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44화 (244/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44화

EP 37-북상北上(7)

서울에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 내린 덕에 서울은 의외로 옛날과 비슷해 보였다. 눈송이가 모든 상처를 가려주었다. 부러진 전봇대, 깨진 창문, 무너진 건물…….

흠뻑 쌓인 눈더미가 모든 걸 덮었기에 겉으로 보이는 건 여전히 드높은 빌딩숲과, 추억이 만들어내는 과거의 풍경들뿐이었다.

한국인이라면 이 고독하고 처량하면서도 그리운 도시의 풍경에 감동해야 정상이겠으나, 지난 몇 년간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은 도시는 당연히 제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헌터들은 푹푹 빠지는 눈더미를 해치며 돌아다녔다.

“얼어 죽겠네. 얼어 죽겠어.”

“장갑이라도 끼지 그래요?”

“손에서 불이 나가는데 장갑을 끼면 어떻게 되겠냐?”

“불쟁이였어요? 그러면 손에 불을 켜고 다니면 되지.”

“아, 내가 그 정도로 마나통이 컸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서울탈환의 주역은 하급 헌터들이었다. 대기업 PMC가 각자 맡은 구획을 1차적으로 청소하면, 하급 헌터들이 건물 내부를 하나하나 뒤져가며 잔당을 소탕하는 식이다.

물론 말이 소탕이지 사실상 안전점검에 가까웠다. 어디 아파트 수도관이 괜찮은지, 화장실에 시체는 없는지. 지하주차장에 새끼 괴수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힘들고 위험하지만 나름대로 공공사업이라고 감독관까지 있었다. 허름한 양복 차림의 공무원은 추위에 벌벌 떨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메가폰을 들었다.

“아! 아! 금천구 독산동 4팀! 오늘은 여기 홈플러스랑 롯데시네마 체크하고 저기 주민센터까지 확보하겠습니다. 화장실 변기칸까지 하나하나 열어 보셔야 합니다. 물에다 알을 까는 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는…….”

“밥은요?”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 국군 전진기지가 있답니다. 밥도 주고 총알도 주니까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이상한 거 잡수시지 말고 가서 드세요. 수렵면허증은 여기다 맡겨 주시고.”

“수렵면허증이요?”

“헌터증이요. 헌터증.”

* * *

“주무관님 오셨어요?”

“어어, 2팀은 어때?”

“마음 약한 친구가 현관문 열었다가 시체 보고 기절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서울탈환 전진기지는 대부분 학교 운동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탱크나 헬기가 다니기도 좋고, 괴수가 다가오면 금방 눈에 띄고, 겸사겸사 의자랑 책상도 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점은 교복을 입은 뼈를 보면 마음이 심란해지고, 또 겨울이라서 춥다는 건데, 몇 주 정도 지나니 군인이나 공무원이나 나름 적응이 끝난 상태였다.

공무원들은 운동장 대형천막 아래에 있는 전기난로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눈치 빠른 막내가 종이컵에 맥심 커피를 준비해서 주무관의 이쁨을 샀다.

“그나저나 헌터들이 우리 이러고 있는 거 보면 난리 나겠네. 자기들은 눈밭에서 고생하는데 공무원들은 따뜻한 데서 꿀 빤다고.”

“걔네는 우리보다 몇 배로 벌잖아요.”

“마석을 주워야 벌이를 하지 이거 일당이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래서 그런가 걔네들 가만 보면 괴수만 찾으러 돌아댕기는 거 같애. 상수도관도 설렁설렁, 전봇대도 설렁설렁, 광케이블도 설렁설렁, 가스관도 설렁설렁…….”

주무관은 설렁탕 드립을 치려다 꾹 참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교 하나가 심심했는지 공무원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렇죠. 사회 인프라가 어느 정도 살아 있는지 확인을 해야 윗선에서 판단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걸 알아야 도시계획국에서 싹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할지, 아니면 건물 잘 살려서 재활용할지 결정을 하죠. 이게 사실 괴수들보다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일용직 헌터들에게 뭘 기대하지 마십시오. 국가적 사명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오늘 벌이를 보고 일하는 친구들이니…….”

“아, 옛날에는 헌터들도 나름 사명감이라는 게 있었는데…….”

처음 만났는데도 죽이 척척 맞는 주무관과 장교를 지켜보던 막내 공무원은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려나-’ 싶다가 문득 선배 공무원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요, 선배. 왜 서울탈환에 일용직 헌터들을 쓰는 거예요?”

“대형 PMC랑 군인들이 한 번 쓸고 지나가긴 하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알바들이 하는 건 아니죠. 원래는 PMC에서 이것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높으신 분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니…….”

* * *

“대형 길드에서 하청을 줬다고?”

“네. 각자 구획에서 대형 괴수만 잡아두고 나머지는 중소 PMC들한테 맡겼다는데…….”

내가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모든 토지의 국유화였다.

물론 대놓고 이 땅은 이제 나라 겁니다, 라고 지껄인 건 아니다. 그건 진짜 빨갱이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러나 유구한 개발독재의 역사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 땅이든 뺏을 수 있는 법체계를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대기업 상대로 토지보상비 후려치고, 외국인 소유지(서울 면적의 40% 정도였다)는 쥐도 새도 모르게 꿀꺽 하고…….

과거 재산권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피난민이 땅주인이 아니라 아파트 주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머릿수가 많은 개인 지주들을 상대로는 정무부시장을 통해 어르고 달래면서 파이를 떼줬다.

사실 서울탈환보다 부동산 작업에 더 열의를 기울였던 것 같다. 실제로도 거기에 더 많은 행정력이 소모됐다.

그럼에도 국회 정론관에서 ‘한승문은 공산주의자’ 소리가 기어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때려죽여도 부동산 이슈는 관련되지 말라던 양판석의 조언을 다시금 체감했다.

「한승문 시장은 땅을 사려고 선거에 나선 것입니까? 서울 시정 전체가 부동산 단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땅을 부정한 방식으로 강탈하는 그 무자비한 행태는, 소위 공산주의자라 불리어도 항변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기업과 관련된 정치인만 문제제기를 하진 않았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나왔고, 유의미한 수준의 지지율이 감소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내게는 서울 땅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건설업계 재벌들에게 얻어맞은 유재경을 위한 복수라고 궁예질을 일삼는 중이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다.

서울 땅을 나라가 가지고 있어야 건설사업비 절반 이상을 토지보상비로 날려먹지 않는다. 그래야 국토부가 마음 편하게 재개발에 들어간다.

서울 땅을 나라가 가지고 있어야 헌터와 군인들이 건물을 부숴먹어도 욕을 먹지 않는다. 그래야 군사작전이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된다.

즉, 나는 헌터, 군인, 그리고 공무원들을 위해 거국적인 희생을 택한 것이었다.

절대로 서울시 재정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푼돈 좀 아끼자고 뒤통수를 쳐?”

서울은 현재 대기업 PMC들이 제각각 구역을 나누어 탈환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일종의 하청을 준 것이다.

그런데 이 하청이 하청을 고용하고, 그 하청은 대놓고 알바를 고용했다. 덕분에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만 죽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채원아, 점심밥 먹고 일정 뭐냐.”

“취소할까요?”

* * *

“아, 왜 이렇게 자주 와요. 부담스럽게…….”

“부담 가지라고 직접 온 겁니다.”

“얼굴 자주 봐서 좋긴 한데…….”

“그건 제가 좀 부담스럽네요.”

천 사장은 항상 그렇듯 후줄근한 양복 차림으로 본사 지하 1층 집무실(겸 지하벙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도 말이 서울시장이지 서울 없는 서울시장이라 부산에서 근무 중이었고.

원래는 정무부시장을 보내서 딜을 치거나 제2행정부시장을 통해 실무진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정상이었으나, 사실 살짝 삐진 상태라서 고객센터 찾아가는 블랙컨슈머의 마음으로 직접 대거리하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말을 들어보니까 이쪽도 사정이 있었다.

“연봉 수십억 받는 헌터들이 어떻게 아파트 화장실 변기통까지 열어 보면서 다녀요. 자기도 알겠지만 헌터들 자존심은…….”

“그래도 알바 쓰는 건 좀 아니죠. 책임지고 거기 괴수 소탕하고 공무원들이랑 업무 협조하라고 퍼준 세금이 얼만데.”

“괴수는 다 잡았던데요? 사이렌 울려서 모으고, 옵저버들이 흩고, 하수처리장에 전기 지지고…… 거기까지 했으면 됐지 연봉 수십억짜리들한테 멀쩡한 전봇대 개수 세라고 그럴 순 없잖아요.”

“그래서 하청을 줬다?”

“절-대 아무나 뽑은 거 아니에요. 자기는 회사생활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거 업체 선정은 직원들이 자기 목 내걸고 하는 거라고요. 막말로 리베이트 받고 아무나 뽑았다가 인명사고 나면 어쩔 건데요? 그 직원은 감옥으로 굿바이지, 뭐…….”

“그런데 그 하청의 하청은요?”

“굳이 제가 거기까지 변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대한 심정을 짐작해 보자면…….”

대기업 PMC들이 괴수를 다 잡는다. 그 하청업체인 중소 PMC들은 구역을 샅샅이 뒤져서 괴수의 씨를 말린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잡일들은 일용직 하위 헌터들을 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일용직 헌터들이 돈벌이를 위해 괴수만 찾으러 다니지, 정작 기반 인프라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거였다.

하긴, 누가 아파트 전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 전기, 가스, 건축물 안정성을 검사하고 다니고 싶을까. 그것도 끔찍한 죽음의 흔적이 역력한 아파트를.

그렇다고 민간전문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는 게,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위험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수렵면허증 보유자뿐이었다.

“에휴…….”

지자체장을 처음 해봐서 그런지 나도 아직 서툰 모양이다. 나는 대기업에 돈 처바른다고 만사가 풀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대기업 총수가 조언했다.

“인건비 따져보면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렇죠. 사실 지윤이 손 잡고 날아다니면 일주일 안에 싹 다 평지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건 좀 무섭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는 기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왜요?”

“돈만 따지면 안 된다는 소립니다. 예산만 고려하면 싹 밀어버리는 게 옳은 선택이지만, 이 나라에 자원이 무한하지는 않잖습니까. 멀쩡하거나 조금만 고치면 되는 건물이 저렇게 많은데 저걸 어떻게 다 부숩니까. 부술 바에는 막말로 집 없는 사람들한테 다 뿌리고 말지…….”

“…….”

결국은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사실 모든 문제가 그랬다. 악당 하나 때려잡는다고 풀리는 게 세상사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공무원들 괴롭힌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군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그랬다가 사람이 다치면 어쩌지?

나도 모르게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천 사장이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무표정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이 뭔가 으슬으슬하다.

“뭐, 뭡니까?”

“흠. 그냥요.”

그녀는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는 정치인이 천직이다 싶어서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