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58화 (258/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58화

EP 41-적응

유재경이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 1위를 달성하고 가족들과 홈파티를 벌이던 시각.

자카르타 남부지구의 판자촌에서는 오늘도 치열한 소탕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정글에서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동남아시아 파견을 기피하지만 그것은 대표적인 오해다.

호주 북부에 미군 공군기지가 무더기로 깔린 마당에 폭격을 안 할 이유가 무엇인가?

부족한 기름? 경제적 효율성?

그건 ‘미국이 아닌’ 나라나 걱정할 문제다. 미국은 거침없이 동남아시아의 정글을 태워버렸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에 파견되는 헌터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건 후덥지근한 날씨, 쏟아지는 장대비, 그리고 판자촌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다.

“이런 제기랄! 비켜!”

“저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잡아!”

동남아시아의 괴수 사냥은 대부분 미로 같이 얽힌 판자촌에서 벌어진다. 이는 대규모 화력 투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지루하고 힘겨운 추격전을 강제한다.

“아! 젠장! 본부! 본부! 민간인 피해 3인 추가로 확인! 판잣집 밑에 깔린 채로 발견!”

“아니 염병할 놈의 민간인 대피령이 떨어진 지가 씨발 다섯 시간이 넘었는데 대체 왜 이 좆같은 동네에 사람들이 씨발 남아 있냐고!”

“이 동네 공무원들이 다 그렇죠, 뭐. 좆같은 응우옌 새끼들.”

“여긴 인도네시아야 병신아.”

판자촌을 뒤엎으며 달려가는 소형 괴수.

판잣집을 뺏길까 봐 떠나지 않는 피난민.

심심찮게 벌어지는 오발 사고.

무관심하고 부패한 정부 권력.

동남아시아의 괴수 사냥이란 이런 것이다.

* * *

과학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게이트 사태는 인구 밀집 지역에 발생할 확률이 높다.

누군가는 인간의 업보가 괴수라는 신의 심판자를 불러들인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인간의 영혼이 괴수라는 굶주린 악마를 불러들인다고 말하며, 누군가는 인간의 체내 마력이 우주 암흑공간을 떠도는 다차원불안정돌연변이체의 게이트웨이 차원도약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확실한 건 사람이 많으면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 뿐이다. 따라서 개문 사태 당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는 게이트가 아주 많이 열렸다. 섬 하나에 1억 5천만 명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자바 섬에는 괴수, 내전, 역병, 기아로부터 살아남은 7천만 명이 산다.

그중 6천만 명이 자카르타에 있었으나, 모두가 도심에서 살 수는 없다. 수천만 명이 거주하는 판자촌이 도넛처럼 도시를 둘러쌌다.

난민들은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가려 노력했다. 시정부의 배급을 받기 위해서. 공항에 이송되는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서.

그리고 어두운 밤, 유일하게 빛나는 도시를 향해 다가오는 괴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난민들은 오늘도 조금이라도 자카르타의 빛에 닿기 위해 비참한 삶을 견디고 있다.

* * *

“다 비켜! 비키라고!”

“모두 대피하세요! 당장!”

두 명의 헌터가 우박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질주한다.

녹슨 판자촌 사이 골목길에 철퍽철퍽 발자국이 찍힐 때마다 난민들의 배설물이 섞인 물웅덩이에서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부 나가! 이 구역에서 나가라고!”

“괴수가 출현했습니다! 어서 도망쳐요!”

미로 같은 골목길을 달려나가는 두 명의 헌터가 악을 쓰며 소리 질렀다.

무관심한 지역 정부 대신,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서다.

“전부 꺼져! 꺼지라고! 괴수가 여기 어딘가에 있다고! 씨발! 영어 못 해?!”

그러나 피난민들은 판잣집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며 박혀있을 뿐, 절대 대피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전부 똑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판자촌으로 보여도, 이 인근은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원래 살던 사람들을 쫓아낸 끝에 간신히 정착한 판자촌이었다.

그 과정에서 살인과 약탈도 당연히 있었다. 괴수가 무섭다고 이 판자촌에서 벗어난다면, 그들은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저질렀던 일을 똑같이 당하게 될 것이었다.

차라리 괴수에게 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판잣집만은 끝까지 지켜야 했다.

집 없는 부랑자 신세가 되어 외곽으로 쫓겨난다면, 괴수보다 사람에게 먼저 죽을 테니까.

난민들은 어둡고 축축한 판잣집 구석에서 가족들끼리 껴안고 숨어 끝까지 버텼다.

“이 씨발놈들아! 여기 괴수 있다고! 몬스터! 몬스터! 락싸사! 한뚜! 한뚜! 씨발 꺼지라고!”

텍사스 출신이었지만 네덜란드어와 인도네시아어는 물론이고 지역 방언까지 익숙해진 애쉴리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난민들이 떠나지 않으면 괴수와의 전투에 휘말릴 수 있었다. 가끔 있는 일이 아니다. 난민촌에선 매일 같이 헌터의 공격에 휘말린 민간인이 사망하곤 했다.

그리고 실수로 사람을 죽인 헌터에게는 4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다 잊고 떠나거나, 괴로워하거나, 즐기거나, 익숙해지거나……. 어느 쪽이든 개 같은 일이다.

애쉴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이곳에 남아 괴로워하며 버티는 중이다.

“제발 대피하라고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애쉬. 힘 빼지 말고 괴수나 찾아.”

매튜가 애쉴리를 만류했다. 판자촌에서의 사냥은 괴수와의 숨바꼭질이다. 출력보다 체력이 더 중요했다.

괴수를 인적 드문 곳으로 몰아낸 다음 화력을 쏟아부어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통하는 괴수 종자는 이미 전부 죽었다.

지금껏 살아남은 괴수는 어둡고, 비좁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주하는 유전자를 가진 놈들뿐이었다.

결국, 난민이든 괴수든 이 비참한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애쉴리는 이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그녀는 발을 구르며 발작했다. 흙탕물이 사방에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괴수? 찾으면 뭐해! 보나 마나 어디 좆같은 쓰레기통이나 드럼통이나 똥통에 들어가 있겠지! 그리고 들키자마자 도망칠 거고! 우리는 난민들이 맞을까 봐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또 이딴 식으로 졸졸 쫓아다니기나 하겠지!”

“잘 아네.”

“그냥 난민들한테 밥이나 퍼줘서 딴 데로 꺼지게 하던가! 아니면 씨발 정치인을 갈아 치워서 제대로 된 난민 대피소를 짓게 하던가! 민사작전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왜 씨발 헌터들 좆뺑이치게 만들면서 뭉개고 있냐고!”

“너 하버드 나온 거 그만 자랑해도 돼.”

“하버드 아니야! 씨발!”

두 명의 헌터는 빗물과 똥물로 질척거리는 판자촌 골목의 진흙탕을 해치며 수색을 계속했다.

쓰레기장과 공용 화장실, 그리고 무덤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덩이를 살피기도 했고, 녹슨 철판떼기에 빨간 페인트칠을 해서 표시한 매음굴 내부 또한 샅샅이 뒤졌다.

매튜는 어떤 솥에서 어린아이의 뼈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찾았지만 애쉴리에게 알리지 않았다. 조용히 뚜껑을 덮고 오직 신에게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수색을 이어가던 끝에, 두 명의 헌터는 수상할 정도로 피가 많이 묻은 드럼통을 찾았다.

매튜가 애쉴리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애쉬. 저거 맞지……?”

“냄새가 나. 괴수 냄새야.”

“쏜다……?”

“쏴.”

매튜가 소총을 조준한다. 그리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투다다다! 벌집이 된 드럼통의 총알구멍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색깔을 보니 사람 피는 아니다.

“해치웠나……!”

얼굴에 웃음꽃이 핀 매튜가 수염에 묻은 빗물을 짜내며 드럼통에 달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보라색 괴수가 튀어나와 매튜의 머리통을 냉큼 집어삼킨다.

이어지는 끔찍한 비명소리.

“끄아악!”

“매튜!”

만약 매튜가 강체술사가 아니었다면 머리가 뽑혔을 것이었다.

입에 넣은 머리통이 딱딱하다는 걸 눈치챈 괴수가 매튜를 퉤 뱉어버리고 도망쳤다.

당연히 애쉴리는 괴수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그녀의 손아귀에 마력이 요동친다.

“뒈져라! 이 엿같은 보라돌이!”

애쉴리가 허공에 손을 휘젓자, 괴수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붙들린 것처럼 쥐어 짜인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목에 올가미가 걸린 짐승처럼, 괴수는 최선을 다해 발버둥쳤다.

그러던 도중, 날카로운 꼬리가 옆에 있던 낡은 천막을 베어버렸다.

“꺄아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천막이 붉게 물든다. 시야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천막 안에 숨어있던 난민이 끔찍한 꼴을 당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애쉴리의 귓가에는 그 비명소리가 몇 달 전에 자신이 실수로 죽였던 난민의 단말마와 겹쳐 들렸다.

애쉴리가 집중력을 잃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 틈에 괴수가 속박에서 벗어나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바닥에 쓰러져 있던 매튜가 간절히 소리쳤지만, 괴수의 쩍 벌린 아가리는 점점 애쉴리의 얼굴을 향해 다가온다.

애쉴리가 반쯤 풀린 눈동자로 괴수의 목구멍을 바라보며, 자신의 뼈아픈 실수를 마지막까지 되뇌이던 그 순간.

서걱.

괴수의 목이 잘려나갔다.

흉측한 머리통은 입을 벌린 채로 바닥에 떨어지고, 보라색 몸뚱아리는 머리가 없이도 한참을 몸부림치다 이내 서서히 굳어간다.

두 명의 헌터가 얼음처럼 굳어버린 와중, 비 내리는 판자촌 골목의 그림자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두 분 다 괜찮으십니까?”

비에 흠뻑 젖은 검은 머리카락. 쉴드코어가 장착된 헌터용 코트. 그리고 빗줄기 사이로 시리도록 푸르게 빛을 내는 칼날.

애쉴리와 매튜는 이 청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S급 헌터였으니까.

“소드마스터……?”

국경없는 기사회의 아시아 지부장, 설진운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별명은 좀 부끄럽네요…….”

* * *

“본부, 본부, 여기는 애쉴리. 리자드형 괴수 소탕 성공. 민간인 중상자 2명 확인. 괴수의 꼬리에 깊게 베였다. 의료팀 파견 요청한다.”

[현재 파견 가능한 의료인력이 없다. 마석만 수거하겠다. 위치는 어디인가?]

“뭐라고? 위치? 괴수 쫓아서 몇 시간을 뛰어다녔는데 내가 씨발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알아! 골통에 아무것도 없는 텅텅대가리 새끼야! 니가 GPS로 위치를 찾아야지!”

[지원팀에 대한 욕설은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내가 여기 돈 벌려고 왔냐? 미국에 있었으면 매달 벤츠 한 대씩 뽑았어! 내가 그래도 씨발 사람 살리겠다고 이 좆같은 동네에 꾸득꾸득 기어들어 와서 난민들 똥오줌이나 밟으면서 엿 같은 괴수 잡겠다고 좆뺑이 치고 있는데, 하는 소리가 징계? 징계를 먹이겠다고? GPS도 다룰 줄 모르는 돌대가리가 징계는 먹일 줄 아냐? 그래, 해봐! 징계해 봐! 징계해 봐아아!”

애쉴리가 통신기를 붙잡고 지랄발광을 하는 사이, 매튜는 설진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애쉴리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친구 딸이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가르치는 중인데, 여기서 크게 다치거나 잘못됐으면 제 친구를 볼 낯이 없었을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두 분 모두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전 매튜 해리슨입니다. 카길 앤 디미트리오스 컴퍼니 소속이죠. 매튜라고 부르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매튜. 저도 진이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매튜가 설진운을 보며 따스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진. 그나저나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런 자카르타의 빈민가에서 S급 헌터를 마주칠 줄은 몰랐네요. 평소에도 이런 곳까지 전부 순찰하나요?”

“아뇨, 사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인근 베이스캠프에서 휴식 중이었는데, 자카르타에 주둔 중인 미군에서 지원 요청이 와서요.”

설진운이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열대의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난민촌의 피 냄새와 오물 냄새를 조금이나마 가려 주고 있었다.

“원래 미군에서 헬기를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러면 헬기가 못 뜨지요.”

“맞습니다. 일정이 지체되더라고요. 그래서 뛰어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달려왔는데. 난민촌 길이 너무 복잡해서 헤매고 있었죠.”

“이런 세상에……. 당신이 길을 안 잃어버렸으면 애쉴리가 크게 다쳤을 겁니다. 신께서 도우셨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설진운은 동대문 생존자 캠프를 이끌던 당시, 여학생에게 욕정했던 독실한 신앙인 출신 교사를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며 모태신앙을 버렸지만 그렇다고 종교인에 대한 증오가 생긴 건 아니었다.

“별말씀을요.”

통신기에 대고 온갖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전부 털어낸 애쉴리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길을 잃어버렸다고요? 그러면 우리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애쉴리. 인사부터 해야지.”

“아! 맞다. 저는 카길 앤 디미트리오스의 오퍼레이터 애쉴리 깁슨이에요. 애쉬라고 불러요. 소드마스터.”

“아, 네…….”

“별명이 좀 민망하구나? 알았어요. 자카르타 미군 기지까지 안내해 줄게요. 따라와요!”

헌터 세 명이 떠나가자 판자촌 곳곳에 숨어 있던 난민들이 조심스레 두리번거리며 기어나왔다.

그들은 녹슨 칼을 들고 괴수의 시체로 달려들어 살점을 발라냈다. 괴수의 마석을 건드렸다간 PMC에서 괴수 잡는 헌터가 아니라 사람 잡는 헌터를 보내기 때문에, 괴수는 곧 뼈다귀와 마석만 남기고 진흙탕에 나뒹굴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열대의 빗줄기가 흙탕물에 섞인 핏물을 흘려보냈다. 난민촌은 다시 고요한 긴장감 속에 침묵했다.

자카르타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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