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30화 (230/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30화

EP 35-국제사회(2)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게 사람이고, 국가도 결국 사람이 만든 조직이었다. 게이트 사태는 세상을 더 야만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나름 정치질로 밥 벌어먹는 내가 봤을 때, 가장 야만스러운 사건을 저지른 나라는 미국이었다.

프랑스에 초대형 게이트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영국에 게이트가 열린다고 사기를 친 것이다.

그놈의 호루스 시스템을 가지고 말이다.

물론 당시 유럽에 유사 봉건사회가 들어섰던 건 맞다. 그리고 그 헌터들이 주도하는 봉건사회가 유럽을 통일할 뻔했던 것도 맞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면 복구된 통일유럽이 핵무기, 자원, 군대를 가진 초상능력자들의 독재국가가 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러면 초능력자가 무능력자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어느 정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국이 한 짓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게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주한미군사령관의 주장은 그랬다.

“연방정부의 예보 신뢰성을 믿지 못한 중국이 호루스 시스템을 장악하려 시도하는 중입니다.”

미국을 믿지 못한 중국이 인공위성을 빼앗으려 들고 있다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도 미국은 못 믿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미국이 이 개박살 난 세상의 해상무역, 국제금융, 식량난, 핵전쟁 위기를 해결한 업적이 있더라도, 저지른 잘못은 잘못이었다.

미국이 유럽을 배신했던 초유의 사태는 암암리에 국제사회에 퍼져 있었다.

“중국도 유럽처럼 당하긴 싫다는 거군요.”

“아, 아무튼 그 탓에 인공위성이 잠시 무력화되는 시점이 하루에 몇 번 있고, 이번 참사를 예보하지 못한 이유 또한 그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그럴 능력은 됩니까? 쿠데타 일으키고 정권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인공위성에 해킹까지 하고 있대요?”

“물론 우리 기술력이 그렇게까지 퇴보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술자 몇 명이 중국에 넘어가는 걸 막지 못해서…….”

“…….”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연구원을 도둑맞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의 얼굴이 너무도 참담했다. 아무래도 그 내막에 내 상상 이상의 병신짓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이렇게 가끔 똥볼도 차야 미국이지. 개인적으로는 사건의 내막이 무척 궁금했지만 양판석 대통령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사령관을 재촉했다.

의외로 양판석은 영어도 잘했다.

“그래서 하루에 얼마나 먹통이 되는 거요?”

“보통 하루에 네다섯 번. 30분 정도씩 인공위성이 무력화되곤 합니다. 당연히 완전히 해킹당한 적은 아직 없고요. 그저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잠시 기능이 정지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그나마도 처음에는 정상화시키는 데 7시간이 걸렸었습니다.”

“30분이라. 재수 없게 얻어걸렸다고 납득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

“유감스럽지만 이번 참사가 불운과 불운이 겹쳐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미국 학자들이겠지요.”

“……네. 적어도 우리측 전문가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믿어야겠군요? 세상에 호루스 시스템에 정통한 공학자들은 미국 사람밖에 없으니. 정 억울하면 인공위성을 해킹하던가.”

“……대통령님. 연방정부가 전하고자 하는 건, 아무튼 이게 다 중국 때문이니 한국은 조용히 있으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우나 고우나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함께 싸운 동지였고, 그게 양판석과 내가 그의 말에 잠시 침묵한 이유였다.

“30분.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그것도 중국이 잠시 해킹한 사이에 한국에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다니요. 외국인인 제가 보기에도 공교롭습니다. 보통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최소 2시간 전부터 마력이 응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잠깐. 2시간이라고?

“……잠깐만요. 그렇다면 인공위성이 정지된 15분 사이에 게이트 사태가 터진 건, 대체.”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3가지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미군 정모를 벗어 책상에 내려놨다. 참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첫째, 미국이 게이트 발생을 인지하고서도 동맹국에게 말을 안 했거나. 둘째, 미국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동맹에게 사기를 치고 있거나…….”

“…….”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상사태가, 이보다 더 거대한 사건의 전조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머리 뚜껑을 열고 얼음물을 부어 넣은 기분이었다. 그건 양판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전조현상이라는 단어를 내가 똑바로 들은 게 맞습니까?”

“이렇게 단기간 내에 갑작스럽게 게이트가 열렸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고,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 관측된 바가 없습니다. 유럽을 제외하고서는요.”

“마력에 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쉽게 믿을 수가 없군. 핫라인을 연결해주시오.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하겠소.”

“좋습니다. 금방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승문이 자네는 상황실 좀 보고 있게. 그리고 원옥분 당선자 이리로 불러오고.”

“네, 알겠습니다.”

* * *

게이트 사태는 수도권을 휩쓸었지만, 충청도라고 멀쩡한 건 아니었다. 충청도는 개문(開門) 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변화한 지역이었다.

괴수에 대한 공포는 남부 지역의 집값을 천문학적으로 폭등시켰고, 이를 견디지 못한 서민들과 수도권 난민들은 충청도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충청도는 부랑자들의 땅이 되었다.

이는 충청도에만 난민촌을 몰아 지은 정부의 의도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행정수도 세종시를 중심으로 신수도권을 건설하려면 값싼 노동자들이 대거 필요했으니까.

덕분에 건설업계도 수월하게 협조했고, 피난민 실업률도 대폭 감소했으나, 이 한국판 싸구려 뉴딜정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난민촌. 공사판. 난민들이 숨겨놓은 총기까지. 슬럼가가 만들어지기는 최적의 조건이다. 치안의 그늘 속에서 범죄의 온상이 만들어졌다.

당장 세종시 공무원 주거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밀주와 본드 냄새가 났다. 이미 붕괴한 주민등록번호 체계 속에서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 또한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니 혹자는 충청도를 대한민국의 쓰레기통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쓰레기통은 이보다 더 참혹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타고 있었다.

“제천시 도심부에 괴수들이 침입했습니다!”

“무, 무슨! 월악산에서 막았다지 않았습니까!”

“치악산에서 비행괴수들이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방공망에도 잡히지 않았던 걸 보면, 아무래도 그쪽에도 게이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방금 열렸을 수도 있겠네요.”

괴수들이 충청도 일대를 휘젓고 있었다.

제천, 단양, 문경, 예천, 안동, 의성, 청송, 군위, 영천 일대에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 충북과 경북을 비롯한 태백산맥 전역에 가까웠다.

그나마 수많은 헌터들이 활동하고 거주하는 강원, 경북 일대는 피해가 덜했다. 이번 사태의 주적이 대부분 소형괴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형괴수들은 아파트 계단을 오를 수 있었고, 야산에 숨어들어 군사위성의 추적을 피할 수도 있었다. 이는 한국의 지형특성상 치명적인 사상률과 잠재적 위협을 초래했다.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놈들이 숨어들어 본격적인 번식을 시작하고 환경에 맞춰 진화한다면 태백산맥 전체를 상실할 겁니다.”

그 결과, 정부는 충청도 일대를 공격하는 괴수들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경북, 강원 태백산맥에 숨어든 괴수들을 몰살시켜야 했다.

만일 충청도를 방어하는 데 실패한다면 역대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었고, 태백산맥에 숨어든 괴수들을 몰살하지 못한다면 강원도 전체가 잠재적 위험지대로 지정될 것이었다.

나는 후자에 중점을 뒀다.

태백산맥의 상실은 충청방어선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지금까지 충청방어선 이남 지방은 괴수의 공격을 받지 않은 거의 유일한 첨단 사회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남부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경제망과 금융을 조성했다.

이것이 붕괴한다면 한국이 죽는 것이다. 이 모든 번영이 우리는 안전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출발했기에, 강원도를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 예비군 전부 소집해서 태백산맥으로 밀어 넣어야 합니다. 아니면 태백산맥 전체를 태워버리던가!”

“미쳤습니까! 한 실장??!”

“정권도 끝났는데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정권에서 강원도가 몬스터랜드가 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습니다.”

대규모 소탕작전이 개시되었다. 우리는 헌터, 군대, 해외 지원군을 가리지 않고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태백산맥에 들이부었다.

강원도 전체를 사람으로 덮어버려서라도 괴수를 찾아내 몰살하겠다는 작전이었고, 그 결과 막대한 재정적자와 함께 작전은 성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았다.

쓰라린 흉터와 함께.

[……충북 제천에 침입한 괴수들이 난민촌을 휩쓸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 묻은 텐트와, 무너진 건물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현재까지 추산된 사망자와 실종자 대부분은 제천시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밀집한 난민 거주지역에 괴수가 침입하자 제대로 된 대피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충격에 빠진 시민들이 물자를 사재기하고 있습니다. 증시는 요동치고 있으며, 남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역대 최고치에…….]

산발적인 게이트 사태가 중부 지방 전역에 발생했지만, 충북 제천을 제외하고는 괴수가 민간인 거주지역에 진입하는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제천시 시가지에 괴수들이 침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전국민이 충격에 휩싸일 정도의 인명피해를 야기했다.

이번 참사는 ‘제천 사태’라고 명명되었다.

* * *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항구적 화합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병실 구석에 달린 티비에서 원옥분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있었다.

제천 사태의 뒷수습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우리의 정권은 끝났다. 애초에 사태 자체가 대통령 임기 끝자락에 발생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추모와 애도의 물결.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 번져나가는 공포. 요동치는 경제. 그리고 한국, 중국, 미국 사이에 오가는 어색한 침묵.

그것이 양판석 행정부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정부에 가해지는 비판은 크지 않았는데, 비록 호루스 시스템의 관측실패에 대해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이 책임을 일부 인정한 탓이었다.

거기에 북한을 합병하고 경제를 살려낸 양판석 행정부의 업적이 워낙 크기도 했고, 아직까지 사람들은 게이트 사태를 인간이 예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 정도로 인식한 덕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판석 대통령의 며느리가 사고에 휩쓸려 사망했다.

심지어 아들조차 병원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으니, 그 누가 양판석 대통령이 사고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겠냐고 책망하겠는가.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이는 상당히 커다란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되었다.

양판석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 아들이 입원한 병원 앞에 드문드문 보일 정도였으니.

“……그러니 국민들도 양판석 대통령을 쉽게 놓아주기 힘들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아직 국민들은 인간 양판석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아직 양판석을 잊지 못했습니다.”

사실 양판석의 아들이 병원에 누운 덕분에 알게 모르게 살아난 고위공직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었다.

대통령 며느리의 사망과 아들의 중상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건수였다. 그리고 지금 정치판에는 그런 싸구려 감성팔이라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걸 양판석 아들한테 직접 들으니까 기분이 좀 묘했다.

“한승문 장관님.”

“이러지 마십시오. 저 이제 정치인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인간 한승문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붕대를 둘둘 감고 병상에 누워있는 와중에도 한껏 무게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아들이랍시고 얼굴은 그나마 양판석을 닮아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긴 했다.

“제가 인간 양판석의 정신을 잇겠습니다.”

“…….”

“어떤 험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출마할 기회만 주십시오.”

* * *

“채원아, 오래 기다렸니?”

“아뇨. 병문안 잘 갔다 오셨어요?”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멀쩡하더라.”

병원 로비에서 율무차를 홀짝이던 피채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기분을 읽었는지, 채원이 녀석은 내가 상당히 언짢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이거 드세요.”

“머리카락 빠져 있는데.”

“……이제 됐나요.”

“머리카락 달인 율무차는 먹기 싫-”

피채원이 들고 있던 율무차 하나를 슬쩍 찔러주며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목소리가 약간 맥없고 큰 고저가 없었다.

“양판석 대통령 아드님이랑 아는 사이셨나요.”

“글쎄다. 안다면 아는 사이지. 예전에 보좌관 할 때 몇 번 봤으니까.”

“친하신가요?”

“룸살롱에서 약 빨고 디비 누운 거 등에 업고 날랐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저런.”

“사람이 참 그대로더라. 너는 보좌관 생활 진짜 편하게 하는 줄 알아라.”

“저 이제 보좌관 아닌데요.”

피채원은 이제 보좌관이 아니었고, 나 또한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완전히 날백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피채원과 나는 여전히 같이 다니곤 했다. 그건 그냥 일종의 습관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사람 된 도리로 병문안은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는데, 괜히 기분만 잡쳤다.

양판석도 술 취하면 가끔 손녀 애비만 아니었어도 내다 버렸다는 소리를 가끔 하곤 했는데,

나는 양판석의 냉혹한 성정 때문에 아들이 삐뚤어졌다고 추측했으나, 이제 보니 아들의 냉혹한 성격 때문에 양판석이 삐뚤어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 멀리 병원 구석에서 양판석이 그렇게 아끼는 손녀가 살짝 보였다.

그녀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철통같이 보호되고 있었다.

“……이제 가자, 채원아.”

“네.”

굳이 인사하면 기분 심란해질 것 같아서 그냥 병원에서 나왔다.

나는 익숙하게 운전석에 오르며, 조수석에 있는 비서에게 질문했다.

“그래. 다음 일정이 뭐냐?”

“파리행 비행기 출발까지 3시간 남았네요.”

“그럼 공항에서 저녁이나 먹자.”

다음 일정은 유럽 관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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