었다. 매번 자기 할 말 다 하면 바로 끊어버린다. 성질하고는.

어쨌거나 깔끔하게 거래를 마친 나는 믿음직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해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설진운이 해맑게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접촉이 이어지는 동안 왠지 소드마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볼펜을 잡고도 검기를 좍좍 뽑을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설진운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 돌렸다.

“휴우. 그런데 조금 허탈하긴 하네요. 시장님 권력이 대단하신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고민하던 일이 전화 한 통으로 끝나버리다니…….”

“예? 끝나긴 뭐가 끝납니까?”

“네?”

“갚아야죠.”

아직 안 끝났다. 모름지기 정치인의 권력이라는 사술을 사용했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인지상정.

S급 헌터 이용권(1회용)이 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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