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38화
EP 37-북상北上
원옥분 대통령이 나를 부른 건 방송국 기자가 울먹이며 남부가 탈환되었다고 보도할 즈음이었다.
“수고 많았네.”
“뭘요.”
피차 반가운 사이도 아니니 인사는 그게 끝이었다. 보는 눈이 없기도 했고.
그녀는 내게 국정원 보고서를 스윽 건넸다. 내가 전주시에서 괴수를 잡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특이하게도, 지금 당장 송고해도 될 정도의 기사문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나는 말 없이 대통령을 스윽 쳐다보았다.
“SBS에서 물었더군. 지금이야 무마됐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올 뻔했군요.”
“재밌을 뻔했어.”
피채원은 없었지만 원옥분 대통령의 마음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사건 무마해줬으니 고마워하라는 게 절반이고, 옛날처럼 미친놈마냥 날뛰면 재미없을 거라는 경고가 절반이었다.
대통령을 힐긋 쳐다봤다. 그녀의 희끄무레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악의도, 야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이 행정적 업무라는 기색이었다.
“흠.”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로 사람을 죽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가 집어던진 괴수가 사람을 해친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중요한 것은 나와 감지윤이 일심동체로 움직였다는 사실이었고, 언론사가 비판적 논조로 이를 물었으며, 감지윤은 카메라가 싫어서 후드티를 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청와대에서 나왔다.
* * *
[천 회장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뇨, 아뇨, 그렇게 스페큘레이션하지 마시구요. 나중에 정식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한 말씀만 해주시죠. 정말로 헌터들이 민간인을 버렸나요?]
[현재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씀드리긴 어렵구요, 정식 인터뷰 요청하시면 최대한 신중하게 답변 드릴게요. 하하…….]
[…하지만 GS 천금순 사장은 정식 인터뷰를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국 나 대신 방송을 탄 건 만만한 천금순 사장이었다. 사실 언론이 몇 달에 한 번씩 천사장을 조지는 건 반쯤 루틴이었다. 과거 천사장의 무차별적 인수합병이 다른 재벌들 눈에 밉보인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나 되는 인간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할 순 없는 노릇. 업보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천금순 사장은 대뜸 우리 집에 처들어와서 술병부터 깠다. 나는 TV에 나온 천사장을 보며 옆에 있는 천사장에게 말했다.
“말투가 어째 구태스러워지셨습니다?”
“아, 진짜……! 자기까지 그러지 마요. 열 받으니까…….”
“GS 헌터가 사람 버리고 도망친 건 팩트던데?”
“아니죠. GS 방위대행사는 21만 6천 명 조금 넘게 살렸고, TV에 나온 건 어떤 또라이 하나가 지 살겠다고 민간인 수십 명 괴수밥으로 던져 주고 도망친 사건이죠.”
“세상에 저런 개새끼를 봤나. 근데 숫자가 묘하게 구체적입니다? 21만 명이라고요?”
“표본을 좀 넓게 잡긴 했는데, 그래도 15만은 넘을걸요? 그래서 기업 CF도 기깔나게 뽑아놨는데 저거 터지고서 다 엎어졌잖아…….”
나는 사실 정부에서 한승문이 대신 천사장 물어뜯으라며 던져줬다고 실토하는 대신, 말없이 와인잔에 복분자나 따라줬다.
천금순 사장은 한참이나 잉잉거리더니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엎어졌다.
식탁에다 이마를 콩콩 박아대길래 아프지 말라고 머리랑 식탁 사이에 손을 끼워줬다.
그때 손목이 잡혔다.
“스톱.”
“……!”
천사장이 물귀신처럼 희번뜩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봤다.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흘러내려서 진짜 귀신 같았다.
깜짝 놀라서 흠칫거리는데, 그녀가 따발총처럼 다다다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스윗해요? 자기 원래 이런 사람 아니잖아.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죠.”
“아, 아닌데요.”
“혹시 정부에서 나 던져줬어요? 에이. 진짜. 어쩐지 보도국장들이 연락을 씹더라니…….”
“근거 없는 추측은 하지 마시구요. 나중에 정식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잠깐만. 그거 내가 했던 말-”
“아, 그냥 디비 자요. 자. 자. 술 먹었으면 곱게 자야지.”
나는 비틀거리는 천사장을 담요에 말아 소파에 던져놓고, 지저분한 술상을 박박 닦았다.
그때 피채원이 편의점 심부름에서 돌아왔다. 사오라고 한 데자와는 어디가고 웬 의족을 하나 품에 안고 있었다.
나는 매끈하게 이어지는 의족의 종아리 라인과, 중후한 회색 코팅, 반짝거리는 티타늄, 그리고 유압기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절름발이가 일어선 기적이었다.
“그거 카본 아니냐?!”
“……카본이 뭔가요.”
나는 대번에 카본 의족의 역사와, 카본 의족을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독일 선수, 그리고 카본 의족에 들어간 첨단 기술을 읊으려다 말았다.
피채원의 옆에 익숙한 듯 낯선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쭉 손을 들어 인사했다. 어색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앙뇽.”
“……의족은 이분이 가져오셨어요.”
메탈 가수처럼 생긴 서양인이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공업용 고무장갑이다. 문득 뤼미에르네 패거리에 피카츄가 하나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전격계 초상능력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 어 어 하고 있는데 피채원이 슬쩍 말했다.
“…다니엘 웰링턴이에요. 기사회 영국지부장. 뤼미에르 비서.”
“Sir…….”
다니엘이 알고 있던 한국어는 ‘앙뇽’이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는 대뜸 의족을 선물하고서는 영어로 뭐라뭐라 말했다.
내가 영어를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영국 사투리가 너무 심했다. 그래도 보스 어쩌고 하는 건 알아들었다.
결국 피채원이 통역했다.
“뤼미에르 기사회장님이 찾으신대요.”
* * *
“베이징이 무너졌다고요?”
“예.”
“아, 시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뤼미에르가 설명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를 가로질렀다.
“선양부터 베이징까지 게이트 사태의 여파에 휘말렸습니다. 사태의 여파를 감안해서 보도는 통제되고 있지만, 조만간 한반도 카타스트로피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카타스트로피라고 보도가 시작되겠지요.”
“대재앙의 여파가 어떻게 중국까지 닿은 겁니까?”
“사상 초유의 괴수가 나타난 건 아닙니다. 그저…… 게이트 사태에 휘말린 거죠. 아시다시피 현대화된 도시는 게이트 사태에 지극히 취약합니다. 그것도 도시 내부에서 이상사태가 발생했다면 더더욱이요.”
중국은 이미 내륙을 상실하고서 해안지방을 방어하는 식으로 굴러가는 나라였다. 특히 동부 해안가 원전지대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터지면 동북아시아 전체가 방사능 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이징이 뚫렸다는 건 톈진이 위험하다는 소리고, 톈진이 위험하다는 소리는 중국 동부 해안 원전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관도 이미 방사능에 오염된 미국 동부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곳은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몇 개의 매트로폴리스에서 그 많은 사람을 전부 수용하고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건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 아닙니까?”
“아니, 아니, 잠깐만요. 그때 그 면역제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신체를 방사능 면역으로 개조시킨다던…….”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제품입니다. 그리고 장관이나 저나 각성자니까 수명도 길고, 마력에도 익숙하니까 수명 조금 깎이고 마는 거지, 일반인은 면역제 잘못 맞으면 치명적입니다.”
“……헌터가 수명이 깁니까?”
“장관은 왜 이렇게 상식이 부족하십니까?!”
“오, 뭔가 이득 본 느낌이군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속내는 시꺼멓게 변했다. 미국이 의심됐기 때문이다. 게이트 장난질로 유럽을 이미 건드린 놈들이다.
그런데 중국이라고 건드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중국은 아시아의 식량고다.
중국이 망하면 동북아시아 전체가 미국이 전달해주는 식량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에 갖다 먹일 엿을 어떻게 달여야 하나 천천히 고심하려는 찰나, 뤼미에르가 내 표정을 읽은 모양이었다.
“미국 측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치들도 반쯤 정신이 나갔더군요.”
“……그렇습니까?”
“중국과의 핵전쟁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군부에 접촉을 시도하던데, 글쎄요. 저는 일단 중국부터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만.”
“흠. 미국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군요. 적어도 실무진들은.”
“장관. 이게 정말 운이 없어서 생긴 일인지, 미국의 설계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입니다.”
“…….”
누구보다 미국을 미워하고 있을 뤼미에르는 냉정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그제서야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은 행동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어쩌다가 중국이 베이징을 상실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건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
“노아,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기사회는 중국으로 갑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장관. 우리가 한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게이트 사태가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경제도 파탄났고, 지자체도 휘청거리고, 무엇보다 저는 이제 공직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안 됩니까?”
“까짓거 한번 해보죠, 뭐.”
*···카타스트로피가 종결되었습니다.
혹자는 아직도 두매산골에 아공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 말하지만, 나는 원옥분 대통령이 계엄령을 해제한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위기가 불가역적 종결을 맞이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카타스트로피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첫째는 어원대로 이번 사태가 ‘대재앙적’인 피해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용어 자체가 국익에 해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계엄령 해제를 선포하는 원옥분 대통령의 사진.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노인이 군복을 입고 있다.]
한국이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인명피해가 아니라 경제적 손실입니다. 한국 금융계를 유지하던 모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럽인들이 카타스트로피라는 단어에 가진 공포입니다.
그러나 카타스트로피는 본질적으로 일반 게이트 사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국산 마력으로 열리면 게이트 사태고, 이차원 마력으로 열리면 카타스트로피입니다.
따라서 나는 일부 언론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언어 수정 운동을 지지합니다. 카타스트로피가 아니라 게이트 사태로. 게이트 사태가 아니라 아공간 사태로. 그리고 헌터가 아니라 각성자로···」
“흐음…….?”
노트북을 두들기던 유재영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칼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이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인명피해가 아니라 경제적 손실입니다.] 라는 부분은 유가족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 손실 우려하다가 언어 수정 운동으로 넘어가는 흐름도 매끄럽지 못했다. 세 문단을 통째로 삭제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유재경 총리를 위해서라도 칼럼에 경제 부분은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유재영은 커피를 홀짝이며 고민을 시작했다.
“경제…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국가 신뢰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경제를 살리려면 나라에 돈을 끌어와야 한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칼럼이 인기를 끌려면 최소한 참신한 방법이라도 주절거려야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고,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신문 읽는 아빠한테 가서 치근덕거리기로 했다.
“아빠, 미국에서 금리 올린다고 그랬던가?”
“연준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더구나. 앞에서는 하하호호 해도 본성이 그런 거겠지.”
“그거 혹시 엠바고야?”
“뭐, 엠바고는 맞는데. 칼럼에 갖다 쓸거면 알아서 하렴. 대한민국에서 뇌피셜로 자가발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마워요!”
유재영은 아빠 어깨나 몇 번 주무르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2층 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모습이 절뚝이며 걸어오는 것이었다.
유재영은 기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공포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아빠! 뭐야! 한승문이 왜 우리집에 와!”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바, 밖에…….”
“이게 도대체 무슨…….”
유재경 총리가 기겁하며 신문을 덮고 일어났지만, 그놈은 이미 문 앞에 도착한 뒤였다.
똑, 똑. 노크 소리에 유재경이 뭐 씹은 표정으로 현관에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아이고, 한승문 장관님 아니십니까? 주말에 이렇게 연락도 없이-”
“총리님, 혹시 서울시장 관심 없으십니까?”
“뭐요?”
“서울특별시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