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9화 (229/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9화

EP 35-국제사회

“어. 채원아. 빨리 타라.”

쉬다가 갑자기 불려온 비서 놈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머리도 부스스하고, 양복도 바닥에 구겨진 거 대충 주워서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녀석은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시꺼먼 동태눈으로 사람 째려보는 게 옆집 사는 거 아니었으면 한 대 칠 기세였다. 평소라면 농담이라도 던졌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감 기자님이 괴수 만나셨단다.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주왕산 괴수인가요.”

“글쎄다? 오는 길에 충청도에서 만난 거니까 딴 놈이라고 봐야지. 충청방어선 이남에 괴수가 돌아다니고 있어. 최소 2마리 이상.”

“주한미군은 연락도 없었고. 원옥분 대통령은 그저께 당선되셨고. 상황이 조금 공교로운데요.”

“너도 이제 상황을 좀 보는구나.”

“제가 할 일이 많겠네요.”

차를 몰고 도로로 나선다. 일단 지하벙커 청와대로 갈 생각이었다.

상황이 꽤 복잡했다. 충청선 남쪽에 괴수가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더럽게 꼬인 일이었는데, 거기에 주한미군, 대통령까지 엮이면…….

그렇게 찝찝한 심정으로 고속도로에 들어가는데 전화가 왔다.

운전에 관한 내 기벽을 아는 피채원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가져갔다.

“네. 여보세요. 피채원 보좌관입니다. 비서실장님께 말씀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네. 네. 감 감찰관님 사고 소식은 이미 보고 받으셨습니다…….”

나는 어지간하면 운전 중엔 전화를 안 받았다.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작고하신 이후로 생긴 습관이다. 무조건 운전대에서 손 떼면 안 되고. 무조건 전방주시. 무조건 안전운전…….

이런 습관 덕분에 다리 장애인이 국회의원 운전기사로 취업했고, 내가 정치인 된 이후엔 운전기사 채용이 장관 인사청문회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

솔직히 습관이라기보다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교통사고로 다리 한 짝 날렸으니 운전에 신경 쓰는 건 당연했다.

“아.”

그래도 전화기 2개에서 동시에 전화가 오면 방법이 없다. 이번에 온 것은 국군 보안회선이었다.

“……예. 한승문입니다.”

[강원군구사령관 유현종 중장입니다.]

“유 중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지요?”

[예, 다름이 아니라 충북 제천에서 개문이 떴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제천이요? 거긴 월악산 쪽 아닙니까? 저는 속리산 지나는 터널 인근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어디냐, 괴산군이요.”

[저도 양쪽에서 들어오는 보고 내용이 달라서 확인차 연락 드린 겁니다. 하하.]

“뭐, 이웃 동네니까 혼선이 생길 수 있지요. 어쩌면 제천에서 나온 괴수가 괴산에서 잡혔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그때, 3번째 핸드폰에서 전화가 왔다. 국정원 보안회선이었다.

“……어라?”

[예?]

“아뇨, 전화가 겹쳐서…….”

4번째 핸드폰에서도 전화가 왔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쓰는 전화기였다.

5번째 핸드폰에서도 전화가 왔다. 국제 핫라인이다.

차량이 순식간에 전화벨 소리로 가득해졌다.

“…….”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헌터로서의 직감이었다.

제천. 그리고 괴산.

양쪽에 전부 게이트가 열렸다고.

* * *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날 배신했다.

“제천, 괴산, 충주, 춘천, 영양, 확인된 게이트만 5개입니다.”

상황은 예상보다 더욱 심각했다. 영상으로 확인된 것은 작은 게이트에서 소형괴수 몇 마리 튀어나오는 수준이었지만, 내가 가진 지식만큼 상황이 심각한 게 보였다.

저런 종류는 오히려 작을수록 위험하다. 멸종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벌써 괴수들은 지역환경에 맞춰 변이를 시작했고, 산골짜기에 숨어든 놈들이 새끼까지 치며 세대를 이어가 진화한다면 소백산맥 전체가 마경이 될 것이다.

심지어 이미 시가지에 진입한 무리들도 있었다. 제천 인근의 소도시는 이미 괴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괴수가 사람을 물어 죽이고 있다.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 참담한 감정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식히며 상황판단에 나섰다.

“……어떤 게이트죠?”

옛날에는 ‘게이트’ 하면 괴수 나오는 구멍이었지만 요즘은 그나마 연구가 됐다. 나라마다 구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게이트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한 군데서 우직하게 뱉어내는 고정형,

인근을 오염시키는 침식형,

작은 게이트가 지역에 무작위로 발생하는 산발형,

더럽게 쎈 놈 하나 뱉어내고 없어지는 소멸형.

그리고 한국에서 대처하기 가장 어려운 경우는…….

“산발형입니다. 등급은 미상입니다.”

‘돌겠네.’

차라리 고정형이면 게이트버스터 때려 박고, 소멸형이면 우르르 몰려가서 때려잡을 수도 있다.

이 나라가 쥐방울만 하긴 해도 헌터나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발형 게이트는 이야기가 다르다. 호주면 모를까, 이 작은 나라에서 무작위로 게이트 열리면 거의 무조건 시가지 근처였다.

실제로 제천은 재수 없게도 도시 인근에 게이트가 열려서 피를 보고 있었다. 이미 유혈사태가 발생했으니 전시사태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말이 해당 ‘지역’에 무작위로 열리는 거지. 그 ‘지역’이 충청도인지 한반도인지, 아니면 동북아시아 전체인지는 괴수랑 미국만 안다.

호루스 시스템으로 대기 중 마력 흐름을 예보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미국은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언론에 속보 풀렸습니다!”

“연합사는 아직도 불통입니까?!”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지하벙커 청와대는 반쯤 패닉에 빠져 있었다. 다들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다음 대통령도 선출된 마당에 방 뺄 준비나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끌려 나오다니. 사실 수능 끝난 고등학생보다 더 붕 뜬 처지가 대선 끝난 청와대 아니던가.

사실상 식물정부나 다름없던 인간들이 도망 안 치고 출근이나 한 건 다행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게 뻔하다.

다행히, 나도 지금까지 해왔던 가락이 있는지라 몇 마디 주워섬기면서 사람들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아직은 충청도에만 퍼진 거죠? 일단 광주랑 부산에 의사랑 엠뷸런스부터 모읍시다. 그건 소방청이 지휘하고, 초인지원청이 시가지에 헌터들 투입하세요.”

“대피령 마구잡이로 내리지 마세요.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아파트 때려 부수는 놈이 나온 것도 아닌데, 일단은 집에 있으라 하고, 군부 방침에 맞춰서 천천히…….”

“주한미군은 이제라도 호루스 시스템 가동시키라고 하십시오. 항의는 나중에 제가 할 테니 일단 지원요청부터 합시다. 지금 미국 정부한테 사과문 뱉어내라고 협박해서 뭐합니까. 항공모함이나 보내라고 하세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도탄에 빠진 나라를 살리려고 발악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였다.

여태 보이지 않던 김두식 국무총리는 합동참모본부에서 국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본인부터가 예전에 이미 이런 상황에서 무너진 국군을 규합한 명장이었으니 기대가 컸던 건 사실이지만, 그는 기대 이상의 대응을 보여줬다.

“7군단이 벌써 충청도를 밟았다고요?”

[예. 민간인 대피시키면서 세종시를 요새화시키는 게 작전목표입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모르는 상황 아닙니까?]

“허어…….”

[어차피 행정수도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곳입니다. 의정부 후퇴와 속초 후퇴를 이끌었던 강원군구의 유현종 중장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피난에는 도가 튼 양반이니 걱정 마십시오.]

“농담할 여유까지 있으십니까…….”

물론 그쪽에서 그러는 동안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니다.

나는 김두식 총리에게 낭보를 전했다.

“총리님. 국내 민간군사기업에 소속된 헌터들은 일단 전부 충청방어선으로 파견시켰습니다.”

[글쎄요. 기업 쪽 친구들이 순순히 오겠습니까?]

“호루스 시스템이 없으니 확인은 못 하지만, 지금 한반도 상공은 마력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러면 수도권에 마석광산 용도로 남겨둔 게이트들이 폭주할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부 부수겠다고 했습니다.”

[오.]

“자기네 사업장 뒤집어엎는 꼴을 볼 바에야 알아서들 지키려고 나설 겁니다. 특별법 빡세게 적용하면 강제징집 가능한 걸 모르지도 않을 테니 적당히 협조하겠지요.”

[그건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아, 총리님. 강원도 쪽 원자력발전소들은.”

[거기는 가장 먼저 점거했습니다. 국군 쪽 헌터들이 전부 그쪽에 파견됐지요. 그래서 초인지원청에 지원을 요청하려 했는데 이렇게 됐다면 더 낫군요.]

“음.”

유재경 총리 내쫓으려고 앉힌 허수아비인 줄 알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만큼 든든한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양판석 대통령은 여기까지 큰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닐까.

“어?”

양판석.

내가 정신이 반쯤 나가긴 나갔나 보다. 내가 그 양반 안부를 까먹고 있을 줄이야.

나는 황급히 지나가던 공무원을 붙잡고 물어봤다. 지하벙커 청와대라 그런지 일단 잡고 보니까 고위공무원이었다.

“경제수석님.”

“아, 실장님. 무슨 일로…….”

“양판석 대통령께선 어디 계십니까?”

“합참에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예?”

“……?”

“……?”

* * *

다행히도 양판석 대통령은 내가 텅 빈 집무실에서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아니 이 상황에 왜 아무도 대통령 위치를 몰라?!’ 라고 소리 지르고 있을 때 벙커에 도착했다.

당연히 대통령 위치를 알고 있고, 또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대통령 비서실장이 별일 없는 것처럼 지하벙커에서 돌아다니니까 다들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워낙에 비상사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비상사태를 너무 많이 겪은 공무원들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오셨습니까.”

“늦어서 미안하네.”

늦었다기에는 사태 발발 이후 1시간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조지 부시 꼴은 면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양판석 대통령의 모습은 거의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수척한 얼굴에 핏기가 가시니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며느리가 죽었네.”

“…….”

“아들은 병원에 있지. 나도 사람인지라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군.”

나는 차마 뭐라고 말을 못 하고 한참을 어버버거리다가 멍청한 대꾸나 한 마디 중얼거렸을 따름이었다.

“소, 손녀 분은 괜찮으십니까.”

“그놈까지 죽었으면 나도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겠지. 이제 괜찮으니까 상황이나 설명해보게. 나 없으면 망할 줄 알았는데, 어째 꾸역꾸역 해내고 있더만.”

괜찮다는 사람 치고 괜찮다는 사람은 없는 법이고, 실제로 양판석은 반쯤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양판석은 그런 몰골로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언제나처럼 별일 없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음. 제천이 꽤 심각하구만. 춘천은 인근 헌터들이 잘 막았고. 그래서 게이트는 이렇게 다섯 군데가 끝인가?”

“아뇨, 소백산맥에서 기어 나오는 놈들 숫자를 감안하면 열 개는 넘을 겁니다. 어쩌면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 이제부터 조사해야죠. 주한미군에 호루스 시스템 가동하라고 압박하고…….”

연구통합위성을 통한 징조예보 시스템.

Herald Omen through Resarch United Satellite.

통칭 Horus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미국만이 가진 기술이었다. 지구 대기 중 마력흐름을 읽어내는 인공위성, 그것으로 미국은 게이트의 예언가를 손에 넣게 되었다.

문제는 그 새끼들이 우리한테 예언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 이는 호루스 시스템이 병신이 되었거나, 놈들이 우리를 병신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 대해 선제적으로 따지고 나설 수는 없었다.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었으나, 나와 양판석은 수명이 2달도 안 남은 정부의 사람들이었다.

양판석이 혀를 차며 결론 내렸다.

“일단 주한미군은 나중에 처리하고 제천이나 수습하지. 거의 모든 사상자가 제천에서 나왔네. 이유가 뭔가?”

“이유랄 게 있습니까? 하필이면 게이트가 열렸고, 하필이면 가까운 데 열렸다는 겁니다. 정부가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괴수들이 인근 소도시를 덮쳤으니, 우리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 국민들한테 이게 다 미국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아닌가.”

“죽은 사람은 보상하고, 안 죽은 사람은 최대한 살려야죠. 일단 거기까지만 하고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우리 최선이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가 주한미군까지 헤집어놓으면 원옥분 정부의 외교방침에 영향을 주게 되고…….”

지금도 제천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헌터들이 투입되는 와중에 이런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국민이 죽었는데 주한미군에다 대고 마음껏 화도 내지 못하다니. 나랏일은 가끔 보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때, 주한미군사령관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자주 보아왔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백인이었다.

“호루스 위성이 중국인들에게 해킹당했습니다.”

“너무 편한 변명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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