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8화 (228/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8화

Side EP-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괴수들이 세계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대한민국 택시 업계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이 전례 없는 화석에너지 고갈 위기에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대중교통을 찾은 게 첫 번째 이유요.

아무 밑천도 없는 난민들이 수도권 외곽에 버려진 차에다가 ‘택시’ 뚜껑 달아놓으면 취직 성공하는 게 두 번째 이유이며.

또, 이러한 세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현대자동차와 삼성 사이오닉이 자기네 택시회사(하청)에 가입하면 마석에너지 엔진 달아주는 사업을 벌인 게 세 번째 이유다.

덕분에 택시 업계는 살아남았고, 난민들도 숨통이 트였으며, 정부여당은 택시기사들 표를 얻었고, 기업들은 에너지배터리 달달하게 팔아먹었지만…….

“어휴.”

세종시 공무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싸게 모십니다! 무사고 운전 25년!”

“총알택시! 안전운전!”

“뒷자리에 누우셔도 됩니다!”

* * *

세종시 정부청사는 택시로 포위되어 있었다. 요즘 그렇게 드물다는 시꺼면 매연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것도 사방에서.

“콜록!”

제아무리 택시 업계가 연명치료를 받았다지만 이 시국에 택시 타는 건, 정말 급한 사람 아니면 법인카드 들고 있는 양반들뿐이다.

덕분에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 입구는 자동으로 택시 정거장이 되기 마련이었고, 그중에 세종시 정부청사는 택시기사들끼리도 자리다툼을 해야 하는 명당 중의 명당.

세종시 공무원들은 어지간하면 부산으로 출장을 가니, 충청도에서 부산까지 가는 장거리 손님이야말로 걸어 다니는 돼지저금통이었다.

“택시 타세요! 택시!”

“부산까지 25만 원!”

“아, 예, 잠시만요.”

요즘은 택시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택시기사들은 호객에 열심이고, 태반이 주워온 차량이다 보니 다마스부터 에쿠스까지 차종도 다양했으며, 대부분의 택시기사가 택배, 치킨배달도 겸업했으니 음식 냄새는 기본에 재수 없으면 짐덩이 사이에 낑겨 가야 했다.

그 덕에 정부청사 인근은 손님 찾는 택시기사와, 멀쩡한 택시 찾아 돌아다니는 공무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뻥튀기 파는 상인들까지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물론 이러한 작태에 열 받은 공무원들이 차라리 충청-부산 셔틀버스를 만들라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책상물림들이 이미 법을 만들어놨고, 대기업이 업계에 알까지 박은 데다, 택시기사 민심이 곧 난민들 민심이었으니 법 바꾸는 건 요원했다.

그러니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택시를 고르는 것뿐. 그나마 이 짓도 자주 하다 보니 어느새 요령이 생기는 중이다.

똑. 똑.

구석에 박혀있는 택시에 노크한다.

보통 구석자리로 밀려난 택시들은 신입이 대다수고, 신입들은 운전실력은 몰라도 가는 길에 택배까지 받아 싣고서 손님을 짐덩이에 낑겨 보낼 배짱이 없었다.

“경상도 가죠?”

“어. 네?”

“안 가요?”

“아, 아뇨! 갑니다! 가요!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기사는 고작 대학생 즈음으로 보였다. 그것도 앳된 여자애다. 구석탱이에 손님이 올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지 들고 있던 지도책을 허둥지둥 내려놓는다.

사실 부모 잃은 청년가장이야 사회에 넘쳐났지만, 손님에게도 어린 딸이 있었으므로 양복쟁이 공무원은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으로 부탁드립니다.”

* * *

“운전한 지 3년이나 됐다고요? 지금은 스무 살이고?”

“예, 벌써 그렇게 됐네요. 택시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그러면 예전에는 뭐 했습니까? 아니, 아니, 애초에 미성년자가 운전할만한 데가 있나?”

“강원도 고립된 지 꽤 됐었잖아요. 거기서 헌터 언니오빠들 산에다 내려주고, 시내로 날라주고 그랬죠. 가끔은 트럭에 괴수 시체도 올렸고요.”

꽤 인상 깊은 추억이었는지 택시기사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창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스쳐 지나간다. 택시는 소백산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뭐, 지금은 민증 나왔으니까 상관없죠. 면허도 제대로 땄고요. 그리고 미성년자 공무원은 되는데, 미성년자 택시기사는 안 되나요? 한승문 장관 옆에 걔 있잖아요, 피…… 무슨 피였는데. 피천득?”

“피채원 보좌관이요?”

“아! 피채원!”

“그 친구가 나보다 급수가 더 높아요.”

손님이 입술을 삐죽이자 택시기사가 웃었다.

기사가 손님에게 묻는다.

“공무원이시죠? 혹시 피채원 보셨어요? 인터넷에서 엄청 쎈 초능력자라고 그러던데.”

“아유, 보기야 봤는데 멀리서 봐서 잘 모릅니다. 그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지간하면 일 잘하는 사람들이 나랏일 보더라고요.”

“그거 손님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하하! 말이 그렇게 되네요.”

손님은 민감한 질문을 얼버무렸고, 젊은 택시기사는 더 파고들지 않고 아부로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잠시 이어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흘깃 쳐다봤다.

“그런데 주왕산은 어떤 일로 가시는 건가요?”

“아, 괴수 흔적이 나왔더라고요.”

“괴수요?!”

택시기사가 기겁했다. 택시가 삐끗할 정도였다.

“그, 그, 주왕산이면 충청방어선 아래쪽 아니에요? 거의 부산 위에 붙어 있는…….”

다소 지나친 반응. 보통 괴수를 직접 마주친 적 있는 사람이 이런다.

심상찮은 반응에서 직감한 손님이 택시기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기껏해야 소형 괴수고, 지금 초상관리부에서 그거 잡겠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초인지원청 국장이 맨날 나와서 소리 지른다니까요? 치안관들도 샅샅이 수색 중이고요.”

“아, 네, 네…….”

“뉴스에서도 괜찮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안내방송은 충분히 내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엔 원옥분 대통령 이야기만 해서요…….”

“아하, 대선 이슈에 묻혔구나. 하여튼 그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저도 괴수 때문에 출장 가는 거 아니에요. 무슨 유튜버가 거기 봉쇄구역 담장 넘으려다가 여도연 치안관한테 얻어맞고 누웠는데, 그거 병원비 물어주러 가는 거지…….”

“하하…….”

이쯤 되자 택시기사도 본인의 과민반응을 알았는지 민망한 눈치다. 기사가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유난을…….”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괴수 볼 일은 없으니까 걱정 놓으시죠. 하하!”

* * *

“어?”

얼마나 지났을까. 손님은 꾸벅꾸벅 졸고, 택시는 어느 야산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도로는 당연히 텅 비어 있었다. 군사용 도로와 민간용 도로가 구분되어 있었기에,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덕분에 택시기사는 한참 멀리 떨어진 터널 끝자락을 확인할 수 있었고, 손님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터널 끝에 무언가 있었다.

“고라닌가?”

“고라니치곤 덩치가 큰 것 같은데요. 그리고…….”

보통 고라니는 차량을 향해 달려오지는 않는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

말보다 앞서는 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전율. 생존본능이 경고한다.

괴수다.

적어도 걸어 다니는 고라니는 대한민국에 없다. 사람 뜯어먹는 괴물들에 대한 기억이 저절로 눈앞에 스친다.

공포에 사로잡힌 택시기사가 운전대를 돌리려는 찰나, 손님이 불쑥 튀어나와 핸들을 붙잡았다.

“아악! 아저씨 미쳤어요!? 이, 흐아아!”

“가만 있어봐요.”

양복쟁이 공무원 팔뚝이 어찌나 억센지 택시기사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운전대를 잡은 손은 꿈쩍도 안 한다.

다행히 괴수와 마주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손님이 재빨리 설명했다.

“저놈, 내가 아는 종류면 차보다 빠릅니다.”

“아악! 꺄아악! 운전대에서 손! 손! 떼라고!”

“엑셀 꽉 밟아요! 치고 지나갑니다!”

“아아악!

택시기사는 패닉에 빠졌지만 손님의 명령에 따랐다. 아니, 패닉 상태에 빠졌기에 손님의 명령을 무의식적으로 들었다.

그 결과 엑셀은 운전자가 밟고, 핸들은 뒷좌석에서 잡았다. 제대로 미친 짓이었다.

끼이익-!

그리고 뒷좌석 손님은 충돌 직전에 핸들을 틀어, 정면충돌을 피하고 괴수 몸통을 빗겨 쳤다.

퍽 - !

“악!”

“으히악!”

택시는 몇 바퀴 빙글빙글 돌다가 터널 벽을 긁으며 멈춰 섰다.

스키드마크 위로 허리가 꺾인 괴수의 시체가 데굴데굴 굴렀다.

택시기사는 용케 터진 에어백에 얼굴을 처박고 흐느끼고 있었다.

“흐으, 흐으으…….”

“괜찮습니까?!”

“아저씨는 괜찮겠어요!?”

‘손님’이 ‘아저씨’가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길바닥에서 괴수를 마주쳤다는 거다.

절뚝이는 택시기사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손님은 아프지도 않은지 어느새 차에서 내려 괴수 시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손님이 택시기사를 흘깃 쳐다봤다.

“차는 어떻습니까?”

“시동이 안 걸려요…….”

자동차 어쩔 거냐고 투덜거리려던 택시기사가 괴수 시체를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은 매끄럽고 둥글둥글한 심해어처럼 생겨서 징그러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했지만, 몸통은 흉악한 늑대인간 같았다.

심지어 근육질 늑대인간이다. 털은 없고 근육만 드러난 개과 짐승. 멀리서 보면 언뜻 기어 다니는 사람 같기도 했기에 더더욱 역겨웠다.

어떻게 이런 저주받은 생물이 있을 수 있을까? 차마 이 세상에 있는 짐승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택시기사가 바들거리는 다리를 절뚝이며 구역질을 삼켰다.

“이게…… 그, 주왕산 괴수인가요?”

“글쎄요.”

“허. 허허허……. 그나마 잡혔으니 다행이네요. 헌터도 아닌데 괴수를 잡다니. 마석은 반반으로 하시죠? 저 택시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여기서 벗어납시다.”

“예?”

“여기 아직 충청돕니다…….”

손님의 말에 택시기사가 얼어붙었다.

손님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놈 주왕산에서 돌아다니던 놈이 아니에요.”

“그, 그 말씀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새로운 괴수라는 거고. 그렇다면 다른 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아니, 시발,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괴수니까…….”

“좋은 마인드입니다. 이놈들을 상식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아까 저는 저놈이 어떤 종류인지 알지 않았습니까?”

손님은 택시기사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이더니,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택시에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설명을 이어간다.

“팔다리 길쭉한 개로 진화하는 건 주로 산골짜기에 떨어진 괴수들입니다. 그리고 저놈 머리를 보십시오. 아직 매끄럽죠? 변이가 덜 됐다는 뜻입니다. 아직 환경에 적응을 못 했어요.”

“……아. 시발.”

“그렇죠.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이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뜻이에요. 최대한 빨리 여길 뜹시다.”

“이, 일단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했습니다.”

“……요즘 공무원들 능력 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네요.”

그제야 비교적 안정을 되찾은 택시기사가 비틀거리며 지도책과 손전등, 라이터를 챙겼다. 여유가 생겼는지 피식 웃으며 건빵까지 내민다.

“손님, 건빵 드실래요?”

“하하, 그것도 일단 챙기죠. 그나저나 택시 망가져서 어떡합니까?”

“어, 음, 오래 타긴 했는데 사실 강원도에서 주워온 차에요. 엔진만 갈았고요.”

“저놈 마석은 다 드리겠습니다. 아마 택시도 보상해드리는 건 어렵지-”

택시 트렁크를 열어본 손님이 멈칫했다.

“트렁크에 소총이 왜 있죠?”

“아.”

충청도 집값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은 수도권 난민들이었고, 그들은 길거리에서 주워온 k2 소총을 집구석에 고이 모셔놨다가 이따금 꺼내 들곤 했다.

“가, 강원도에서 주웠어요.”

“……이것저것 참 잘 주우시는군요.”

뭐, 가끔 트렁크에 숨기는 경우도 있긴 했다.

* * *

결과적으로, 소총을 쓸 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괴수들과 마주치지 않았고, 헌터들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서 도착했으며, 택시기사는 마석을 얻었지만 불법총기소지로 벌금을 물었다.

나름대로 운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택시 타고 출장 가는 마당에 괴수를 만났으니 무슨 놈의 운수 타령을 하겠는가.

게다가 충청도 한복판에 괴수가 튀어나왔다. 주왕산 의문의 괴수 때문에 초상관리부가 이미 뒤집어졌는데, 이번에는 충청도까지?

이 와중에 주한미군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괴수예측시스템은 어디에 팔아먹었나? 설마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건가? 아니면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나?

대선도 막 끝난 마당에 누가 대처해야 하나. 게이트 규모는 도대체 얼마인가. 요동치는 땅값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볼 것인가.

머리가 점점 복잡해진다. 도저히 그 파장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불행을 나눠줄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었다.

손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전화를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상대방은 칼같이 전화를 받았다.

[예, 감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무슨 일로-]

“한 실장님. 충청도에 게이트 열렸습니다…….”

[예?]

“자세한 건 비서실 친구들한테 들으십시오. 지금쯤 거기도 비상벨 울렸을 겁니다.”

[뭐라고요?]

“저 당분간 입원합니다. 병문안은 안 오셔도 되는데, 충청도랑 부산에 셔틀버스 좀 만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하…….”

[입원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

“…….”

[여보세요?]

Side EP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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