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37화
EP 36-수도를 잃었습니다(5)
조정식은 압구정파 시절부터 활동한 1세대 헌터였고, 여도연에 이어 둘째가는 치안관이었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옵저버Observer였다.
무엇이 정찰꾼을 일류로 만드는가. 빠른 발과 넓은 시야는 아니었다. 옵저버는 괴수에 대해 알아야 했다.
모든 괴수는 환경에 맞춰 변이한다. 그리고 포식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비슷한 괴수가 나올 수는 있어도, 모든 괴수는 어떤 식으로든 다르다.
사실상 헌터들은 매번 다른 종류의 괴수와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옵저버도 매번 다른 종류의 괴수와 맞닥뜨린다.
그래서 옵저버는 처음 보는 괴수의 생김새만으로 능력과 약점을 추측하고, 괴수의 마력을 읽어 속성과 특징을 파악할 줄 알아야 했다.
“안 되겠는데요.”
조정식은 분명 여도연보다 못한 강체술사였고, 설진운보다 못한 나이트였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마력 감응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최고의 옵저버로 만들었다.
“아, X바, 안 된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조정식이 안 된다면 진짜 안 되는 거다.
그러나 여도연은 안 되면 되게 하는 게 신조였다.
“진짜로 방법 없냐?”
“우리가 감지윤도 아닌데 저걸 어떻게 다 잡아요. 대공포화를 갈기 거나, 정신계 초능력자가 싹 쓸어 담아야 하는데, 여기는 뚜벅이들밖에 없잖아요.”
그들이 지켜보는 건 하늘에 우글거리는 박쥐 무리였다. 거대한 박쥐들이 시체를 노리는 까마귀 떼처럼 부산 상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따금 빌딩 창문을 깨부수고 개미핥기처럼 사람을 빼 먹기도 했는데, 여도연과 조정식으로서는 하늘에 떠다니는 박쥐 무리를 상대할 재간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저 새끼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아까 다솔이가 저격총 쐈을 때 봤어요?”
“아니. 못 봤는데.”
“땅에 있는 놈을 쐈는데, 하늘에 있는 수백 마리가 우르르 도망쳤습니다. 지금도 보면 국군이 대공포화 갈기는 구역은 귀신같이 피해 가잖아요.”
“우리도 없는 통신망을 괴수들이 가지고 있네. X발 거…….”
애석하게도, 부산도 대재앙에서 안전하지는 못했다.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비행괴수 무리가 날아든 것이다.
그 와중에 원인불명의 현상으로 통신망도 마비된 상태였다. 핸드폰 따위의 민간 전자기기는 고장을 면치 못했다.
여도연은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비실비실한 동생을 생각했다. 연락도 안 되는 마당이라 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울컥했다.
“왜 전화가 먹통이고 지랄!”
분노한 경상도 여자가 핸드폰을 집어 던지자, 핸드폰이 아니라 벽이 부서졌다. 삼성 갤럭시 S25+는 콘크리트 벽에 쏘옥 박혔다.
“와, 저게 안 부서져?”
“야, 정식이. 진짜 저거 박쥐들 어떻게 안 되냐?”
“공중부양 능력을 각성하시면 되겠네요.”
옆에서 지켜보던 여다솔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가 매고 있는 K2 소총은 일행의 유일한 대공화력이었다.
“질문! 군인 아저씨들한테 대공포를 빌려오는 건 어떨까요!?”
“굳이 대공포를 군인이 아니라 헌터가 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네요.”
“그치. 손 내려.”
조정식이 제안했다. 슬슬 여기서 뭉개고 있는 게 피곤해지려는 참이었다.
“그냥 부산은 군인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옆동네 게이트나 막으러 가죠? 대구랑 남해에 뭔 일 났다는 말도 있던데. 아, 창원도.”
“저 괴수 놈들이 부산 시내에서 사람을 처죽이는데 그냥 버리고 가자고?”
“작전 회의할 시간에 창원 갔으면 게이트 벌써 닫았겠다.”
“거긴 내가 닫고 왔다.”
“그러면 다행이지만…….”
지상에 잠깐 내려오는 놈들 한두 번 때려잡는 수준으로, 저 수많은 박쥐들을 다 잡을 순 없었다.
부산의 제공권은 괴수에게 있었으며, 무너진 통신망이 국군과 헌터의 움직임을 마비시켰다.
조정식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음?”
“저거 뭐냐?”
“오오…….”
사람이 일으킨 기적이었다. 샛노란 빛의 마력이 부산 전체를 휘감았다.
노아 뤼미에르가 성역聖域을 선포했다.
* * *
전라북도 전주시는 양판석의 고향이었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양반이라 ‘광주의 아들’이라고 광을 팔고 다니긴 했지만, 양판석의 집안부터가 일제 강점기에 부를 쌓은 전주시의 토호 가문이다.
아기 양판석을 받아준 산부인과가 광주에 있었을 뿐이지.
그래서 양판석은 휴가 때마다 전주시를 들리곤 했는데, 골프도 전주에서 치고, 술도 전주에서 먹었다.
애향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보다는, 집안 어른이 골프장이랑 술집을 운영해서 그런 거였다.
덕분에 양판석의 가방모찌였던 나도 전주시 지리를 어느 정도 알았다.
그게 전주 시내에서 괴수랑 추격전을 할 때 도움이 될 줄은 평생 예상 못 했지만 말이다.
“저기로 가면 대학교야! 반대쪽으로! 반대쪽으로!”
“반대로 가면 주택단지 아니에요!?”
“그 사이에 호수가 있어. 거기로 몰아!”
괴수는 가로등, 신호등, 전봇대, 자동차를 모두 박살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놈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과 불꽃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찍어 눌러 버리자니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민들은 비명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괴수가 더 빨랐다.
하얀 괴수는 우리를 능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전통시장으로 들어가 촉수로 된 오른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촉수가 칼처럼 단단해지더니 사방을 베어 갈랐다.
“이, X발……!”
전주시장이 현명한 건지, 전주시에 주둔한 사단장이 현명한 건지는 몰라도, 괴수가 시가지에 침입하는 시점에 대피 작업은 1차적으로 완수된 뒤였다.
그러나 도시에 사람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거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정부를 못 믿은 사람들, 안내 방송을 못 들은 사람들, 아니면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거리던 사람들이 괴수의 희생양이 되었다.
“저기 호수공원이다! 호수공원으로 몰아!”
우리가 괴수를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녀석이 시가지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뿐이었다.
감지윤과 나는 손잡고 비행하며 괴수를 추적했고, 홍선아는 불꽃으로 변해 순간이동하며 틈이 생길 때마다 괴수의 경로를 방해했다.
“지금!”
홍선아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올랐다.
마음먹으면 도시 하나를 불태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도로 하나를 가로막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괴수는 방향을 틀었고, 인적 없는 호수공원에 잠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내 차례였다.
“……!”
가공할 만한 힘이 괴수를 찍어 눌렀다. 호수공원 전체가 들썩거렸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그러나 괴수는 지금까지 질주하던 가속도를 이용해서 몸을 비틀었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염동력으로 따라가기는 더욱 힘들었다.
“젠장!”
“가만 있어봐!”
내가 괴수를 놓치자 감지윤이 손을 썼다.
사방에서 흙무더기가 날아들었다. 흙과 바위, 그리고 호숫가의 물이 괴수를 감쌌다.
하얀 괴수는 자신을 찌그러뜨리려는 힘에 저항했다.
녀석의 노란 눈동자가 호수로 향했다. 허연 얼굴에 입은 없었지만, 왜인지 녀석이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앗!”
괴수가 호수로 뛰어들었다. 감지윤조차 녀석을 놓친 것이다.
나는 그 시점에서 깨달았다. 저 괴수는 마력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그래서 염동술의 빈틈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감지윤이 호수 위에서 수면을 관찰하며 괴수를 찾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임기응변을 짜내려 고심했다.
그때 홍선아가 달려들었다.
“호수 위에서 나와봐요!”
우리는 호숫가로 대피했고, 곧 홍선아가 나오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치이익! 호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수증기가 사방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우리는 몇 발자국 더 물러섰다.
홍선아는 호수 밑에 화염을 생성해서, 괴수를 끓여 죽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괴수는 얼마 못 가 튀어나왔다.
홍선아를 향해서.
“선아 씨!”
하얀 괴수가 무방비 상태의 홍선아를 덮쳤다. 녀석은 홍선아에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공격은 내가 사용한 염력 덕분에 빗겨 나갔지만,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대로 돌진해서 호수공원에서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 녀석이 인적 드문 공터로 향하는 일이 없어졌다. 빌어먹게도, 대가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여도연이었다면 미친놈처럼 쫓아가서 격투를 시작했을 것이고, 설진운이었다면 매서운 검기로 치명상을 입혔겠지만, 우리는 3명 다 정신계 초능력자였다.
그리고 저 괴수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괴수보다 최상의 피지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근접전에 들어가면 누구 하나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돌풍처럼 질주하는 괴수를 추격했다.
가로등과 전봇대가 무너지며 전깃불이 튀어 올랐고, 아스팔트와 자동차는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메케한 불꽃의 냄새가 피비린내에 섞여 도시를 휘감았다. 시가지는 어느새 전장이 되어 있었다.
“저 개새끼 어떻게 좀 해봐!”
감지윤이 앳된 목소리를 긁어가며 악을 질렀다.
나는 녀석이 마력을 볼 줄 안다는 내 추측을 떠올렸다.
“지윤아! 하늘을 막 휘저어봐!”
“뭐!?”
“보는 사람 까무러칠 정도로! 위협사격!”
개떡같이 말했지만 감지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녀석은 마구잡이로 하늘을 휘젓지 않고, 어마어마한 마력을 허공에 띄워놨다.
만약 저걸 그대로 내려친다면 일개 동이나 구 단위는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터였다.
감지윤의 마력 감응력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보는 것만으로도 생존 본능이 자극되어 움츠러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괴수도 마찬가지였다.
“멈췄다……!”
멈췄다기보다는 압박감을 못 이기고 움찔거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홍선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푸른 불꽃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괴수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입이 없는 괴수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지만, 녀석의 촉수가 대신 비명을 질렀다. 자세히 보니 촉수 가운데에 입이 있었다.
쿵, 쿵, 괴수가 사방에 있는 건물에 부딪치며 불꽃에서 벗어나려 들었다. 더욱 과격해진 몸부림은 빌라 하나를 통째로 박살 냈다.
그러나 홍선아의 불꽃은 그녀의 성격처럼 지독하고 끈질겼다. 그녀는 마녀처럼 미소지으며 괴수를 고문했다.
나도 저 능력 써봐서 안다.
마치 간지럼을 태우듯이 괴수의 속살로 불꽃을 밀어 넣고, 온몸에 있는 구멍 속으로 화염을 쑤셔 박으며 내장까지 불태웠다.
홍선아의 기술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음습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화염이 괴수를 불태웠다.
저기서 10초 이상 버티고 있는 게 괴수가 SS등급 이상의 방어력을 가졌다는 증거였다. 저러니 전차한테 맞고도 멀쩡하지.
녀석의 속도는 과연 몇 등급이었을까. 대가리 굴리는 것까지 감안하면 정말 무시무시했다. 만약 저놈이 산에 숨어서 더 성장했다면···….
“뭐 해! 구경만 하지 말고!”
“아, 맞다.”
감지윤의 매서운 쿠사리에 정신을 차렸다. 나는 홍선아를 도와 괴수를 찍어 눌렀다.
감지윤의 마력 감응력은 서로 다른 초능력이 원활하게 섞이는 컨트롤을 가능케 했다.
내가 염력과 화염술을 둘 다 알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해, 해치웠나?”
“아, 불길한 소리 하지 말고!”
마법의 주문을 외웠지만 괴수가 불꽃 속에서 살아 나오는 일은 없었다. 괴수는 서서히 불타며 쓰러졌다.
괴수의 단말마가 들려오자, 우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잿더미 위에서 다시 모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흐아아…… 끝났다…….”
감지윤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끝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다.
전주시의 삼분지 일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 나갔으며, 사망자보다 많은 부상자가 여전히 구조와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게이트 사태는 종료되지 않았고, 다른 도시는 아직도 괴수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홍선아의 말은 옳았다.
“해냈네요.”
“…….”
“아까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의원님. 이렇게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답이 보이겠죠.”
“……그래요.”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보였고, 허무하게 스러져간 인생들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재앙이었다.
우리는 재앙과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종류의 재앙과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건.
“오! 영남 지역 통신망이 복구됐대요!”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됐답니까!”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사회가 부산에서 국토회복작전을 시작했대요. 대구는 APT 에이전시랑 서중섭 헌터가 막았고, 창원은 여도연 헌터가 혼자서···….”
“아아! 다행입니다. 혹시 남해는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설진운 헌터네 공격대가 SS급 사냥에 성공했어요. 의원님 고향도 무사하고요. 설 헌터가 남부 지방 흩으면서 광주로 올라오고 있다는데, 어떡할까요?”
“그러면 우리는 전라북도 한번 흩으면서 광주로 내려갑시다. 거기서 만나서 지리산 포위망에 합류하면…….”
“우리는 서쪽에서, 기사회는 동쪽에서 밀고 들어오겠네요?”
“이제 좀 해볼 만하겠네요.”
해볼 만하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근거도 없고 대책도 없는 믿음이지만, 그 근거 없는 맹신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 믿음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불렀다.
그건 사람이 만든 희망이었다.
* * *
“베이징이 무너졌다고요?”
“예.”
“아, X발.”
EP 36-수도를 잃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