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39화
EP 37-북상北上(2)
“저기, 형님.”
국회에서 짬 찬 보좌관들은 사석에서 의원이랑 형님 동생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양일호가 나이 먹으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굳이 예의 차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소리다. 모시던 의원한테도 깍듯하게 보다는 서글서글하게 달라붙는 게 보좌관 시절 양일호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양일호가 내게 형님 소리를 했다. 심지어 점잖게 목소리까지 깔았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탈환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괜찮지 않나?”
옆에서 지켜보던 이호정이 대신 대답했다. 이 녀석 혼자 국회의원이었으니 우리 중에 제일 가는 권력자였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무슨 서울이에요. 딱 난민촌 이장이 무소속으로 나와서 할 만한 얘긴데.”
“야, 난민촌 이장은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신수광이 패거리한테 시달려 보셨어요? 오빠 혼자 청와대에서 점잖게 국정하는 동안, 국회에서 총알받이 한 게 누군데.”
“그럼 내가 할 말이 없지…….”
이호정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저었다.
“하여튼 영양가가 없잖아요. 영양가가. 국회의원 300명 중에 250명이 부산 합동분향소에서 즙 짜고 있는데. 이 와중에 서울 탈환 운운한다? 유가족들한테 전쟁광 소리 듣기 딱 좋죠.”
“정치가 무슨 오메가 쓰리냐? 영양성분 따지게?”
“그럼 따져야지, 안 따져요?”
논쟁이 (언제나 그렇듯) 과열되자 진지하게 지켜보던 양일호가 끼어들었다. 물론 자기 아내 편드는 소리였다.
“형님, 우리가 옛날처럼 장관 의원 해먹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서울 탈환할 거면 그럴듯한 얼굴마담이라도 내세워야지…….”
“유재경 총리가 한다는데?”
“뭐요!?”
양일호가 경악했고, 이호정이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눌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할지 예감한 모양이었다.
내가 야부리를 털기 전에 이호정이 선수를 쳤다. 평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오빠, 솔직히 말해봐요. 유재경 총리가 와꾸를 선다고?”
“어.”
“피채원이 걔 혹시 마인드 컨트롤 뭐 그런 거 써요? 아니면 오빠 능력이 사실 언령인가 그거야? 내가 소름이 돋아서 그래. 대체 어떻게 그 새가슴을 꼬셨대요?”
“크흠. 일단 중량감 있는 인사를 모셨으니까. 언플을 하려면 국회에서 먼저 밑밥을 깔아 줘야지.”
“그러면 내가 나서서 또 얻어맞아야겠네요? 계란이랑 밀가루도 좀 맞고?”
“그렇지.”
이호정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싫어요! 절대 안 해요. 이상한 빅픽쳐 설명하지 말고 집에 가요. 신혼집에 왜 이렇게 자주 놀러 오는 거야?”
“호정아…….”
“아, 설득하지 말라고! 안 한다니까!?”
「서울 탈환은 시대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서울을 탈환하고 한반도를 안정화시키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정치권력의 핵심 동력이 입법부에서 행정부로 옮겨왔지만, 국회는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의 이슈 메이커였다.
그리고 이호정은 좋든 싫든 인지도만 따지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의원이었고, 충분히 대한민국에 불판을 달굴 능력이 있었다.
국론이 분열됐다. 그리고 그 분열된 여론을 낚아채서 주도하기 시작한 건 세종시였다. 세밀하게 조율된 언론 플레이가 시작됐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마자 수많은 해외 단기성 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 국가 신뢰성이 무너진 게 크지요.」
「에…… 저는 서울 탈환이 묘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양적 팽창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확고하게 기능한다면, 영토 재건을 통한 건설 호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가능성도 분명히 있죠.」
「서울 말고 무한히 쏟아지는 마석 허브를 확보할 수 있느냐? 이 문제 때문에 북진론이 좌절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북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병합한 지금……」
남부 지방의 붕괴 속에서 세종시 공무원 조직은 살아남았다.
테크노크라트,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기술관료들과 그 양반들이랑 대학교 같이 다녔던 교수들이 각종 인터뷰에 등판했다.
경제관료들의 언론플레이는 정치인의 선동과는 달리 톡 쏘는 맛은 없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갑다’ 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솔직히 저 양반들이 지껄이는 게 사실일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경제라는 게 원래 그랬다.
다만 ‘서울을 탈환하면 경제가 살아나나?’ 정도의 착각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시점에 원옥분 대통령이 나를 호출했다.
나는 오랜만에 그녀의 욕설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 파병 나가고 싶으면 그냥 나가지. 왜 이렇게 여론에 분탕을 치고 지랄인가?”
“이게 다 국익에 도움이 되니까 이러는 겁니다.”
원옥분 대통령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그러나 거기에 움츠러들기에는 내 면상이 너무 두꺼워진 이후였다.
말없이 싱긋 웃고만 있으니, 대통령이 먼저 삿대질을 했다.
“자네 혹시 사해동포주의 뭐 이런 거에 심취했나? 왜 우리가 중국을 도와야 하지? 한번 지껄여 보게.”
“중국이 망하면 동북아시아의 식량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식량 문제는 이미 해결됐네. 호주 북부에 대농장을 확보했지. 자네가 뒤에서 쑥덕거리는 동안 말이야.”
“오, 그게 정말입니까?”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게 각성제 기술을 빼앗기지 않은 이유는, 강대국들도 헌터 숫자를 통제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지독한 한국 놈들이 각성제를 양보하지 않아서 헌터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종종 했다.
그런 식으로 미국 내의 거대 PMC를 견제하는 것이다. 한국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각성제 물량을 통제하면서 말이다.
만약 정말로 한국이 미국에 각성제 공급을 차단한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아마 비밀리에 생체실험으로 개발한 자기들만의 각성제를 꺼내 들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즉, 한국과 강대국들이 동시에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한국의 각성제 독점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한국은 이걸 해냈다. 이건 반쯤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교한 외교 카르텔을 설계하고 조직한 사람이 바로 원옥분 권한대행이었다.
다행히 대통령이 된 지금도, 특유의 외교적 감각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정부는 호주 북서부에 한반도의 절반 정도 되는 국유지를 확보했다. 비옥한 농토지. 이제 우리가 왜 중국을 도와야 하나?”
“중국이 망한다면 블라디보스토크 군관구도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당장 유라시아 내부의 수천만 괴수 호드가 한반도로 직행하지 않겠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 그 핵무기 든 군벌을 믿나? 머리통은 그나마 멀쩡해도 실상은 깡패나 다름 없어. 몽골 난민들 상대로 패악질이나 일삼고 있지. 이미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은 모스크바가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네.”
“……러시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고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베이징이 붕괴했네. 그건 블라디보스토크 군벌의 모든 보급망이 무너졌다는 소리야. 모스크바에서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러시아 내전이라. 하지만 뤼미에르는 전쟁을 언급한 적이 없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잠시 침묵을 지키자 원옥분이 쿨럭 쿨럭 기침했다. 노인의 건조한 목에서 가래가 끓는 모양이다.
그녀는 몸을 굽혀 커다란 책상 구석에 있는 머그컵에 손을 뻗었다. 손이 닿지 않길래 내가 대신 건네줬다.
“어어.”
“…….”
감사인사인지 침음성인지 모를 소리였다. 그녀는 안주머니에서 알약 몇 개를 꺼내 먹고서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러시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고…….”
“아아. 그래. 그래. 내가 선거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어. 국가원수였다고. 세상이 이 육시랄 개판이 났을 때 말이야.”
“그랬죠.”
“비록 국내 상황에 신경을 못 쓰다가 양통이랑 자네한테 밀려나긴 했지만, 그때 나름 외교적으로는 잘 풀어나갔다고 생각하네. 중국이 대만과 내몽골을 합병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았고, 미국이 동맹국들 수뇌부를 장악하던 와중에도 우리는 자주권을 지켰어. 인정하나?”
“그…… 렇지요?”
“그러면 네놈은 나한테 빚이 있는 거야.”
“남보다 못한 사이인 건 알지만 네놈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예, 뭐, 알겠습니다. 빚이 있다고 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중국 개입을 포기하게.”
대통령 원옥분이 말했다. 희끄무레한 눈동자가 세월의 흉터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총통이 살아 있기는 한지. 동부군벌 핵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미국이 정말로 처음부터 이 상황을 유도한 건지……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
“섣부르게 개입하다간 한반도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수가 있어. 값싼 동정심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야.”
원옥분 대통령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비비듯 자기 흉터를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건조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나는 중국인 수억 명보다 한국인 한 명이 더 소중해야 하는 사람이다. 정 원한다면 서울 탈환까지는 용인하겠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동북아시아 정세에 개입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습니까.”
“자네가 삼권분립을 운운하며 나를 몰아냈듯이, 나도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말하겠다. 나라의 운명을 도박판에 올리는 건 그만하게. 자네의 임기는 이미 끝났어.”
* * *
“그래서 그냥 왔다고요?”
“그러면 거기서 뭐라고 그러냐.”
“아니…… 음.”
이호정은 날카로운 눈매를 찌푸리며 분노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신세 좋게 백수로 지내는 양일호가 끼어들었다. 정치 때려치우고 얼굴색이 밝게 변했더라.
“원옥분 대통령이 생각보다 능력이 있네요. 다음에 국방당 한 번 찍어볼까?”
“뭐?”
“아냐…….”
소소한 반항이 국민당 국회의원인 이호정에게 진압되었지만, 양일호는 소신껏 발언했다.
“그래도 서울탈환 허가 떨어진 거 보니까 원옥분 대통령도 타협했네요. 그냥 유재경 총리 서울시장 만들어주고 손 떼죠?”
양일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러자 이호정이 드물게 말을 더듬었다.
“뭐? 아니, 그, 그, 중국에. 사람이 몇이나 되는데 손을 뗀다고?”
“내가 알기론 3억 내지 6억? 워낙 중국에서 발표를 이상하게 하니까 잘 모르겠다.”
“그러면 3억 내지 6억을 버리자고?”
양일호는 굳이 대답하는 대신 슬픈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이호정은 경악했다. 처음 접한 남편의 냉정한 면모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호정은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당황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오. 오빠.”
“…….”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과거의 행적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차재균을 처죽이기 직전에 느꼈던 감정이 오랜만에 느껴졌다.
양일호가 말했다. 녀석은 어느새 날티 나는 보좌관이 아니라, 전직 초상관리부 장관이 되어 있었다.
“형님.”
“…….”
“그만합시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양일호가 장관 시절에 종종 청송교도소, 아니, 청송연구소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은 현대사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건 내가 만든 그림자였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손 떼자.”
“……알겠어요.”
“서울탈환 정도면, 경제는 살리겠지.”
나는 내가 만든 거짓말을 주워섬겼다. 그리고 양일호와 이호정의 신혼집에서 떠났다.
수많은 목숨을 손에서 떠나보냈지만, 거기에 슬퍼하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절뚝거리며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싸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람도 있었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던 끝에 집앞에 도착했다. 집 안에서 이모부와 이모, 그리고 여도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경호처에서 나온 양복쟁이들에게 인사하고, 집안에 들어가려 문고리를 잡았을 때, 손등에 눈송이 하나가 떨어졌다.
“어.”
눈이 내린다.
흐린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새하얀 눈송이가 세상의 허물을 가렸지만,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통영의 앞바다에서, 나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괴수는 여전히 사람을 해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담배를 하나 꼬나물었다.
“하아…….”
이제 기침은 나지 않았다. 한숨인지 담배연기인지 모를 무언가가 속에서 새어 나왔다. 매캐한 연기는 겨울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싸늘한 눈보라가 불어오고 있었다.
차가운 북풍이 부는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