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50화 (250/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50화

EP 38-불꽃이 튀기는 국정감사(5)

국민당 원내대표실에서 한승문과 이호정이 다음 총선을 두고 머리를 싸매던 시각. 국방당 당대표실의 상황도 비슷했다.

국방당 실권자 여섯 명이 모인 가운데, 원옥분 대통령의 검찰 후배 출신인 당대표가 근엄한 목소리로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번 총선…… 전망이 좋지 않아요. 비관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 원내?”

당대표의 눈짓에 원내대표가 당 중진들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한다.

“여의도민주연구원에서 통계자료가 나왔습니다. 호남 민심이 국민당으로 이반하려는 조짐이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 국방당 내부에서 공화당 계열과 민주당 계열이 자꾸 내홍을 빚으니까 호남 유권자들이 권태감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께서 전라도 경제는 다 살려놨는데 정작 투표는 국민당한테 한다고요? 이게 말이 되는 현상입니까? 설마 한승문 시장 때문에…….”

“그 이유도 있지만, 새만금 신도시는 전라북도 아닙니까. 심지어 신도시 주민들은 대부분 수도권 난민 출신이고요. 그러니 광주, 전남에서 딱히 이득을 봤다는 여론이 안 생기는 거죠.”

“시골 민심하고는…….”

“뭐요? 그게 뭐 하는 말버릇이에요? 국민들한테!”

“아, 섭섭해서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 그렇게 헌신하셨는데 공화당 출신이라고 이렇게 배척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다 서운합니다.”

“이 바닥에 좌우 구분 없어진 지가 언젠데 말하는 본새부터가 호남을 아주-”

“그만 좀 싸워요. 이러니까 콩가루 소리나 듣지. 어쨌든 이번 선거 이기려면 전라도를 지키고 충청도를 뺏어와야 해요. 유재경 전 총리를 세종시에 전략공천하고, 쌀값 동결 완화시켜서 농민들 표 가져옵시다.”

“쌀값 올리면 경상도 민심이……. 아. 각하 인기만 믿고 가자고요? 그것도 나쁘지 않죠. 근데 너무 다 잡은 물고기 취급은 안 되니까 공항 하나 새로 짓겠다고 잘 다독여 보시죠?”

“괜찮네.”

“저도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1세대 헌터들 중에 압구정계와 동대문계를 제외한 다른 인사를 포섭하는 건 어떻습니까?”

“하긴, 그 양반들도 적폐가 되긴 했어. 압구정 생존자 캠프랑 동대문 생존자 캠프 출신이 아니면 1세대 헌터 취급도 안 해주잖아요?”

“아니. 내가 초관위원장 하면서 공부를 좀 해봤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대학교 따지는 것처럼 출신성분 문제가 아니란 말야…….”

“그래요?”

”예. 개문 사태 당시에 가장 먼저 한승문이 밑에서 괴수들 골통 까부수고 다닌 게 압구정 계열 헌터들이고, 서울 게이트 폭주 즈음에 합류해서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게 동대문 쪽 헌터들이에요. 캠프 출신성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힘든 시절에 나라 지키는 싸움을 했냐 안 했냐를 따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네 패거리가 아니어도 자경활동 했던 사람들은 대우를 해주잖아요. 1세대 헌터들은 이미 하나로 똘똘 뭉쳐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그럼 2세대를 데려오면 되잖습니까.”

“2세대 헌터들은 개량이 덜 된 각성제를 맞았던 사람들이라 상태가 좀 메롱이에요. 제대로 된 각성제로 각성했고, 또 헌터 아카데미에서 교육도 받은 3세대는 1세대 밑에서 일 배운 친구들이라 업계 입지가 너무 좁습니다.”

“무슨 핸드폰도 아니고 세대가 그렇게 많았습니까? 나는 잘 모르겠네…….”

“이제 쌍팔년도가 아니라 초상사회니까 공부 좀 해요.”

“아! 쌍팔년도. 그 단어 참 오랜만에 듣네요. 허허…….”

“잡담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 유현종은 어떻습니까?”

“유현종? 이름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강원도지사 이름을 모르면 어떡해요? 이 양반 진짜 어디서 크게 망신당할까 봐 무섭네.”

“까먹을 수도 있지…….”

“서울 포위망 무너졌을 때 경기도 북부에 피난민들 어마어마했잖아요. 그때 피난민들 데리고 강원도까지 쭉 후퇴한 사령관이 유현종입니다. 강원군구사령관에 강원도지사까지 했으니 지역 민심은 꽉 잡고 있다고 봐야죠.”

“한데 우리 당 사람 아니었어요?”

“아직 무소속입니다.”

“아니, 왜?”

“예전에 한 번 접촉해봤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정치할 시간이 없다고 하던데요. 북한에서 내려오는 난민들도 막아야지, 군인들 슬금슬금 북상하는 거 뒤처리해야지, 태백산맥 쏘다니는 헌터들한테 마석세 걷어야지…….”

“에이, 그건 너무 핑계다. 국민당 가려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까 유현종도 한 시장이랑 친하지 않나?”

“한승문 그 친구는 전쟁 기간 내내 발발거리면서 돌아다닌 인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보면 돼요. 그걸로 거르면 안 됩니다.”

“우 원내는 어떻게 생각해? 같은 강원도 정치인이니까 자주 봤을 거 아니야.”

“국방당에 악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일개 군인에서 도지사까지 너무 벼락출세를 해서 몸이 굳은 게 아닐까 싶네요. 사람 됨됨이가 좀 쪼잔합니다.”

“쪼잔하면 더 좋지. 소탈한 거니까. 좋아요! 영입합시다. 설득은 내가 직접 할게요. 그게 확실할 테니까.”

“그나저나 김두식 총리에 유현종 도지사까지 오면 완전히 군대인데……. 이러다가 국민당은 헌터만 가고 우리 당은 군인만 오는 거 아닙니까?”

“당 색깔도 국방색인데 뭐 어때요.”

당대표의 농담에 회의실이 자지러졌다. 원내대표가 깔깔거리며 배꼽을 잡고 쓰러지려던 찰나에 문이 벌컥 열렸다.

“대표님! 법사위에서-”

“뭔데 이렇게 문짝을 벌컥벌컥 열고 다닙니까?”

“법사위에서 불이 났습니다!”

“거긴 뭐 맨날 싸우라고 있는 데인데 왜 그리 호들갑이에요?”

“화재가 났단 말입니다!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 * *

“이거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저기요! 잠깐만 지나갈게요.”

법사위 국정감사장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보좌관과 기자, 그리고 국회의원이 대략 6:3:1 비율로 밸런스 있게 섞여 있다.

저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는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고성이 들려왔는데 여간 목청이 아니었다.

“어디서 야지를 놓고 있어! 당신이 내 형님이야?!”

“야! 심성훈! 조용히 해!”

“너나 조용히 해! 너 몇 살이야?! 이런 되먹지 못한 버르장머리를 봤나.”

“당신이나 예의 지켜!”

“진짜 정말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맙소사!

극심한 욕설에 놀란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사람들은 정치인이 카메라 앞에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 품위 없는 단어를 쓰며 싸우고 있었다.

‘새끼’라니!

일본어, 당신, 반말, 나이 논쟁, 실명 거론, 되먹지 못한 버르장머리, 야! 등의 표현은 국회의 품격 있는 논쟁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어휘였다.

대체로 연령대가 있다 보니 일본어나 반말은 급하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양해한다. 엄밀히 따지면 욕설도 아니고.

하지만 ‘새끼’라는 말은 내가 알기로 1966년에 김두한이 국회에 똥물을 뿌린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사건 이후로 좀처럼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원내대표 비서실장 정찬심이 눈치껏 길을 뚫었다. 덕분에 나와 이호정은 편하게 법사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그런데 아뿔싸. 싸우는 인간들이 아는 얼굴들이었던 게 아닌가?

이름은 생각 안 나지만 분명히 내가 국회에 풀어놓은 압구정파 출신 상이헌터들이었다.

한 사람은 오른쪽 눈알이 없고 한 사람은 왼쪽 눈알이 없으니 확실했다.

“뭐? 새끼? 그게 국회의원이 할 말이야!?”

“당신한텐 그래도 돼!”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두 헌터는 말리는 사람 서너 명을 어깨에 달고서 서로의 멱살을 잡으려고 몸을 비틀고 있었다.

국회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현지화되다니. 이로써 여도연이 가끔 말하는 ‘국회는 꼴통들만 가는 곳’이라는 이론은 틀렸다. 국회에 들어온 사람이 꼴통이 되는 것이다. 대자연의 신비라고 할 수 있겠다. 동물국회니까.

그런데 헌터 국회의원이면 내가 데려왔으니까 둘 다 국민당 아닌가? 한 사람이 국방당으로 전향한 건가? 넥타이 색깔 보면 한 명이 배신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저렇게 앙심을 품고 싸워대지.

“이씨……. 너 이리 안 와!”

“니가 와!”

정치적 경륜이 적어서 그런지 어설픈 구석이 보인다. 보통은 말리는 사람을 줄줄이 달고 멀리서 삿대질만 하지, 저렇게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는 의장석, 복도, 회의실 입구 따위를 틀어막거나, 위원장의 의사봉을 뺏으려 들 때가 대부분이다.

상대방의 신체를 타격하려는 목적의 몸싸움은 국회선진화법 이후 사술로 낙인찍혔다.

이렇게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내가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니가 뭘 알아?!”

이제 확실해졌다. 카메라 앞이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이 미워서 싸우는 것이다. 정치에 감정을 너무 많이 담아서 생기는 불상사다.

이건 내가 봤을 때 양당 지도부의 문제라고 본다.

헌터 출신 국회의원들은 경력이 짧아서 멘탈이 연약하니 항상 아껴주고 살펴줘야 하는데, 법사위 같은 험악한 곳에서 굴리다 보니까 결국 폭발한 게 아닌가.

그래서 마침 국민당 당대표인 청중엽이 보이길래 부르려고 했더니, 그는 언제나처럼 호탕한 미소를 면상에 기본장착하고서 슬쩍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야, 호정아.”

“…….”

“이호정?”

이호정 이 녀석. 눈에 맛탱이가 갔다. 현실도피 중인 모양이다.

“호정아, 정신 차려. 저거 니가 수습해야 돼. 방금 청중엽이 도망쳤어.”

“정치 때려칠까…….”

이호정은 직업에 환멸을 느끼며 법사위로 진입했다. 싸움판을 찍던 카메라들이 새로운 선수의 등장에 주목했다.

이호정은 순식간에 정의롭고 패기 넘치는 젊은 원내대표로 변신해 이지적인 목소리로 말문을 텄다.

“멈추세요!”

목소리 봐라. 성우 해도 되겠다.

“의원님들. 두 분 다 진정-”

그러나 때는 늦었다. 기어코 헌터 한 사람이 주박에서 풀려나 다른 헌터의 멱살을 잡아챈 것이다.

거친 몸싸움이 시작됐다.

“이쒸! 이거 놔! 안 놔!”

“야! 아까 뭐라 그랬어! 다시 한번 말해봐!”

“사람을……! 악! 사람을 쳐?!”

일부러 때린 건지 실수인진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팔꿈치로 얼굴을 맞았다.

그게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한 모양인지 갑자기 주변의 마력 흐름이 격동했다.

어? 마력이 왜?

“야-!”

헌터 출신 국회의원에게서 사자후가 터져 나오자, 번개가 번쩍이더니 형광등, 유리창, 카메라 렌즈 따위가 동시에 펑펑 터져나갔다.

심약한 고령자 국회의원들은 일제히 기절했고, 사람들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마력 폭주였다.

“꺄아악!”

사태의 중심에 있던 이호정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렸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기절한 노령의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그르르륵 소리와 함께 하얀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이러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후폭풍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번개?”

원소 계열 능력은 외부의 마나를 끌어 쓰는 형태로 발동된다. 그래서 물리 법칙에 위배되는 경우도 잦다.

전기가 통하지 않아야 하는 얼음에 전기가 통한다거나, 산소를 차단하면 꺼져야 하는 불꽃이 마력을 태우며 불탄다거나…….

그리고 방금 법사위 회의실에선 번개가 쳤다. 나무로 된 책걸상과 종이로 된 보도자료가 널린 곳에서 말이다.

참고로 번개는 산불의 원인이다.

판단은 빨랐다.

“이호정. 정신 차려.”

“바, 방금 뭐야? 뭐예요?”

“일단 일어나라고.”

나는 잽싸게 쓰러진 이호정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로비로 뛰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늦게 번갯불에 놀라 얼어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시끄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불이야-!”

* * *

가장 먼저 도망치기 시작한 건 나였지만, 결국 가장 뒤처진 것도 나였다. 남들은 다리 몽둥이가 두 짝 다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회인데 소방대책이 그리 허접하지는 않았다. 소화기는 물론이고 소방관들도 대기 중이다. 심지어 해양괴수 습격에 대비하는 경찰특공대도 있다.

그런데 정작 마력으로 지른 불에 대처할 방법은 없는 그 미묘한 허접함이야말로 한국적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불은 속수무책으로 번졌다. 공포와 혼란은 그보다 더 빨리 번졌다.

“저러다 압사 사고 나는 거 아냐?”

“아이고…….”

“다들 비켜요! 의원님 나가십니다!”

“나도 의원이야!”

국회 로비는 도망치는 국회의원들과 그보다 수십 배 더 많은 국회 직원, 기자, 보좌관들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심지어 여기는 여의도가 아니라 부산 동백섬 국회의사당이다. 의원회관은 해운대로 빼버리고 본건물만 쑤셔 넣어 건축한 미니 버전 국회의사당이란 말이다.

처음에 지을 때는 국회가 부산을 버리고 제주도로 들어가면 안 되니까 부산 수호의 의지를 담아 동백섬에 지었고, 또 나라에 돈이 없으니까 근검절약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 소박하게 지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건물이 더 컸으면 좋았을 걸 싶다.

“그래서 그때 내가 건물에 돈 좀 쓰자고 그랬는데 양판석 대통령이 쩨쩨하게 굴어가지고…….”

“뭐 어때요. 무너지면 무너지는 거지. 국회 건물 무너진다고 나라 망해요? 국민들은 오히려 좋아할걸?”

“호정아, 정신 차려. 여기 니 직장이야.”

“이번 총선 불출마하고 제주도에서 까페 차릴 거니까 괜찮아요. 딸기 농사 지어서 딸기 빙수 만들면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아니지. 제주도는 청중엽 나와바리니까 세종시가 낫겠다. 근데 거기도 땅값 장난 아니라던데…….”

“에휴.”

맛이 완전히 갔구만.

차라리 국회의원에게 앙심을 품은 방화범이 불을 질렀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불은 소화기로 끌 수 있었겠지.

하지만 국회의원 배지를 단 퇴역헌터는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인맥도 있었다. 1세대 헌터라 마나 감응력도 높은데, 은퇴한 이후에도 마석을 어마어마하게 퍼먹었으니 번갯불 위력도 화끈했다.

다행히 본인이 수습한다고 현장에 남아서 불이 번지는 걸 막고 있었지만, 본인 능력이 번개인데 어떻게 불을 막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이호정이 내게 물었다.

“오빠, 도연이 언니 안 데려왔어요?”

“요즘 정의구현에 맛 들여서 자기 동생한테 연락도 안 해. 기물파손으로 고소당했을 때 빼고. 검찰이랑 광역수사대 아저씨들이랑 친구먹고 맨날 범죄액션 영화 찍고 다닌다니까.”

“그래도 치안관은 제대로 뽑아놨네요. 우리는 여기서 죽겠지만…….”

“호정아. 정신 차려. 너 원내대표야. 나가서 인터뷰해야지.”

“몰라. 대변인이 알아서 하라 그래요.”

입구는 우글우글한데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설마 이러다 대형사고 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채원이랑 감 기자, 그리고 서울시 간부들은 국회가 아니라 미리 예약했던 한정식집에 가 있을 테니 다행이었다.

“시장님! 시장님! 여기 있었네요!”

“감 기자님? 아니, 정무부시장님? 왜 여기 계세요?”

감 기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꾸물꾸물 빠져나왔다.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세우며 멋쩍게 웃었다.

“종군기자 시절에 알던 놈들을 만나서 노가리나 까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뭡니까. 그래서 시장님 먼저 챙기려고 한참을 돌아다녔지요. 다리도 불편하신데…….”

“고맙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면 외롭게 혼자 죽진 않겠네요. 그나저나 채원이는 밖에 있는 거 맞죠?”

“예. 밥 다 먹고 서울시 간부들이랑 팥빙수나 먹으라고 보냈습니다.”

“분위기 참 좋겠네요. 그 조용한 애가 고위공무원들 사이에서 빙수나 퍼먹고 있다니.”

“채원이도 고공단인데요, 뭘.”

“그래요, 나 죽으면 서울시 맡아서 지가 알아서 하겠지. 허헛.”

게이트가 열린 서울에서도 탈출했던 우리는 고작 불타는 건물 따위에 곤조도 없이 오도방정을 떨지 않는다.

“감 기자님. 생각해 보니까 국회의원이 자기 나라 의사당에 불 지른 건 히틀러 이후로 우리가 처음 아닐까요?”

“그거는 와전된 이야깁니다. 히틀러는 그냥 딴 사람이 불 질렀는데 공산당이 질렀다고 덮어씌운 거죠.”

“아, 그러면 우리가 처음이네요?”

“이렇게 한국에 신기록이 하나 더……?”

이호정이 정말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째려보고 있어서 대화는 금방 끊겼다.

이건 이호정 원내대표의 독재다. 양판석 대통령님은 이러지 않았다.

여기 계셨으면 지금쯤 허허 웃으면서 ‘자살률도 1등이고 노인빈곤율도 1등이고 국회에 불 놓는 것도 1등이구먼~’이라고 말씀하셨을 거다.

그러면 감 기자가 ‘자살률은 OECD에서 1등인 거지 세계에선 4등입니다’라고 답했을 거고, 양판석은 ‘1, 2, 3등이 아프리카랑 남미에 있는 건 나도 알고 있네’라고 받아쳤겠지.

그런 상황이면 보통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얹곤 했다. ‘게이트 터지고 죄다 망했으니까 살아남은 우리가 이긴 거 아닐까요?’.

“히히.”

실없는 상상을 하면서 혼자 낄낄대고 있으니까 이호정이 내게 말했다.

“정신 차려요. 실성한 것처럼 보이니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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