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45화 (245/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45화

EP 37-북상北上(8)

“의원님, 국토부 장관실에서 긴밀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게이트 산업단지 문제 같은데요.”

“그게 왜? 그냥 게이트 근처에 마석 정제소랑 공장 지으면 되잖아.”

“헌터 사무소 명당 자리 놓고서 대기업 PMC들끼리 붙었대요.”

“길드장들 불러라.”

* * *

처음 겪어보는 서울시장 업무는 나름대로 역경도 있지만 순탄하게 굴러가는 편이었다.

김칫국 거하게 들이켠 유재경 총리가 권한을 몰아준 덕에 힘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밑바닥부터 조직을 재건하는 것도 초상관리부 때 해본 일이었으니 나름대로 익숙했다.

제1행정부시장은 서울시청 고위공무원 출신에 청와대 행정관까지 해보고 은퇴한 올라운더를 양판석이 꽂아줬고, 제2행정부시장은 충청도 재건 사업에서 활약한 국토부 엘리트이자 유재경 총리의 왼팔 정도 되는 사람이 합류했다.

그리고 가장 든든한 건 정무부시장이었다. 무려 그 어마어마한 초상관리부의 장관 직속 감찰관이었던 사람을 모셨다.

“어어, 감 기자님.”

“의원님. 제가 진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그래도 관례라는 게 있잖습니까. 듣기로는 원래 정무직 지방공무원이 앉는 자리라고 하던데…….”

“우리가 관례를 따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저도 그냥 해본 소립니다.”

“사실 공직사회 관례는 밥그릇 때문에 있는 거죠. 행정직이랑 기술직 티오는 맞췄으니까 텃세 걱정은 마십시오.”

정무직은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직종이었다. 따라서 정무부시장은 정치를 하는 부시장이었다.

원래였다면 정무부시장은 시장을 대신해 귀찮은 지역행사에 얼굴을 비추거나, 은밀하게 한식당을 돌아다니며 선수들끼리 짜웅을 보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 기자에게 상당히 특이한 업무를 요구했다.

“혹시 해외 동향을 살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해외요?”

“아시잖습니까. 시국이…….”

한반도 카타스트로피가 동북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이후로, 동북아 국제정세는 칼날 위를 걷고 있었다.

베이징의 붕괴와 주석의 사망으로 핵폭탄을 든 군벌들이 통제에서 벗어났고, 그 틈에 모스크바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군부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내전은 국제사회의 중재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치안이 붕괴한 상황. 미국이 주일미군과 더불어 주한미군의 일부까지 동원해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전쟁의 위기가 들이닥쳤다는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이 맥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는 눈치긴 합니다. 솔직히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조용하긴 합니다.”

“지나치게 조용하죠.”

차라리 뭐라도 터졌으면 납득을 했겠지만, 너무 조용해서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있다.

“저는 물밑에서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읍…….”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킬 순 없겠지만, 적어도 뭔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아야 대처를 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감 기자도 평소 생각해놓은 바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소파에 몸을 뉘였다.

“지나치게 긴장 상태가 오래 유지되기는 했습니다. 누가 풍선에서 바람을 서서히 빼고 있는 거죠.”

“CIA일까요?”

“제 기자질 경험상, CIA는 개판을 만들어놓고서 낼름 처먹고 도망치는 스타일입니다. 정치 지도자가 갑자기 미친 짓을 하거나, 갑자기 시위나 내전이 터지면 CIA 짓이에요.”

종군기자의 뼈와 살이 담긴 조언이었다.

감 기자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주둥아리 단속하는 건 공산국가 스타일이죠. 중국 아니면 러시아. 근데 러시아는 첩보기관이 기능할 수가 없죠. 블라디보스토크는 군벌이고, 모스크바는 너무 머니까.”

“……중국입니까?”

“예. 중국 국가안전부가 물밑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봅니다.”

* * *

지금 시대의 권력자들은 모두 생존자들이었다. 모두가 한 차례의 거대한 역경을 이겨낸 이들이다. 그저 운이 좋아 견뎌냈던 이들은 이미 밀려났다.

그들은 두 번째 역경에 맞설 여력이 있었다. 베이징의 붕괴와 총통의 사망 속에서도, 중국은 다시 하나로 뭉치는 데 성공했다.

국가안전부는 강력한 무력과 영향력, 그리고 민족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재조립했다. 비록 군벌들의 연합체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하나는 하나였다.

문제는 누가 이끄냐는 거였다.

“핵탄두 개수로 줄을 세운다면 전략화전군 상장을 받들어 모셔야겠지. 그러나 국가의 주석은 군인이 아니라 정치가여야만 하오.”

“주석?”

“언어에 매몰되지 맙시다. 총통이든 주석이든 이미 과거요. 동지.”

“총통파와 주석파를 시원찮게 여기는 점은 이해의 차이가 있겠으나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군.”

“그런 의미는 아니었소만, 기분이 상했다면 유감이오.”

“다들 핵탄두를 들고 있으니 예와 도가 바로 서는군요.”

“농담에 뼈가 있구려.”

“원래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아니긴 합니다. 하하.”

서로가 서로를 좆 같이 보긴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사이가 좋았다. 국가안전부가 스스로 중재자를 자처한 덕이었다.

첩보기관으로 악명 높은 중국 국가안전부는 리충빈의 쿠데타에 협력하며 초인부대를 흡수했고, 공안부와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했다.

대만 합병에 앞장서고 온갖 시위와 소요사태를 진압한 것도 국가안전부였다.

WPO에 대표자를 파견해 국익을 대변한 것도 국가안전부였다.

국가안전부는 리충빈 정권 내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가장 강력한 헌터들이 그들에게 있었고, 지지기반이 위태로운 총통은 첩보기관에 의존했으니까.

그런 국가안전부가 계승분쟁에 뛰어들었다면 가장 승산이 높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군벌들이 군대도 없는 통치자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도 분명했다. 기반 없는 권력자는 공포를 무기로 삼아야 했으니까.

결국 국가안전부는 피를 보면서라도 쪼개진 나라를 얻느니, 공포정치를 두려워하는 군벌들의 요구에 적당히 맞춰주는 방향을 선택했다.

“다수결로 선출합시다. 그 방법 말고 더 있습니까?”

“후보는 누구고. 투표권자는 누구요.”

“여기 모인 사람들로 하시죠. 가진 핵탄두 개수만큼 투표권을 주면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투표는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CIA 내부 강경파가 선거에 개입하려 들었으나 국가안전부가 이를 한국에 흘렸고, 전쟁을 염려하는 한국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자, 전임자와 달리 국내 정세에 집중하기를 원한 미국 대통령이 CIA를 단속했다.

그리고 비록 리충빈 총통은 가진 야심만큼의 지도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앞날을 대비하지 못하는 이도 아니었다. 총통은 이미 권력의 공백을 대비해 후계자를 남겼다.

북부전구 사령관 자오펑.

혼돈에 휩싸인 중국을 수렁에서 건져낼 사명을 받은 이였다.

* * *

겨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두껍게 쌓인 눈이 녹아 갈색 흙탕물이 됐을 무렵, 차가운 북풍을 뚫고 두 헌터가 강북에 발을 들였다.

인근 게이트에서 막 기어나온 괴수들이 달려들었지만 두 사람의 발끝에조차 닿지 못했다. 홍선아와 설진운은 그렇게 서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남보다 강북이 더 심하네요.”

설진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장 하늘에 시퍼런 게이트가 열려 있었고, 부서진 자동차와 부러진 빌딩들이 주변 지형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설진운은 무너진 건물더미를 바라본 게 아니었다. 그는 사방에 즐비한 뼛조각들을 보고 있었다. 배회하는 괴수들에게 수없이 밟혀서 으스러진 가루들이 널려 있었다.

“강북에서 가장 많이 죽었으니까 그렇겠지.”

“……기억나네요. 한강이 문제였어요. 온갖 탈출계획을 세워도 그놈의 한강 때문에…….”

개문 사태 당시, 가장 많은 사망자가 강북에서 발생했다. 서울 전체가 게이트 사태에 휘말린 상황에서 한강은 강북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즉사하지는 않았다. 아파트와 빌딩은 대형괴수의 습격을 막아줬다. 건물에 침입할 수 있는 건 소형괴수뿐이고, 계단을 막으면 비교적 쉽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

그게 강북이 지옥이 된 이유였다.

진정한 적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식량을 소모시켰고, 생각 없는 행동으로 괴수를 불러왔으며, 욕망을 못 이기고 공동체를 붕괴로 몰아갔다.

설진운의 생존기는 괴수가 아니라 사람과의 투쟁이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대문 생존캠프를 이끌며 살인까지 저질러야 했다.

그렇게 수 개월에 걸쳐 강북의 시민들은 통계 속 사망자로 변했다. 물론 통계는 한국의 승리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설진운에게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저는 스팸 때문에 살인이 날 줄은 몰랐어요.”

“에이, 그건 좀 심했다. 강도라도 들었어?”

“아뇨, 스팸 구워 먹는 냄새가 너무 달았는지 사람들끼리 한 입만 달라고 싸움이 나더라고요.”

“그 와중에 혼자서 스팸 구워 먹는 건 제정신이 아닌데.”

“저도 모르죠. 그집 애가 달라고 해서 구운 건지, 아니면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아무튼 절대로 안 나눠준다 그러니까 욱해서 싸움이 나고, 그러다가 잘못 넘어지니까 머리가 깨지더라고요.”

“별일이 다 있네.”

“저도 솔직히 무슨 코미디 프로에서 나오는 이야기인가 싶었죠. 근데 그러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너 때문에 죽었네…… 누구 때문에 죽었네…… 근데 그 어른들이 결국 저한테 판결해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아니 제가 판사예요?”

“하.”

홍선아는 피식 웃고 넘어갔다.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마음속에 묻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빌딩 숲 사이로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먼지인지 무엇인지 모를 가루가 휘날린다. 바람인지 괴성인지 모를 메아리가 들려온다.

두 헌터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동대문이었다.

“여기야?”

“……네.”

작은 고등학교였다. 설진운은 넋을 놓고 교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홍선아는 태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왜 여기 숨었대? 근처에 대학교도 많은데.”

“친구들이 다 여기 있었거든요.”

“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진운의 어깨를 토닥였다. 설진운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학교를 바라보았다.

교문은 한때 의자나 책상을 쌓아놓은 흔적이 있었지만 무너져 있었다. 체육관에 있는 텐트촌은 짓밟혀 있었다. 커튼과 테이프로 막아놓은 창문들은 깨져 있었다.

설진운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차라리 사람들을 훈련시킬 걸 그랬네요. 이렇게 엉터리로 숨어 있을 바에는.”

“나름대로 잘 했는데, 뭘.”

“아니에요. 교문도 어설프게 저러지 말고 아예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차라리 뒷산을 타고 아파트로 이동할걸…….”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견뎠지만, 결국 후회만이 남아 버렸다.

동대문 캠프는 반년의 생존 끝에 의정부 사태에 휩쓸려 붕괴했다. 모든 민간인이 사망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건 오직 동대문파 각성자들뿐이다.

이곳은 설진운이 지키지 못한 이들의 무덤이었다. 누더기가 된 교복 조각이 그의 친구였고, 폐허가 된 이곳이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설진운은 울지 않았다. 운동장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거나, 가슴을 치며 친구의 옷조각을 부여잡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풍경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

그는 한참이나 학교를 둘러보고, 또 하늘을 쳐다보고, 다시 학교를 둘러보고. 그냥 그러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죠.”

슬금슬금 접근하던 괴수들을 티 안 나게 불사르던 홍선아가 장난스레 미소지었다.

“안 울어?”

“왜 울어요.”

“나였으면 울었다.”

“저는 안 울 건데요.”

설진운이 힘없이 미소지으며 부탁했다.

“여기…… 다 태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딴 사람들은 추모도 못 하게 만들게?”

“다른 분들은 옛날에 다 와봤대요.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추모비라도 만들지…….”

“나중에 비석 세우겠다고 친구들 시체를 방치하면 되나요. 오히려 제가 너무 늦게 온 거죠.”

“……너도 이제 생각이 깊구나.”

홍선아의 손에서 파란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퍼져나가 사방을 집어삼켰다.

파도처럼, 천천히.

결국 모든 것이 잿더미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는 따뜻한 남풍南風을 타고 겨울 하늘로 사라졌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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